# 258
<귀환무사 258화>
귀환무사 2부
33화
몇몇이 용케 공격을 했지만, 북궁천소의 주먹에 의해 소드 브레이커가 산산조각이 나며 날아가자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저럴 수가…….”
드웨인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당차게 뽑아 든 그의 검은 여전히 푸른색 기운이 맺혀 있었다.
콱!
“컥!”
북궁천소는 마법사의 멱살을 움켜쥐고는 혁련천후의 곁으로 날아왔다.
“꿇어.”
“사, 살려 주십시오!”
로브를 벗겨 내고 속옷만 걸친 도적단의 마법사가 혁련천후 앞에 무릎을 꿇었다.
혁련천후의 차가운 눈동자를 마주친 그는 두려움에 육신을 벌벌 떨었다. 살려 달라는 말조차도 입 밖으로 흘러 나가지 못했다.
“하나만 묻겠다.”
“무, 무엇이든, 으으…….”
이가 저절로 부딪혔다.
“이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오가는 방법을 알고 있나?”
“아이고! 전, 그저 마법 흉내만 내는 수준입지요. 그런 경지는 대마법사들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요. 전설의 드래곤이라면 모를까…….”
“인간이라면 불가능한 마법이란 말이지?”
“저, 저도 그것은 잘 모릅니다요. 다만 차원을 오가는 마법은 용언 마법이나 그에 준하는 서클을 초월한 존재들만이 시전할 수 있다고 배웠습니다요.”
혁련천후의 눈이 빛을 번득였다.
“용언 마법은 무엇이지?”
“그게, 드래곤이 사용하는 마법인데…… 없다고 보는 것이…….”
드래곤은 혁련천후도 드웨인에게서 대충 들어서 알고 있었다. 물론 꾸며 낸 말이라 생각하는 그였다.
그가 다시 물었다.
“그런 존재들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나?”
“드, 드래곤을 말입니까?”
“서클을 초월했다는 존재들 말이다.”
“그거야, 저도 모릅니다요. 그저 마법사들 사이에서 떠도는 전설일 뿐이라…….”
사실 눈앞의 엉터리 마법사가 그것을 제대로 알리는 만무하다.
그러니 이곳 세상의 모든 것이 낯선 혁련천후로서는 비슷한 복장을 한 그가 뭔가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물었지만, 당연히 제대로 된 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더 이상 물을 것도, 들을 것도 없어지자 혁련천후는 엉터리 마법사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조윤이 도적들을 한 차례 쓸어 본 후, 말했다.
“도적질을 한 놈들입니다. 이대로 두고 떠나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게 분명합니다.”
그 말에 도적들이 사색이 되었다.
“내공이라도 없애든지…….”
“그런 것조차도 없는 놈들입니다. 그냥 팔 하나를 자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으…….”
도적들이 구타당한 상처 부위의 통증도 잊은 채,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혁련천후의 차가운 눈길이 도적을 쓸고 지나갔다. 내공을 전혀 담지 않았음에도 오줌을 지리는 자들도 생겨났다. 그의 시선이 드웨인을 향해 돌아갔다.
“이곳에선 도적들을 어떻게 처리하지?”
“죄의 경중에 따라 처벌이 다릅니다만, 귀족을 해치려고 든 자들은 무조건 사형입니다. 물론 재판 없이 즉결처분이 가능하지요.”
“일반 백성을 해친 자들은?”
“그야 노예를 죽인 자들과 일반 백성을 해한 자들은 연쇄살인범이 아니면 돈을 주고 죄를 면할 수 있습니다.”
혁련천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너도 영주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너희 땅에서도 그런 법이 통용되는가?”
“제국의 법이니까요.”
드웨인이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혁련천후의 눈매가 슬쩍 가늘어졌다. 이곳이나 중원이나 약한 백성들만 죽어나는 것은 매한가지라는 생각에 가슴 한구석에서 은근히 화가 치밀었다.
‘헉!’
드웨인을 비롯한 셋은 그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짐을 보고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직감했다.
요즘 들어 인간 평등을 외치며 투쟁을 벌여 나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들은 때로 왕국의 정규군과 전쟁도 마다하지 않는 극한 대립을 보이기도 했다.
드웨인은 혁련천후가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잔뜩 얼어붙었다.
“조윤.
“말씀하십시오!”
“팔을 자르지는 말고 검을 쥘 수 없게끔만 하거라.”
“알겠습니다.”
조윤이 성큼성큼 도적들을 향해 걸었다.
잠시 후, 스물에 달하는 도적들은 불구 아닌 불구가 되었다.
“소천!”
“예, 주공!”
“넌 저 친구의 교육을 좀 맡아야겠다. 싹수가 보이지 않으면 맘대로 처리해도 좋다.”
“그러지요.”
혁련천후가 말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앞으로 나아가자 모두는 말 위에 올라 그의 뒤를 쫓았다.
살아난 것에 안도한 드웨인은 이동하는 내내 담대소천을 흘긋거렸다. 교육하라는 것이 무엇인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하지만 물어볼 수가 없으니 전전긍긍할 뿐이었다.
두두두!
* * *
레이놀드 백작은 케이론 제국 최강의 초인이자 실질적인 지배자인 테세우드 공작의 근위장 출신으로, 마스터의 반열에 오른 강자이자 떠오르는 신흥 귀족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테세우드에게 충성을 인정받아 백작의 지위에 오른 그는 자신의 권역을 둘러보기 위해 수십 명의 근위기사들을 대동하고 보무도 당당하게 영지 순회를 행하는 중이었다.
큰 키와 떡 벌어진 어깨를 자랑하는 레이놀드 백작은 마차의 창을 통해 드넓게 펼쳐진 자신의 영지를 보며 한껏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과연 이곳이 제국에서 으뜸가는 비옥한 영토를 자랑한다고 하더니 과연 대단하구나. 저 황금빛 들판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배가 부르도다!”
멋들어지게 늘어진 수염을 어루만지며 연신 웃음을 터뜨린다.
황금으로 치장된 마차 주변은 역시 황금색 갑주를 걸친 기사들이 겹겹으로 호위하며 이동하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삼엄하게 경계하며 마차의 지근거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각하! 조금만 더 가면 세비앙의 축복이라는 아르소 영지에 접어듭니다. 이쯤에서 기다리시면 사람을 보내어 그곳의 영주에게 영접을 나오라 전하겠습니다!”
근위장이 가슴에 손을 얹으며 공경하게 말했다.
“오! 아르소 영지? 신께 바칠 곡물을 생산한다는 그 아르소 말이냐?”
“그렇습니다.”
“좋지! 좋아! 그럼 우리는 이쯤에서 쉬어 볼까?”
“각하를 모셔라!”
근위장의 명령에 다른 마차에서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내리더니 황급히 비단을 깔고 각종 음식이 들어 있는 바구니를 풀어 자리를 마련했다.
이동 중임에도 불구하고 차려진 음식은 그야말로 황제가 부럽지 않을 정도의 진수성찬이었다.
끼악!
소식을 전하는 거대한 독수리가 근위장의 손을 떠나 북쪽으로 날아갔다.
여인이 따라 준 호박색 술을 한 모금 머금은 레이놀드 백작이 기사들에게 자리에 앉아 쉴 것을 지시하고는 본격적인 술판을 시작했다.
“아르소 영지의 영주가 그렇게도 아름답다지?”
“소문엔 제국의 삼대미녀이자 대륙의 오대미녀에 든다고 했습니다. 제가 자리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각하!”
“허허! 어찌 귀족에게 그런 것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테세우드 각하께서 대공의 위에 오르시면 차기 공작의 지위에 오르실 각하이십니다! 그깟 작은 영지의 영주 정도는 감히 각하의 수발을 거절하진 못할 것입니다.”
“이봐! 힐튼! 사람들이 곱게 보지 않을 거야. 백작이라면 당연히 품위에도 신경을 써야 하니 자네가 소문이 나지 않게 은밀히 추진해 보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모두가 술과 음식으로 흥청거릴 때, 세 번째 마차의 지붕에 로브를 걸친 마법사가 슬그머니 올라섰다.
그는 말없이 마치 연회를 즐기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어 대는 자들을 응시했다.
그늘이 드리운 두 눈이 조금은 섬뜩한 느낌마저 풍겼다.
“이봐! 자네도 이리 오라고!”
그는 레이놀드 백작이 몇 번에 걸쳐 자리를 함께할 것을 원했으나 정중히 거절했다.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레이놀드 백작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백작의 청을 거절할 정도라면 필시 상위 서클의 마법사이리라. 그렇지 않다면 벌써 목이 잘려 죽었을 것이다.
“미련한 돼지 같은 놈!”
여자들을 끼고 흥청거리는 레이놀드 백작을 보며 그는 섬뜩한 눈빛을 발했다.
간혹 섬뜩한 살기마저 발산했다.
마법사들이 살기를 품는 일은 매우 드물다. 드래곤이 사라진 세상에서 그들은 인간 세상의 영역을 넘어 신의 영역에 도달할 가장 가능성 높은 존재들.
관조자의 뜻을 품은 그들은 어지간해서는 살심을 드러내지도, 품지도 않는다. 그러나 지금 이 마법사는 그러한 것을 여지없이 뭉개 버리고 있었다.
“6서클이 넘어가면 네놈의 그 추악한 몸뚱이부터 한 줌 재로 만들어 주마.”
놀라운 말이 흘러나왔다.
보통 상위 계열의 마법사들을 나눌 때, 기준이 되는 경지가 5서클이다.
5서클이 넘어가는 마법사들은 어지간한 제국의 백작과 맞먹는 대우를 받는다. 본인의 뜻에 따라서는 간혹 큰 영지를 하사받기도 했으며 어떤 이들은 황제나 왕들의 측근에서 호위호식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대륙을 통틀어 5서클의 경지에 든 마법사들은 오십을 넘어가지 못한다. 하물며 6서클은 대륙에 오직 셋만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추악한 고블린보다도 못한 놈.’
필요 이상으로 그는 적개심에 가까운 감정을 보였다.
그때 기사 한 명이 마법사가 앉은 마차로 다가왔다.
“요란 경! 이것 좀 드시지요.”
먹음직한 음식과 술이 기사의 손에 듬뿍 들려 있었지만 마법사는 요지부동, 쳐다보지도 않았다.
기사도 그냥 물러가지 않고서 그를 보며 서 있었다. 제법 존경의 빛이 담긴 기사의 시선을 마법사는 외면하지 못했다.
“두고 가게.”
그 차가움에 기사는 머쓱한 표정을 짓고는 황급히 되돌아갔다.
‘흥! 불쌍한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음식을 내게 먹으라고.’
마법사, 요란의 눈이 일순 번쩍였다.
그러자 술과 음식이 빛의 가루로 변하더니 허공으로 사라졌다. 마침 그를 쳐다보던 레이놀드 백작의 얼굴이 보기 싫게 일그러졌다.
“크흠!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가?”
“입맛이 없어서…….”
“입맛이 돌면 말하게.”
요란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런 요란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레이놀드 백작은 다시 사람들과 흥청거리며 술과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휘이잉!
평원의 북쪽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왔다.
요란은 마차의 지붕에 팔을 베개 삼아 하늘을 보며 누웠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귀를 막아 버렸다.
아르소 영지를 가장 먼저 들렀던 독수리는 뒤이어 주변 영지의 모든 성을 빠짐없이 들렀다.
마법사의 전령이 심어진 독수리는 인간의 목소리로 레이놀드 백작의 영접을 전한 뒤, 마지막 하나 남은 영지로 날아갔다.
다른 곳에 비해 영토가 좁고 인구도 적은 그곳은 바로 혁련소가 영주로 있는 다크 영지였다.
빠르게 날아오는 독수리를 보며 흑야가 눈빛을 발했다. 혁련소도 독수리를 보며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독수리를 전령조로 사용하는 것을 보면 레이놀드 백작이겠지요?”
“보나마나 영접을 나오라는 말을 가져왔을 거다.”
“오 년이 지났지만 역시 볼 때마다 대단하단 생각밖엔 들지 않습니다.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는 독수리라니…….”
“진천도 그 정도의 능력은 있다.”
“하하! 진천 숙부야 중원에 오직 한 분뿐이었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 세상엔 그러한 능력을 지닌 존재들이 지천에 널렸으니 놀라울 수밖에요.”
“막상 싸움이 벌어지면 이 세상에서 진천을 당할 놈은 없다고 봐도 무방해. 놈은 이곳의 시각으로 보면 마법과 검술에서 마스터의 반열에 오른 괴물로 보일 테니까, 후후후.”
“하하! 그럼 아버님이나 조부님은 드래곤쯤으로 보면 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