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7
<귀환무사 257화>
귀환무사 2부
32화
“그 아이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인상착의가 소아와 흑야 형님과 비슷합니다.”
혁련천후가 다시 물었다.
“오 년의 시간 차가 발생할 수 있나?”
“뭐, 이런 일 자체가 불가사의 아닙니까? 오 년이 아니라 십 년의 차이가 있더라도 일단 그들을 찾아보심이 좋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주공! 일단은 그들을 찾아 확인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이봐! 그들을 찾아가려면 어떡해야 하지?”
조윤이 드웨인에게 물었다.
“그것은 저희들도…….”
“대충 사는 지역조차 모른단 말이냐?”
“이 년 전쯤부터 활동을 거의 하지 않으시는 바람에 지금은 그분들이 어디 계신지 알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다만 캐논 산맥 근처에서 간혹 그분들을 보았다는 소문이 있긴 했습니다만 확실치는 않습니다.”
“그곳이 어디냐?”
“말을 타고 가면 반 년 정도 걸리는 곳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몬스터들의 천국이라…….”
“몬스터? 그게 뭔데?”
“옛?”
몬스터를 모를 수가 있는가.
욘크가 대답했다.
“캐논 산맥은 사람이 살 수 없는 매우 위험한 곳입니다. 수십만에 달하는 몬스터들이 그곳에 하나의 왕국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어 제국에서도 출입 금지령을 내려놓고만 있을 뿐, 별다른 대책을 강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북궁천소가 험악하게 다시 물었다.
“몬스터들이 뭐냐니까?”
“그게, 매우 사나운 괴수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괴수? 그럼 짐승이란 말이냐? 이거 사람 새끼 맞아? 고작 짐승 따위에 겁을 처먹고 지랄이야!”
북궁천소의 험악함에 셋은 그저 머리를 조아릴 뿐이었다. 이들 중, 그의 기운이 가장 사납고 광포했다.
게다가 테세우드 공작가의 마법사들을 손짓 한 번으로 죽인 존재가 그였으니 셋은 그에게 가장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조윤이 혁련천후를 돌아봤다.
마침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법 구슬을 하나 챙긴 그가 드웨인을 응시했다.
“그곳까지 안내해.”
“예? 그, 그곳까지 말입니까?”
“원하는 거 하나를 들어주는 것으로 대가를 대신하지. 나는 네가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어투는 담담했지만 드웨인에겐 목숨을 빼앗겠다는 협박성 발언보다 더더욱 무섭게 느껴졌다.
거절하면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 혁련천후의 시선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혁련천후가 몸을 돌려 걸음을 놓았다. 사색이 되어 버린 드웨인은 자신을 보며 씩 웃어 주는 북궁천소의 시선을 받고는 어쩔 수 없이 앞장서 걸어야만 했다.
“영지전이라고 했지?”
진천이 뒤를 따르며 드웨인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상대를 이기면 네가 그놈의 영지까지 날로 먹는다며?”
“……!”
“네 영지라는 곳이 어디지? 혹시 캐논 산맥이라는 곳으로 가는 길에 있나?”
“그렇긴 합니다만…….”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은 진천이 혁련천후의 등에다 대고 말했다.
“주공! 대가는 그 영지전인가 뭔가를 대신 뛰어 주는 것으로 하면 되겠군요.”
왕전이 끼어들었다.
“그저 한 놈만 죽여 주면 되는 거라며?”
“그렇답니다.”
“거 되게 간단하군.”
“중원도 그런 방식이었다면 황제가 바뀌었을 텐데 말입니다. 하하하.”
너스레를 떤 진천이 얼음처럼 굳어 버린 드웨인의 어깨를 치며 씩 웃었다.
“인마! 넌 가만히 앉아서 땅 부자가 되는 거야.”
제4장 아르소의 영주, 아리안
보기에도 섬뜩한 소드 브레이커를 허리에 두른 일단의 무리들이 평원을 바라보며 탐욕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그들이 지켜보는 평원의 한가운데에는 상당수의 인마가 이동하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꽤 좋은 말입니다. 장물로 넘기면 술값은 넉넉히 떨어지겠는데요?”
“흐흐흐, 저 정도면 술값이 아니라 계집들까지도 살 수 있겠군.”
거친 머릿결에 한쪽 눈을 시커먼 가죽 안대로 가린 거한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주변을 둘러선 스물에 달하는 인물들도 하나같이 섬뜩한 중병들을 손에 쥐고서 그를 따랐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도적단, 그 이상으로 보이지는 않는 험악한 몰골들이었다.
“윈커! 마법을 이용해서 놈들의 마나 정도를 살펴봐!”
일을 벌이기 전에 필수요건이 바로 상대의 힘을 가늠해 보는 것이다.
황색 로브를 걸친 다소 마른 자가 앞으로 나섰다. 마법사의 전형적인 복장이다.
일개 도적단이 마법사를 고용하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놀라운 일이다. 중죄를 지어 쫓기는 자가 아니면 어디에서나 대접받는 마법사가 도적단에 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과거가 의심스러워 마법사가 달려오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뻗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내 입으로 뭔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셋을 제외하면 나머지 일곱은 계집보다 못한 약골들입니다! 두목!”
“그래? 이거 신이 오늘 내게 축복을 내리시는군. 그럼 슬슬 시작해 볼까?”
지시가 떨어지자 스물에 달하는 자들이 일제히 달려오는 방향의 가운데를 막아섰다.
그들이 든 검이 햇빛에 반사되어 번쩍였다. 날 부분이 톱니로 된 소드 브레이크는 보는 이로 하여금 두려움을 자아내게 만드는 기병인데, 주로 용병들이 애용하는 검이었다.
상대의 검날을 부러뜨릴 수도 있는 목적으로 만든 것인데, 만들기가 까다로워 하나에 꽤 값이 나간다고 알려져 있다.
일개 도적 떼 따위가 소유하기엔 과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어쨌든 모두가 소드 브레이크를 쥐고 있었다.
* * *
“뭐야? 저 새끼들은?”
일단의 무리들이 길을 막아서자 선두에서 말을 몰아가던 북궁천소가 인상을 부라렸다.
진천이 씩 웃는다.
“눈빛을 보니 좋은 놈들은 아니군요.”
그 말에 드웨인과 기사들이 속으로 크게 놀랐다.
지금 자신들과 앞을 막아선 자들과의 거리는 대략 오십 미터! 그 거리에서 상대의 눈빛을 본다는 것은 그들로서는 상식 밖의 일이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모두는 고삐를 당겨 말을 멈추었다.
푸르륵!
말들이 질주 본능을 억제하지 못하고서 거친 움직임을 보였다. 그 모습에 앞을 막아선 자들의 얼굴에 탐욕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날씬한 몸매에 탄탄한 근육을 지닌 말을 보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들에겐 그 말들은 술과 여인으로 보일 뿐이었다.
혁련천후는 눈앞의 도적떼들을 응시하며 슬쩍 미간을 찡그렸다.
아직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해서 그는 드웨인을 돌아보았다.
“무슨 일인지 물어봐야겠다.”
드웨인이 욘크를 밀었다. 욘크는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서며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짐짓 준엄한 어조로 물었다.
“이분은 아리우스 드웨인 준남작이시오! 길을 막아선 그대들의 신분이 무엇이오?”
뒤에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진천과 사공진무가 욘크의 인사하는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마치 신파극에서나 볼 법한 닭살이 돋는 말투였기 때문이었다.
반면 북궁천소와 왕전 등은 인상을 그린 채, 앞을 막아선 자들의 행색을 살폈다. 그러다가 그들이 쥐고 있는 칼을 보고는 이채를 머금었다.
“저거 꽤 멋진 칼이군. 그렇지 않냐?”
“톱날이 세워진 검이라…… 상대의 검을 부러뜨리기 딱 좋겠군.”
“몇 개만 뺏어야겠다.”
그들은 대화를 곧 멈추어야 했다.
앞을 막아선 자들이 욘크의 무척이나 정중한 물음에도 대뜸 욕설을 퍼부으며 사납게 나왔기 때문이다.
“준남작? 흐흐! 요즘은 개나 소나 준남작이지. 이봐! 귀족나리! 우리가 누군 거 같아? 앙!”
두목이 욘크가 친절하게(?) 소개한 드웨인을 향해 늑대처럼 으르렁거렸다.
드웨인의 얼굴이 붉어졌다. 비록 혁련천후 등과 함께하면서 제대로 숨조차 쉬지 못하는 처지이지만 도적 떼들 앞에서까지 쫄 정도로 약골은 아니었다.
비록 최하위급이지만 준남작의 작위도 뛰어난 검술을 인정받아 얻은 자리가 아니었던가.
그가 제법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도적들이냐!”
“흐흐! 준남작만 터는 위대하신 도적들이다. 왜?”
“크하하하!”
모두가 고개를 젖히고서 크게 웃었다.
챙!
드웨인이 검을 뽑아 들었다.
덩치에 걸맞게 그가 뽑은 검은 그레이트 소드라 불리는 대단히 무거운 중검이다. 양쪽에 날이 세워진 그것을 보자 이번엔 북궁천소가 눈빛을 반짝였다.
멋들어지게 장식된 검신의 문양들이 시선을 끈 것이다.
“감히! 제국의 영토에서 귀족을 털 생각을 하다니, 죽고 싶어 환장을 한 놈들이구나! 드웨인가의 기사들이여! 검을 뽑아라!”
드웨인이 검을 치켜들며 외쳤다.
그 엄숙한 표정을 쳐다보던 진천과 사공진무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다 붉어졌다.
조윤과 담대소천도 피식 웃었다.
“모두 나서지 말고 잠시 지켜보도록.”
혁련천후의 명이 떨어지자 모두는 슬쩍 뒤로 물러섰다.
모두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흥미로운 눈빛으로 지켜보았다. 도적들은 그들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들의 능력으로는 아무런 기운조차 느낄 수 없으니 그저 평범한 귀족 정도로만 여길 뿐이었다.
하지만 드웨인을 보는 눈빛은 조금 달랐다.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그들의 눈에는 제법 강하게 느껴졌던 까닭이었다.
“남작과 저 두 놈은 제법 강해 보입니다, 두목.”
“상관없다. 언제 우리가 그런 걸 따졌느냐. 그냥 머릿수로 밀어붙여서 끝내…… 엇!”
자신만만하게 말하던 두목이 돌연 눈이 동그래졌다. 곳곳에서 놀란 목소리가 터졌다.
“엇! 오러 블레이드!”
“오러 블레이드다!”
드웨인의 검 끝에 어린 푸른색 아지랑이가 맺혀 있었다. 소위 고수가 아니면 지닐 수 없는 것이어서 도적들이 이내 술렁거렸다.
그 모습에 드웨인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 위에서 뛰어내렸다. 욘크와 다른 기사, 칼츠가 드웨인의 좌우를 호위하며 검을 겨누었다.
그들 역시 검 끝에 가느다란 실처럼 일렁이는 푸른빛을 두르고 있었는데, 그것을 본 조윤이 쓴웃음을 지었다.
“저렇게 힘자랑하다간 금방 체력이 고갈되지.”
“생긴 것처럼 되게 무식한 놈들이었군.”
“그걸 보고 놀라는 저 새끼들이 더 우습다. 귀찮은데 그냥 쓸어버리고 얼른 가자. 술도 고프고 배도 고프고…….”
북궁천소의 말에 조윤이 혁련천후를 돌아봤다.
어떻게 할까를 눈빛으로 물었지만 혁련천후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잠시 더 지켜보도록 해.”
“화산의 문지기만도 못한 놈들입니다.”
“우린 이 세상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이런 사소한 것도 경험이라 여겨라.”
“그러지요.”
모두는 일부러 말을 고삐를 틀어 전장에서 슬쩍 뒤로 물러섰다. 그 모습을 두려워 피하는 것으로 여긴 도적들이 사납게 외쳤다.
“이 자식들! 도주하면 쫓아가서 뒈질 줄 알아!”
북궁천소의 얼굴 근육이 실룩거렸다. 혁련천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지켜봐.”
“끄응!”
혁련천후의 제지에 북궁천소는 도적들을 죽일 듯 노려보며 몸을 들썩였다.
그때 혁련천후의 눈빛이 차갑게 번득였다. 그의 시선은 로브를 뒤집어쓴 도적단의 마법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저 복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켜보자던 생각이 단숨에 바뀌었다.
“천소, 저놈을 데리고 와라.”
“다른 놈들은 죽일까요?”
“저놈만 데려와라.”
“쩝! 알겠습니다.”
북궁천소가 기다렸다는 듯 말에서 뛰어내렸다.
“비켜.”
그는 드웨인을 밀치며 앞으로 나섰다. 드웨인이 뭐라 말을 하려고 했지만 북궁천소는 이미 도적 떼들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퍽! 퍽! 퍽!
“으악!”
“꿱!”
그리고 이어진 무지막지한 구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