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256화 (254/425)

# 256

<귀환무사 256화>

귀환무사 2부

31화

“저 자식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 거야?”

드웨인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놓치지 않은 진천이 슬그머니 눈빛을 번뜩였다.

그 말에 북궁천소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좋은 놈이라며?”

“눈빛이야 그렇게 전해 줬지만 사람 마음이 좀 요사스러워야지요. 조용한 곳에서 족쳐 볼까요?”

“그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긴 하지.”

“참! 뭘 하실 때 요만큼이라도 생각 좀 하고 결정하세요. 그냥 해 본 말인데 당장 족치자고 하면 어쩝니까?”

진천이 짐짓 눈을 부라리자 북궁천소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이게, 요즘 살살 올라오네? 낯선 땅에서 개처럼 한 번 맞아 볼 테냐?”

“농담입니다. 뭘 그런 걸 가지고 또 패니 마니 하십니까, 하하하.”

진천이 재빨리 혁련천후의 뒤로 숨었다.

눈에 불을 켜고 노려보던 북궁천소가 혁련천후와 시선이 부딪치자 머리를 긁적이며 히죽 웃었다. 뒤에서 혀를 날름 내미는 진천에게 무심한 눈길을 준 혁련천후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앞쪽에서 걷던 드웨인 일행은 그들이 걸음을 멈춘 것도 모르고 걷다가, 강력한 기운이 몸을 끌어당기는 느낌에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혁련천후가 손가락으로 드웨인을 불렀다.

드웨인이 다가오자 그는 진천을 보며 말했다.

“이곳의 언어를 가장 빨리 습득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물어보거라.”

“환술로 말입니까?”

“그래.”

“쩝! 이곳은 보는 눈이 많아서 어디 조용한 곳으로 가야 합니다.”

사람들이 많은 이곳에서 환술을 펼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혁련천후는 주변을 쓸어 보고는 한 곳을 가리켰다.

“저곳이 좋겠군.”

성곽의 뒤쪽에 자그마한 숲이 조성되어 있었다. 어쩐 일인지 그곳엔 사람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눈을 반짝인 진천이 드웨인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고는 먼저 그곳으로 걸어갔다. 잠시 머뭇거린 드웨인과 기사들은 진천을 따라갔다.

잠시 후, 진천이 헐떡이며 돌아왔다. 제법 기운이 빠진 모양이다.

“저놈들 집까지 가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답니다.”

“뭐? 새끼들이 왜 진즉에 털어놓지 않았지?”

북궁천소가 뒤쪽에서 나서는 드웨인을 보며 인상을 그렸다.

셋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시뻘겋게 부은 것이 진천에게 몇 대 맞은 모양이었다. 아마도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한 응징이었으리라.

“영지전인가 뭔가 때문에 거짓말을 한 모양입니다. 구슬을 미끼로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할 계획이었다는군요.”

“영지전? 그건 또 뭐냐?”

“낸들 압니까? 힘이 부쳐 그것까지는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주공! 어쩌지요? 우린 돈이 한 푼도 없지 않습니까?”

이번에도 북궁천소가 끼어들었다.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물어봤어야지.”

“나 참! 형님 내공을 좀 주시든가요! 가뜩이나 한번 펼치면 다리가 후들거려 돌아 버리겠는데…….”

“그런가?”

혁련천후가 진천에게 물었다.

“흑야에게 은신술을 배운 적이 있지?”

“하하! 그럼요. 이젠 흑야 형님도 제가 작정하고 은신하면 쉽게 찾아내지 못합니다.”

진천이 가슴을 쭉 내밀고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실력 발휘를 해 봐.”

“예? 실력 발휘라니요?”

“훔쳐.”

“헉! 지금 저보고 도둑질을 하란 말씀입니까?”

“쓰다가 돌려주면 된다.”

혁련천후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슬쩍 진천의 시선을 피했다. 난감한 표정을 짓던 진천이 다른 존재들의 험악한 눈빛을 받고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쩝! 알겠습니다. 저놈들에게 어떻게 생긴 것인지 물어보고 훔치지요.”

“물어보려면 환술을 또 펼쳐야지?”

“당연하지요. 내일 내공이 돌아오면 그때 물어보겠습니다.”

혁련천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늘 밤 한 명을 데리고 가서 훔쳐.”

“주공!”

“어디 쉴 곳을 찾아 봐.”

혁련천후는 울상으로 변해 버린 진천의 시선을 외면하고는 다시 걸음을 놀았다.

* * *

드웨인은 비록 하위급이지만 준남작의 지위에 인구가 일천 명쯤 되는 영지의 영주라는 신분을 지닌 귀족이다.

자신의 영지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그였는데 지금은 통역 마법 구슬을 훔치기 위해 도둑고양이처럼 밤중을 은밀히 누벼야만 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는 앞을 걸어가는 진천을 흘긋거리며 울상이 되었다. 그는 지금에서야 확신했다.

‘아! 이 사람들은 소문의 그분들이 아니었어. 흑발에 흑안을 지녀 그분들이라 생각했던 나의 착각이야. 이걸 어쩌지? 영주의 신분인 내가 도둑질을 하게 되었으니…….’

소문의 그들은 신이 보내 준 천사라고 소문이 돌 정도로 관대하고 바른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달랐다.

대부분이 마계의 최강자라는 발록을 연상시키는 무서운 인상들을 하고 있는 데다 행동 또한 너무 거칠었다. 어떨 땐, 발록이 드래곤의 폴리모프를 배워 인간으로 변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도둑질이라니.

‘하필 그곳에 갔을 게 뭐람.’

이들과 엮인 것이 후회막급으로 다가왔지만 도리가 없었다. 거부하거나 도주라도 한다면 자칫 자신의 목이 날아갈 것이 뻔했다.

마법사들을 어린아이 손목 비틀 듯 해치운 이들에게서 도주하기란 드래곤과 맞장을 떠서 이기는 것만큼이나 불가능에 가까운 것.

드웨인은 눈물을 머금고 눈앞의 진천을 따라야만 했다.

상점은 상당히 넓었다.

“이거 엄청난데?”

진천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상점의 곳곳을 살폈다. 중원에선 볼 수 없었던 온갖 진귀한 것들이 상점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멋진 문양이 새겨진 검들과 방패, 그리고 기사들이 애용하는 마법실드가 쳐진 갑옷들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4클래스 마법을 견뎌 내는 갑옷에 욕심을 낸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진천이다. 그저 그에겐 대륙에서 가장 흔한 통역구슬이 최고의 보물이었다.

상점 내부를 둘러보던 드웨인의 얼굴이 더더욱 울상이 되었다.

‘아! 이곳은 왕국에서 직접 운영하는 곳인데, 들통나면 내 인생은 그날로 끝이구나!’

그랬다.

마법도구를 파는 상점은 공국이나 왕국, 제국에서 직접 운영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는 개인이 운영할 수 있었지만, 마법도구의 난립으로 치안이 어지럽게 되자 황제의 명으로 개인의 운영을 금지시킨 것이다.

황제의 재산으로 분류되다 보니 도둑질을 하다가 걸리면 그날로 참수형을 당하게 됨은 물론이고, 자신의 가족들도 영지와 귀족의 지위를 박탈당하게 된다.

‘신께서 어찌 내게 이런 고난을…….’

신을 원망하면서도 당장의 두려움이 더 컸던 드웨인은 곳곳을 둘러보며 구슬을 찾았다.

통역구슬은 가장 보편화되어 있는 마법도구였기에 그는 손쉽게 그것을 찾았다.

어둠 속에서도 하얗게 빛나는 구슬을 찾아 진천에게 건네준 드웨인은 진천이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자 심장이 철렁 가라앉았다.

‘나를 죽이려고 하는구나.’

필요한 것을 찾았으니 입을 막으려고 자신을 죽일 것이라 생각했다. 대부분의 강도나 도둑들은 그런 수법을 즐겨 한다.

드웨인은 최대한 애처로운 눈빛을 하고서 진천을 바라보았다.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이 일에 대해서는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고 신께 맹세합니다. 그러니…….”

그 말을 진천이 알아들을 리가 없다.

“이게 무슨 헛소릴 지껄이는 거야? 빨리 사용법에 대해 말해 봐!”

진천이 눈을 부라렸다.

그러나 드웨인이 그 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다. 진천의 무시무시한 표정을 살핀 드웨인은 말이 통하지 않음을 그제야 깨닫고, 황급히 통역구슬에다 대고 주문을 중얼거렸다.

“이제 제 말이 들리십니까?”

“엇!”

진천이 눈을 동그랗게 하고서 구슬을 쳐다봤다. 드웨인의 말이 저절로 중원어처럼 이해되었다.

“야! 이거 정말 대단한데. 하하!”

진천이 구슬을 손에 쥐고서 어린아이처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드웨인은 그런 진천의 모습에 어리둥절했다.

‘뭐야? 마법 구슬을 보고 저렇게 신기해하다니…… 꼬마들도 다 사용하는 것인데.’

통역구슬은 각 나라를 여행할 때 반드시 지녀야 하는 필수 품목이다.

제국마다 언어가 조금씩 달랐기 때문이다. 빈민층의 아이들도 알고 있는 그것을 진천이 난생처음 보는 듯 매우 신기해하자 그는 더럭 겁이 났다.

‘헉! 혹시 정말 마족이 아닐까?’

그저 대륙의 언어를 몰라 마법 구슬을 원하는 것이라 여겼었다.

하지만 지금, 진천의 모습은 생전 처음 보는 것이 분명한 듯 보였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드웨인은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가 몸을 벌벌 떨어 대자 진천이 물었다.

“이봐! 속이라도 안 좋은 거냐? 표정이 왜 그래? 몸까지 벌벌 떨고…….”

“아, 아닙니다! 그냥 조금 피곤해서…….”

드웨인의 말속에 담긴 뜻까지 정확하게 이해되자 진천은 어린아이처럼 입을 벌렸다.

“오호! 정말 신기한데.”

진천은 주변을 둘러봤다.

일행들의 숫자만큼 가져가기로 작정한 것이다. 구슬은 많았다.

드웨인이게 다섯 개를 더 가져오라고 지시한 진천은 빠르게 상점을 빠져나갔다.

통역구슬을 다섯 개 더 훔친 드웨인은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는 흉갑을 슬쩍 껴입고는 뒤를 따라 나갔다.

하나 훔치나 두 개 훔치나 그게 그거라고 생각한 드웨인의 자발적 도둑질이었다.

제3장 말이 통해야 산다

“이게 그 구슬인가 보군.”

“정말 대단한 기술입니다. 고작 이따위로 다른 언어가 저절로 통역이 된다니 말입니다. 이거 괜히 내공을 써 가면서 환술을 펼쳤지 뭡니까?”

구슬을 보며 요리저리 살펴보는 일행들에게 진천은 마치 자랑하듯 말을 늘어놓았다.

혁련천후는 드웨인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 눈빛은 우리가 너를 죽일까 두려워하는 듯 보이는군.”

“아! 아, 아닙니다!”

드웨인이 황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말이 또렷하게 이해되자 혁련천후는 내심 구슬의 영험함에 감탄했다.

그가 다시 말했다.

“우린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단, 우리에게 해를 끼친다면 그땐 가차 없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절대 그럴 리 없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믿어 주십시오!”

욘크와 다른 기사도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하나만 물어보지.”

“예!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제가 아는 것이라면 성심성의껏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처음 우리를 보았을 때, 너희들의 눈빛은 마치 우리를 알고 있는 듯했다. 그 이유를 알고 싶다.”

혁련천후는 자신들을 보며 반가움을 내비쳤던 이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소문에 들었던 분들과 흡사한 용모를 지니고 계셔서 그만…….”

“소문에 들었던 자들이라니?”

욘크가 드웨인 대신 대답했다.

“저희들이 찾고 있었던 흑안의 마검사, 그분들과 너무 닮으셨습니다. 흑발에 흑안을 지니시고 검까지 비슷하다 보니 그만 그분들로 착각했습니다.”

혁련천후의 눈동자에 섬광을 일어났다. 조윤을 비롯한 다른 존재들도 대번에 안색이 바뀌었다.

주변이 싸늘하게 굳어지며 그것을 본 셋은 두려움에 심장이 싸늘하게 식어 갔다.

“자세히 말해 봐!”

나머지 여섯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욘크는 자신이 알고 있는 흑안의 마검사에 대한 모든 것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점점 그의 말이 더할수록 눈앞의 인물들은 확연한 표정의 변화를 보였다. 욘크의 말은 대략 십오 분이 지나고서야 끝이 났다.

잠시 정적과도 같은 침묵이 이어졌다.

흔들리는 눈동자로 혁련천후를 응시하는 북궁천소와 왕전 등은 그가 무슨 말을 하기를 기다렸다.

뜨거움을 품었던 혁련천후의 눈동자가 예의 차가움을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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