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255화 (253/425)

# 255

<귀환무사 255화>

귀환무사 2부

30화

“난, 중원에 있을 때, 상당한 자들의 목을 베었다. 물론 대부분이 사람들의 원성을 산 사파나 마도의 인물들이었지. 그때 난 이런 생각을 했었다. 만약 세상에 이런 놈들만 없다면 얼마나 삶이 즐거울까…… 살인을 할 때마다 더더욱 간절해지더군. 하지만 결국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했지. 세상에 인간이 존재하는 한, 악당들은 여전히 존재할 거고, 강호라는 세상이 존재하는 한, 더더욱 악당들은 많아질 테니 말이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뭔지 아느냐?”

“……예?”

“그래도 악한 놈들은 죽여야 한다는 것이지.”

혁련소가 피식 웃었다.

흑야가 술잔을 털어 놓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도 아버지와 숙부들 덕분에 강호는 꽤 태평성대를 누렸지 않습니까?”

흑야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그래, 그랬지. 주공이 없었다면 어쩌면 강호는 놈들의 손아귀에 들어갔을 테니…….”

흑야의 눈빛이 가늘게 흔들렸다.

새삼 중원에 있을 혁련천후와 친구들을 떠올린 까닭이었다.

혁련소가 그의 잔에 술을 채웠다.

“이 세상에도 그들에 못지않은 엄청난 악당들이 널렸습니다. 당장 요란 제국의 황제라는 작자만 하더라도 백성들의 안위 따윈 도외시한 채 전쟁을 일으키지 못해 혈안이 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지금이야 제국 전쟁의 여파 때문에 몸을 사리고 있다지만 전력이 보강되면 언제라도 다시 전쟁을 일으킬 작잡니다.”

“그래서 그 백작이란 놈을 죽이려고 하는 거다. 놈은 전쟁이 일어나면 그것을 이용해 부를 축적하려고 들 것이다. 이 세상의 귀족이라는 자들, 대부분이 그런 식으로 부를 축적했다고 하더군. 결국 죽어나는 것은 평범한 백성들뿐이야. 따라서 사람들에게 해가 될 놈이라면 미리 죽여 놓는 것이 이롭다.”

“숙부님의 이런 모습을 아버님과 다른 숙부들이 아시면 꽤 놀라실 텐데 말입니다. 완전히 정의의 사도가 되셨으니…… 하하!”

“그런가?”

둘은 서로를 마주 보며 가볍게 웃었다.

술병이 두 병을 넘어 세 병째로 넘어갈 즈음, 문을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한 인물이 들어왔다.

얼굴의 반을 수염으로 덮은 그 청년이었는데, 루크라는 꼬마의 집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이리 와서 앉아.”

혁련소가 청년에게 술잔을 내밀었다.

“좋아하시던가?”

“예! 간만에 제가 요리 솜씨를 발휘해 스테이크까지 만들어 주고 왔습니다.”

“그래? 후후! 그 꼬맹이가 무척 좋아했겠군.”

“저보다 더 많이 먹더군요. 덕분에 며칠 먹고 남을 쇠고기가 반으로 줄어 버렸습니다. 저…… 그런데 남작님, 돌아오다 테세우드 공작에 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혁련소와 흑야가 청년을 응시했다.

청년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이었다.

“얼마 전에 테세우드 공작가의 마법사들이 살해를 당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다섯씩이나 말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제국에서 감히 그곳과 마찰을 일으키는 곳이 있다니 말입니다.”

말처럼 놀라운 일이었다.

제국에서 테세우드 공작과 적이 되려 하는 곳은 아무도 없다. 한데 마법사를 죽였다니. 그것도 다섯 명씩이나.

흑야가 물었다.

“죽인 자들의 정체는 밝혀졌느냐.”

“그것까지는 듣지 못했습니다만 한꺼번에 몰살을 당했다고 하더군요. 그게 더 놀랍습니다. 테세우드 공작의 마법사들은 하나같이 4클래스 이상의 중상위 마법사들인데 그런 그들이 한꺼번에 살해를 당했다면 적어도 소드 마스터에 버금가는 강자야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청년의 말에 혁련소도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놀랍군. 다섯을 한꺼번에 죽일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가 있었다니…… 초인들은 당연히 아닐 거고, 설마 다른 제국의 어쌔신들이 뭔가를 노리고 놈들을 살해한 것은 아닐까요?”

혁련소가 흑야를 보며 물었다. 술을 한 모금 마신 흑야가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의 마법사들을 저격할 수 있는 수준의 어쌔신이 과연 있을까? 있다고 해도 한꺼번에 다섯을 몰살하기란 불가능해. 일격에 성공을 한다면 모를까. 아니면 반격을 당했을 테니까.”

흑야의 부정적의 의견에 혁련소도 고개를 끄덕였다.

흑야가 갑자기 눈빛을 발했다.

“설마 전쟁을 일으킬 구실을 만들려는 수작은 아니겠지. 테세우드는 야망이 큰 놈이다. 충분히 스스로를 희생시켜 전쟁을 일으키고도 남을 놈이야.”

“그렇군요. 마법사를 죽인 배후를 요란 제국으로 몰아가면 전쟁은 쉽게 터지겠군요.”

“어쩌면 정말로 요란 제국이 그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겠지. 놈들이 이곳 케이론 제국을 호시탐탐 엿보는 것은 지나가는 개도 알고 있으니…….”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그건 너무 뻔한 수법입니다. 자신들이 의심을 받을 것을 알면서 일부러 그런 짓을 벌이기야 하겠습니까? 뭐, 요란 제국의 황제가 조금은 미친놈이긴 합니다만…….”

청년이 끼어들었다.

그의 이름은 쉴트. 다크 영지에서 잡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곧 범인들이 밝혀지지 않겠습니까? 테세우드 공작가 정도면 권역의 전반에 걸쳐 방어용 결계를 쳐 놓았을 테니 범인들의 영상이 공작에게 당연히 전해졌을 겁니다. 조만간 제국에 수배령이 내려지면 모르긴 해도 아마 엄청난 현상금이 걸릴 것이 분명합니다. 이참에 현상금이나 타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사람들을 도와주느라고 영지의 자금이 완전이 바닥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혁련소의 말에 흑야의 눈이 이채를 머금었다.

그렇지 않아도 영지의 돈줄이 말라 가고 있었던 터라 걱정이 컸는데 현상금이라니.

하지만 이내 씁쓸히 웃었다.

“현상금도 좋다만 테세우드 같은 놈을 도와주고 싶지는 않아.”

“하긴 저도 그 점이 좀 걸리기는 합니다. 한데 피곤하십니까? 표정이…….”

“그냥 기분이 묘해지는군. 술은 이 정도에서 그만 하지. 쉴트, 너도 그만 가서 쉬어.”

“예!”

흑야가 자리를 뜨자 쉴트도 인사를 하고는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혼자 몇 잔을 더 마신 혁련소는 입은 옷 그대로 침상에 벌렁 누웠다.

얼굴이 이내 어둡게 변해 갔다.

천장에 아름다운 얼굴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활짝 웃고 있는 연소민의 얼굴이었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빛의 공간 속에서 헤어진 그녀를 찾기 위해 낯선 세상을 돌아다녔지만 그녀의 행방은 전혀 듣지도 찾지도 못했다.

자신의 용모를 이용해 소문을 내면 그녀가 듣고 찾아오지 않을까 싶어 강자들을 찾아다니며 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현상금이 붙은 수많은 악당들을 체포하기도 했고, 생소한 몬스터 토벌에 참가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우기도 했다.

덕분에 남작이라는, 비록 하위급에 불과하지만 귀족의 벼슬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그녀를 찾지 못하면 성공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지켜 준다고 약속해요.”

그녀의 슬픈 음성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살아 있겠지…….’

혁련소는 그렇게 굳게 믿었다.

그 말을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마음이 아프지 않을 것이다.

“휴…….”

짙은 숨을 내쉰 그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 * *

혁련천후는 우연찮게 일행이 되어 버린 드웨인과 욘크를 데리고 며칠을 걸어 자그마한 도시에 이르렀다.

모든 것이 신기한지 연신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왕전 등을 보며 드웨인은 두려움을 떨쳐 내고 내심 이들과의 만남을 운명이라 여겼다.

‘그래! 그 마법사들은 결코 좋은 사람들은 아니었어. 테세우드의 개가 되어 지금껏 수도 없는 악행을 저질렀던 자들을 죽였다면 오히려 박수를 쳐 줘야지.’

사람은 스스로 뭔가를 옳다고 강제하면 위로를 받는 경우가 있다. 지금 드웨인이 그랬다.

‘저분들과 잘만 인연을 맺어 놓으면 써튼과의 영지전에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다. 그러니 자꾸만 나쁜 쪽으로 생각하지 말자.’

곧 있을 영지전에서 저들의 힘을 빌려 영지를 보전함과 동시에 그 못된 써튼의 영지까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저 정도의 무력을 지닌 존재들이라면 써튼쯤은 신경을 쓸 가치도 없지 않을까.

드웨인의 눈빛이 결연함을 띄어 갔다.

드웨이의 옆을 걷던 욘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분들의 복장이 제국의 그것과는 생소한데 괜찮겠습니까?”

“복장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그래.”

“지금 마족들의 발호로 제국이 시끄럽지 않습니까? 게다가 저분들은 마족들과 같은 흑안을 지녔으니 곳곳에서 검문을 받지 않겠습니까?”

“쓸데없는 걱정하고는. 대마법사도 함부로 어쩌지 못한다는 흑안의 마검사를 감히 누가 건든단 말이야.”

“영주님, 그분들을 싫어하는 귀족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특히 이곳 북부 지역은 더더욱 그렇고 말입니다. 자칫 그들의 권역에서 검문이라도 당하면 그땐 우리까지 피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욘크의 말에 드웨인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듣고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흑안의 마검사를 모두가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파격적인 행보 때문에 기존의 권력자들은 되레 그들을 불편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도 사실이었다.

욘크가 한마디 더 거들었다.

“게다가 테세우드 공작의 마법사들을 죽였지 않습니까? 이거 잘못하다간 도움은커녕 불구덩이 속으로 빠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럴 수도…… 테세우드 공작은 평소 치밀하기로 소문난 자니까 분명 그곳에 결계를 쳐 놓고 있었겠군. 그렇다면 당연히 저분들의 영상이 고스란히 전달되었을 테지?”

간사한 게 인간의 마음이라고 했다. 지금 드웨인의 감정변화가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제 말이 바로 그겁니다. 테세우드 공작의 성정으로 보아 자신의 마법사들을 죽인 저분들을 곱게 내버려 두진 않을 겁니다. 어쩌면 벌써 추격령이 떨어졌을지도 모를 일이 아닙니까.”

드웨인은 심각한 표정으로 뒤를 따라오는 혁련천후 등을 힐끗 돌아보고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자신의 영지를 보전하기 위해선 저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다. 문제를 해결했다는 기쁨에 욘크가 지적한 사안은 그저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그였다.

‘테세우드 공작과 적이 된다면…….’

생각만으로 드웨인은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테세우드 공작은 케이론 제국, 최강의 기사이자 대륙 전체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초인의 반열에 든 절대강자이다.

제국 내에서 최강의 힘을 보유한 그는 황제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실세 중의 실세라고 할 수 있는 존재다.

‘그날로 난 끝장나겠지.’

테세우드 공작의 눈 밖에 나면 자신의 영지는 그날로 끝장나는 것이다.

드웨인은 온몸에 소름이 생겨났다.

그는 다시 뒤를 힐끔 돌아봤다. 차가운 얼굴로 주변을 무심하게 둘러보는 혁련천후와 그저 쳐다보는 것만으로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들.

그들의 모습 위로 언젠가 제국의 국경일 행사에서 딱 한 번 보았던 테세우드 공작의 무시무시한 영상이 겹쳐서 나타났다.

같은 공작까지도 감히 머리를 들지 못하던 위세와 권력을 그때 두 눈으로 목도를 했었다.

‘어떡해야 하지?’

고민이 깊어졌다. 하지만 최대한 빨리 결정을 해야만 했다.

‘저분들이 나를 도와준다고 확신할 수도 없지 않은가? 비록 흑안의 마검사에 대한 소문이 엄청 좋긴 했지만 소문은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인데…….’

마음이 흔들리자 그토록 맹신했던 흑안의 마검사에 대한 생각까지 달라진다.

그들이 흑안의 마검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때 진천이 자신을 쳐다보자 드웨인은 깜짝 놀라며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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