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2
<귀환무사 252화>
귀환무사 2부
27화
* * *
연못은 고요했다.
그토록 광포한 소용돌이를 일으켰던 것이 마치 거짓인 듯 명경처럼 말고 잔잔하게 변해 있었다.
혁련천후는 연못을 응시했다. 놀랍게도 다른 곳도 아닌 바로 연못에서 천살강기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다.
불안감이 확 밀려왔다.
‘설마 저곳을…….’
절대 뛰어들어선 안 될 곳이 저 연못이다.
천 년을 이곳에 살면서도 자신의 선조들이 밝혀내지 못한 비밀이 저 연못에 깃들어 있다.
혁련천후의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렸다.
아들의 안위에 대한 불안감이 가슴속에서부터 솟아났다. 마음만 먹는다면 세상의 그 누구도 죽여 버릴 수 있는 무적의 호위가 아들의 옆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아들도, 그도 보이지 않는다.
“엇!”
진청이 연못을 가리키며 놀란 소리를 냈다. 모두의 시선이 연못으로 향했다.
순간 혁련천후가 연못으로 날아갔다가 이내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런 그의 손에는 무언가가 들려 있었는데, 상아를 연결하여 만든 목걸이였다.
“아!”
목걸이를 본 검후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목걸이는 자신이 손수 만들어 준 아들의 것이었다. 불안감에 혁련천후의 눈빛도 심하게 요동쳤다.
그때 주변을 살펴보고 돌아온 진호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전혀 흔적이 보이질 않습니다.”
협곡의 모든 곳을 살피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혁련천후의 시선은 오직 연못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아들의 목걸이를 쥔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분명 무슨 일인가가 벌어졌다. 어쩌면 세상에 하나뿐인 아들은 생각해선 안 될, 아니, 일어나선 안 될 일을 당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어떤 일인지 알 도리가 없자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불안감을 뚫고 스멀거리며 생겨났다.
그가 몸을 돌렸다.
“신교로 가겠다.”
검후가 물었다.
“소아는 어떡하고요?”
“찾아낸다, 반드시…….”
“그 아이가 이곳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어요. 다시 찾아 봐요!”
백선녀가 말하고 나섰다. 하지만 찾아낼 도리가 없음을 그녀라고 어찌 모를까. 그러나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질 않아 차마 일어서질 못하고 있었다.
혁련천후의 눈빛이 어느새 싸늘히 가라앉았다.
“내가 살아 있다면 그 아이도 살아 있다. 살아 있으니 찾아낼 것이다. 세상을 뒤집어서라도…….”
둘은 영혼으로 이어져 있다.
혁련천후가 조부와 그렇듯 아들 혁련소 역시 그랬다. 그러니 어딘가에 살아 있음은 분명하다.
혁련천후가 걸음을 놓았다.
모두가 힘없이 그 뒤를 따랐다.
* * *
전신에 병기를 주렁주렁 걸친 사내, 도왕(刀王) 북궁천소는 신마성주의 수신호위인 팔왕의 일인이다.
그는 앞을 막아선 신교의 고수들을 보며 싸늘하게 웃었다. 막아선 자들은 백이 넘어가는 숫자. 하나같이 날카로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궁천소의 얼굴에는 그저 험악함만이 감돌 뿐이었다.
무리들의 수장으로 보이는 초로의 노인이 팔왕을 향해 날카롭게 외쳤다.
“감히! 본교를 들어와 이렇듯 방자한 태도를 보이다니 죽고 싶어 안달이 난 놈들이구나! 어디서 온 뭐 하는 놈들이냐?”
불행이었다.
도왕 북궁천소를 몰라보다니. 알아보았더라면 입조심이라도 했을 텐데.
북궁천소가 어깨에 메고 있던 은색대부를 손에 쥐고서 신교의 고수들을 향해 성큼 걸어갔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묻는 말에 대답만 하면 된다. 물론 아주 간단하게. 어기면 대갈통을 잃어버리게 될 거야, 후후후.”
그 광오한 말과 태도에 신교의 고수들은 어이가 없어 실소를 머금었다.
“건방진…… 크악!”
입을 놀리던 자의 목이 허공을 날아 동료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경고했잖아, 대갈통이 날아간다고.”
“헉! 이, 이게…….”
“이럴 수가!”
그 같은 상황에 신교의 고수들이 경악했다.
그들은 북궁천소가 도끼를 휘두른 것조차 보지 못했다. 뭔가 바람이 스쳐 간다고 느끼는 순간, 동료의 목이 피를 뿌리며 날아가는 것만 보았을 뿐이다.
놀람은 잠시였다.
모두가 이내 살기를 발산하며 검을 겨누었다.
괜히 신교의 고수들인가. 용맹하기로 따진다면 세상의 그 누구보다 용맹무쌍한 자들이 신교의 인물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심장에 투쟁이란 글자를 새기고 나온다.
그러나 상대는 강호가 가장 두려워하는 팔왕의 한 명인 도왕 북궁천소였다.
제아무리 신교의 전사들이라도 그 앞에서는 호랑이 앞의 하룻강아지에 불과했다.
북궁천소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싸우자고?”
* * *
서걱!
연무극을 몰아내고 교주의 위에 올랐던 신교주 동승은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며 두 눈을 부릅떴다.
오른팔이 삭둑 잘려 날아갔지만 고통보단 불신이 더욱더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어 놓았다.
세상에 이럴 순 없었다.
자신을 이토록 압도적으로 제압할 고수가 있으리라곤 생각조차 못했던 그는 오연하게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혁련천후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동승을 내려다보는 혁련천후의 눈동자엔 시퍼런 살기가 잔뜩 흘러나오고 있었다.
“왜 그랬느냐.”
“무, 무엇을 말이냐?”
“그 아이를 왜 쫓았는지 물었다.”
“도대체 누굴 말하는 것이냐! 그리고 당신이 누군데……!”
짝!
혁련천후는 검날로 동승의 뺨을 후려쳤다.
살갗이 터지며 피가 튀었다. 동승은 감히 저항을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동승의 머릿속은 여전히 정리가 되지 않았다.
다짜고짜 들이닥친 일곱 명의 고수들이 신교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더니, 나중에 모습을 드러낸 눈앞의 혁련천후는 신교 최강의 고수들이라는 사대장로들과 전주들을 여지없이 쓸어버린 것이다.
신교가 생겨난 이후, 이런 치욕은 처음이었다.
동승의 발악하는 모습을 차갑게 노려보던 혁련천후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쓸어 봤다.
이미 주변은 완벽하게 제압된 상태. 모든 신교의 고수들이 전의를 상실하고서 망연자실 넋을 놓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들의 앞에는 북궁천소를 비롯한 팔왕의 일곱 명이 태산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조윤.”
“예, 주공.”
창왕 조윤이 다가왔다.
“성의 율법대로 처리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때 동승의 육신이 벼락을 맞은 듯,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성이라는 단어 하나가 엄청난 양의 정보를 그의 머릿속에서 떠오르게 만들었다.
그는 혁련천후를 새삼 살폈다.
짙디짙은 흑발에 얼음장처럼 차가운 표정. 그리고 보통의 철과는 달리 백색을 띤 검신.
그의 머릿속에 비로소 이십 몇 년 전에 무림천하를 통일해 버린 한 사내의 전설이 떠올랐다.
신마 혁련천후.
“시, 신마…….”
* * *
마차에 오른 혁련천후는 수하들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곳으로 뛰어들어야 하나…….’
금지의 연못을 떠올렸다.
연못에서 천살강기가 느껴졌다면 혁련소가 그곳에 뛰어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 안이 어떤 곳인지는 그 자신도 모른다. 다만 현재로선 방법이라곤 그것뿐이었다.
‘빌어먹을…….’
마음이 무겁다. 좀처럼 머릿속이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아들을 위험에 빠트린 신교를 부수었지만 그것으론 아무런 위안조차 되질 않았다.
“진천에게 물어봐요! 그러면 분명 뭔가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
검후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슬픔을 억누른 그런 목소리였다.
“그럴 생각이오. 안 되면…….”
혁련천후는 그녀에게 차마 의문의 연못으로 뛰어들겠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때 바깥에서 기척이 들려왔다. 수하들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조윤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모두 처리했습니다.”
“신교는 누구에게 맡겼느냐?”
“포중삭이란 인물에게 맡겼습니다. 눈빛이 믿을 만했습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혁련천후는 금발을 멋들어지게 늘어뜨린 인물에게 시선을 던졌다.
환영마객 진천이었다.
그의 눈빛을 받은 진천이 표정과 자세를 고쳤다.
“네가 수고를 좀 해야겠다.”
“무엇이든 시켜만 주십시오! 주공!”
“모두들 금역으로 간다.”
“금역으로…… 말입니까?”
“가서 확인을 해 봐야 할 것이 있다.”
일행들은 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북쪽을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 * *
연못을 바라보는 진천의 이마에 짙은 주름이 생겨났다.
그는 고금최강의 환술을 지닌 존재이자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는 무불통지의 현자이기도 했다.
세상은 그를 가리켜 환영마객이라 칭하지만 어떤 이들은 제갈양의 현신이라고도 한다.
지켜보는 모든 이들의 얼굴에 기대감이 떠올랐다. 특히 두 여인들은 서로의 손을 꼭 쥐고서 진천이 결과를 내주기를 고대했다.
치르륵!
하얀빛의 줄기들이 생겨나며 연못 위의 공간을 두르기 시작했다. 그 신기한 광경에 모두는 눈의 움직임을 멈추었다. 금발 사내의 전신이 땀으로 젖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 엄청난 내력을 필요로 하는 대법을 펼치는 중이었다.
연못의 수면이 서서히 요동치기 시작했다.
혁련소를 끌어 삼킬 때와 같은 현상이었다. 진천의 육신이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력의 한계에 이른 것이다.
모두가 초조함을 드러내며 진천을 바라보았다. 여인들의 쥐어진 손도 땀으로 흥건하게 젖은 지 오래다. 오직 혁련천후만이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콰아아아!
소용돌이치던 연못이 이내 잔잔하게 가라앉으며 진천이 감았던 눈을 떴다.
“헉! 헉!”
거친 숨을 토해 내며 육신을 휘청거리자 조윤이 재빨리 다가와 그의 명문혈에 손을 대고 내력을 주입시켰다.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온 진천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저곳에서 사라졌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그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
“특이한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생김새로 보아서 색목국에서 온 자가 틀림없습니다. 한데 아무래도…… 저곳을 통해 다른 세상으로 간 것 같습니다.”
“다른 세상으로 가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그냥 느낌이 그렇다는 겁니다.”
혁련천후를 비롯한 모두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사람이 한낱 연못을 통해 다른 세상으로 갔다는 말을 믿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진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흑야도 함께 있었느냐?”
“형님과 젊은 여인이 소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 외에는 전혀 보이질 않는군요. 죄송합니다.”
진천이 숨을 헐떡이며 말을 마쳤다. 혁련천후는 다시 연못을 응시했다.
‘할 수 없군, 직접 뛰어드는 수밖에…….’
방법은 역시 그것뿐이었다.
어차피 아들의 일이 아니더라도 연못에 대한 신비를 파헤쳐야만 했다. 가문을 승계한 자신이 반드시 해내야 할 일들 중, 하나가 그것이었기에 그는 스스로 그곳으로 뛰어들기로 결정했다.
그의 표정 변화를 살피던 검후가 단호하게 말했다.
“저도 함께 가겠어요!”
“안 돼.”
“말리지 마세요. 당신의 아들이기 이전에 제 아들이기도 해요.”
검후의 선홍빛 입술이 치아에 지그시 눌려 있었다. 혁련천후로서는 매우 난감한 순간이었다. 저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그도 모른다. 결코 사랑하는 아내를 그 위험에 뛰어들게 할 순 없었다.
[조윤.]
혁련천후는 조윤에게 눈빛을 보냈다. 그 속에 담긴 뜻을 간파한 조윤이 검후의 뒤에다 대고 머리를 조아리고는 그녀의 혈도를 짚었다.
북궁천소는 백선녀의 혈도를 짚었다.
털썩!
두 여인이 맥없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산악과 너희들은 우리가 저 안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저들을 데리고 성으로 돌아가라. 혹,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신마성을 부탁한다.”
“주공!”
관산악과 진청등이 놀란 표정으로 외쳤다. 북궁천소가 그들을 향해 씩 웃어 주었다.
“뭐야, 그 표정들은…… 설마 우리가 주공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다고 여기는 것은 아니겠지?”
“걱정일랑 집어치우고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아이들 수련이나 제대로 시켜 놔.”
상아귀고리를 한 전왕 왕전이 거들었다. 혁련천후가 몸을 돌려 다시 연못으로 시선을 던졌다.
넘어가는 낙조를 받아 연못은 핏빛으로 변해 있었다.
‘무슨 일을 당했는지는 모르나 내가 구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