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1
<귀환무사 251화>
귀환무사 2부
26화
제1장 신마, 이계로 넘어가다
천하절색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만큼 아름다운 여인은 마차의 벽에 기대어 눈을 감은 사내를 보며 빙그레 미소를 머금었다.
그녀는 사내의 옆에 앉아 있는 또 다른 여인을 향해 과일을 건넸다.
“언니, 이것 좀 드세요.”
과일을 집어 건네는 손이 무척이나 하얗다. 언니라 불린 여인은 그 손을 가볍게 쥐어 주고는 고개를 저었다.
“입맛이 없어.”
“소아 때문이라면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천하에 누가 그 아이를 어쩔 수 있겠어요. 게다가 얼음 아저씨까지 있는데…….”
“두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는 마음이 놓이지를 않아서 그래.”
천하명공이 정성을 기울여 조각을 한 듯,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 주는 여인의 얼굴은 수심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사내를 힐끗 쳐다보고는 마차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제법 빠른 속도로 달리는 마차임에도 여인은 조금의 흔들림조차 없이 마부석으로 올라섰다.
“주모님!”
여인이 나서자 마차의 주변을 호위하며 달리던 자들이 화들짝 놀랐다.
마부석에는 화산파의 무복을 입은 중년인들이 앉아 있었다. 진청이라는 이름을 지닌 검의 고수였으며, 또 다른 한 명은 진호라는 이름을 지닌 또 다른 고수였다.
강호는 그 두 명에다 다른 둘을 더해 화산오웅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밖으로 나서는 여인을 보고는 황급히 고삐를 당겨 마차를 세웠다.
“누가 저하고 자리 좀 바꿔 주세요.”
“직접…… 마차를 모시겠습니까?”
“안에만 있었더니 답답해서…….”
“저도요.”
뒤이어 다른 여인도 마차 밖으로 나섰다. 선두에서 전마를 몰아가던 인물이 말을 돌려 마차로 다가왔다.
“주모님께 고삐를 드려라.”
“예.”
진청이 고삐를 여인에게 공손히 건넸다.
진호도 이내 다른 여인에게 자리를 빼앗겼다. 둘은 머쓱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기분도 꿀꿀한데 우리 신나게 달려요.”
“그럴까?”
두두두!
마차는 다시 질주를 시작했다.
그녀들 때문에 속도를 줄였던 마차였지만 막상 그녀들이 직접 마차를 몰면서 속도는 마치 천리마처럼 빨라졌다.
마차 안에서 간간이 비명이 울렸다. 고르지 않은 길을 엄청난 속도로 달리니 안에 있는 사람들이 꽤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우측으로 방향을 트십시오! 그곳이 신강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알겠어요, 담대 공.”
갑주를 걸치고 청룡언월도를 든 장수가 다가오며 외치자 마차는 먼지를 일으키며 우측으로 방향을 틀었다.
두두두두두!
육중한 마차가 지나간 길 위는 바퀴 자국과 솟아오른 흙먼지들로 자욱했다.
간혹 돌이라도 걸리면 심하게 요동쳤지만 사내의 몸은 조금의 미동조차 없었다.
진청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사내를 응시했다. 진호가 그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주무시나 본데 소란 피우지 말고 두 다리에 힘을 바짝 줘라.]
[알았다.]
둘에게 사내는 하늘이었다.
그때 사내의 입술이 벌어졌다.
“아직 멀었느냐.”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사내는 그 한마디를 묻고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 * *
“욱!”
혁련소는 가슴을 움켜쥐며 신음을 토해 냈다.
그들의 앞은 연못이 있었고 그 연못의 가운데, 천을 뒤집어쓴 인물이 두 팔을 혁련소를 향해 뻗은 채, 주문 같은 것을 계속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수면 위쪽에 시커먼 연기 같은 것이 허공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뭐가 어떻게 된 건지 검을 휘둘러도, 장력을 쏘아 보내도 흐트러지기는커녕 되레 커지기만 했다.
더불어 몸을 움직일수록 알 수 없는 힘이 전신을 서서히 옭아매고 있었다.
혁련소는 전신이 터질 듯한 엄청난 압박감에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만해…… 개자식아!”
혁련소가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그는 지금 움직일 수 없었다. 육신을 조여드는 거대한 압박에 극한의 내공을 끌어올려 간신히 버티고 있는 중이었는데,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처지보다는 점점 더 창백하게 변해 가는 연소민이 걱정되어 미칠 지경이었다.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점점 흐릿하게 변해 가고 있었다.
“이…… 그만하란 말이다!”
쾅!
연기의 압박을 뚫어 낸 혁련소가 연못의 가운데로 몸을 날렸다.
주술 같은 것을 읊어 대던 인물이 흠칫하며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그 앞에 거대한 빛의 장막이 생겨나며 혁련소의 육신을 막아 냈다.
팡!
“으윽!”
혁련소가 반탄력에 휘청거렸다.
“생각보다 대단한 인간이군. 감히 나의 마법을 이토록 오랫동안 버티는 것도 모자라 반격을 가하다니…….”
괴인은 진심으로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흑야가 오기 전에 모든 것을 끝내야 했다.
“그자가 오면 당하는 것은 나다. 서둘러야 한다.”
치르륵!
그의 양손이 빛줄기를 뿜어내며 혁련소의 육신을 감고 돌았다. 마치 포승줄에 묶인 것처럼 혁련소는 육신이 제압당했다.
부글부글!
연못이 들끓기 시작했다.
동시에 강력한 소용돌이가 혁련소가 떠 있는 바로 아래에서 생겨났다. 주술의 속도가 상당히 빨라졌다.
“마신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어둠의 문이여! 신의 피를 이어받은 인간의 기운을 그대에게 제물로 바치나니! 문을 열어, 케베로스를 영접하라!”
콰오오오!
소용돌이가 광포한 움직임을 보이며 거대한 물줄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엄청난 인력이 생겨나며 연소민의 육신이 그곳으로 이끌려 들어왔다. 끝까지 버티던 혁련소의 육신도 서서히 소용돌이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으으윽!”
혁련소는 혼신의 힘을 다해 저항을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힘을 가하면 가할수록 더욱더 강한 힘으로 빨아 당겼다.
절망의 그림자가 혁련소의 얼굴에 드리웠다. 이미 반쯤 소용돌이에 잠겨 드는 연소민을 보니 두 눈이 뒤집혔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으아아아!”
절규를 뒤로 하고 연소민의 육신은 소용돌이 속으로 완전히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혁련소의 의식도 서서히 꺼져 가기 시작했다.
“아버지…….”
또르륵!
눈가를 타고 흐르는 맑은 액체가 소용돌이 속으로 떨어졌다.
그때였다.
“멈춰라!”
흑야의 고함이 들려옴과 동시에 혁련소는 아득한 나락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더불어 괴인도 연기도 사라졌다.
* * *
바람처럼 질주하는 마차를 향해 전서구 한 마리가 빠르게 날아들었다.
선두에서 질주하던 사내가 팔을 내밀자 전서구는 방향을 바꾸어 그에게로 날아가 어깨에 내려앉았다.
“흑야에게서 전서가 왔습니다!”
전서구의 다리에 묶인 천을 끌어 마부석의 여인에게 건넸다. 전서를 읽어가던 여인이 마차를 향해 고개를 돌리려고 할 때, 이미 그녀의 뒤에 사내가 서 있었다.
“그곳에 있다고 하는군요.”
그녀가 전서를 건네며 말했다.
전서를 받아 쥔 사내의 시선이 북쪽으로 던져졌다. 신강의 하늘이 지척에서 그 높음을 뽐내며 펼쳐져 있었다. 상아귀고리를 한 사내가 말을 몰아 그에게로 다가오며 소리쳤다.
“신교를 그냥 두실 생각입니까?”
“개소리! 깨끗이 쓸어버려야지!”
전신에 각종 병기를 주렁주렁 두른 사내가 거칠게 대답했다. 둘에게서는 가히 폭발적인 기운이 줄기줄기 뻗쳐 나오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고요한 기운을 두른 갑주를 두른 장수가 묵직한 음성으로 물었다.
“곧장 본가로 가시겠습니까? 신강을 들렀다 가면 하루 정도면 됩니다만…….”
그 말은 신교를 부수는 데 하루면 된다는 것. 실로 놀랍고도 광오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충분하다.
사내의 미간에 슬쩍 주름이 잡혔다.
횡으로 그어진 흉터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가 창을 어깨에 두른 사내에게 물었다.
“연무극이 실각을 했다고 했나?”
“그렇습니다! 동승이란 자가 교주의 위에 올랐습니다.”
“그를 그곳으로 끌고 와라.”
“그놈만 말씀입니까?”
“놈의 태도 여하에 따라 신교의 존속 여부를 결정하겠다.”
“순순히 따라올 놈이 아닙니다. 그냥 목을 잘라 버리는 게…….”
신교 교주의 목숨이 이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난다.
“죽여도 좋다.”
사내가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창을 두른 사내가 진청과 진호를 향해 말했다.
“너희들은 주공과 주모님들을 모시고 금역으로 가라. 자! 우리는 신강으로 간다!”
마차를 제외한 전마들이 바람을 일으키며 서북 방향으로 질주했다. 멀어져 가는 그들을 바라보며 진청과 진호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아쉽군. 모처럼 신명나게 싸울까 싶었는데…….”
“저 양반들 눈에 우리는 죽는 그날까지 어린아이로 보일 거다.”
“왜 아니겠습니까. 천하의 화산오웅을 애 취급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저분들뿐이지 않습니까. 쩝.”
투덜거리는 둘의 뒤쪽으로 하얀 그림자가 쓱 나타났다.
“다 일러 준다.”
“헉!”
“누, 누구!”
둘이 기겁을 하고 돌아봤다.
아름다운 얼굴이 자신들을 보며 눈을 찡긋거리고 있었다. 세상은 그녀를 백선녀라 부르며 그 아름다움을 칭송했지만 이들에겐 공포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한 그녀다.
진청이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못 들은 것으로 해 주시면…….”
“맨입으로?”
“이번엔 또 뭐가 필요하십니까?”
“음…… 화산파의 태청단이 그렇게 효능이 뛰어나다며?”
순간 둘의 얼굴이 무참히 구겨졌다. 그녀가 원하면 무조건 줘야 한다. 안 그러면 삶이 고달프게 변한다.
“끙!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출발해 볼까?”
그녀가 마부석의 고삐를 잡으며 앉았다. 마차를 몰던 다른 여인은 마차 안에 들어가고 없었다.
진청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저기, 마차는 저희들이…….”
“왜? 내가 몰면 안 돼?”
“그게 아니라, 저희들이 어떻게 저 안엘 들어갑니까?”
“그런가? 그렇기도 하겠네. 알았어, 그럼 너희들이 마차를 몰도록 해.”
백선녀가 들어가자 진청과 진호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각각 자리를 잡고 앉았다.
뒤이어 마차는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쫌 천천히 달려!”
마차 안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속도는 이내 반으로 줄어들었다.
두두두두!
* * *
여인 얼굴이 수심으로 가득했다.
한때 검후라 불리며 여중최강으로 인정받았던 그녀이지만 목숨처럼 사랑하는 아들이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제대로 잠조차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들만큼이나 소중한 사내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고개를 숙였다.
사내, 혁련천후.
신마성주이자 천하제일인인 그는 감정이 실리지 않는 눈으로 전방의 전각을 천천히 쓸어 보았다.
‘천살강기를 사용했다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고수가 이곳에 있었단 말인가.’
천살강기의 미세한 기운이 느껴졌다.
천살강기는 여타 다른 무공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무적의 살인강기! 사용했다면 적어도 보름이 지나기 전에는 자신의 오감에 여지없이 걸려든다.
오직 자신의 핏줄만이 지닌 능력이다.
혁련천후의 시선이 협곡의 동쪽으로 던져졌다.
“저곳이다.”
차갑게 중얼거린 그가 발걸음을 옮기자 검후와 백선녀, 그리고 진청과 진호가 재빨리 그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