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0
<귀환무사 250화>
귀환무사 2부
25화
적당히 둘러댈 게 필요했던 혁련소는 머리를 굴렸다. 마침 적당한 구실이 떠올랐던 그가 대답하려고 입술을 벌릴 때였다.
“응?!”
혁련소의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전각의 입구에서 뭔가 흐릿하게 사라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연소민도 마침 그것을 보았는지 건량을 문 표정 그대로 전각의 정문 쪽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뭘까요? 분명 뭔가 지나갔는데…….”
“가 봅시다.”
혁련소가 재빨리 그곳으로 신형을 날렸다.
예감이 좋지 않았던 연소민이 만류할 시간도 없었다. 그녀도 건량을 뱉어 버리고는 혁련소의 뒤를 따랐다.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쓸어 보던 혁련소의 눈에 또다시 뭔가가 잡혔다. 이십여 장 거리 밖에서 시커먼 천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뒤집어쓴 인영이 자신을 쳐다보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저자야, 저자의 기운이었어.”
“느낌이 안 좋아요.”
“기운이 그다지 강한 자는 아니요. 잡아서 물어봅시다.”
몸을 날리려는 혁련소를 연소민이 붙잡았다.
“왠지 느낌이 불길한 자예요. 차라리 저분을 깨워 함께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나도 꽤 강한 고수라오. 자는 분까지 깨울 필요야 있겠소.”
“그래도…….”
그녀가 말을 잇기도 전에 혁련소의 육신은 그녀의 손을 빠져나가 빠르게 천을 뒤집어쓴 자에게로 날아갔다. 그녀도 어쩔 수없이 그의 뒤를 쫓아 몸을 날렸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것인지 그녀는 손에 연검을 말아 쥐고 있었다.
* * *
“흐흐! 걸려들었군.”
천 아래에서 섬광이 번득였다.
몸을 날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혁련소를 보며 그는 사악하게 웃었다.
뒤를 보니 자신의 오감을 자극했던 흑야는 보이지가 않았다.
그의 눈동자가 혁련소의 육신을 빠르게 살폈다.
“역시 그자들과 같은 기운을 지녔군. 그런데 왜 저렇게 약한 거지?”
두 눈에 실망감이 어렸다.
그는 수백 년 동안 이곳을 지켜 왔던 존재들을 떠올렸다. 인간이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 강대했던 그들과 혁련소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같은 기운을 지녔다면 같은 일족이 분명할 터인데, 그는 그 점이 다소 걸렸다.
아니, 아쉬웠다.
보다 더 강한 자를 데려가야만 하는 임무를 받았지 않은가.
“상관없다. 그저 이 저주받은 곳을 벗어나 나의 세상으로 돌아가면 그뿐이다.”
사악한 빛으로 번득이던 그의 눈동자가 이내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팟!
유령처럼 사라지더니 이십 장 밖에 모습을 드러냈다.
“잘 따라오너라. 결코 나의 마법에서 헤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그의 말처럼 혁련소는 쉬지 않고 그를 쫓아 몸을 날려 오고 있었다.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몇 번에 걸쳐 반복하자, 그들은 진법이 펼쳐진 입구에까지 다다랐다.
“안 돼요! 더 이상은…….”
연소민이 혁련소의 소맷자락을 잡았다.
“수상한 놈이오! 그냥 보낼 순 없소!”
그러나 혁련소는 그녀를 뿌리치고 또다시 몸을 날렸다. 상당히 서두르는 것이 평소의 혁련소와는 확연히 달랐다.
위기 상황에서도 결코 위축되지 않고 다급함도 보이지 않았던 그였는데, 지금은 마치 뭔가에 씌인 사람처럼 굴었다.
연소민은 그런 혁련소를 보며 낯빛을 굳혔다.
‘들어오는 방법을 모르잖아.’
그렇다.
저곳을 벗어나면 진법을 헤치고 들어올 방법을 몰랐다.
말려야 했는데 이미 혁련소는 저만치 앞을 뛰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정체불명의 인물을 쫓아가는 혁련소를 응시하며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전각 안에 있는 흑야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별일이야 없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녀도 몸을 날려 바위를 넘어섰다.
“서라!”
쓔아악!
자꾸 도망만 가는 인영을 향해 혁련소가 검강을 날렸다.
쾅!
그자가 섰던 곳이 박살이 나며 자욱한 먼지를 피워 냈다.
내공을 끌어올려 속도를 높인 혁련소는 허공에서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신출귀몰한 신법 탓에 연속적인 공격도 무위로 돌아갔다.
쐐액!
빛을 발하는 무언가가 연소민의 손을 떠나 도주하는 인영을 향해 쏜살처럼 날아갔다.
허공에서 그 인영이 움찔했다.
“맞혔다!”
혁련소의 신형이 바닥을 차고 섬전처럼 쇄도해 들어갔다. 그러나 움찔했던 인영은 빠르게 절벽을 돌아 사라졌다.
둘의 육신이 빠르게 절벽을 돌아갔다. 그러고는 이내 그 자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 * *
“뭐지?”
눈을 감았던 흑야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기감을 열어 바깥의 흐름을 살폈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공기가 느껴졌다.
주변을 돌아보니 혁련소와 연소민이 보이지 않았다.
뭔가 불길함을 느낀 그는 눌러놓았던 용수철처럼 밖으로 몸을 날렸다.
아무도 없었다.
고요하게 가라앉은 주변 분위기가 오늘따라 유난히 음산하게 다가왔다.
“소!”
목소리에 내공을 담아 불렀지만 혁련소는 나타나지도, 대답하지도 않았다.
흑야의 눈빛에 초조함이 담겼다.
쾅!
바닥을 차고 오른 그의 육신이 빛살처럼 어디론가 날아갔다.
* * *
신교의 중앙 지부장 살소마객(殺笑魔客) 무겸(武兼)은 지부 앞을 늘어선 마차와 전마들을 보고는 수하들을 다그쳤다.
“저놈들은 뭐 하는 놈들이냐? 감히 본교의 인물들 앞에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다니, 당장 무릎을 꿇릴 일이지, 뭣들 하고 있는 게야!”
무겸의 옆에 있던 수하 하나가 허리를 굽혔다.
“지부장님을 만나겠다고 해서…….”
“뭐야! 내가 그리 한가하게 보였느냐? 이런 머저리 같은 놈을 봤나.”
“그게…….”
수하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 상아귀고리를 한 사내가 무겸을 보며 말을 몰아 성큼 다가왔다.
무겸의 눈동자가 그의 전신을 오만하게 훑었다.
“네가 이곳을 책임지고 있는 무겸이라는 놈이냐?”
무겸의 험악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천하에 자신을 두고 저렇듯 하대를 하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물론 신교의 수뇌부가 전부였는데, 느껴지는 기운은 형편없고 덩치만 커다란 놈이 자신을 지나가는 개를 보듯 쳐다보자 대번에 살심이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이 새끼가 뒈지려고 환장을 하였구나!”
챙!
무겸이 자신의 대도를 뽑아 들었다.
다가오던 사내의 눈동자에 새파란 광망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 칼, 어지간하면 도로 넣는 게 좋아. 안 그러면 그 칼로 네놈의 목이 날아갈 수도 있다.”
씨익!
사내가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 속에 깃든 광포함은 신교 중앙 지부의 모든 이들에게 지독한 공포감을 빠르게 심어 주었다.
무겸도 다를 바 없었다.
‘뭐야? 이게 아닌데…….’
지독했다.
손과 발이 저절로 떨려 올 정도로 사내가 뿜어 대는 기운은 엄청났다.
뽑아 든 칼이 무색할 정도로 마겸은 당황했다.
수하들이 보고 있었다. 여기서 칼을 도로 집어넣는다면 그야말로 개창피를 당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분위기만 그럴듯한 놈이겠지.’
무겸은 며칠 전부터 앓았던 감기 몸살의 후유증이라 여기고 대뜸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목을 쳐 주마!”
“웃기는 놈이군.”
사내가 슬쩍 손을 휘둘렀다.
동시에 허공을 날았던 무겸의 육신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용수철이 튕기듯, 뒤로 한참을 날아갔다.
한참을 구른 후에야 마겸의 육신이 멈추었다.
다른 자들이 창백하게 질린 채,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마겸을 한 방에 보내 버린 사내가 전마에서 내려서며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으…….”
신교의 고수들은 이를 심하게 요동치며 저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자석에 붙은 듯, 발이 떨어지지 않아 도주하지도 못했다.
그들의 코앞에서 걸음을 멈춘 사내가 씩 웃었다.
“곱게 대답할래? 아니면 몇 대 맞고 대답할래?”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누군가가 용케 대답했다. 사내의 광포한 시선이 그에게로 돌아갔다.
“좋아, 너 때문에 모두 살았다. 나중에 이놈에게 술이라도 사 줘라! 알겠나?”
“예!”
모두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신교의 본단으로 보낼 전서구가 있지?”
“있습니다!”
“좋아! 가서 몇 마리 가져와.”
뒤쪽에 섰던 하나가 황급히 지부로 들어가더니 비둘기 몇 마리를 손에 쥐고 돌아왔다.
“적어!”
“옛?”
“받아 적으라고, 자식아!”
“예! 불러 주십시오!”
사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본인이 신교를 방문하고자 한다. 그때까지 그대들이 쫓았던 아이를 무사히 모셔다 놓기 바란다.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그날로 신교는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받아 적던 신교의 고수가 멍한 얼굴로 사내를 쳐다봤다. 그의 입장에선 한마디로 개소리라고밖엔 할 수 없는 말을 사내가 지껄인 것이다.
그러나 사내의 뒷말은 모든 이들의 혼줄을 빼 버렸다.
“발신인에 신마성주라고 멋지게 적어라.”
“헉!”
“시, 시, 신마성!”
“으…….”
수십에 달하는 신교의 고수들이 오금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전서를 적던 자도 붓을 떨어뜨리고는 손을 덜덜 떨었다.
“이 자식이, 안 적고 뭐 해?”
“예, 예!”
붓을 주운 자가 입이 시커멓게 변하도록 침을 적셔 가며 적어 갔다.
떨리는 손으로 용케도 받아 적은 그는 비둘기의 다리에 천을 묶는 데만 제법 시간이 걸렸다.
오한이 든 것처럼 심하게 떨어 댔으니 제대로 묶일 리가 없었다.
푸드득!
전서구가 힘차게 서북 방향으로 날아오르자 신교의 고수들은 모두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고개를 푹 숙였다.
이건 도저히 어떻게 해 볼 대상이 아니다. 그저 그가 자신들의 목숨만을 살려 주기만을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 뿐이었다.
“경고하지. 어지간하면 이 시간 이후부터 신교에서 탈퇴하는 것이 좋을 거야. 어쩌면 세상에서 신교의 신 자만 붙어도 모조리 씨가 마를 수도 있는 비극이 벌어질 수도 있다.”
사내가 전마에 몸을 실었다.
마차와 전마들이 서서히 방향을 바꾸어 서북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신교의 고수들은 그저 넋 놓고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귀, 귀고리 봤냐?”
누군가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상아귀고리라면 전왕 단리극!”
다시 공포가 몰아쳤다.
전설의 싸움꾼이며 전왕(戰王)이라 불리는 사내.
그는 세상을 관조하는 위대한 절대자, 신마성주 혁련천후의 여덟 호위 중 하나였다.
그들로서는 그야말로 저승사자와 대면을 하고도 살아남은 셈이었다.
휘이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