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7
<귀환무사 247화>
귀환무사 2부
22화
그 시간 동안 아무 일 없기만을 바라며 그는 최대한의 속도로 직선거리를 달렸다.
흑야의 육신이 울창한 침엽수림을 막 지나갈 때였다.
끼아악!
허공에서 거대한 독수리가 사내를 보며 울어 댔다.
어지간한 사람도 낚아챌 만큼 거대한 독수리는 그의 궤적을 쫓아 움직이며 연신 울어 댔다.
‘걸렸군!’
흑야는 주변을 날카롭게 살펴보았다. 예상대로라면 독수리의 울음을 들은 신교의 고수들이 어디선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예상은 다르지 않았다.
쐐애애액!
공기를 가르며 수십 발의 강전들이 그의 육신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보통의 화살과는 괘를 달리하는 속도였다.
따다다당!
검을 휘둘러 강전들을 모조리 튕겨 낸 흑야는 바닥을 차고 상당한 높이까지 날아올랐다.
나무의 끝부분에 내려선 그는 빠르게 주변을 감지했다.
‘신교가 이렇게 강했었나?’
느껴지는 기운들은 십여 명 정도였는데, 정제된 호흡과 칼날 같은 예기로 보아 상당한 고수들임이 예상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강자들의 출현이 늘어나자 그는 신교를 다시 보게 되었다.
‘놈들과 노닥거릴 시간이 없다. 소가 위험할 수도 있다.’
탓!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하늘거리는 가는 나뭇가지를 차고 오른 흑야는 빠르게 북쪽으로 질주를 거듭했다.
열 개의 그림자들도 뒤를 쫓아 수림을 타고 솟아올랐다. 추격하는 속도가 확실히 이전의 고수들과는 천양지차였다.
그러나 그들보다 흑야가 더욱 빨랐다.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추격자들의 시야에서 흑야의 모습은 완벽하게 사라졌다.
삐익!
추격자들에게서 호각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그러자 허공을 비행하던 거대한 독수리가 흑야가 사라져 간 방향으로 날아갔다.
* * *
“늦으시네요.”
“그러게…….”
연소민의 말 속에 제법 불안감이 묻어났다.
혁련소 역시 드넓은 평원의 끝을 주시하며 다소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흑야가 말했던 시간이 점점 다가왔다. 그 시간까지 나타나지 않으면 둘이서 저 밑을 내려가라고 했다.
“추격을 뚫어 내지 못한 것은 아닐까요?”
“강한 분이오. 미안한 말이지만 신교에서 그분을 당해 낼 고수는 사실 없을 것이오. 교주님조차도…….”
“미안해할 것 없어요. 저도 그 부분에 인정하니까…….”
그녀가 의외로 고분고분 수긍했다.
연소민도 추격전을 벌일 때, 흑야의 무공을 직접 보지 않았던가. 결코 약하지 않은 그녀였기에 그의 무력이 엄청나다는 것쯤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무릎에 고개를 묻으며 연소민이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되었지?”
그러고는 말문을 닫아 버렸다.
그녀를 힐끗 쳐다본 혁련소는 눈을 가늘게 하고서 평원의 끝을 주시했다.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흑야가 그 안에 나타나지 않으면 자신이 모든 것을 결정해야만 한다.
금역 밑으로 내려갈 것인지, 아니면 방향을 선회하여 중원으로 들어갈 것인지를 말이다.
혼자라면 중원으로 가는 것을 택할 그였다. 제아무리 신교가 천라지망을 펼쳤더라도 작정하고 도주한다면 충분히 빠져나갈 실력이 혁련소에게 있었다.
‘놈 때문에 제대로 엮였어.’
연무진이 문득 떠올랐다.
생사를 모르는 벗이 떠오르자 가슴속에서 아련한 통증과 함께 살기가 생겨났다.
말없이 머리를 파묻고 있던 연소민이 살기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적인가요?”
그녀가 긴장한 얼굴로 다가왔다.
이미 손은 자신의 연겸을 틀어쥐고 있었다. 혁련소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생겨났다.
“아니오. 잠시 딴생각을 했었소.”
“놀랐잖아요. 생각하면서도 살기를 피우고 그런가 보죠?”
“아주 못된 놈을 생각하니 저절로 생깁디다.”
혁련소가 웃음으로 그녀의 긴장을 풀어 줬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서서히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 이곳 북방 지역은 밤이 빨리 찾아온다.
그리고 밤이 되면 기온이 엄청나게 내려간다. 모두가 북방 지역 특유의 기후 탓이다.
‘설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니겠지.’
혁련소가 초조함을 드러냈다. 어둠이 내려앉자 평원의 끝은 점점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이제 일각 정도가 지나면 땅과 하늘이 같은 색으로 된다. 그렇게 되면 눈으로 어떤 사물을 찾아내기란 불가능해진다.
끼아악!
독수리의 울음이 둘의 귓속을 울렸다.
어두워진 허공을 가르는 거대한 독수리를 본 연소민이 상당히 놀란 표정으로 짤막한 신음성을 흘려 냈다.
“혈응!”
혁련소가 그녀를 돌아봤다.
“교의 특수 부대들이 데리고 다니는 독수리예요. 그들이 나타났다면…….”
“특수 부대라면?”
“인간병기로 키워진 자들을 따로 모아서 만든 전투 부대가 있어요. 그들은 교에 머물지 않고 천하를 떠돌며 작전을 수행하는데, 그들이 왔군요. 저 독수리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그들이 있다고 했으니 틀림없을 거예요.”
혁련소는 연소민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는 것만으로 그녀가 거론한 자들이 무척 위험한 존재들임을 짐작했다.
끼아악!
또다시 날카로운 독수리의 울음이 주변을 울렸다. 동시에 시커먼 그림자가 둘을 향해 날아들었다.
놀란 둘은 검을 뽑아 들었다.
“나를 따라오너라!”
그림자는 둘을 넘어 그대로 달렸다.
흑야였다.
* * *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 떠오른 만월의 고고한 빛이 만월만큼이나 높은 곳에서 세상을 아우르는 존재의 어깨를 비추었다.
시원한 바람에 몸을 맡긴 사내는 성의 첨탑에서 섬서성의 야경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런 그의 옆을 흑색 장포를 걸친 장한이 함께하고 있었는데 금발을 늘어뜨린 이국적인 모습을 물씬 풍겨 내는 장한의 어깨엔 새하얀 털을 자랑하는 작은 북방여우가 꼬리를 말고 앉아 있었다.
“추격을 받고 있단 말이지?”
“상당한 전력이 뒤를 쫓고 있습니다.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고작 신교 따위의 추격을 벗어나지 못했단 말이냐?”
“일행이 있습니다. 실각한 연 교주의 딸이라고 합니다. 그 아이 때문에 아직 북방 지역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사내의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잠시 입을 닫고서 섬서의 야경을 느릿하게 쓸어 보던 사내가 몸을 돌렸다.
장한은 사내의 눈빛을 감히 마주 보지 못했다.
“내가 직접 가겠다.”
“옛?”
“준비해.”
“주공이 움직이시면 천하가 소란에 빠집니다. 그냥 저희들이 다녀오겠습니다.”
캉!
사내가 손짓을 하자 북방여우가 사내의 어깨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장한이 다시 읍소했다.
“이번 일은 저희들에게 맡겨 두십시오. 비밀리에 놈들을 제거하고 데리고 오겠습니다.”
“신교 정도면 그 아이의 신분을 벌써 알아냈을 것이다. 그런데도 놈들은 추격을 하고 있다. 내가 직접 움직일 이유로 충분한 것 같은데…….”
“…….”
사내가 걸음을 옮겼다.
장한이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했다. 아니 해선 안 된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번 떨어진 말은 절대 번복하지 않는 자신의 주인이다.
“시끄러워지게 생겼네. 이거 괜히 보고를 드렸군.”
사내의 모습이 사라지자 장한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장한의 뒤쪽에서 시커먼 그림자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자식아! 그러게 그냥 우리끼리 가자고 했잖아! 하여튼 저놈의 주둥이는…….”
험악한 인상의 장한이 투덜거리며 자리에 털썩 앉았다.
은색 갑주에 붉은 흉갑을 두른 사내가 벽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주공께서 가시면 주모님들도 반드시 함께하실 것이니 미리들 준비해. 진무! 넌 내려가서 마차와 기본 식량들을 준비하고 진천은 노주께 미리 알려 드리고 와!”
“쩝! 저도 저렇게 나오실 줄 몰랐지요.”
학사풍의 장한, 진천은 머리를 긁적이며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우리가 다 갈 순 없겠지. 누가 남을 테냐?”
“난 싫다. 이번 기회에 코에 바람이라도 넣고 오련다.”
“나도!”
“내가 남겠다는 생각은 아예 집어치우는 것이 좋아.”
모두가 같은 대답이다.
의사를 물었던 사내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내기해서 지는 놈이 남는 거다!”
“좋지!”
“무엇으로 할 테냐?”
귀에 상아귀고리를 한 사내가 히죽 웃으며 나섰다.
“저 앞에 백어산을 가장 빨리 돌아오는 놈이 이기는 것으로 하지. 물론 꼴찌하고 그 앞이 남기로 하고 말이다.”
모두가 고개를 돌려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백어산을 쳐다봤다. 그저 평범한 야산에 불과했던 백어산은 지금 강호의 최고 명산으로 불린다.
바로 자신들이 몸을 담고 있는 이곳 때문이다.
쾅!
느닷없이 둘의 육신이 바닥을 차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뒤이어 다른 존재들도 어둠을 가르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이런! 썅!”
상아귀고리를 한 사내와 험악한 인상의 사내가 욕설을 터뜨리며 몸을 날렸다.
* * *
[급! 신마성주가 움직였음. 방향은 서북쪽으로 추측되며 팔대천왕, 모두가 함께하고 있음. 추적 불가! 추후 지시 요망.]
마차가 먼지를 일으키며 성을 떠나는 그 순간, 위와 같은 내용의 전서를 묶은 수십 마리의 전서구들이 일제히 중원의 곳곳으로 퍼덕이며 날아갔다.
섬서의 정도맹과 신강의 신교를 비롯한 구파와 오대세가들, 그리고 심지어는 세외까지 포함되었다.
세상에 황제가 있다면 강호엔 황제보다 더한 존재가 모든 이들의 정점에서 존재하고 있었는데, 그 존재가 이십 년 만에 드디어 강호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급보를 전해 들은 모든 세력들은 그의 강호행이 어떤 목적을 지녔는지에 대한 정보 입수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들의 행선지와 목적을 알아내야 한다.”
사파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마도는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은신처에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정파는 그들이 지나가는 행선지에 놓인 문파들에게 최대한의 협조를 공문으로 지시했다.
강호로 나선 숫자는 고작 열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파괴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강호인들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천년 역사의 강호에 유일하게 무적이라는 단어를 강호인들 스스로 붙여 준 존재, 신마성주 신마(神魔) 혁련천후가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 * *
쾅!
어두운 밤하늘이 폭발이 일으킨 빛으로 번쩍거렸다.
“젠장!”
혁련소는 빗줄기처럼 쏟아지는 불기둥들을 보며 당혹해했다.
이런 공격 방식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기상천외한 방법이다. 거대한 독수리들이 하늘을 나르며 연속적으로 포탄의 위력을 상회하는 불줄기를 뿌려 대니 도저히 피할 공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