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5
<귀환무사 245화>
귀환무사 2부
20화
“하오면 지금부터 교의 놈들과는 적이 되는 것입니까?”
“반란에 가담한 놈들만 적으로 간주하겠다.”
철컥!
사내가 벽에 걸린 대도를 집어 갔다.
그는 묵풍마도(墨風魔刀) 철우라는 이름을 지닌 자로서 마교 비밀부대 백마대의 대주였으며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절대지경의 고수였다.
그가 반란을 일으킨 자들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이 서찰을 전한 전서응은 처리했느냐?”
“목을 잘라 개의 먹이로 줬습니다.”
“우리는 이 서찰을 받지 않은 것이다, 송효.”
“당연합지요.”
철우가 거처를 나와 모종의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송효가 따랐다. 철우의 두 눈동자 깊숙한 곳에는 지독한 분노가 여전히 이글거리고 있었다.
‘동승, 그 더러운 낯짝을 내 손으로 갈기갈기 찢어발겨 주마.’
철우의 뇌리에 사악하고 교활한 장로 동승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 * *
두 번의 추격을 더 뿌리친 셋은 평원을 넘어 산악 지대로 접어들었다.
사람의 발길이 드문 산악 지대는 추격자들에게서 훨씬 자유로운 지리적 이점이 있다.
셋은 가장 빠른 진로를 택해 동쪽을 향했다.
벌써 육 일이 지나갔다.
평원을 빠져나오면서부터 추격은 뜸해졌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끊임없이 상공을 배회하는 독수리들을 보며 연소민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 산을 벗어나면 마교의 최종 지부인 관서지부가 있어요. 중원과의 접점 지역이라 교내에서 십 위권에 드는 고수들만 여럿 있다고 들었어요.”
“초마전의 그 늙은이와 비교하면 어떻소?”
“초마전주나 검마전주보다 강한 고수들이에요. 정치엔 문외한 자들이지만 평생을 전장에서 살아온 그들이니…….”
흑야가 물었다.
“그대의 부친을 따르는 자들은 없는 것인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동승 장로를 지지하는 자들이 대부분일 거예요.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하나뿐입니다.”
“누구지?”
“백마단을 맡고 있는 철대주, 그분은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실 호위를 청한 것도 그분께 가려고 했던 것이니까요.”
이번엔 혁련소가 물었다.
“강한 사람이오?”
“세상엔 드러나지 않은 분이지만 힘으로만 따지면 교내 최강이라고 보면 됩니다. 극마에 접어든 것이 십 년 전이니까 어쩌면 중원에서 최강이라 손꼽히는 십대고수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보면 되겠군요.”
그 정도의 고수라면 엄청난 거물이다. 그러나 흑야와 혁련소는 담담한 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연소민이 말을 이었다.
“저를 그분께 데려다 주세요. 물론 무사히 도착하면 약조를 지키겠어요.”
그녀의 얼굴에서 간절함을 읽은 혁련소가 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관계요? 둘 사이는…… 혹시?”
“혹시?”
“아, 아니요. 그냥 궁금해서…….”
연소민이 차갑게 굳어지며 싸늘하게 대답했다.
“숙부로 모시는 분이세요. 쓸데없는 상상은 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녀는 가볍게 혁련소를 노려보고는 먼저 걸음을 빨리했다.
혁련소를 묘한 시선으로 응시하던 흑야 역시 걸음을 빨리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
연소민을 슬쩍 흘긋거린 혁련소도 둘과 보조를 맞추며 걸음을 빨리했다.
* * *
스스슷!
대낮임에도 빛 한 점 없이 어두운 숲속을 빠르게 질주하는 인영들이 있었다.
전신을 흑포로 감싼 그들은 어느 지점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었다.
선두에 선 자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응시했다. 거대한 독수리가 좁은 반경으로 맴돌고 있었다.
“저곳이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그의 목소리에 복면인들은 이내 우측의 숲속으로 뛰어들었다.
나뭇가지 하나 흔들림 없는 상당히 빠르고 은밀한 움직임은 야조를 연상시켰다. 그들이 스며든 숲의 전방에서 혁련소를 비롯한 일행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선두에서 이동하던 흑야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잠깐.]
그의 전음에 둘은 그 자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혁련소가 기감을 열어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걸려드는 기척은 전혀 없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흑야를 쳐다봤다.
[여기서 기다려.]
흑야가 소리 없이 좌측 숲속으로 사라졌다.
‘아직 숙부들에 비하면 형편없군.’
자신이 전혀 느끼지 못한 것을 흑야는 느꼈다.
그것만으로 경지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확연히 드러났다. 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여덟 숙부는 이미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괴물 같은 존재들. 비록 그들의 모든 것을 전수받은 자신이지만 따라가려면 십 년 이상을 더 수련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괜찮을까요.”
연소민이 두 손을 꽉 쥐고 있었다. 천하만마의 터전에서 살아온 그녀도 견뎌 내기 힘들 만큼의 긴장감이 주변을 휘감고 있었다.
혁련소는 순간 연민이 생겨났다. 그토록 차갑고 오만했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혈혈단신의 신세가 되어 버렸지 않은가.
“믿으시오.”
그때, 숲으로 들어섰던 흑야가 돌아왔다.
“제법 강한 놈들이 우측 숲속을 완전히 차단했다.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
“놀랍군요. 어떻게 우리의 이동 방향을 이토록 정확하게 쫓을까요?”
혁련소의 물음에 연소민이 하늘을 가리켰다. 여전히 선회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독수리들이 보였다.
“저거, 나중에 우리도 한 번 해 봐야겠습니다. 사람보다 훨씬 낫지 않습니까.”
이 상황에 이런 말을 하는 혁련소가 연소민에게는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진천의 환술은 아직 다 배우지 못했느냐?”
“그걸 다 배웠으면 저놈들을 이미 통구이로 만들었겠지요. 저도 막 그 점을 아쉬워하고 있었습니다.”
“돌아가면 수련동에 들어갈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넌 주공에 비하면 속도가 너무 느려.”
혁련소가 입을 내밀었다.
“고금최고의 기재라는 아버지와 비교할 순 없지요. 그래도 두고 보세요. 제가 아버지를 반드시 추월하고 말 테니…….”
“제발 그래라.”
흑야가 다시 우측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미 그의 손에는 검이 쥐어져 있었다. 그만큼 상황에 대한 경계수위를 높게 잡고 있었다.
제6장 천년금역으로 가는 길
빠르게 산악 지역을 이동하던 셋은 산악 지역이 끝나는 시점에서 걸음을 멈추어야만 했다.
상당히 좁은 협곡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하지만 협곡 따위에 걸음을 멈출 그들이 아니었다.
일단의 무리들이 그곳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당히 강한 놈들이군.’
흑야는 협곡의 좌우에 포진하고 있는 무리들을 보며 얼굴을 굳혔다.
스물에 달하는 그들은 하나같이 날카로운 기운을 발산하며 자신들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특히 선두에 선 둘은 측정 불가의 경지에 접어든 듯, 조금의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고수들이다. 조심해야겠어.]
그의 전음이 아니더라도 혁련소는 이미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지금껏 신교에서 봐 왔던 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고수들임을 그도 이미 깨닫고 있었다.
“용케, 이곳까지 잘도 왔구나.”
날카로운 비수를 연상시키는 인상을 지닌 노인이 차갑게 그들을 직시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어깨에 두 자루의 검을 멘 그의 시선은 오직 흑야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스르릉!
그들이 검을 뽑아 들자 순식간에 주변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단순한 검의 기운만으로 이 정도의 변화를 준다면 이들이 고수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외부인들과 함께 발을 맞추다니, 부끄럽지도 않느냐?”
특이하게도 붉은 적발을 늘어뜨린 노인이 연소민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그러나 말 속엔 감당 못할 지독한 살기가 진득하게 숨어 있었다.
“부끄러운 짓을 한 건 당신들이 아닌가요?”
연소민이 지지 않고 대꾸했다.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문 그녀는 내심 무척이나 긴장하고 있었다. 당연했다.
그녀도 무인이다. 본능적으로 두 노인의 수준이 엄청남을 느꼈다면 대꾸하는 지금의 태도가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네놈들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만 본교를 우습게 여긴 죗값은 치러야지.”
“흥! 아버님과 오라버니를 암습한 당신들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죠? 우습지도 않군요.”
“교주의 의무를 소홀했다면 당연히 죽음으로서 그 값을 치러야지. 네 아비는 처음부터 그 자리가 어울리지 않았다.”
“닥쳐요!”
연소민이 발끈하여 소리쳤다.
흑야와 혁련소는 전음을 주고받으며 앞으로의 상황을 준비했다.
연소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전면전은 피해야 했다.
[이렇게 되면 중원은 포기한다. 일단 내가 공격을 퍼부으면 넌, 저 아이를 데리고 북쪽으로 무조건 뛰어라. 반나절을 가다 보면 대지를 가른 천장단애가 나올 것이다. 그곳에서 나를 기다려라.]
[혹시 본가의 선조들이 살았다는 곳이 그곳입니까?]
[그렇다. 준비해.]
[예.]
흑야의 검이 은은한 강기를 피워 내며 묘한 소리를 울리기 시작했다.
혁련소는 전음으로 연소민에게 상황을 주지시키고는 그녀의 지척으로 다가갔다.
흑야가 성큼 앞으로 나서며 차갑게 읊조렸다.
“신교에 꽤 쓸 만한 종자들이 있었군.”
무지막지한 기운이 주변으로 발산되며 막아선 신교의 고수들을 긴장시켰다.
지금 흑야는 일부러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쌍검을 뽑아 든 노인의 얼굴에 놀란 빛이 나타났다.
‘고수다!’
치르륵!
노인의 쌍검이 기이한 울음을 터뜨리며 검강을 쑥 뽑아냈다. 놀랍게도 검강의 길이는 한자에 달했다.
이 정도면 초절정은 그냥 회 쳐 먹는 수준이라고 봐야 했다. 그런 고수가 둘이나 되었다.
그리고 절정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 자들이 열여덟이라면 결과는 불을 보듯 훤했다.
“일개 지부의 것으로 보기엔 과한 전력이군. 뭐지? 중원이라도 노렸던 건가?”
“곧 죽을 놈이 별걸 다 궁금해하는구나! 대답은 죽어 지옥에 가면 알게 될 것이다!”
신교의 고수들이 벼락같이 선공을 가했다.
흑야의 육신이 허공으로 떠오른 것은 쌍검을 쥔 노인의 공세가 그의 허리 어름에 떨어질 때였다.
“지금이다!”
번쩍!
일시적으로 시력을 앗아 갈 엄청난 빛의 폭발이 일어났다. 동시에 혁련소와 연소민이 날쌘 제비처럼 북쪽으로 경공을 펼쳤다.
“교활한 놈들! 두 연놈을 쫓아라!”
쌍검을 쥔 노인이 노호성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의 명령을 따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워낙 창졸지간에 발생한 빛의 폭발이 일시적으로 시력을 앗아 간 것이다.
상황을 인지한 노인은 쌍검을 교차하며 흑야를 노렸다. 동시에 다른 고수 하나가 그의 뒤쪽 방위를 차단하며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