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4
<귀환무사 244화>
귀환무사 2부
19화
흑야의 육신이 환영을 남기고 그들의 가운데로 스며들었다. 동시에 사방에서 핏물이 튀었다.
잘려진 육신이 허공을 날았고, 죽어 가는 자들이 남긴 비명이 천산의 능선을 울렸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살인미학에 신교의 추격대는 추풍낙엽처럼 속절없이 쓰러져 갔다.
서른을 넘어가는 그들이 저승의 문턱을 넘어가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일각이었다.
스르릉!
흑야의 검이 제집을 찾아들어가며 나지막한 울음을 냈다.
오연하게 산 아래를 직시하던 그의 눈동자가 지독한 한기를 번득였다.
수백의 고수들이 산 아래를 까맣게 덮으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선두에 꽤 강해 보이는 자들이 여럿 있었는데 검마전주 적용극도 끼어 있었다.
“하루살이 같은 놈들.”
흑야가 몸을 돌렸다.
시선을 들어 천산의 능선으로 던졌다.
이미 혁련소와 연소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산 아래를 차갑게 응시하던 그는 이내 둘이 달려간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 * *
천산을 넘어 중원과의 접경에 이르자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평원이 나타났다.
주변을 아우른 거대한 산맥과는 어울리지 않는 평원은 곳곳에 조금씩 자리 잡은 수풀과 날짐승들이 목을 축이는 작은 물줄기가 고작이었다.
적어도 쫓기고 있는 이들에겐 최악의 조건이었다. 몸을 은신할 만한 곳이 없으니 곧장 평원을 가로질러 뛰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방법이 없군. 최단 거리로 뛰는 수밖에…….”
“저 평원을 넘어서면 제법 큰 산이 나와요. 그곳에 이르면 추격을 따돌리기가 수월할 거예요.”
연소민은 상당히 지쳐 있었다. 혁련소가 뒤를 돌아봤다.
먼 곳에서 검은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흑야였다.
“갑시다!”
둘은 이내 빠르게 평원으로 뛰어들었다.
추격자들에게 들킬 확률이 높은 평원이지만 달리기엔 그저 그만이었다.
둘은 날짐승보다 빠른 속도로 평원을 직선으로 갈랐다.
끼아악!
그들의 머리 위에서 거대한 독수리가 포효했다.
연소민의 얼굴이 초조함을 드러냈다.
“교의 전서응이에요!”
“그게 뭐요?”
“적의 움직임을 놈들에게 알려 줄 목적으로 키운 독수리예요.”
“환장하겠군.”
일반적으로 비둘기를 이용하는 타 문파들과는 달리 신교는 독수리를 이용했다. 그 빠르기가 비둘기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독수리의 눈을 벗어날 방법은 전무했다. 더구나 이런 평원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그들을 쓸어 본 독수리가 북쪽으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그곳으로 날아간 이유야 뻔했다.
혁련소가 뒤를 돌아봤다.
순간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자신들의 뒤를 쫓아오는 숙부의 뒤쪽 지평선에 검은 그림자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상당한 수였고 속도 또한 대단했다.
[직선으로 곧장 달려라.]
흑야의 전음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어느새 따라붙은 것이다. 상당한 거리임을 감안하면 믿기지 않는 경지였지만 지금 그것에 감탄할 겨를이 혁련소에겐 없었다.
혁련소는 연소민을 돌아봤다.
붉은 입술이 살짝 벌어져 있었다. 뜨거운 입김이 연신 수증기를 만들어 내며 흘러나왔다.
그녀는 매우 지친 상태였다. 혁련소가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연소민이 흠칫하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자신의 손을 통해 뜨거운 기운이 밀려들자 그녀는 혁련소의 의중을 알고는 잡은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지금부터 호위건 에 대한 계약이 시작되는 것이오?”
“여유롭군요.”
“울상을 짓는다고 상황이 바뀐다면 펑펑 울어 줄 수도 있소.”
“좋아요. 저를 지켜 줘요. 지금부터…….”
“그러겠소.”
화악!
연소민은 밀려드는 기운이 갑작스럽게 더욱 강해지자 하마터면 손을 놓을 뻔했다.
“이게 마지막 남은 힘이니 아껴 써야 할 거요.”
혁련소의 얼굴에서 장난기기 사라졌다.
말처럼 더 이상의 내공을 나눠 줄 형편이 못되었다.
둘은 다시 질주를 시작했다.
평원에 들어선 지 제법 긴 시간이 흘렀다.
무림인들의 경공은 어지간한 말보다 빠르다. 그 정도의 속도로 제법 긴 시간을 달렸건만 평원은 그 끝을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쐐애액!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햇빛에 반사를 일으키며 날아드는 암기들이 둘의 전방을 덮었다.
연소민의 팔을 이끌어 빠르게 좌측으로 방향을 선회한 혁련소는 검을 뽑아 검막을 일으켜 주변을 차단했다.
따다다당!
“젠장! 형편없어 보이더니 제법이군.”
전서응이 전한 정보로 신강의 경계 지역에 있던 마교의 고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콩가루처럼 여겼던 신교의 신속한 대응에 혁련소는 내심 감탄했다. 교주의 딸, 연소민이 있었지만 신교 고수들의 공격은 인정을 두지 않았다.
쇠뇌를 먹여 발사된 수백 발의 강전들이 둘을 향해 날아들었다.
연소민도 검을 뽑아 검막을 형성하며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쐐액!
둘의 육신을 지나치는 그림자가 있었다.
흑야였다. 그는 둘의 육신을 넘어 앞을 막아선 자들의 가운데로 사정없이 뛰어들었다.
퍽퍽!
둔탁한 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동시에 허공을 가득 덮는 붉은 핏물들이 연소민의 눈에 보였다. 보고서도 믿기지 않는 놀라운 광경이었다.
“죽여라!”
“놈의 허리를 노려라!”
느닷없이 뛰어든 흑야로 인해 쫓던 자들의 대열이 삽시간에 분열되며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으아악!”
그의 손짓 한 번에 어김없이 하나의 목이 허공으로 피를 뿌리며 솟아올랐다.
[좌측으로 선회하여 곧장 달려가라!]
혁련소는 흑야의 전음에 고개를 저었다.
이미 그의 육신은 피와 살이 난무하는 전장의 중심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멍청한 놈!]
[숙부들을 닮아서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 * *
마교 신강지부를 총괄하고 있는 시팔노마(豺捌努魔) 등신(鄧呻)은 별호가 말해 주듯, 성난 늑대처럼 난폭한 성정으로 소문난 위인이었다.
연소민과 혁련소를 잡으라는 본단의 명령을 받고 수하들을 이끌고 둘의 진로를 막아선 등신은 두 눈을 부릅뜨고서 몸을 떨기에 여념이 없었다.
보고서에 없었던 흑발 사내가 자신의 수하들을 닭 모가지 비틀 듯 도살을 하고 있었다.
제법 강하다는 자들도 어김없이 그의 칼 아래 피를 뿌리며 죽어 갔다. 서른을 넘어서던 숫자는 고작 열로 줄어든 상태였고, 그마저도 대부분이 위태위태했다.
퍽!
등신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나의 목이 다시 잘려 나갔다. 이번엔 흑발 사내가 아닌 혁련소에 의해서였다.
난폭하기가 흑발 사내에 못지않은 혁련소의 검이 등신의 가슴을 노리고 날아왔다.
깡!
대도를 세워 공세를 벗어난 등신은 재빨리 수하들의 머리 위를 넘어 흑발 사내를 덮쳤다.
그가 비록 일개 지부를 맡고 있었지만 일신에 지닌 무공은 본단의 장로들과 견주어 전혀 손색이 없었다.
그 지랄 같은 성정 때문에 좌천을 당한 등신이었다.
꽝!
등신의 강력한 공세는 흑야의 검에 간단히 막혔다. 탄력을 이용해 뒤쪽으로 날아간 등신이 이번엔 연소민을 덮쳤다.
그 빠르기가 가히 섬전과도 같았기에 연소민은 흠칫했다. 순간의 움찔거림은 삶과 죽음을 좌우한다.
“위험해!”
혁련소가 대경하며 등신을 향해 검강을 날렸다.
등신은 순간 갈등했다. 연소민의 목이 코앞에 있었다. 충분히 썰어 낼 거리였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자신도 날아드는 검강에 의해 두 동강이 날 것이다.
등신은 목숨을 바쳐 충성할 위인은 아니었다.
깡!
혁련소의 검강을 쳐 낸 그는 방향을 틀어 평원의 뒤쪽으로 질주했다. 도주하는 것이다.
남은 수하들이 그를 보며 욕설을 퍼부었지만 등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평원의 너머로 사라졌다.
살아남은 자들은 고작 여섯. 흑야는 전의를 잃어버린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
허리를 굽혀 감사를 표한 마교의 고수들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셋은 다시 빠르게 질주했다.
뒤를 쫓아오는 자들과의 거리가 상당히 좁혀져 있었다. 달리는 와중에 혁련소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투로 물었다.
“왜 살려 줬습니까?”
“투지를 잃어버린 자들이다.”
“나중에 다시 늑대가 되어 돌아올 놈들입니다.”
“오면 그때 또 죽이면 그뿐이다. 일단 동쪽으로 간다. 조금만 더 이동하면 백정 놈이 올 것이니 조금만 참아라.”
혁련소의 얼굴이 밝아졌다.
“셋째 숙부가 오신단 말입니까?”
“다음 호위가 놈의 순서가 아니냐. 더욱이 지금쯤이면 성에 소식이 들어갔을 것이다. 어쩌면 다른 놈들도 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껏 밝아졌던 혁련소가 눈빛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북궁 숙부가 오시면 이 일은 그냥 비밀로 해 주셨으면 합니다.”
“왜?”
“그냥…… 아무튼 비밀입니다.”
흑야는 다소 어리둥절한 빛으로 혁련소를 응시했다.
연소민은 둘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호위라니, 그렇다면 지금 저 소름이 끼치도록 강한 흑야가 혁련소의 숙부이자 호위란 말인가.
믿을 수가 없었다.
‘저런 분이 호위라면 저 사람은 도대체 어디서 왔단 말이야.’
그녀는 혁련소가 어디에서 온지 몰랐다.
연무진과 연유극이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혁련이라는 성을 쓰는 한 존재의 전설이 떠올랐다.
그러자 두 눈이 저절로 커졌다.
‘설마…….’
* * *
[연소민이 신강을 넘었음. 섬서를 들어서기 전에 척살요망! 함께 이동 중인 청년은 절대 건드리지 말 것.]
서찰을 손에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짙은 눈썹이 송충이처럼 꿈틀거리며 두꺼운 입술은 회한이 담긴 숨을 쏟아 냈다.
“결국, 놈들에게 교가 넘어갔단 말인가.”
쾅!
자단목으로 만들어진 탁자가 박살이 나며 파편이 실내를 더럽혔다.
몸을 일으킨 사내의 육신은 팔 척에 이르는 거구, 그 엄청난 육신에서 가공할 기운을 뿜어졌다.
“대주! 소문에 의하면 교주님과 소교주가 모두 당하신 듯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날카롭게 생긴 장한이 사내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사내가 읽은 서찰을 건네준 것도 그 장한이었다.
대주라 불린 사내가 창가로 다가가 섰다.
“송효!”
“명령하십시오! 대주!”
“백마대 전원을 소집하는 데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리지?”
“사흘이면 충분합니다!”
사내가 몸을 돌려 송효라는 장한을 쳐다봤다. 호랑이를 연상시키는 눈동자가 기이한 열기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지금부터 우리의 임무는 아가씨를 보호하는 것이다. 즉시 소환령을 내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