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241화 (239/425)

# 241

<귀환무사 241화>

귀환무사 2부

16화

“흠! 개떡 같은 법이군요.”

혁련소의 그 같은 발언에 연유극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반대로 다른 자들은 노기를 드러내며 혁련소를 죽일 듯 노려봤다.

“아직 그대가 공식적으로 교의 주인이 된 것은 아니다. 입을 조심하지 않으면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음을 명심하라!”

염호의 음성은 지독히도 차가웠다.

혁련소의 눈가에 묘한 빛이 떠올랐다. 그는 좌중의 인물들을 느릿하게 쓸어 보며 입을 열었다.

“난 아주 소심한 놈입니다. 지금 그 말, 잊지 않고 담아 두지요.”

다분한 협박성 발언이었다.

모두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혀 버렸다.

염호가 발끈하며 일어서려는 것을 장로 한 명이 말렸다. 머리를 꼬아 좌우로 늘어뜨린 노인이 자리에서 일었다.

“장로 동승이 교주와 차기 교주께 한 말씀 올리겠소.”

“말씀하시오.”

연유극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당대 신교에서 가장 큰 세력을 지닌 인물이 바로 동승이었다. 그런 동승은 연유극의 가장 큰 경쟁자이기도 했다.

연유극과 혁련소를 보며 입가에 웃음을 떠올린 동승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로회의에서 결정되었던 사안에 대한 교주의 대답을 듣고 싶소. 그리고 차기 교주의 신분에 대한 증명 또한 듣고 싶소이다.”

연유극이 잠시 그를 차갑게 직시했다.

모든 이들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나타나 있었다. 그들은 연유극의 뜻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가 선뜻 혁련소의 신분에 대한 확증을 내놓지 못하는 것을 혁련소의 신분이 극마전의 율법에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연유극이 입을 열었다.

“극마전의 율법에 현 교주의 직계와 차기 내정자의 혼인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이라 적혀 있소. 모두들 그것을 인정하시오?”

순간 천마전이 술렁거렸다.

그들은 연유극이 그런 말을 늘어놓는 저의가 무엇인지 무척 궁금했다.

연유극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걸렸다.

“본좌에게 과년한 여식이 있음은 모두들 잘 알고 있으니 다른 말을 할 필요가 있겠소?”

“설마, 저 친구와 여식을 혼인시키겠단 말이오?”

동승이 다소 격앙된 투로 물었다.

“안 될 거라도 있소?”

“교주!”

염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뿐이 아니라 모두가 일어섰다. 혁련소가 그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내 혼사도 당신들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동승의 눈동자에 순간적으로 지독한 살기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장로 노지명이 어이가 없다는 빛으로 연유극에게 물었다.

“교주께서 진심으로 하는 말씀이오? 교주의 위를 떠나 그것은 본교가 수백 년 동안 지켜온 자존심과 같은 것이오. 그것을 교주의 대에서 깨 버리겠단 말이오?”

노지명은 꽤 격앙되어 있었다.

모두가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특히 동승과 초마전주 염호, 그리고 검마전주 적용극이 보여 준 태도를 보며 확실히 그들이 연유극과 함께할 수 없는 자들임을 혁련소는 깨우쳤다.

모두의 맹렬한 반기에도 연유극은 냉철함을 잃지 않고서 그들을 담담히 바라보았다.

‘결코 너희들의 뜻대로 신교가 놀아나진 않을 것이다.’

연유극은 자신의 신념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는 입을 열었다.

“이제 더 이상 극마전의 결과에 대한 불만을 표하는 자는 교의 법규에 따라 무조건 처벌을 받게 될 것이오. 물론 비공식적으로 불만을 표하다 적발되면 교의 교란 행위로 여겨, 목을 자른다는 것쯤은 말을 하지 않아도 잘 알고들 계실 것이오.”

“당신이 그렇게 나오는 것을 보니 저놈의 출신 성분이 정파임이 틀림이 없는 모양이군. 교주! 당신이 뭔가 착각하고 있음을 아시오? 신교는 패를 추구하고 숭상하는 무인들의 성역과도 같은 곳, 교주의 자리에 연연하여 적을 끌어들여 손을 잡는 당신을 교인들은 결코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오.”

동승이 협박성이 다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런 말투도 내일부터는 처벌 대상이 될 것이니 유의하시기 바라오.”

연유극은 여전히 냉철함, 그대로였다.

동승이 이를 갈며 연유극과 혁련소를 노려봤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이 자리에서 둘을 죽이고 싶었지만 어디 세상이 생각대로 살 수 있는가.

분을 삭인 동승이 자리를 박차고 대전을 빠져나갔다.

다른 모든 이들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유독 지금껏 말이 없던 장로 조무백이 대전을 빠져나가는 자들을 응시하며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느릿하게 연유극을 돌아봤다.

연유극도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서 똑바로 쳐다봤다.

“교주…….”

“말씀하시오, 조 장로.”

“무엇 때문이오. 자칫 잘못되면 교의 분열을 불러올 수도 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 아니오. 그럼에도 강행을 하려는 뜻을 알고 싶소.”

연유극의 눈썹이 슬쩍 꿈틀거렸다.

교내의 장로들 중, 유일하게 자신에게 호의를 지닌 인물이 바로 조무백이었다.

“내가 하는 이 일이 교의 분열을 불러올 수 있다면, 저들의 집권은 교의 멸망을 초래할 것이오. 조 장로도 저들의 야욕이 어떤 것인지 대략은 짐작하고 있을 것이오.”

“야욕을 조금만 달리 보면 본교의 천년 염원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로 볼 수도 있소이다. 물론 그들이 표방하는 것이 그것이라오.”

“천년 염원이라 하셨소? 그게 가능하리라 믿소이까? 중원을 나가기 이전에 빙궁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소. 지금의 전력으로 빙궁과 붙는다면 우리가 필패하리라는 것쯤은 교의 문지기들도 아는 사실이오. 하물며 그런 빙궁을 어린아이들의 소꿉장난처럼 여기는 존재가 저 중원에 있소이다! 괴물 같은 존재들의 호위를 받으며 천하를 내려다보는 그 존재를 감히 넘어서겠다고? 허! 참으로 어리석은 자들이오. 설혹 그들이 중원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희망을 가져 봅시다. 그렇다고 쳐도, 지금 교의 힘으로 중원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넘어설 수는 없소이다. 전쟁을 벌이면 지는 것은 백에 백, 본교가 될 것인데, 교를 멸망의 구덩이로 몰아넣는 것을 그것을 천년 염원이라 할 수 있소!”

지금껏 냉철함을 유지했던 연유극이 분노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렸던 그다.

어쩌면 하나뿐인 딸까지도 자신을 위해 수단으로 삼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의 목적이 거론되자 지금까지 겪었던 수모가 분노로 바뀐 것이다.

어쩌면 자신, 스스로에게 화를 내는 것일 수도 있었다.

“허허…….”

조무백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연유극의 이글거리는 시선이 혁련소를 향해 돌아갔다.

“그만 돌아가자!”

“그럴까요?”

머쓱한 표정을 지은 혁련소는 조무백을 흘긋거리고는 연유극의 뒤를 따랐다.

둘이 바람처럼 대전을 빠져나가자 조무백의 노안에 아픔과도 같은 빛이 떠올랐다.

“허허! 알고 있소. 교주가 왜 그런 무리수를 두는지…… 하지만 말이오, 솔직히 모두가 너무도 긴 기다림에 지쳤다오. 당신 말처럼 상대가 되지 않음을 알면서도 검을 뽑아 달려가고 싶은 심정은 무사의 본능이라오. 그 본능을 감추고 산 지가 오십 년이 지났으니 그들의 그러한 심정을 어찌 강제할 수 있으리오.”

조무백은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 *

대전에서 돌아온 연유극은 술을 물처럼 마셨다.

화가 치민 까닭에 얼굴이 홍시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려다 끌려온 혁련소는 멀뚱한 표정으로 술잔을 꼼지락거렸다.

퍼석!

술잔이 깨졌다.

연유극이 평소의 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시선을 한곳에 두지 못하고 술잔을 잡은 손에 힘을 주어 깨진 술잔만 벌써 열이 넘어갔다.

연유극이 충혈된 눈으로 혁련소를 똑바로 쳐다봤다.

“너의 눈에는 본교의 이런 모습이 우습게 보이겠군.”

“글쎄요. 그다지 좋은 모습은 아니군요.”

“그분의 눈에는 본교가 어떻게 보였느냐?”

그분, 혁련소의 부친을 뜻하는 것이다.

혁련소가 가볍게 웃었다. 슬쩍 연유극을 쳐다본 그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그분은 전쟁을 좋아하세요. 그 누구든 쳐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실 수도 있겠지요. 그분이 왜 전쟁을 좋아하는지 잘 한번 생각해 보시면 교주님의 지금 이와 같은 모든 행동들에 대한 믿음을 더욱 확고히 할 수 있겠지요.”

혁련소가 그 말을 남기고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전율!

연유극의 육신에 소름이 돋아났다.

전쟁을 좋아한다면, 누가 쳐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면, 전쟁을 일으키고 쳐들어온 자들은 그가 직접 나설 것이고 결과는…….

‘무조건 막아야 해.’

연유극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 * *

“그녀가 암습을 받았단 말입니까?”

혁련소가 크게 놀랐다.

찻잔을 기울인 흑야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혁련소가 다시 물었다.

“암습을 한 놈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죽였다.”

“아니, 그냥 죽였단 말입니까?”

“그럼 살려 둘까?”

“숙부!”

혁련소가 다소 어이가 없는 투로 언성을 높였다.

“내게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마. 사로잡아서 뭔가를 물어볼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너, 생각 다시 하는 것이 좋겠더군.”

“그게 무슨 말입니까?”

혁련소가 순간 멀뚱한 표정이 되었다.

“둘째 주모를 무척 닮았더군. 연소민이라는 그 아이…….”

“뭐가 닮았습니까, 비슷한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던데. 솔직히 작은 어머니 정도만 되었으면 벌써 사달을 냈을 겁니다. 모르죠, 납치를 해서 어디 산속에 꽁꽁 숨었을 수도 있을 테지요.”

흑야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아무리 생각해도 둘째 주모는 그 정도는 아닌데.

“아무래도 다음 호위는 천소, 놈을 붙여야겠군. 아무리 봐도 넌 좀 맞으며 살아야 할 것 같다.”

“전 숙부가 제일 좋습니다. 한 일 년쯤, 기한을 연장하셔 저하고 오붓하게 노는 것이 어떻습니까?”

“며칠 안 남았다.”

혁련소의 얼굴이 구겨졌다.

여덟 숙부들 중, 가장 무섭고 사나운 인물이 방금 흑야가 거론했던 인물이다.

말보다 주먹이 먼저인 그는 혁련소뿐만이 아니라 성의 모든 사람들이 마주치길 꺼려 할 정도로 무서운 존재였다.

그가 자신을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고 생각하자 혁련소는 벌써 골치가 지끈거렸다.

그 모습에 흑야의 눈가에 슬쩍 주름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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