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9
<귀환무사 239화>
귀환무사 2부
14화
‘놀라운 노인네야. 이 정도면 중원에 나가면 꽤 시끄럽겠지.’
당대 천하를 주름잡은 자들이 열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십대 고수니 뭐니 하며 떠받들고 있었는데 결코 노인은 그들의 아래가 아니라고 여겼다.
물론 아버지와 숙부들이 나서면 서열은 무의미해지겠지만.
‘이 정도의 고수가 고작 연무진의 관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다니, 확실히 이곳은 재밌는 곳이야.’
혁련소가 싱긋 웃으며 노파를 응시했다.
“깨어나면 괴물이 되어 있겠군요. 빙마석을 깔고 누웠으니…….”
순간 두 사람의 눈이 섬광을 발했다.
“빙마석을 알고 있었소?”
“뭐, 상식에 꽤 능통하다는 소릴 많이 들었지요. 놀라실 것까지야…….”
“그대가 극마전을 통과한 신분이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서 우리는 그대를 죽였을 것이오. 그만큼 빙마석은 극비사안이니 추후, 그대의 입이 어떻게 해야 할지는 스스로가 더 잘 알리라 믿소이다.”
‘흠! 신임 교주에게 이런 태도를 보일 정도로 대단하단 말이지?’
혁련소가 짐짓 놀란 몸짓을 했다.
“어이쿠! 그거 너무 살벌한 말씀이 아닙니까? 하하하! 뭐, 입단속은 제대로 할 테니 그런 눈빛은 다시는 하지 마십시오!”
“그대가 하기 나름이지요.”
노파의 음성은 무척이나 자애로웠다.
그러나 그 안에 숨어 있는 지독한 살기를 깨닫지 못할 혁련소가 아니었다. 그가 장난기를 지워 버리고 정색으로 두 노인을 쳐다봤다.
“나는 나를 죽인다는 사람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정도로 성격이 좋은 인간이 아닙니다. 그리고 난 죽어서도 안 될 존재임을 말해 주고 싶군요. 내가 죽으면 천하도 죽습니다.”
셋의 눈길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순간 무거운 침묵이 주변을 싸늘하게 굳혔다. 그러나 짧은 침묵은 혁련소가 해소했다.
이내 가벼운 표정으로 돌아온 그는 두 노인에게 생긋 웃어 주는 것으로 돌아섰다.
“수고들 하십시오! 놈이 깨어나면 그때 다시 들르겠습니다! 하하하!”
돌아서는 혁련소를 둘은 차갑게 응시했다.
그가 완전히 석실에서 모습을 감추자 노인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가벼워 보이나 실상 가슴속엔 한 마리 잠룡을 품은 자로다! 천하에 저 정도의 인재를 길러 낼 곳이 있었단 말인가?”
“잠룡이라 표현함은 다소 그를 낮춰 보는 것으로 보이는군요. 그는 이미 승천을 준비하는 황룡으로 보는 것이 옳겠지요? 오라버니!”
“어쩌면 그럴 수도…….”
노인의 안색은 무겁게 경직되어 있었다. 노파가 가볍게 웃으며 노인을 응시했다.
“우리 무진도 충분히 자격이 있는 아이이니 너무 심려치 마세요. 깨어나고 우리 둘의 모든 것을 무진에게 쏟아붓는다면 천하에 이 아이를 당할 자, 결코 열을 넘어가지 않음을 아시잖아요.”
“당연히 그래야지. 그리고 향후 십 년 안엔 천하제일의 성좌에 무진이 올라설 것이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교주의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았소.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오!”
두 노인의 목소리가 석실 안을 울렸다.
죽은 듯 눈을 감고 있던 연무진의 눈꺼풀이 살짝 움직인 것도 그때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두 노인은 그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
* * *
“옛?”
혁련소가 어이가 없어 눈을 크게 했다.
그 앞에 연유극이 다소 침중한 기색으로 앉아 있었는데, 그런 연유극을 향해 혁련소가 물었다.
“지금 저를 감금한다고 하셨습니까?”
“너에게는 미안하게 되었다.”
“장로회의의 결정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다.”
혁련소는 버럭 짜증이 치밀었다.
결국 조사를 받게 생겼다. 천장을 보며 어이없는 한숨을 내쉰 그는 연유극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무진이 깨어날 때가지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군요.”
“교를 나가겠단 말이냐?”
“당연한 말씀을…… 여기서 감시받으며 며칠을 보낼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이거, 은근히 화가 나는군요. 무진, 놈을 대신해서 싸워 주고 이겨 주니 고작 돌아오는 것이 감금이라니요. 교주께서 발 벗고 막아 주셨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연유극은 대답을 못했다.
그의 말이 옳았다. 그러나 그럴 능력이 자신에게 없었다. 장로회의는 교주의 권한을 넘어서는 절대적인 권한을 지닌 집합체였다.
그것은 수백 년 역사에 불문율처럼 내려오는 신교의 철칙이었다.
혁련소가 몸을 일으켰다.
연유극의 시선이 그를 쫓았다.
“어딜 가는 게냐?”
“말씀드렸듯, 당장 나갈 생각입니다. 친구고 뭐고 다 귀찮아졌습니다!”
“그자들이 가만히 내버려 둘 것이라 여겼느냐? 그들은 본좌도 어쩌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혁련소의 미간에 주름이 생기며 눈동자에 은은한 분노가 담겼다.
“할 수 없지요, 막아서면 벨 수밖에…….”
“놈! 그들은 강자다! 하나가 노부를 능가하는 괴물 같은 자들이 모두 열에 이른다. 네가 어찌할 범주를 벗어난 경외의 존재들, 경거망동 마라!”
연유극의 얼굴에 그답지 않게 초조함이 나타나 있었다.
혁련소가 그런 그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해할 수 없군요. 교주를 좌지우지하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도 그렇고, 이런 골치 아픈 곳을 왜 그토록 집착하시는지 또한 도저히 이해되질 않습니다.”
“나중에 모든 것을 말해 주마! 단, 나의 뜻에 따라 주면 안 되겠느냐?”
“교주님의 뜻대로 따르자니 그것을 반대할 분이 계셔서 말이지요. 그분의 말은 설사 하늘이라도 거역해선 안 되는 것이기에…….”
연유극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잠시 혁련소를 지그시 쳐다보던 그가 물었다.
“혹시 신마성과 관련이 있느냐.”
혁련소가 대답을 않고서 연유극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둘 사이에 흘렀다. 역시 이번에도 혁련소가 그 침묵을 깼다.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요. 어쨌든 저는 지금 신교를 나갈 생각이고 그것을 바꿀 마음은 조금도 없고, 그러면 나를 막아설 자들이 있다는 소리니 그들과 싸워야 할 뿐이고…… 뭐, 제 머리도 꽤 복잡합니다.”
“내겐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계셨지 않습니까?”
긍정도 부인도 아닌 모호한 대답에 연유극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는 혁련소가 신마성과 관련이 있다는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있었다.
신마성주와 같은 성씨를 쓰고, 저 나이에 저 정도의 능력을 지녔으니 당연히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해서 재차 물었다.
“진정 그곳에서 왔느냐.”
“그렇다고 해 두죠.”
쿵!
의심을 하고는 있었지만 정작 사실로 드러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놀랍군. 같은 성씨에 그 나이에 엄청난 경지라 예상은 했다만 설마 사실일 줄이야. 네가 이곳에 온 것을 그분도 알고 계시겠군.”
“당연하지요. 지금 교주님과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것도 알고 계실 겁니다. 워낙에 저를 사랑하셔서 한시도 눈을 떼 놓지 않으시는 분이라서…….”
몸을 일으켰던 혁련소가 제자리에 도로 앉았다.
그는 연유극을 빤히 응시하며 지나치게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제 신분이 왜 교주님께 중요한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본좌보다는 그들에게 더욱 중요하겠지. 네 신분을 알게 되면 극마전의 모든 결과는 없었던 일로 돌릴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너의 처리를 놓고 고심하게 되겠지. 자칫 네 신변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몽땅 본교가 그 죄를 뒤집어쓰게 됨을 그들도 잘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게 교주님과 무슨 상관관계가 있습니까?”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극마전을 다시 치르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네 신분에 대한 요구를 해 온 것이지. 물론 너의 신분이 정파의 일원임이 밝혀진다면 모든 것은 쉽게 수습될 것이다. 물론 그들의 입장에서 말이지. 하지만 네가 그 신분을 끝까지 밝히지 않는다면 그들도 어쩔 수 없게 된다. 다만 그렇게 되면 조금 전에 말했던 것처럼 공식적으로 네 신분이 증명될 때까지 너는 이곳에서 머물러야 한다.”
혁련소는 간신히 억눌렀던 짜증이 다시 치밀었다.
“그게 짜증 나서 나간다고 했잖습니까?”
혁련소가 다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말이 돌고 돌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자 짜증이 솟구친 것이다.
연유극이 눈빛을 발하며 혁련소를 똑바로 쳐다봤다.
“소민을 네게 주겠다.”
“……예에?”
순간 혁련소의 전신이 얼음이 되었다.
연유극의 눈동자에 순간 아픔의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혁련소의 눈에 의아함이 새겨졌다.
연유극의 눈빛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한편으로는 어이도 없었고 실망감도 매우 컸다.
목적을 위해서 딸을 내놓다니.
“예쁜 따님을 저 같은 놈에게 주겠다니요. 설마 제 신분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리신 것은 아니겠지요? 그렇다면 꽤 실망입니다.”
“아니라고 하면 거짓이겠지.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너와 그 아이가 엮어지면 네 신분에 아무런 하자가 없게 된다.”
“그러니까, 제가 소민 낭자와 혼인을 하면 제가 설사 정도맹주의 자식이라도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
혁련소가 어이가 없어 웃었다.
“외형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교주될 자의 내면이 중요한 것 아닙니까? 우습군요. 천하의 신교가 이 정도로 허술했다니 말입니다.”
“이곳은 패도를 추구하고 숭상하는 자들의 집합체, 당연히 그러한 자가 없다고 확신한 자신감에서 만들어진 규칙이다. 결코 그들의 자신감이 잘못된 것이라 볼 수는 없지. 지금껏 그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것을 교주께서 깨 버리려고 하시는군요. 교도들이 알면 절대 가만있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것은 차후 문제, 당장은 너를 극마전의 승자로 결정짓는 것이 우선이다.”
혁련소가 다시 물었다.
“그냥 포기하고 편한 삶을 사는 것이 훨씬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다른 아이가 차기 교주의 위에 오르면 천하는 돌이킬 수 없는 피바람에 잠기게 될 것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것을 막기 위해 이토록 집착하는 것이다.”
“그것을 두고 보지 않을 분이 계심을 아시지 않습니까?”
“나는 알지만 그들은 무시한다. 그래서 문제지.”
“설마 그들이 그분을 넘어설 자신이 있다고 보십니까?”
혁련소는 자신의 부친과 괴물 같은 숙부들을 떠올렸다. 세상에 그들을 넘어설 자, 단연코 없다고 확신하는 그였다.
“그것은 나중에 말해 주마! 일단 내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