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238화 (236/425)

# 238

<귀환무사 238화>

귀환무사 2부

13화

혁련소의 미간이 슬쩍 주름이 생겨났다.

그는 염호의 눈에 담긴 빛을 짐작했다. 어딜 가나 저런 인간은 있었다.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부류의 인간상이 염호에게 나타나 있었다.

술렁거림은 더욱 거세졌다.

당장 연유극이 마땅한 대답을 못하고서 머뭇거리자 그와 반대편에 섰던 자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섰다.

그 선봉에 염호와 뒤늦게 극마전을 찾은 검마전주가 섰다.

특히 암습에 의해 극마전에 출전조차 하지 못한 검마전의 고수들은 노골적인 감정을 드러내기에 이르렀는데 연유극이 궁지에 몰리는 것을 보다 못한 장로, 전호가 일어섰다.

“장로회의에서 교주 측 출전자에 대한 일절을 엿새 후, 공식적으로 발표하겠소! 하니 더 이상의 소란은 없어야 할 것이오!”

수석장로인 전호는 교의 모든 인물들이 존경하는 극마의 경지에 달한 위인이다.

그가 그렇게 나서자 소란은 가라앉았다.

장로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은 교주 연유극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지상명령과도 같은 것. 혁련소에 대한 신분이 밝혀진다면 극마전의 결과를 뒤집을 수 있음을 염두에 둔 염호는 그제야 낯빛을 바꾸었다.

[아이들을 풀어 놈의 확실한 신분을 알아내야 하오!]

[알겠소! 그건 이 몸이 직접 알아내겠소이다!]

염호와 적용극이 전음을 주고받았다.

연유극은 전호에게 감사의 눈빛을 주고는 대회의 종결을 알렸다.

염호와 적용극을 무심한 눈으로 지켜보고 섰던 혁련소는 연유극의 뒷모습을 잠시 응시하더니 이내 그의 뒤를 따랐다.

제4장 신교 풍운

쾅!

탁자를 내려치는 연유극은 상당히 화가 나 있었다.

붉어진 얼굴에 수염까지 부들부들 떨었다.

“감히! 그런 노골적인 태도를 보이다니…….”

“적이 많으시군요. 바깥에선 교주께서 철권통치를 한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조금은 놀랍습니다.”

“놈들은 항상 본좌의 가문과 대립을 했던 가문의 후예들이다. 놀랄 것도 없다.”

“이렇게 체계가 없어서야…….”

“닥쳐라!”

“뭐, 무진이 걱정돼서 그럽니다. 어차피 놈에게 돌아갈 교주 자리가 아닙니까? 한데 잡아먹지 못해 안달 난 자들이 저리도 많으니…….”

연유극이 불길이 솟는 눈동자를 혁련소에게서 거두었다.

대전에서 벌어졌던 일에 대한 분노가 좀처럼 가시지 않았던 그는 한참을 화를 다스린 후에야 다소 얼굴이 풀어졌다.

그때, 문이 열리며 향긋한 사향 냄새가 실내를 진동했다.

연소민이었다.

천하절색의 미녀가 들어서자 혁련소의 두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연유극이 그녀를 보더니 못마땅한 표정으로 따지듯 물었다.

“어딜 갔다 이제 왔느냐.”

“첨탑에서 모든 것을 보았어요. 축하드려요, 아버지!”

무척 쌀쌀맞은 어조였다.

혁련소가 연유극을 응시하며 그녀가 누군지 눈빛으로 물었다.

“인사해라! 무진의 친구다. 이쪽은 무진의 동생이다.”

“혁련소라고 합니다.”

혁련소를 물끄러미 쳐다본 그녀가 꽃잎 같은 입술을 놀렸다.

“오라버니를 대신하여 가문에 승리를 안겨 준 것에 감사드려요.”

역시나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였는데 절색의 용모와 그것이 어우러져 매우 고혹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동생이 있다고는 안 했는데…… 엄청난 미인이군.’

혁련소는 그녀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노골적인 그의 시선에 아미를 살짝 찌푸렸던 그녀는 연유극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이내 나가 버렸다.

아버지와 딸의 관계로 보기엔 지나치게 쌀쌀한 태도에 혁련소는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

‘하나라도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네. 놈이 갑자기 불쌍해지는군.’

그는 문득 연무진에 대한 측은지심이 들었다.

지금껏 신교에 들어와 느꼈던 감정은 한 마디로 아니올시다! 그것이었다.

이렇게 복잡하고 골머리 썩는 곳인지 알았다면 무진이 무슨 말을 했더라도 결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측은지심과 괘씸함이 동시에 생겨났다.

‘제대로 꼬였군. 이거 이러다가 아버님께 작살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

“항상 저렇듯 나를 대하는 아이라네.”

연유극이 낯빛을 찌푸리며 자리에 앉았다.

언제나 철혈의 강인함을 느끼게 했던 그의 각진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씁쓸함으로 가득했다.

부친을 떠올리며 어깨를 으쓱했던 혁련소는 그를 지그시 응시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연유극이 머리를 한 손으로 짚으며 말을 이었다.

“실망했느냐?”

“뭐가 말입니까?”

“나에 대해 묻는 것이다. 신교의 대종사가 고작 이 정도일 줄은 몰랐겠지?”

“특별히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연유극이 그를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어디 ‘아닙니다’, 이런 말이라도 해 주면 좀 좋을까. 그 유들유들함에 은근한 부아까지 치밀어 오른다.

“수고했으니 푹 쉬어라! 장로회의에서 자네를 부르려면 사흘 정도는 지나야 할 것이니 그동안은 맘껏 즐기도록 해!”

바람을 일으키며 나가 버리는 연유극을 혁련소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쳐다보고는 혀를 찼다.

“언제 어디서 날아들지 모를 암습을 즐겨야 할 판이 되었군. 꼬여도 제대로 꼬였어. 그나저나 숙부님은 어딜 가셨나?”

언제나 지근거리에서 자신을 호위하는 숙부. 작금의 상황에 대한 해법을 물어보고 그의 말을 따르기로 작정한 혁련소는 그대로 침상에 벌렁 드러누웠다.

푹신한 느낌에 팔을 뒤로해 머리를 얹은 그는 천장을 응시했다.

한기를 풀풀 뿜어내는 차가운 미녀의 얼굴이 그곳에 나타났다.

‘흠! 제법 예뻤어.’

* * *

혁련소는 다음 날 해가 중천에 오를 때까지 늘어지게 잠을 잤다.

신교 내의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그는 그저 모든 것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다.

어차피 적당한 시기에 교주 자리는 연무진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섬서로 돌아가면 그뿐이다. 물론 연무진이 깨어나야만 가능한 일인데…….

혹시나 연무진이 깨어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재수 없는 생각을…….’

자신의 머리를 툭 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있는 힘껏 기지개를 켠 그는 배를 어루만지며 거처를 나섰다.

그러고 보니 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질 않았던 그다. 시장기가 돌자 연유극이 이용하는 식당으로 걸음을 놓았다.

여전히 낯설기만 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식당에 도착한 혁련소는 뜻밖의 인물이 그곳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눈을 반짝였다.

짙은 감청색 장포를 걸친 초로의 노인이 식당의 구석진 곳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혁련소는 그에게서 표현하기 힘든 묘한 기운을 느꼈다.

‘분위기 한번 더럽게 기괴하군. 그런데, 언제 본 적이 있었던 양반인가?’

그랬다.

노인과 자신이 초면은 아니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되돌려도 전혀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평범하게 생겨서 그렇겠지.’

노인을 힐끗 쳐다본 혁련소는 장대한 체구의 노인과 식사를 하는 연유극을 발견했다.

형형한 안광이 인상적인 노인은 들어서는 혁련소를 보더니 연유극에게 눈짓을 보냈다.

등을 돌리고 앉았던 연유극이 고개를 돌려 혁련소를 보았다.

“교주님도 이곳에서 식사를 하시는군요.”

“지금껏 잔 모양이군.”

“꽤 피곤해서 말입니다.”

연유극의 얼굴이 어제와는 다르게 제법 밝았다.

“왔으면 얼른 식사하고 오후에 거처로 오너라! 전할 말이 있으니…….”

“전할 말이라니요?”

“나중에 거처에서 얘기하마.”

연유극은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잠시 후, 요리가 탁자에 놓였다.

제법 먹음직한 돼지고기를 볶은 요리와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국으로 배를 채운 혁련소는 인사도 없이 식당을 나섰다.

‘무진 놈에게 가 볼까?’

연무진이 있는 비밀 거처로 걸음을 돌린 혁련소는 조금 걷다가 그 자리에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길의 가운데에 연소민이 있었다.

“오라버니에게 가는 길인가요?”

여전히 차갑고 냉랭한 태도였다.

“그렇소만, 낭자도 무진에게 가는 길이오? 그곳은 극비로 알려진 곳이라고 하던데…….”

“제가 남인가요?”

‘하는 짓이 남보다 못한데.’ 라는 말을 목구멍에서 겨우 참아 낸 혁련소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오! 혹, 낭자에게조차 비밀로 했는지 그게 궁금했을 뿐이오. 같이 갑시다.”

“전, 가지 않아요. 대신 부탁이 있어요.”

“부탁? 무슨 부탁?”

눈을 동그랗게 하고서 물어 오는 혁련소를 그녀는 잠시 고요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말했다.

“제가 가고자 하는 곳까지 제 호위를 맡아 주세요. 보수는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는 것으로 하겠어요.”

‘호위?’

혁련소는 내심 무척 놀랐다. 교주의 딸이 호위를 청해 오다니…… 속내와는 다르게 담담함을 유지한 그가 심드렁한 어조로 말했다.

“아직 우리는 이름조차 모르는 사이지 않소? 뭔가를 부탁하고 들어주기엔 지나치게 먼 사이로 생각하오만…….”

“연소민이라고 해요.”

“혁련소! 꽤 멋진 이름이지 않소?”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곱게 아미를 찌푸린 연소민이 예의 차가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당신이 교주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음을 알고 있어요. 오라버니도 곧 깨어날 테고, 하니 내 부탁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라요.”

“그 가는 곳이 어딘지는 알아야지 않겠소?”

“중원이에요.”

“고작 중원을 가고자 하는데 내 호위가 필요하단 말이오? 이곳에도 당신의 호위를 자처할 자들은 넘쳐 날 듯한데…….”

“내일, 의사를 물으러 오겠어요. 그럼!”

그 말을 끝으로 연소민이 몸을 돌려 사라졌다.

혁련소의 눈빛에 떠오른 흥미로움이 더욱 짙어졌다. 연소민의 관능적인 뒤태를 감상하던 그는 몸을 돌려 연무진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놓았다.

“꽤 재밌게 돌아가는군. 이렇게 되면 가출을 한 보람이 생긴 것인가?”

* * *

연무진은 수정으로 만든 관 안에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그 옆을 백발의 노인과 노파가 지키고 서 있었는데, 그들은 혁련소가 들어서자 허리를 굽혔다.

꽤 정중한 태도였다.

“아직 멀었습니까?”

“조금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소.”

노인의 음성은 꽤 묵직했다. 혁련소는 노인의 전신을 흘긋거리며 내심 탄성을 발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결코 교주 연유극에 못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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