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237화 (235/425)

# 237

<귀환무사 237화>

귀환무사 2부

12화

도를 잡아 횡으로 휘두르며 서서히 혁련소를 향해 다가드는 초마전의 소전주. 그를 쳐다보던 연유극의 눈동자 깊숙한 곳에서 섬광이 발해졌다.

‘놈! 그것을 대성하였구나!’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는 초마전의 비기를 십이성 대성한 것이 틀림이 없었다.

그가 잡은 도의 전신에서 은은하게 뿌려지는 백색의 빛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연유극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급하게 혁련소를 향해 돌아갔다.

역시 혁련소는 여유, 그 자체였다.

불안했다. 아니, 절망감마저 들어온다. 설마 초마전의 소전주가 저 정도의 경지를 밟았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그였다.

[불안하신 모양이군요.]

장난기 섞인 전음이 연유극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혁련소가 자신을 보며 싱긋 웃고 있는 모습에 연유극은 자신도 모르게 울컥하여 소리를 지를 뻔했다.

[생각 중입니다. 저놈을 죽여야 할지, 아니면 적당히 두들겨 패서 반쯤 죽여야 할지를…….]

‘저 오만함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가?’

연유극은 어이가 없었다.

고수들 간의 싸움에서 한눈을 파는 혁련소가 그는 당최 이해되질 않았다.

저 정도면 그런 것쯤은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 삼류라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연유극의 두 눈에 근심이 어려 갈 때였다.

혁련소가 지금까지와는 달리 벼락같이 상대를 향해 날아갔다.

염천양의 대도가 동시에 혁련소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꽝!

도와 검이 격돌하며 생겨난 강기가 주변 사물을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염천양은 불신이 가득한 빛으로 혁련소를 똑바로 쳐다봤다.

한 번의 격돌로 그는 손목과 내장이 뒤틀리는 거대한 충격을 맛보았다. 그것도 초마전기를 사용하고서 나타난 결과였기에 그의 놀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지금껏 힘을 감추고 있었다.’

아니라면 이럴 수가 없다.

이 정도면 호랑이 새끼가 아니라 장백을 호령하는 대호(大虎)라고 봐야 했다.

염천양의 강렬한 눈동자에 히죽 웃는 혁련소의 하얀 얼굴이 맺혔다.

염천양의 짙은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어디서 무엇을 하던 놈이냐?”

그 웃음에 염천양은 은근히 배알이 뒤틀렸다.

싸우는 도중엔 절대 말을 하지 않는 자신만의 금기를 어길 정도로…….

“그게 중요한가?”

“연무진이 네놈을 데리러 중원으로 나갔었던 모양이군. 역시 놈은 나약한 여우에 불과했어. 마교의 자존심을 팔아먹은 허약한 놈 같으니.”

“이봐! 그 입을 함부로 놀리면 내 생각이 바뀔 수도 있어. 그러니 칼질에만 신경 쓰라고.”

화르륵!

염천양의 전신에서 뜨거운 기운이 뿜어졌다.

혁련소의 능글거림을 더 이상은 봐줄 수가 없었다. 해서 그는 이번 공격에 모든 것을 걸기로 마음먹었다.

“좋은 태도야.”

혁련소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우웅!

염천양의 대도가 공명을 울려 냈다.

초마전기를 극성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혁련소의 눈가에 슬쩍 이채가 발해졌다.

‘대단한 놈이군, 저 정도의 내공을 지니고 있었다니.’

염천양의 대도를 직시하며 그는 슬쩍 좌측으로 두 걸음 이동했다. 그 단순한 움직임에 염천양은 자신의 공격 범위가 상당히 좁아짐을 느꼈다.

‘어디서 이런 괴물 같은 놈이…….’

놀람의 연속이었다.

초마전기는 그 기세만으로 어지간한 고수들의 몸을 묶어 버리는 극강의 마공이었다. 그러나 눈앞의 상대는 가벼운 걸음으로 그 기세를 단숨에 흩어 놓았다.

꽉!

대도를 잡은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팟!

염천양의 장대한 육신이 바람처럼 쇄도해 들어갔다. 동시에 극성의 초마전기가 혁련소의 모든 방위를 차단하며 떨어져 내렸다.

꽝!

비무대의 바닥이 폭발과 함께 사라졌다. 가볍게 공세에서 벗어난 혁련소는 검을 들어 염천양의 어깨를 노리고 들었다.

“헛!”

그 빠름이 실로 빛살과도 같았기에 다급한 신음성을 내뱉은 염천양은 간신히 몸을 틀어 피해 냈으나, 그것으로 무게 중심이 흐트러져 이내 일방적인 수세에 몰리고 말았다.

까가강!

염천양의 몸 주변에서 무수히 많은 불꽃이 연이어 일어났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날아드는 혁련소의 검을 쳐 내는 그도 놀라웠다.

‘믿을 수 없군!’

연유극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혁련소가 보여 주는 움직임은 절대고수의 반열에 오른 그가 보기에도 실로 대단했다.

최소한의 궤적으로 상대의 공세를 벗어나고 곧바로 반격을 펼치는 수법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백전노장들만이 보여 줄 수 있는 극상승의 수법! 결코 혁련소 정도의 나이엔 불가능한 것이었다.

연유극은 가슴 깊숙한 곳에서 스멀거리며 생겨나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질투!

가문의 꿈을 이루어 줄 그에게서 그는 묘한 질투를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칼을 들고 살아가는 무사들의 본능이었다.

“저쯤 되면 저 청년의 신분을 밝혀야겠소, 교주.”

연유극이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 자루 검을 보듯 날카로움을 줄기줄기 뻗쳐 내는 노인, 바로 당대 초마전의 전주 염호였다.

자신을 직시하는 그의 눈동자에 짙은 살기가 나타나 있음을 본 연유극은 얼굴 근육을 실룩거렸다.

“수백 년을 이어 온 전통을 당대에서 깨겠단 말인가?”

“저 나이에 저 정도의 경지라면 천하에 오직 한 곳! 그곳에서 사람을 데려왔다면 당연히 해명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소만…….”

“그곳이라니, 신마성을 말하는 것인가?”

“교주가 더 잘 알지 않소이까?”

“지나친 억지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천하는 넓다. 그곳이 아니라도 저만한 고수를 키워 낼 곳은 많아! 그리고 나도 무진도 저 아이가 그곳에서 왔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흐흐! 그것은 두고 보면 알게 될 일…… 억!”

말을 하던 염호가 불꼬챙이에 찔린 듯 격한 신음성을 토해 냈다.

연유극의 시선이 재빨리 비무대로 돌아갔다.

“오호!”

어지간해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연유극이 경탄성을 쏟아 냈다.

한쪽 무릎을 꿇은 염천양과 그 앞에서 오연하게 서 있는 혁련소, 승부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모든 인물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환호성을 지르는 자들보다 불신과 분노를 드러내는 자들이 더욱 많았다.

“잠깐!”

염호가 비무대로 몸을 날렸다.

혁련소의 옆으로 내려선 그는 아들 염천양을 돌볼 생각도 없이 혁련소를 죽일 듯 노려봤다.

다른 인물들이 황급히 염천양을 업고 교의 뒤쪽으로 사라졌다. 응급조치를 요할 만큼 많은 피를 게워 냈기 때문이다.

“네놈의 신분을 밝혀라!”

혁련소가 느릿하게 연유극을 돌아봤다.

“이거 반칙 아닙니까?”

그놈의 여유는 어미 뱃속에서부터 지니고 나온 것인가.

천하의 염호를 앞에 두고도 혁련소의 느긋함은 여전했다. 어이가 없어 고개를 가로 흔드는 연유극과 오공에서 김이라도 뿜어 낼 듯 얼굴까지 붉힌 염호의 상반된 표정이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연유극이 몸을 일으켰다.

“감히 극마전의 전통을 어길 생각인가?”

나지막이 한 말이지만 내공을 실었기에 모든 자들이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일순 소란스러웠던 장내가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모두를 느릿하게 쓸어 본 연유극이 염호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출전자의 신분과 성별을 논하지 않음은 수백 년을 이어 온 교의 전통이다. 한데 지금에 와서 그것을 걸고넘어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출전자의 신분도 신분 나름이지. 만약 이놈이 정파의 놈이면 충분히 문제가 되고도 남소이다!”

웅성웅성!

주변이 다시 소란에 휩싸였다.

염호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비록 신분과 성별을 따지지 않는 것이 극마전의 전통이었지만, 정파의 인물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천하만마의 주인 자리에 정파의 인물을 앉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혁련소를 향해 모아졌다.

얼른 끝내고 들어가 쉬려고 했던 혁련소는 상황이 번거롭게 돌아가자 슬쩍 인상을 그렸다.

“교주께서 해결해 주시죠?”

연유극에게 말을 건넨 그는 눈앞의 염호를 똑바로 쳐다봤다.

염호의 두 눈이 살기로 충만한 살광을 발했다. 혁련소의 가라앉은 시선에 본능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네놈의 성이 무엇이냐?”

“그건 왜 묻소?”

“발칙한 놈! 그따위 태도를 보이면 오늘 이곳이 네놈의 무덤이 될 것이다. 어서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라!”

“대답은 교주께 직접 들으시오.”

삐딱하게 답을 한 혁련소가 몸을 돌렸다.

염호는 당장 손을 뻗어 그를 죽여 버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아 냈다.

모든 교내의 인물들이 지켜보는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그의 손은 살수를 펼쳤을 것이다.

수염까지 부들거린 염호가 시선을 연유극에게 주었다. 차갑게 가라앉은 연유극의 두 눈이 광포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염호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이토록 많은 자들이 염호를 동조할 줄 또한 예상하지 못했다.

귓속으로 들려오는 고함들은 대부분 염호의 의견에 동조를 하는 것들이었다.

연유극은 치솟는 분노를 애써 억눌렀다.

“저 아이는 무진이 중원에서 사귄 무진의 벗이다. 구파나 오대세가에 속한 정파의 아이가 아님을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 되었느냐?”

연유극의 장포 자락이 없는 바람에도 펄럭거렸다. 그러나 염호의 눈빛에 담긴 악독함은 더욱 짙어졌다.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대답을 원하오! 정파의 아이가 아니라면 사파나 마도에 사문을 두었을 터! 그 사문을 밝혀야 하지 않겠소이까? 사문도 없는 비렁뱅이가 내 아들을 이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오!”

“신분을 가리지 않는 것이 전통임을 다시 한 번 말해 두지! 염 전주!”

염호가 지지 않고 받아쳤다.

“적어도 정(正)인지 사(邪)인지 아니면 마(魔)인지만 밝혀야지요! 그것만 밝힌다면 미련 없이 패배를 인정하겠소!”

순간 연유극은 말문이 막혔다.

자신도 혁련소의 출신 성분을 몰랐다. 그저 이름 없는 사문을 둔 것이라 듣고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그였다.

그러나 지금 그것이 교의 인물들에게 먹힐 리 없었다. 초마전의 소전주를 이겨 내고 극마전을 승리한 자가 별 볼 일 없는 사문의 출신이나 낭인이라면 그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니.’

연유극은 치밀하지 못했던 자신을 자책했다.

느닷없는 무진의 중상과 촉박한 시간 탓에 서둘렀던 것이 이런 결과를 만든 것이다.

느릿하게 비무대를 내려가던 혁련소가 몸을 돌려 염호를 쳐다봤다. 그리고 조금은 당황한 모습을 보이는 연유극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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