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236화 (234/425)

# 236

<귀환무사 236화>

귀환무사 2부

11화

“의제 황조다.”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눈앞의 청년들처럼 젊은 나이엔 더더욱 그랬다.

혁련소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손발을 대신할 부하가 있는 것도 좋겠지.’

나대룡이 혁련소를 보며 얼굴이 붉어졌다.

“우리를 비웃는 것인가?”

혁련소의 얼굴에 걸린 미소를 그렇게 보았던 모양이다.

움찔한 혁련소가 손을 저었다.

“비웃기는, 그냥 너희들이 마음에 들어서 웃었다. 그나저나 나를 시험한 이유가 무엇이냐? 설마 다른 후보 측이 보낸 놈들은 아닐 테고. 왜 나를 시험했지?”

“네가 강하지 못하면 죽일 생각이었다.”

“호오! 왜?”

“우리는 소교주를 모시던 사람들이다. 네가 그분을 대신하여 출전한다고 하기에 자격이 되는지 궁금했을 뿐이다. 그분보다 약하다면 그분의 명예를 더럽히는 짓! 당연히 죽어야 한다.”

“하하! 이제 보니 무진의 사람이었군.”

혁련소가 소리 내어 웃었다.

무진을 생각하는 존재들을 만난 것이 기분 좋았다. 철저히 혼자인 줄 알았던 그를 이렇듯 생각해 주는 존재들이 있었다니.

“그래, 시험을 해 보니 어떤가? 이 정도면 자격이 충분한가?”

나대룡의 얼굴이 심하게 실룩거렸다.

“강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 유들거리는 성격이 마음에 안 든다.”

“너희들이 나를 마음에 들어 하든 말든, 그것은 상관없다. 문제는 내가 너희들이 마음에 든다는 것이지. 해서 하는 말이다만, 지금부터 너희들은 나의 수하가 될 것이다. 물론 차기 교주의 직속이 된다는 말이지.”

“……!”

셋은 순간, 얼굴을 굳혔다.

혁련소가 말을 이었다.

“물론 교주는 무진, 놈이 될 거니까 칼 뽑고 다시 달려들지 마라. 피곤하니까.”

* * *

극마전(極魔戰).

천하만마의 차세대 주인을 가리는 신교, 최대의 행사가 드디어 막을 올렸다.

넓은 연무장은 기라성 같은 신교의 고수들이 각자의 자리에 앉아 그 위대함을 뽐냈고, 수많은 무사들은 그들을 보며 미래의 꿈을 다졌다.

연무장의 중심, 가장 높은 곳에 교주 연유극과 장로들이 앉아 있었는데 있어야 할 검마전의 인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적용사문이 도중하차를 했으니 있을 까닭이 없었다.

“허허허! 새로운 청년을 내세웠다고 들었소이다, 교주.”

“그렇게 되었소이다.”

장로이자 전대 초마전의 전주인 염소가 물어 오자 연유극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하고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극마전의 개시를 알릴 때가 된 것이다.

궁!

거대한 북소리가 울리자 소란스럽던 장내가 일순 조용해졌다.

“차기 교주의 위를 가리는 극마전의 시작을 알리는 바이오.”

장황한 연설 없이 아주 간단하게 시작을 알린 연유극은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좌우의 장로들이 못마땅한 시선을 주었지만 그는 무시하고 장내를 주시했다.

집법전주의 절차 소개와 수뇌부들의 인사가 끝나자 모두는 드디어 시작될 극마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서 출전할 두 사람을 기다렸다.

집법전주가 큰 소리로 우측을 가리켰다.

“초마전의 소전주는 비무대로 오르시기 바라오.”

우렁찬 함성이 우측에서 터져 나왔다.

곧이어 휘장이 젖히며 강인한 용모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함성은 더욱 커졌다.

모두가 초마전의 승리를 바라는 자들의 것이었다. 연유극의 표정이 제법 차갑게 가라앉았다.

함성이 지나치게 컸던 탓이다. 클수록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이 많다는 것을 뜻하니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염천양은 환호하는 지지자들을 향해 두 팔을 번쩍 들어서 화답하고는 교주와 수뇌부들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오만한 놈!’

연유극은 못마땅한 시선을 염천양에게 준 뒤, 휘장이 드리워진 좌측의 출구를 보며 안광을 발했다.

그곳에 혁련소가 출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교주 측 출전자는 비무대로 오르기 바라오.”

좌측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졌다.

비록 입지가 좁아진 연유극이라 할지라도 그는 엄연한 현 교주이다. 비록 염천양의 등장 때보다는 못했지만 제법 많은 자들이 성원을 보냈다.

연유극의 차가운 인상은 풀리지 않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벌써 많은 교내의 인물들이 초마전과 검마전의 손을 잡았음을……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도 그들은 노골적으로 염천양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의자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며 끝부분이 가루로 변해 떨어졌다.

‘저 오만한 놈들의 코를 반드시 눌러야 한다!’

* * *

염천양은 혁련소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의 눈동자는 승리에 대한 집념으로 불타고 있었다. 혁련소는 담담한 시선으로 염천양을 응시했다.

‘생각보다 더 뛰어난 자였군.’

염천양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내심 감탄했다.

저런 눈빛과 몸을 지닌 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무공광들이다. 괴물 같은 존재들이 득실거리는 자신의 성에도 저런 눈빛을 지닌 존재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그래서일까.

염천양에게서 동질감 비슷한 감정마저 느꼈다.

‘눈빛만 닮았겠지.’

눈빛만 닮아야 한다.

실력까지 그 괴물 같은 존재들을 닮으면 자신이 승리할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봐야 한다.

고향 생각이 나자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자신감이 지나치군.]

묵직한 음성이 전음으로 들려왔다.

자신을 싸늘하게 응시하는 염천양을 본 혁련소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고향 생각에 떠올린 미소를 자신감의 표출로 느낀 모양이다.

[인상을 쓸 필요가 없으니까.]

[있어선 안 될 자리에 있었으니 어떤 일이 벌어져도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걸 왜 네가 걱정 하냐고.]

[그 패기는 인정하지.]

[자신감이다.]

정작 대결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둘은 전음으로 신경전을 벌였다.

물론 혁련소는 전혀 그럴 맘이 없다. 다만 상대가 그렇게 오해를 하고 나오는 것이 우스울 뿐이다.

집법전주의 장황한 설명이 끝나고, 대결을 알리는 북소리가 넓게 울려 퍼졌다.

“우와!”

“우우우우우!”

모두가 있는 힘껏 고함을 질러 출전자들을 응원했다. 상석에서 비무장을 내려다보는 수뇌부들의 얼굴에도 제법 긴장감이 흐리기 시작했다.

향후 신교의 나아갈 방향이 정해지는 자리였으니 당연했다.

연유극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는 혁련소의 느긋한 모습을 보며 내심 조마조마했다.

‘초마전의 아이를 보고서도 웃는다면 자신이 섰다는 것인가?’

연유극이 그런 생각을 품을 정도로 혁련소는 여유가 넘쳤다.

혁련소를 모르는 그로서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당연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혁련소와 함께하고 무공을 가르친 존재들은 연유극 자신도 감당 못할 엄청난 존재들이다.

하물며 염천양 정도에게 긴장감을 보일 혁련소가 아니다.

“오래 끌어서 좋을 게 없으니 빨리 끝내지.”

혁련소는 담담한 어조로 염천양에게 말을 건넨 후, 살짝 다리를 벌렸다.

지나치게 여유로운 그의 모습에 염천양은 비위가 거슬렸다. 성난 눈길로 혁련소를 노려보더니 어금니를 깨물고서 대도를 어깨에서 내려잡았다.

“좋지. 죽이지는 않으마. 네가 죽으면 무진, 그놈이 슬퍼할 테니까.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릴 적 친구이니 그 정도의 배려는 해 주는 것이 도리겠지.”

“후후! 괜한 걱정을 하는군.”

혁련소는 빨리 끝을 보고자 작정했다.

이런 소란스러운 분위기는 그의 성정에 맞지 않았다. 이들이 놀라든 말든 그저 최대한 빠른 시간에 상대를 눕히고 술을 마시고 싶었다.

작정을 한 그는 상대를 향해 느릿하게 다가갔다.

더불어 분위기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눈빛이 차갑게 식어 가더니 표정도 얼음장처럼 싸늘히 변했다.

“나, 혁련소. 무진을 대신하여 너를 눕혀 주겠다.”

* * *

우윳빛 뽀얀 피부에 천하명공(天下名工)이 조각을 한 듯 오뚝 솟은 콧날과 사내의 욕망을 절로 불러일으키는 장밋빛 입술.

거기에 호수처럼 크고 맑은 눈동자를 지닌 여인이 극마전이 열리고 있는 비무대를 응시하며 아미를 곱게 찡그렸다.

“오라버니를 대신하여 출전한 자가 고작 저 정도였다니, 초마전의 저 무식한 자의 도에 두 동강이 나지 않으면 다행이겠군.”

아름다운 얼굴과는 달리 다소 차갑고 거친 목소리가 여인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그녀의 시선은 혁련소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제법 먼 거리였지만 그녀는 혁련소와 초마전의 소전주가 내뿜는 기세를 느낄 만큼의 높은 경지를 지닌 고수였다.

광포함이 풀풀 풍겨 나는 초마전의 소전주와는 달리 혁련소에게서는 그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나 그가 내력을 갈무리할 정도의 고수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었지만 결론은 아니올시다였다.

저 나이에 그 정도의 경지를 밟은 고수는 고금을 통틀어 전무하다고 봐야 했다. 다만 수십 년 전, 천하를 일통시켰던 신마성의 성주라면 모를까.

“차라리 잘되었어. 교주라는 자리에서 물러나면 예전의 아버지로 돌아오시겠지.”

그녀는 상석에 앉아 오연히 그 눈빛을 빛내고 있는 연유극을 쳐다봤다.

옥으로 빛은 듯 곱고 넓은 이마에 살짝 주름이 생겨나며 한숨이 흘러나온다.

“휴!”

야망에 사로잡힌 부친의 얼굴에서 그녀는 그 이면에 감추어진 무엇인가를 느꼈다.

결코 자신이 바라지 않던 그것은 결국 오빠, 연무진을 죽음의 기로에 서게 만들었다.

자존심!

수백 년을 이어 온 자신의 가문이 결코 극마전에 패해서는 안 된다는 그 자존심이 그녀는 너무나도 싫었다. 그것에 지쳐 교를 나갔던 오빠 연무진을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하지만 결국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연무진은 지금 생사를 장담하지 못할 지경에 처하고 말았다.

‘돌아오세요, 아버지. 그 자리는 아버지 스스로와 가문, 모두를 힘들고 지치게 할 뿐임을 아셔야 합니다.’

애틋한 눈길을 접은 그녀가 몸을 돌렸다.

연소민.

당대 천하제일의 미녀라는 그녀는 연유극의 딸임과 동시에 연무진의 하나뿐인 동생이었다.

* * *

연유극은 지나치게 여유로운 혁련소를 보며 내심 불안했다.

자신의 눈이 틀리지는 않았을까 하는 불안감에 그는 손바닥이 식은땀으로 젖는 것조차 몰랐다.

‘지나친 허세가 아닌가.’

분명 그의 눈에 그렇게 보였다.

제아무리 혁련소가 강하다고 해도 초마전의 소전주를 앞에 두고서 저런 여유를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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