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5
<귀환무사 235화>
귀환무사 2부
10화
연유극이 물어 오자 혁련소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잠시 생각할 게 있어서…….”
혁련소를 바라보는 연유극의 눈빛이 묘했다.
그는 지난밤 일어난 검마전의 암습 사건이 눈앞의 혁련소에 의한 것임을 직감했다.
하지만 의구심을 떨칠 수는 없었다. 검마전의 검마사노는 교내에서도 알아주는 강자들. 그런 자들을 뚫어 내고 적용사문에게 암습을 성공했다면 혁련소는 자신이 생각하는 그 이상의 고수일 수밖에 없었다.
‘갈수록 정체가 궁금해지는군.’
단순히 무진의 벗이라고 하기엔 혁련소의 그릇이 지나치게 커 보였다.
아들을 믿었기에 그동안 혁련소에 대한 것은 그냥 묻고 있었지만 막상 자주 대하고 보니 그에 대한 의구심이 나날이 커져 갔다.
뭔가 알 수 없는 기운이 혁련소에게서 느껴진 것이다.
“적용사문은 상당히 강한 아이였다. 특히 그를 지키는 사노(四老)는 넷이 합치면 하늘조차도 가둘 수 있다고 알려진 강자들이다. 한데 도대체 어떻게 놈을 암습한 것이냐?”
“그냥 한 번 만나고 왔을 뿐인데, 암습이라니요. 제가 그 정도로 대단하게 보였습니까.”
담담히 부인하는 혁련소.
하지만 연유극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암습도 극마전의 일부라고 인정하고는 있지만 분명 그들이 공식적으로 항의를 해 올 것이다. 물론 내가 바라는 것이기도 하지만 아무튼 상당히 시끄러워지게 생겼다.”
“제가 극마전을 이긴다면 모든 것이 쉽게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제아무리 검마전이라도 신임 교주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는 못할 테니 말입니다.”
“신교는 네가 아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곳이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연유극은 새삼 혁련소를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혁련소의 배짱, 그것은 자신이 아들, 무진에게 그토록 바랐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무진은 저런 배짱을 지니지 못했었다.
의식 불명에 빠진 아들을 생각하자 연유극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졌다.
그것을 본 혁련소가 짐작이라도 한 듯 말을 건넸다.
“무진이 돌아오면 그때 교주 자리를 넘겨줄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때까지 좋은 방법이라도 찾아 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만.”
“극마전 따위는 생각조차 않는 것이냐? 자신감인가, 아니면 오만인가?”
“자신감이라 해 두죠.”
혁련소의 얼굴은 여전히 대수롭지 않다는 빛이다.
혁련소를 가볍게 노려본 연유극이 누군가를 향해 지시를 내렸다.
“어떻게 되었느냐?”
무엇을 물어보는 것일까. 그의 뒤쪽에서 유령의 울음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그자를 찾아내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상당한 고수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최대한 빠른 시간에 그자를 찾아내도록!”
“알겠습니다.”
대화를 듣고 있던 혁련소가 눈을 반짝였다.
‘누구를 찾는다는 것이지? 혹시 숙부를 말함인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혁련소는 내심 웃었다.
흑야는 찾는다고 찾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비록 신교의 안방에 몸을 은신하고는 있지만 그의 기척을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혁련소는 짐짓 의아한 빛을 보이며 물었다.
“누구, 찾는 사람이 있습니까?”
“누가 숨어든 것 같아서 말이지.”
연유극이 눈빛을 발하며 답했다.
혁련소를 은근히 쳐다보는 눈빛이 마치 너는 알고 있겠지 하는 빛이다.
하지만 혁련소는 능청스럽게 되물었다.
“천하의 신교에 숨어든 자가 있단 말입니까? 누군지는 몰라도 간이 부은 사람이군요.”
“며칠 전, 교내에서 정체 모를 자에게 당한 시신이 발견되었다. 시신에 난 흔적은 결코 본교의 무공이 아니었지.”
‘흠! 나를 암습했던 놈을 말하는군.’
혁련소는 은근슬쩍 연유극의 시선을 피했다.
말을 들어 보니 숙부를 말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만 가 보겠습니다.”
혁련소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연유극의 시선이 그를 좇았다.
“내일이면 모든 것이 결판난다. 각오를 단단히 다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무진에게 가 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내일 일은 걱정 마십시오. 교주님의 가문이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지켜 드리겠습니다. 아! 물론 무진 때문입니다.”
가볍게 웃어 보인 혁련소가 거처를 빠져나갔다.
지켜보던 연유극의 눈빛이 심해의 그것처럼 깊게 가라앉았다.
‘극마전보다 너의 정체가 더욱 궁금해지는군.’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버린 혁련소. 연유극은 그의 정체가 점점 궁금해졌다.
* * *
혁련소의 얼굴이 조금은 우울한 듯 보였다.
그는 지금 모종의 장소에 누워 있던 연무진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다.
‘일부러 기의 흐름을 막고 일종의 귀식대법을 펼치고 있어. 왜 그런 선택을 해야 했지?’
연무진의 상태를 한눈에 알아본 그는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지금 연무진은 비록 중상을 입은 상태라고는 하지만 목숨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연무진은 스스로 자신의 기를 막고 진기의 흐름까지 끊어 놓았다.
‘뭔가 복잡한 사정이 있는 것은 분명한데…….’
비록 짧은 시간의 교류였지만 그는 연무진을 매우 신뢰했다.
분명 자신에게 말하지 못할 사정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하고서는 생각을 접었다.
그때,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인물들을 발견한 혁련소는 걸음을 세웠다.
하나같이 칼처럼 날카로운 기운을 뿜어내는 청년 셋이 그가 가던 길의 중앙을 막아선 채 그를 차갑게 노려보고 있었다.
“네가 소교주를 대신하여 극마전에 출전할 자냐?”
“누구…….”
“네가 자격이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온 사람들이다.”
한기를 풀풀 뿜어내던 호리호리한 체격의 청년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그를 노려본다.
양어깨에 검을 멘 그는 한눈에 보아도 제법 강한 고수로 느껴졌다.
혁련소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하나만 묻자.”
“물어라.”
“혹시 무진과 반대쪽이냐?”
“그건 네가 자격이 되는지 알아본 후에 대답하겠다.”
“싸워 보면 알아지나? 그 자격이란 게?”
“신교는 강자들의 세상이다. 약자는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 이곳이다. 교주라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 어서 칼을 뽑아라.”
혁련소는 내심 어이가 없었다.
다짜고짜 자신을 시험하겠다며 대결을 요구해 오는 셋을 빠르게 살펴봤다.
전형적인 무골들의 기질이 나타난다. 오직 강함을 추구하는 무골들은 정과 마, 사를 막론하고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그의 눈가에 흥미로운 빛이 슬쩍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나쁜 놈들은 아닌 것 같은데…… 이거, 싸워 줘야 하나.’
적어도 연무진의 적은 아닌 듯 보였다.
싸워서 부상을 입히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쳐서 가기엔 셋의 기세가 자못 심각했다.
이런 종류의 인간들은 대결을 회피하면 죽기 살기로 달려든다.
혁련소의 입가에 미소가 어리며 그의 육신이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이형환위!
절대고수들만의 전유물인 그것이 펼쳐진 것이다.
비록 미완성의 단계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속도를 자랑했다.
느닷없는 혁련소의 선공에 청년들이 흠칫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전방을 향해 검을 뻗었다.
느껴지는 기의 흐름만으로 혁련소의 방향을 알아낸 청년들은 빠르게 좌우로 갈라지며 또다시 검을 후려쳤다.
퍽!
“억!”
좌측을 맡았던 청년의 입에서 답답한 신음이 터져 나오며 뒤로 튕겨 나갔다.
동시에 우측의 청년마저도 육신을 휘청거리더니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사라졌던 혁련소가 그들의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여전히 입가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이 정도면 너희들의 신분을 물어볼 자격은 되겠지?”
공격을 당하지 않았던 가운데 청년이 양손에 검을 잡고서는 투기를 뿜어냈다.
그 기운이 대단하자 혁련소의 눈동자에 감탄의 빛이 어린다.
‘호오! 제법이군.’
저 정도면 연무진과 별반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신교의 인물이 분명할진대 비슷한 나이에 소교주와 비슷한 수준을 지닌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역시 강한 자군. 그러나 나도 너만큼 강하다. 승부를 가리겠다.”
“좋지! 단 승부에서 지면 혼날 줄 알라고. 감히 차기 신교의 교주가 될 사람에게 이런 불경한 짓이라니.”
“닥쳐라! 신교의 주인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청년이 노기를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그 속도와 검의 파괴력은 단연 둘보다 강력했다.
둘은 수십 합을 겨루면서도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다만 청년의 얼굴이 갈수록 붉어졌다면 혁련소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담담함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달랐을 뿐이다.
한 줄기 기합성을 토해 낸 청년이 직선으로 혁련소를 향해 달려들었다.
쾅!
굉음이 터지며 청년의 육신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가느다란 선혈이 청년의 입가를 흘렀다.
내상을 입은 것이다. 하지만 청년은 또다시 튕기듯 일어서며 혁련소를 향해 날아들었다.
‘마치 셋째 숙부를 보는 듯하군.’
싸움을 위해 태어난 존재.
평생을 싸워 오면서 단 한 번의 패배를 제외하고는 평생토록 패배를 몰랐던 그를 닮아 있었다.
‘여기까지면 충분해.’
혁련소는 이쯤에서 끝을 낼 생각을 먹었다.
육신이 흐릿하게 변하더니 달려들던 청년의 옆에 환영처럼 불쑥 나타났다.
“……엇!”
자신의 공격 방향을 벗어난 혁련소가 느닷없이 바로 옆에 나타나자 청년은 크게 놀라 황급히 몸을 틀었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퍽!
“욱!”
범처럼 사나운 움직임을 보이던 청년의 육신이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그러자 다른 둘이 재빨리 청년에게 달려가 그의 상세를 살폈다. 복부를 정통으로 가격당한 청년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혁련소를 바라보았다.
일그러진 얼굴과는 달리 그의 눈빛은 매섭게 이글거리고 있었다.
“이제 정체를 밝혀야지.”
쓰러진 청년을 부축했던 청년들이 검을 고쳐 잡고 혁련소를 노려보았다.
두려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혁련소는 다시 그들의 자세에 감탄했다.
‘제법 괜찮은 친구들인데. 누구지?’
혁련소는 청년들이 마음에 들었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임을 알면서도 저런 투지를 보이기는 여간해서는 쉽지 않은 것이다.
청년들을 응시하는 혁련소의 눈이 묘한 빛을 품었다.
“승부는 이 정도면 끝난 것 아닌가?”
“졌다! 나는 신교의 소전귀(小戰鬼) 나대룡이다.”
둘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서던 청년이 분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답을 하자 다른 청년들도 우물거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대형의 의제 곽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