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4
<귀환무사 234화>
귀환무사 2부
9화
두려움에 언제까지 손발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자신의 절기를 끌어올린 적용사문은 처음부터 극성으로 공세를 퍼붓기로 작정을 하고서는 흑야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제법이군.”
“신교의 주인을 꿈꾸는 사람을 우습게 여기지 마라.”
“개꿈이지.”
“죽인다!”
장심에서 솟아난 하얀 기운들이 흑야를 덮쳤다.
그러나 흑야의 신형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가슴에서 피어나는 지독한 통증…….
퍽!
“우욱!”
적용사문이 가슴을 움켜쥐고서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불신으로 흔들리는 두 눈이 벌겋게 충혈이 되었다.
흑야가 다시 나타났다.
유령이 따로 없었다.
“검마의 후예가 검을 버리고 빙공을 배웠다? 웃기는 놈이군.”
“우악!”
적용사문이 한 사발이나 되는 선혈을 토해 내고는 전신을 크게 휘청거렸다.
“이럴 수가…….”
단 일초!
천하를 지배할 원대한 꿈까지 꾸었던 자신이 정체 모를 장한에게 단 일초를 버텨 내지 못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몸 안의 내공이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흑야의 입에서 청천벽력과도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공을 없애는 것으로 너의 목숨을 대신하지.”
쾅!
적용사문은 머릿속에서 천둥 벼락이 이는 것을 느끼고는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졌다.
털썩!
연유극은 자신의 거처에서 밖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만월이 걸린 신강의 밤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밝은 빛을 뿜고 있었지만 그의 속내는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과연 옳은 결정인가?’
그는 아들을 대신하여 혁련소를 출전시키는 것이 과연 잘한 것인지를 고민했다.
지금이라도 장로전에 무진의 출전 포기를 전하고 빠지면 혁련소를 출전시키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았다. 그동안 자신의 가문이 지배했던 신교이다. 그 전통을 자신의 대에서 끊을 수는 없었다.
목숨보다 더한 자존심과 명예.
지금 연유극의 머리를 지배하는 것들이다. 배우기를 그렇게 배워 왔고 살기를 그렇게 살아왔던 그였다.
‘포기할 수는 없다. 절대!’
스스로 각오를 다졌다.
비록 혈육이 아닌 외부인에 의한 도전이라도 반드시 극마전을 승리로 이끌어야 했다.
그리고 확신 또한 들었다.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 아이는 결코 무진보다 약하지 않다. 무진이 출전했을 때 승리할 확률을 오 할로 보았지만 그 아이가 출전한다면 확률은…….’
연유극의 눈빛이 섬광을 발했다.
‘팔 할 이상이다.’
어금니를 꽉 깨문 연유극은 심호흡을 하고서는 자신의 모든 것이 녹아 있는 신교를 쓸어 보았다.
어둠 속에 솟아 있는 곳곳의 거대한 축조물들과 불을 밝히고 경계를 서는 무사들, 그리고 자신의 기감에 걸려 드는 호위들의 숨소리…….
이 모든 것을 중원 침공의 야망에 사로잡힌 자들에게 넘겨줄 순 없었다.
이 상태로 중원을 향한다면 무조건 패배다.
어쩌면 다시는 재기를 할 수 없는 멸망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신마성의 뜻을 확인하기 전에는 절대 중원을 넘봐서는 안 된다.’
강호의 역사에서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무적이라는 칭호를 받은 존재가 살아가는 곳, 신마성.
연유극은 중원 무림 전체보다 그곳을 더 두려워하고 있었다.
* * *
쾅!
신강의 자단목은 강도가 높기로 천하에 으뜸을 자랑한다.
그러한 자단목으로 만들어진 탁자가 산산조각으로 박살이 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도대체 너희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더냐!”
검마 적용극이 노성(怒聲)을 토해 냈다.
무릎을 꿇은 적색전포의 노인들은 말없이 그의 노성에 고개를 조아릴 뿐이다.
하나같이 날카로운 기세를 품은 그들은 바로 적용사문을 암중 호위하던 검마사노(劍魔四老)였다.
적용사문을 보필하지 못한 죄가 그들의 고개를 한없이 숙여지게 만들었다.
적용극의 노호성이 다시 그들의 귓속을 울렸다.
“아이들을 풀어 범인은 알아보았느냐!”
“아직 범인의 윤곽은 밝혀지질 않았습니다만 교주 측에서 한 짓이라 여겨집니다. 초마전은 당연히 그럴 사람들이 아니니…….”
검마사노의 대형 달초가 머리를 조아리며 답하자 적용극의 눈동자에 불꽃이 일렁거렸다.
“교주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거처에서 연무진을 대신하여 극마전에 나설 젊은 놈과 함께 있다고 합니다. 그곳으로 가시겠습니까?”
“당장 차비를 하여라! 내 교주를 만나 결판을 낼 것이다.”
적용극이 당장에라도 움직일 듯 몸을 일으키자 뒤쪽에 시립하고 있던 창백한 얼굴의 노인이 나서며 그를 만류했다.
“감정적으로 대처해선 곤란합니다, 전주.”
“곤란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적용극이 노인을 돌아보며 거칠게 물었다.
가볍게 머리를 조아린 노인은 모두를 쓸어 보며 눈빛을 냈다.
“심증만을 가지고 교주 측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자칫 그들과 다툼이라도 일어나면 결국 득을 보는 것은 초마전이 될 테지요. 어차피 극마전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면 우리는 극마전에서 이기는 쪽과 손을 잡는 것이 좋습니다.”
“사문이 아니면 초마전의 아이를 이길 수 있다고 보느냐? 당연히 이번 극마전은 초마전이 가져갈 것이 확실하다. 그러니 교주 측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 않습니다. 교주의 능력을 가볍게 보아선 안 됩니다. 비록 중원 진출을 막는 바람에 교내에 신망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는 역사상 최고의 기재라 불리던 사람입니다. 그런 교주가 단순히 무진이 하차했다고 해서 서둘러 그 아이를 대리 출전시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분명 뭔가가 있습니다. 전주께서는 화를 누르시고 조금 더 냉철하게 정국을 살피셔야 합니다.”
노인의 언행에는 거침이 없었다.
적용극의 분노 앞에서도 이렇듯 거침없이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존재는 검마전에 단 하나뿐이다.
바로 검마전의 두뇌로 불리는 마도제일뇌(魔道第一腦) 우량(宇良)이었다.
누구보다 우량을 신뢰하는 적용극인지라 우량의 연이은 만류에 노기를 가라앉히려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우량이 말을 이었다.
“일단은 교주 측보다는 초마전을 먼저 찾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들과 일전에 교감을 나누었던 부분에 대하여 확실하게 선을 그어 놓는 것이 먼저입지요. 그다음 교주 측을 찾아가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를 요구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진상 조사를 요구한다? 그들도 무진이 암습을 당하여 생사의 기로에 처했거늘 우리의 말을 들어줄 것이라 보는가?”
“당연히 들어줄 것입니다.”
“어떻게 그리 확신하는 게냐?”
침을 삼킨 우량이 눈빛을 내며 말을 이어 갔다.
“사실 그들도 무진의 암습이 누구의 짓인지 무척이나 궁금할 테지요. 다만 교주라는 자리에 있다 보니 공식적으로 그것을 문제 삼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문의 암습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면 그들도 기다렸다는 듯 쌍수를 들고 올 것이 분명합니다. 이 기회에 무진을 암습한 배후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조사를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암습까지도 극마전의 일부로 치는 것은 대를 이어 온 전통이 아니더냐? 조사를 한다고 하면 교내의 인물들이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볼 것이 아니냐!”
미간을 찌푸리고 말하는 적용극은 어느 정도 화가 가라앉은 듯 보였다.
그 모습에 우량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
“다른 것은 제게 맡기시고 전주께서는 서둘러 초마전을 찾으십시오. 단, 그들도 사문을 암습한 용의 선상에 있으니 마음에 있는 말은 가급적 삼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언제나 들어서 안 된 일이 없었던 우량의 말에 적용극은 어금니를 깨물고선 머리를 끄덕였다.
“초마전으로 갈 것이다.”
검마사노가 일제히 몸을 일으켜 그의 뒤를 따랐다.
가는 눈으로 적용극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우량은 표를 내지는 않았지만 속내는 의구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도대체 검마사노의 경계망을 뚫고 사문을 암습할 존재가 과연 교내에 있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신교 내에서는 검마사노의 경계를 뚫어 낼 존재는 없었다.
비록 교주와 교주의 암중 호위라는 괴물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은 분명 적용사문이 암습을 당할 시간에 자신들의 거처에 있었다.
물론 그곳에 심어 놓은 세작들이 전해 온 것이니 틀림이 없었다.
‘설마 초마전주가 직접 움직인 것은 아닐 테고, 그렇다면 도대체 어느 놈이 그러한 경지를 지녔단 말인가?’
우량의 머리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우량은 자신의 머리를 흔들며 고민을 떨쳐 냈다.
“일단은 극마전의 승자를 가리는 것이 급선무다. 초마전이 승리한다면 좋겠지만 교주 측이 내세운 놈이 승리할 것을 염두에 둔 차선책을 강구해야 한다. 일단 검마전은 물밑으로 가라앉아 풍랑이 이는 방향을 살필 것이다.”
악마의 두뇌를 지닌 자로 여겨지는 우량의 깊은 눈동자가 섬광을 발했다.
정도맹의 군사 제갈추랑과 더불어 천하제일의 두뇌로 여겨지는 그의 머리는 앞으로 벌어질 정국의 방향을 잡기 위해 빠르게 회전했다.
“중원 진출을 위해서는 초마전이 승리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의 머리를 그들에게 빌려 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오른 우량의 얼굴, 자신이 가세한다면 승리는 초마전이 될 것이라 확신한 그는 서둘러 대전을 빠져나갔다.
* * *
혁련소는 연유극의 거처에서 극마전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방법이야 워낙 간단해서 딱히 더 들을 것도 없었지만 하나 남은 초마전의 후보에 대한 정보는 상당히 도움이 되는 정보였다.
싸워서 이길 자신은 있었지만 가급적 분란이 일어나지 않는 쪽으로 승리해야 했다.
자칫 자신의 손으로 초마전의 후보를 죽이기라도 한다면 일을 복잡해진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무진이 깨어났을 때 정상적으로 교주 자리를 물려주질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선 안 되지. 이런 골머리 아픈 자리는 얼른 무진, 그놈에게 줘 버려야 해.’
그는 자신이 진다는 생각은 티끌만치도 없었다.
다만 걱정은 무진이 깨어났을 때 다른 신교의 인물들이 수긍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교주 자리를 넘겨야 하는 것에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마땅한 방도가 떠오르지 않자 그는 매우 답답했다.
이러다가 자칫 신교에서 궁둥이를 얹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근심까지 생겨났다.
“무슨 생각을 그리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