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3
<귀환무사 233화>
귀환무사 2부
8화
혁련소가 물었다.
“부탁이란 게 무엇입니까? 천하의 교주께서 하시는 부탁이니 무척 궁금합니다.”
연유극의 눈동자에 불길이 일었다.
“할 수만 있다면 초마전과 검마전의 후보들을 죽여 주었으면 한다. 그것이 나의 부탁이다. 물론 네가 그들보다 강하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것이지.”
“부탁을 하시는 것만으로도 제가 그들보다 강하다고 여기시는 것 같군요.”
“확신은 아니다만 확률이 높다고 여기고 있다.”
“부디 교주님의 생각이 틀리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저도 젊은 나이에 타지에서 귀신이 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말입니다. 그건 그렇고 그자들을 죽이고 싶으시면 당장에라도 직접 가능한 것이 아닙니까?”
혁련소의 물음에 연유극이 눈빛을 발하며 대답했다.
“그 아이들을 합법적으로 죽일 수 있는 방법은 극마전뿐이다. 그 외의 방법으로 죽인다면 교도들의 분노를 사게 되고 그렇게 되면 교는 사분오열 갈라질 수밖에 없다.”
“그들을 죽이려 하심은 역시 신교의 중원 진출을 막으시려는 것 때문입니까?”
“그렇다.”
혁련소가 의구심이 가득한 빛으로 되물었다.
“제가 이긴다면 굳이 죽이지 않더라도 교주의 명으로 막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굳이 중요한 재원들을 죽이려 하시는 연유를 모르겠습니다.”
혁련소의 말처럼 극마전에 나선 후보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기재들이다.
비록 가는 길을 달리하는 경쟁자의 입장이라고는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중요한 인재들이고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는 강력한 우군으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연유극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누구보다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연유극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죽음을 바라는 것은 나름대로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교를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아니라 누구라도 기꺼이 바칠 수 있다. 물론 너도 예외는 아니다.”
“솔직하시군요. 저를 이용하시는 것을 알면서도 출전을 거절 못하는 것을 보니 제게도 무진이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알겠습니다. 가능하면 그들을 죽이도록 하겠습니다.”
거침없는 대답에 연유극의 표정이 씁쓸함으로 바뀌었다.
혁련소의 태도에 왠지 부끄러운 마음이 일었다.
스스로 천하만마의 주인이라 자부하던 자신보다 눈앞의 자식같이 어린 청년이 자신보다 더 깊고 크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암습까지도 극마전의 연장으로 생각한다는 말씀, 사실입니까?”
“그렇다. 한데 그건 왜 묻느냐?”
혁련소의 눈동자가 의미심장한 빛을 번뜩였다.
“눈앞에서 친구가 당했습니다. 갚아 주지 않으면 왠지 잠을 못 이룰 것 같아서 말입니다.”
“자칫하면 네가 당할 수도 있다.”
“기왕 나선 것이라면 확실히 존재감을 심어 줄 작정입니다. 감히 머리를 들지 못하도록 말이지요.”
연유극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그는 어쩌면 눈앞의 혁련소가 자신이 측량한 것보다 훨씬 대단한 존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 * *
혁련소는 자신의 앞을 마주한 숙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빙설로(氷雪露) 한 잔을 기울이던 그는 그런 혁련소를 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일까지 부려 먹을 작정이냐?”
“어쩌겠습니까? 그 방면에선 숙부께서 천하제일이 아닙니까?”
“신교를 위해서 손발을 놀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혁련소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빈 잔을 채워 준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저를 위해서라고 생각하십시오. 아무 놈이나 상관없습니다. 그저 한 놈만 골라서 죽지 않을 만큼만 손을 봐주시면 됩니다.”
“확실히 그 뻔뻔함은 주공을 앞서는군. 좋다. 한 놈은 제거해 주지. 대신 모든 것이 끝나면 무조건 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알겠느냐.”
“하하! 역시 숙부님이십니다. 벌써 손이 근질근질하십니까?”
“솔직히 네가 부탁하지 않았어도 한 놈 정도는 족칠 생각이었다. 감히 너의 친구를 암습하다니, 내가 아니라 다른 놈들 같았으면 신교를 아예 쓸어버리자고 했을 것이다.”
사실이었다.
혁련소에겐 모두 여덟의 숙부들이 있었다. 물론 하나같이 피가 섞이지는 않았지만 자신에겐 아버지와 같은 존재들이 그들이다.
하나하나가 천하에 모습을 드러내면 구주팔황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자신과 관련된 일이라면 천하와 전쟁을 벌이는 것도 마다 않을 위인들이다.
“다행이군요. 그나마 제일 평화적인 숙부께서 호위를 맡으신 기간에 이런 일이 생겼으니.”
“내가 평화주의자로 보였느냐?”
“여덟 분 중에서 그렇단 말입니다. 물론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숙부님도 절대 평화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지요. 하하!”
숙부, 흑야는 낭랑한 웃음을 터뜨리는 혁련소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극마전을 이기는 방법 중에 다른 놈들이 포기하면 저절로 승자가 된다는 조항이 있다더군. 알고 있느냐?”
“교주에게 들었습니다. 아주 괜찮은 방법이지요.”
“그렇지. 아주 괜찮은 방법이지. 괜히 힘쓰지 말고 그 조항을 이용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쉽고 빠르고, 게다가 가장 확실하기도 하다.”
“생각 중입니다.”
흑야의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혁련소를 응시하는 눈빛이 묘했다.
“배짱이 좀 늘었군. 물론 생각보다 늦었지만…….”
“배짱이라…… 글쎄요. 기왕 하기로 작정했으니 보다 확실하게 겁을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래야 나중에 뒷말이 생기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그것도 좋겠지. 그저 패도를 추구하는 놈들은 힘으로 눌러 버리는 것이 최고다. 주공께서 즐기시는 방법이 그런 쪽이지.”
빙설로가 떨어졌다. 흑야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이거 제법 괜찮은 술이군. 나중에 그놈이 깨어나면 좀 얻어 가야겠어. 그나저나 극마전이 내일이니 오늘 밤에 한 놈 정도는 보내 줘야겠지.”
“한 명만 죽이십시오.”
대답도 없이 흑야가 사라졌다.
혁련소의 미간에 주름이 생겨났다.
‘갈수록 괴물이 되어 가시는군. 나중에 옥황상제가 상당히 골치가 아프겠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은 혁련소는 침상에 몸을 누이며 눈을 감았다.
이십 일 남짓한 기간에 너무나 많은 일들이 그에게서 벌어졌다.
‘신교의 주인이라…….’
천하만마의 주인이 가려질 극마전. 우습게도 자신은 그런 천하만마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의 아들이다. 그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하는 생각에 씁쓸함을 떠올렸던 그는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제3장 극마전 대리 출전
검마전(劍魔展)!
신교 최강의 검귀(劍鬼)들이 살아가는 그곳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검마전의 꼭대기엔 적당한 크기의 망루가 있었고 그곳에 밤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긴 적용사문이 있었다.
“후후후! 내일이면 신교는 나의 손안에 들 것이다. 그것은 곧 천하의 주도권을 내가 쥐는 것과 같은 말이지.”
그는 자신의 승리를 장담했다.
다른 둘 중에 초마전의 무식한 칼잡이가 그나마 마음에 걸렸지만 자신의 적수는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나약한 놈 따위가 가질 수 있는 곳이 아니지. 이곳은…….”
암습을 당하고 쓰러진 연무진을 떠올린 그는 얼굴 가득 비웃음을 흘렸다.
어차피 그는 나와 봤자 자신에겐 상대가 되질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손으로 모든 교도들이 보는 앞에서 무참히 밟아 주겠노라 작정했던 것이 수포로 돌아갔음이 무척 아쉬웠다.
“그럴 일이야 없었겠지만 혹시라도 네가 신교의 주인이 되었다면 또다시 신교는 십 년을 신강에서 허송세월을 보내야 했겠지.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너의 죽음은 교도들의 환영을 받을 일이다, 연무진.”
심호흡을 한 적용사문은 밤하늘의 별자리를 헤아렸다. 천문지리에 능한 그는 별자리마저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보여 주자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내일이면 소민, 그녀도 나의 여자가 될 것이다.”
폭발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여인의 자태가 눈앞에 아른거리며 떠오른다.
어쩌면 신교의 주인이 되는 것만큼 의미가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녀는 아름답고 대단한 여자니까.
적용사문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맺혔다.
“뜨거운 밤이 되겠군.”
“글쎄.”
흠칫!
차가운 목소리가 뒤에서 울렸다.
“누구냐!”
적용사문의 고개가 황급히 뒤로 돌아갔다.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 적용사문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자신의 지척까지 다가오도록 몰랐다면 적어도 자신보다 아래는 아니란 생각이 뇌리를 강타했다.
그러나 놀람도 잠시였다. 이내 침착함을 되찾은 적용사문은 전신에 내공을 끌어올리고서 존재를 노려보았다.
“제법이군, 꼬맹이 새끼가.”
흑발을 늘어뜨린 사내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눈동자에 섬광이 일어났다. 그것은 적용사문의 장밋빛 인생을 죽음의 길로 이끄는 전조였다.
흑야의 광포한 눈빛과 마주친 적용사문은 자신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지금껏 이토록 잔혹한 눈빛을 본 적은 단연코 없었다.
흑야가 싸늘히 웃었다.
“두려운 모양이군. 그 정도로 신교의 주인이 되고자 했더냐?”
싸늘함이 담긴 미소를 입가에 떠올린 흑야가 적용사문을 보며 느릿하게 다가갔다.
검을 늘어뜨린 그의 태도는 사방이 허점투성이로 보일 정도로 형편없었다.
“교주 측이 보낸 놈이냐?”
적용사문이 큰소리로 물었다.
흑야의 입가에 떠올랐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후후! 소리를 질러도 네 목소리를 들어 줄 사람은 없어. 그러니 괜한 수고는 하지 않는 것이 좋아.”
적용사문은 내심 심장이 철렁했다.
내공을 담아 소리를 지른 이유는 다른 검마전의 고수들을 부를 요량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이미 주변을 차단하고 있었다. 내공으로 소리를 차단하는 것은 어지간한 고수들을 꿈도 꾸지 못할 경지. 적용사문은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가라앉음을 느꼈다.
‘검마사로의 경계망을 뚫고 들어왔다면 내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고수임에 분명하다.’
그는 자신을 암중 호위하는 검마사로(劍魔四老)를 떠올렸다.
하루 종일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고 호위하던 그들이 왜 눈앞의 인물의 침입을 막지 못했는지, 화가 치밀었다.
꽈악!
적용사문이 눈빛을 발하며 내공을 끌어올렸다.
‘나 또한 강하다.’
우웅!
적용사문의 전신에서 강력한 기운이 맴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