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2
<귀환무사 232화>
귀환무사 2부
7화
혁련소의 말에 연유극은 화를 내지 못했다.
누구라도 그렇게 판단할 일이다. 물론 자신도 다를 바 없었다.
혁련소가 묘한 눈빛으로 연유극을 응시했다.
“다시는 중원 진출의 꿈을 꾸지 못함을 염려하시는군요.”
“그렇다.”
솔직한 대답에 혁련소는 어쩌면 연유극이 자신의 생각 이상으로 거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 연유극은 혁련소를 보며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결코 초마와 검마의 아이들보다 아래가 아니다.’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자신의 본능을 자극하는 알 수 없는 기운을 느끼면서도 혁련소에게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들을 대신할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어쩌면 충분히 극마전을 승리로 이끌어 낼 수 있다는 확신마저 들었다.
이런 느낌은 언제나 정확하게 맞아들었다.
‘기필코 이 아이를 무진을 대신해서 출전시켜야 한다.’
둘이 시선을 주고받을 때, 밖에서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소교주께서 의식을 찾으셨습니다.”
연유극의 얼굴엔 일말의 기쁨조차 떠올라 있지 않았다.
혁련소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참으로 무정한 분이군. 저런 자리에 있으면 다 저렇게 되는가?’
자신의 아버지도 아마 저럴 것이라 생각이 들자 쓴웃음이 저절로 생겨났다.
문득 자신의 아버지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천하만마의 주인이라는 연유극조차도 두려워하는 자신의 아버지는 과연 자신이 생사의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떻게 나올까.
하늘이 무너져도 표정하나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아버지의 무심한 얼굴이 아른거리자 피식 고소를 머금었다.
‘생각에서조차 저런 표정이라니.’
혁련소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연무진에게 가 봐야 했다. 먼저 몸을 일으킨 연유극의 뒷모습이 눈을 찔러 왔다.
‘설마 놈이 내게 부탁을 하는 건 아니겠지.’
불안감이 확 올라왔다.
만에 하나 연무진이 대신 극마전에 나가 달라는 부탁을 해 오면 거절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발 그러지 말기를 바라며 혁련소는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희미하게 의식이 돌아온 연무진은 통증으로 인해 전신이 땀으로 범벅이 된 상태였다.
치료하는 포중삭의 육신 또한 흘린 땀으로 인해 장포가 몸에 찰싹 달라붙을 정도였다.
“크윽!”
“조금만 참으시오, 소교주!”
자신의 내공을 손끝에 담아 연무진의 전신 혈도를 한 시진 동안 치료해 온 포중삭은 이미 고갈 일보 직전의 상태였지만, 오직 연무진을 회생시키는 것에만 몰두한 나머지 그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 들어서던 연유극이 그런 포중삭의 상태를 알아챘다.
“무리하지 말거라.”
“여기서 멈추면 소교주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게 됩니다. 조금만 더하면 되니 제게 교주의 내공을 빌려 주십시오.”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포중삭이 다급하게 외치자 잠시 연무진을 응시한 연유극이 포중삭의 명문혈에 장심을 밀착시켰다.
‘나를 믿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감인가?’
연유극의 행동에 혁련소는 이채를 발했다.
지금 거처에는 연유극 부자와 포중삭, 그리고 자신뿐이다. 그럼에도 연유극은 거침없이 내공을 주입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손짓 한 번으로 천하만마의 대종사를 죽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후후! 역시 일파의 수장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군.’
혁련소는 또다시 연유극의 뒷모습에서 강자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혁련소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떠오를 때쯤 그의 귓속으로 미약한 전음이 흘러들었다.
[소…….]
‘무진!’
연무진의 전음성이었다.
혁련소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죽음의 기로에 처한 연무진은 내력 소모가 큰 전음을 펼쳐서는 안 된다.
[무리하지 마라! 무진.]
[시간이 없다. 내 말을 무조건 듣기만 해라.]
혁련소는 흔들리는 시선으로 연무진을 바라보았다.
눈을 감고 연신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기 바쁜 연무진, 혁련소의 눈동자가 더욱 심하게 흔들렸다.
[나를 대신해서 극마전에 참가해 줘. 부탁이다.]
불안감이 현실이 되었다.
이러면 어떻게 거절하나. 혁련소는 걱정이 앞서면서도 위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네가 직접 참가해.]
[농담할 시간이 없다. 나는 곧 긴 잠에 빠져들 것이다. 네가 부탁을 들어줘야 마음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으니 어서 대답해 줘.]
[긴 잠에 빠진다니, 그건 또 뭔 소리야?]
[나를 믿어라. 나는 죽지 않는다. 다만 긴 잠을 자러 갈 뿐이다. 그때까지만 네가 아버님을 지켜 드려라. 부탁이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의 연속이었지만 그 속에 담긴 염원은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짧은 순간 혁련소는 수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연무진과 등을 돌린 연유극을 바라보았다. 급격히 식어 가는 연무진을 보며 어깨를 떠는 연유극. 표현하지 못하는 그의 내면이 얼마만큼 비통할지 상상이 갔다.
‘아버지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실까.’
답은 곧 나왔다.
친구를, 수하를 위해 천하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던 아버지다.
그렇다면 더 고민할 것도 없지 않은가.
[좋다, 단 네가 돌아올 때까지만 그렇게 하도록 하지.]
[고맙다. 진정…… 고맙다, 소.]
[대신 너무 늦지 마라. 네가 살고 내가 맞아 죽을 수도 있으니까.]
혁련소는 연무진의 눈동자가 급격히 빛을 잃어 가는 것을 보았다.
서서히 감기는 그의 눈동자가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연유극의 얼굴이었다.
또르륵!
굵은 눈물이 연무진의 뺨을 타고 흘렀다.
‘그렇게 좋아했으면 평소에 감정을 표현할 것이지. 어리석기는…….’
혁련소는 연무진의 눈물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를 향한 반항은 그저 겉모습일 뿐이었다. 그것도 훨씬 더 큰 사랑이 존재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소교주!”
포중삭이 거칠게 부르짖었다.
하지만 늘어진 연무진은 빠르게 체온이 식어 갔다. 지켜보던 연유극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지만 입은 굳게 다물어진 채 벌어질 줄 몰랐다.
“눈을 뜨시오, 소교주!”
포중삭이 연무진의 심장을 미친 듯 주무르며 눈물을 펑펑 쏟아 냈다. 혁련소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죽지 않습니다.”
“뭣이!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
포중삭의 고개가 황급히 혁련소를 향해 돌아갔다.
혁련소는 자신을 바라보는 연유극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무진이 말했습니다. 긴 잠을 자고난 뒤에 다시 돌아오겠다고.”
“놈이 네게 그렇게 말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연유극이 몸을 일으켰다.
혁련소의 시선이 그를 쫓았다. 느릿하게 몸을 일으킨 연유극은 늘어진 연무진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러고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언제나 그랬지만 너를 믿는다.”
혁련소가 한마디 하고 나섰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소용이 없습니다. 놈이 깨어나면 그때도 지금처럼 대해 주셔야겠습니다. 그동안 놈이 상당히 힘들어했으니까요.”
혁련소의 말에도 연유극은 연무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잠시 그대로 섰던 그가 몸을 돌렸다.
혁련소가 말했다.
“거래를 하시지요.”
“…….”
“교주님 때문이 아닙니다. 한 달 남짓 사귄, 친구 놈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극마전이라고 했습니까? 하겠습니다. 무진을 대신해서 제가…….”
연유극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굳게 다물어진 입술이 살짝 떨림을 보였다.
“조건은?”
물어 오는 목소리는 흥분을 억제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에 반해 혁련소는 지극히 담담했다.
“무진이 돌아오면 그땐 제 갈 길을 가겠습니다. 물론 무조건 들어주셔야 할 조건이지요.”
“네가 손해 보는 거래가 아니냐.”
“의리 때문이라고 해 두죠.”
연유극은 말없이 혁련소를 직시했다.
혁련소도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연유극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래가 성사되는 순간이었다.
연유극이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혁련소는 포중삭의 품에 늘어져 있는 연무진을 응시했다.
그가 마치 이렇게 외치는 것 같았다.
[고맙다.]
“많이 고마워해야 할 거다.”
* * *
극마전을 이기기 위한 방법은 무척 간단했다.
첫째, 다른 출전자들이 모두 포기하는 경우.
둘째, 다른 출전자들을 제압하는 경우.
신교의 주인을 가리는 것치고는 아이들의 장난처럼 극히 간단했다.
하지만 간단하면서도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했다.
최종 본선에 오르기 전에 이미 수많은 위험을 거쳐야 했고, 약하거나 능력이 없으면 출전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이 극마전이기에 최종 본선에 오른 후보들은 그만큼 검증된 자들이라 볼 수 있었다.
초마전의 후계자와 검마전의 후계자, 그리고 소교주 연무진이 최종 후보에 오른 자들이었다.
너무나도 간단한 방식에 혁련소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자신의 거처에서 그것에 대한 말을 건넨 연유극이 물었다.
“두렵지 않느냐?”
“아니라면 거짓말이겠지요.”
“그들은 강하다. 어쩌면 당대의 전주들과 동격의 경지를 밟고 있을 수도 있다. 그만큼 이 자리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고 봐야겠지.”
미간을 찌푸린 혁련소가 연유극을 보며 물었다.
“무진과는 단 이십 일 정도를 지냈을 뿐입니다. 솔직히 승낙은 했지만 제 자신도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도 네가 이해되질 않겠지. 사는 게 그런 것이다. 백 년을 함께해도 믿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단 하루를 지내도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그런 사람도 있는 법이다. 무진에겐 네가 후자에 속했겠지.”
“영광이군요.”
머쓱한 표정을 지은 혁련소를 가라앉은 시선으로 주시하던 연유극이 나지막이 물었다.
“너의 출신을 묻지는 않겠다. 대신 극마전을 이긴다면 한 가지 부탁이 있다. 들어줄 수 있겠느냐?”
“제가 극마전을 이겨 교주의 위에 오른다고 해도 사실상 실권은 교주께서 지니게 될 것입니다. 교에 대한 부탁이라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만.”
“내가 실권을 지니게 된다? 왜 그렇게 말하는 것이냐?”
“어차피 무진이 회복되면 그에게 돌려줄 생각입니다. 뭐 이긴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한다는 자체가 우습지만 제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천하인들의 주목을 받는 이런 자리는 제가 싫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혁련소를 연유극은 무거운 표정으로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