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1
<귀환무사 231화>
귀환무사 2부
6화
혁련소는 손으로 턱을 강하게 움켜쥐며 싸늘히 경고했다.
“말하지 않으면 죽는 것을 부러워하게 만들어 주지.”
“크흐흐! 역시 강한 놈이었군.”
“뭐?”
“소교주가 대리인을 데리고 왔음은 교내의 모든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다.”
혁련소의 눈이 섬광을 발했다.
‘대리인? 대리인이라니…….’
아주 짧은 생각을 하는 그 찰나에 눈앞의 인물은 자신의 혀를 절단 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의 죽음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몸을 돌리는 그의 머릿속은 연무진에 대한 불길함으로 가득했다.
“그가 위험하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연무진의 거처를 향해 전속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 *
자신의 가슴을 관통한 검을 내려다보는 연무진의 눈동자는 불신으로 가득했다.
눈에 익은 검, 아니 검보다는 검의 주인을 더 잘 알고 있었다.
온기가 빠져나가기 시작한 육신은 고개조차 들기 힘들 정도로 급속히 죽어 갔다.
“왜…….”
간신히 입을 뚫고 나온 말은 많은 것을 묻고 있었다.
“천하만마를 위해 죽는다고 생각하면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다.”
푹!
가슴을 뚫은 검이 등 뒤로 빠져나왔다.
연무진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고독하고 외로웠던 자신의 인생에 유일하게 웃음을 준 혁련소의 얼굴이 아버지의 그것보다 먼저 떠오른다.
죽는 것보다 그와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이 더욱 그를 슬프게 했다.
“모처럼 인생이 살 만하다 여겼는데…….”
주르륵!
입가를 타고 흘러내리는 피.
더불어 빛을 잃어 가는 눈동자는 연무진의 삶이 다했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연무진의 고개가 옆으로 떨어졌다.
가늘게 떨리던 눈빛이 회색으로 변하며 그의 삶도 막을 내렸다.
“너의 나약함이 나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들었구나.”
연무진의 몸에서 검을 뺀 인물은 한동안 연무진을 응시하고선 유령처럼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잠시 후,
쾅!
벽을 뚫고 누군가 들어섰다.
* * *
혁련소는 연무진을 안고 교주전(敎主展)으로 달렸다.
교주전이 어디 있는지 그는 몰랐다. 하지만 무조건 내달렸다. 달려가다 눈에 띄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 물어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죽지 마라, 무진!”
죽은 줄 알았던 연무진이 미세한 진기로 숨이 붙어 있음을 알고서는 무작정 업고 달리는 중이다.
[좌측으로 가면 그곳이 교주전이다.]
어느새 돌아왔는지 숙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혁련소는 지체 없이 방향을 틀었다. 고맙다는 전음조차 할 겨를이 없었다. 거대한 전각을 돌아서자 붉은색으로 칠을 한 거대한 전각이 모습을 나타냈다.
교주전(敎主殿).
분명 정문에 쓰여 있는 글씨는 교주전이라 적혀 있었다.
“쾅!”
정문이 산산조각으로 박살이 나 버렸다. 달려들던 속도 그대로 부수고 들어간 혁련소는 곳곳에서 날아드는 공세들을 향해 반응할 겨를조차 없었다.
“멈춰라!”
전방에서 강대한 기운 셋이 그의 앞을 가로막고 나타났다.
“비켜!”
“헉! 소교주님!”
막아섰던 자들 중 하나가 허파에 바람 빠지는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혁련소의 다급한 눈빛을 읽은 셋은 이내 길을 비켜 주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먼저 전각 안으로 몸을 날렸다.
팟!
전각을 들어선 혁련소는 앞을 달려가는 자의 뒤를 쫓았다. 그러기를 조금이 지나자 강대한 기의 흐름이 앞쪽에서 일렁거림을 느꼈다.
쾅!
앞쪽의 문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날아가며 연유극이 모습을 드러냈다.
혁련소의 등에 업힌 연무진을 본 그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혁련소는 연유극의 앞에 연무진을 내려놓았다.
“상태가 위중합니다!”
연유극은 아들의 얼굴만을 직시한 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미 분노하고 있었다.
교주의 호위무사들이 황급히 들어와 연무진을 안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뒤이어 분노를 억누른 무거운 목소리가 두터운 입술을 뚫고 흘러나왔다.
“어찌 된 일이냐?”
“암습을 당했습니다.”
“암습…….”
혁련소는 연유극을 직시했다.
돌아선 그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음을 보았다. 혁련소는 그의 분노를 능히 짐작했다.
유일한 후계자가, 그것도 자신이 지배하는 신교에서 암습을 당해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으니 누군들 분노하지 않을 수 있으랴.
“들어오너라.”
연유극이 몸을 돌려 자신의 거처로 향했다.
잠시 그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혁련소도 이내 그의 뒤를 따랐다.
둘이 들어선 곳에서 누군가 연유진의 몸을 매만지고 있었다.
연유극과 혁련소는 그 뒤에 나란히 섰다.
“컥!”
죽어 버린 선혈이 연무진의 뺨을 타고 턱을 흘렀다.
귀의(鬼醫) 포중삭의 손길이 재빠르게 연무진의 전신을 찍고 돌자 죽었던 연무진의 혈색이 서서히 돌아왔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신통한 의술이었다.
“소교주! 조금만 참으시오.”
포중삭의 손길은 유연하고 매끄러웠다.
한 치의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혈도의 곳곳을 빠르게 짚어 갔다.
“도대체 어떤 놈들이…….”
포중삭의 눈빛이 분노로 일렁거렸다.
악다문 입술에서 선혈이 흘러내려 연무진의 얼굴을 더럽혔다.
그 뒤에 연유극이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서서히 온기를 회복하는 아들의 얼굴을 말없이 지켜보던 그가 무심한 어조로 물었다.
“살 수 있겠느냐?”
포중삭이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연유극을 바라보았다.
“당연히 살지요. 신교가 살려면 소교주가 살아야 합니다. 잘못되면 신교든 나발이든 모조리 이 손으로 죽여 버릴 테니까 말입니다.”
연유극이 있는 자리에서 해선 안 될 말을 거침없이 해 대는 포중삭. 하지만 누구도 그를 나무라지 못했다. 그가 연무진을 어느 정도 아끼고 대해 왔는지는 전 신교의 무사들이 알고 있다.
“살려라. 반드시…….”
연유극이 돌아섰다.
포중삭의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연유극의 뒷모습을 쫓았다. 혁련소는 포중삭의 모습에서 진한 감정이 솟아남을 느꼈다.
진정으로 아끼는 자에 대한 태도를 포중삭이 보여 주고 있었다.
“따라오너라.”
연유극의 부름에 혁련소도 몸을 돌렸다.
* * *
연유극은 자신의 앞에 앉은 혁련소를 가라앉은 시선으로 응시했다.
‘단순하게 여겼거늘, 물건이었나?’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이 새삼 다가왔다.
자신 앞에서 저렇듯 태연자약할 수 있는 인물이 몇이나 될까. 더구나 혁련소는 고작 이십 대 초반 정도로밖엔 보이지 않는다.
이렇듯 담담한 기도를 보이기에는 지나치게 어린 나이였다.
연유극이 입을 열었다.
“너의 가문에 대해선 더 이상 묻지 않겠다. 네가 정도맹의 세작이라도 더 이상 거론치 않겠다. 하지만 나의 부탁 하나는 들어줘야겠다.”
혁련소가 고개를 들어 연유극을 바라보았다.
“저놈이 저렇게 되었으니 네가 대신 극마전에 나서야겠다.”
“예?”
혁련소의 얼굴이 놀람으로 물들었다.
극마전의 참가라니? 그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무진을 대신해서 네가 나서란 말이다.”
“저는 신교의 무사가 아닙니다. 더구나 극마전에 나설 만한 실력이 되질 않으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소속은 문제가 아니다. 본좌가 내세우면 그것으로 자격은 충분한 것이고, 실력이야 결코 무진의 아래가 아님을 알고 있다.”
혁련소는 말없이 연유극을 응시했다.
한번 뱉은 말을 거둘 존재가 아님을 알기에 내심 매우 난감했다.
자신은 강호의 일에 끼어들어선 안 되는 존재다. 아무리 무진과 관련된 일이라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무진의 벗으로 이곳에 온 것뿐입니다.”
혁련소의 단호한 태도에 연유극은 얼굴을 실룩거렸다.
그에게 극마전의 참가를 부탁하는 것이 무리한 것임은 알고 있다.
하지만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이 극마전이다. 수백 년간 이어 온 불패의 전설을 자신의 대에서 마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한 것이 있다. 어쩌면 신교의 존망을 결정지을, 그로서는 무조건 막아 내야만 하는 중대사였다.
혁련소가 말했다.
“암습에 의한 부상이니 무진이 완쾌될 때까지 기한을 연기하시면 될 일이 아닙니까?”
“암습까지도 정당한 대결로 보는 것이 이곳이다. 본좌가 비록 신교의 주인이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불문율이다. 그리고 극마전이 무슨 일이 있어도 제날짜에 열려야 하는 것 또한 깨져선 안 될 철칙이기도 하다.”
“이해할 수 없군요.”
“신교란 그런 곳이다. 약하면 절대 살아남지 못하는 강자존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곳이지. 무진은 그것을 싫어했다. 어렸을 적부터 놈은 생명을 사랑하고 약자를 도우며 사는 것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지. 바보 같은 놈.”
연유극의 전신이 가늘게 떨렸다.
혁련소가 이채를 발했다.
‘알고 있었단 말인가?’
세상에 알려진 신교주의 또 다른 모습에 혁련소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생각에 빠진 그의 귓속으로 연유극의 말이 이어졌다.
“놈들이 극마전을 이기게 된다면 천하는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당장에 무사들을 이끌고 중원으로 내달릴 그들을 막을 명분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혁련소의 눈이 다시 빛을 발했다.
‘천하를 걱정하는 신교주라…….’
연유극의 말이 이어졌다.
“천하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신교를 걱정하는 것이지. 지금 세상에 나가면 신교는 전멸을 피하지 못한다. 수백 년을 통치해 온 가문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정도맹과 신교의 전력이 비슷하다고 알려져 있던데, 아니었습니까?”
“신교를 무시하느냐? 놈들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럼?”
“신마, 그가 신교의 중원 침공을 가만히 지켜보지는 않겠지. 만약에 그가 정도맹의 손을 들어준다면 그땐…….”
연유극이 말을 다 잇지 못했다.
뒷말이야 굳이 듣지 않아도 혁련소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내심 실소를 금치 못했다.
천하의 연유극이 두려워하는 곳, 신마성.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을 그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곳에서 온 것을 알면 가관이겠군.’
신교 멸망을 손에 틀어쥔 존재의 혈육에게 신교를 부탁한 것을 알게 된다면 연유극은 어떤 태도를 보일까?
혁련소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들은 세상일에 관여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만.”
“알 수가 없지. 관여를 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관조자의 입장으로 그저 방관하는 것인지…… 하지만 신교의 중원 진출이 그들을 자극하는 결과를 초래해서 그들의 시선을 중원으로 돌리게 한다면…….”
“그땐…… 멸망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