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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230화 (228/425)

# 230

<귀환무사 230화>

귀환무사 2부

5화

“닥치지 못할까!”

연유극이 불길이 일렁이는 눈으로 연무진을 노려보았다.

연무진은 조아린 머리를 들지 않았다.

연유극이 잠시 노한 눈빛으로 연무진을 노려보더니 이내 몸을 돌렸다.

“이틀 남았다. 모든 것은 네게 달렸으니 말하지 않아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네 스스로가 더 잘 알 것이다. 실패하면 그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누구보다 네놈이 더 잘 알고 있을 터! 스스로 모든 것을 감당해 내야 할 것이다.”

쾅!

연유극이 거처를 나가자 연무진은 자신의 침상에 털썩 주저앉으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조치양의 얼굴은 안타까움으로 가득했다. 그는 연무진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위로했다.

“저분의 속내를 헤아려야 합니다.”

“솔직히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연무진의 대답에 조치양은 고개를 저었다.

“소교주, 어찌 그런 나약한 말씀을 하십니까.”

“노력은 해 볼 테니 군사께서도 이만 물러가십시오.”

연무진을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은 조치양은 이내 허리를 숙여 보이고서 걸음을 돌렸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우두커니 한쪽에 서 있던 혁련소는 연무진을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얼굴이 붉어진 연무진은 화를 삭이려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젠장!”

지켜보던 혁련소의 미간이 좁혀진다.

짧은 시간에 제법 마음이 통했던 벗의 고뇌를 그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해서 그저 묵묵히 지켜만 보았다.

이럴 땐 그저 가만히 놔두는 게 상책이라는 것쯤은 익히 배워서 알고 있었다.

* * *

짧은 머리에 장대한 체구, 그리고 연신 강렬한 불꽃을 뿜어내는 눈동자.

사내는 자신의 대도에 비친 얼굴을 보며 차갑게 중얼거렸다.

“그냥 돌아오지 않았으면 죽지는 않아도 되었을 것을. 멍청한 자 같으니…….”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곳의 중앙에 거대한 바위가 버티고 있었다. 바위를 향한 사내의 시선이 섬광을 발했다.

“연무진, 너의 그 나약함이 나에게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이다.”

사내의 대도가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는 사내, 염천양이라는 이름을 지닌 사내는 초마전(超魔戰)의 후계자이자 신교의 성좌를 꿈꾸는 야망의 화신이었다.

푸스스스!

거대했던 바위가 먼지로 화해 바람에 흩날린다. 사내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다시금 떠오른다.

“이것으로 네놈의 패배는 결정되었다.”

초마전기(超魔電氣)!

극성에 이르면 하늘도 가른다는 비전절기의 완성은 염천양에게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져다주었다.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던 염천양의 육신이 어느 순간 흐릿하게 변하며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잠시 후!

염천양이 섰던 곳의 주변이 일렁거리며 흑발에 창백한 얼굴을 한 사내가 그가 섰던 자리에 유령처럼 모습을 나타냈다.

전신에서 퇴폐적인 음습함이 묻어나는 사내의 칼날 같은 예기를 품은 시선이 염천양이 사라져 간 곳을 향한 채 가볍게 흔들렸다.

마치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주변과 동화된 모습을 보이는 사내는 고개를 돌려 먼지로 화해 버린 바위의 흔적을 쫓았다.

‘극성에 이른 초마전기라…….’

사내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무엇이 그의 기분을 좋게 했을까? 떠오른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이 정도는 되어야 이 적용사문의 적수라 할 만하지.”

사내의 시선이 바닥을 덮은 바위 가루를 향했다.

그러자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꿈틀거리는 가루들이 일제히 허공으로 솟구치며 하나의 형상을 이루었다.

염천양이 가루로 만들어 버린 바위의 모습, 그대로였다. 앞으로 내민 사내의 검에서 백색 섬광이 번쩍였다.

번쩍!

그리고 사내는 돌아섰다.

“꿈 깨라, 염천양. 누가 뭐래도 극마전의 승자는 나, 적용사문이 될 테니까.”

적용사문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가 섰던 자리엔 염천양에 의해 가루가 되어 버렸던 바위가 예전의 모습으로 세워져 있었는데, 햇빛에 반짝이는 바위의 표면은 얇은 얼음으로 덮여 있었다.

* * *

천산(天山)에 걸린 만월(滿月)로 인해 산의 정상은 부러질 듯 위태함을 자아냈다.

산의 정상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눈의 결정체들이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으며 눈을 어지럽혔고, 가끔 한 번씩 보이는 유성은 우주에 대한 경외심마저 불러일으켰다.

창문을 열어 놓고 천산의 신비로움을 만끽하고 있던 혁련소가 느닷없이 말했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누구에게 묻는 것일까?

연무진이 별도로 내준 거처에는 분명 그 혼자만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등 뒤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나타났다.

뒤이어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팔자 한 번 늘어졌군.”

“제 팔자야 언제나 늘어졌지요. 덕분에 숙부님이 고생이 많습니다.”

“언제 돌아갈 것이냐?”

“글쎄요. 아직은…….”

“내가 널 묶어서 데려 갈 수도 있다.”

“후후! 그러지 않으실 거라고 믿습니다.”

“확신은 금물이지. 언제라도 주공이 명을 내리시면 너를 꽁꽁 묶어서 성으로 돌아갈 것이다.”

코끝을 슬쩍 찡그린 혁련소가 뒤를 돌아보며 웃었다.

“술이나 한잔할까요? 숙부님!”

“좋지.”

“안주는 없습니다.”

그림자가 자리에 앉자, 혁련소는 거처의 구석에서 술병을 들고 왔다.

출출하면 마시라고 연무진이 들여보낸 빙설로였다. 만월의 빛을 받으며 둘은 술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비록 벗의 초대로 온 신교라지만, 그래도 세상의 무섭다는 자들은 모조리 모여 있는 곳에서의 술자리는 특별한 맛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놈과 언제까지 엮여 있을 셈이냐?”

“글쎄요. 극마전이라는 것, 그것은 보고 가야겠지요.”

“위험할 수도 있다.”

“무진이 패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뭐, 숙부님이 계시니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그림자의 얼굴이 피식 웃음을 보인다.

“나 아니더라도 충분하지 않느냐?”

“아직은 멀었습니다.”

빙설로가 몇 잔 들어가자 속이 뜨거워짐을 느낀 혁련소는 찬 공기를 들이마시고는 한 잔을 더 마셨다.

그림자의 눈이 빛을 발했다.

“돌아가면 그분의 모든 것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분 말고 너를 이길 자는 없겠지. 좋지 않으냐?”

“천하에 적수가 없을 정도로 강해진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적당히 강해져서 적당히 살면 그게 제일인 것 같습니다.”

연무진과 있을 때와는 달리 혁련소의 말수가 제법 많았다.

어둠 속에서는 무적이라는 눈앞의 존재는 그에게 부모와 같은 존재이자 사부이기도 했으며, 때로는 친구이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든든한 호위이기도 했다.

“세상은 알 수 없는 법이다. 지금은 비록 그분을 넘어설 자가 없으나 어떤 불가해한 존재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너는 그런 때를 대비해서 더욱 강해져야 한다.”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그분이 구한 세상이다.”

술잔을 꺾은 혁련소가 눈가에 주름을 잡으며 다시 물었다.

“구해 주었으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닙니까? 이제는 강호인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보호하고 지켜 나가게끔 하는 것이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단호한 어조로 말했던 혁련소는 숙부라고 칭한 존재의 눈이 섬광을 발하는 것을 보았다.

[누가 붙었군.]

전음성을 듣는 순간 그림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혁련소의 눈이 그제야 섬광을 발하며 뒤로 돌아갔다.

미세한 기운들이 자신이 있는 거처의 외벽을 타고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를 노린 건가?’

이곳에 자신을 아는 자는 전무했다.

그는 기척을 숨기고 그 자세로 가만히 앉아서 상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들이 야밤에 자신을 찾은 이유가 내심 궁금했다.

‘살수들인가?’

그렇게 생각하기엔 이곳에 온 시간이 너무 짧았다.

이제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이다. 의문이 구름처럼 솟아났다. 자신은 소교주의 손님이다.

그런 자신에게 야밤의 은밀한 접근은 결코 좋은 뜻을 가졌을 리 없다.

‘복잡한 곳에서 살고 있었군.’

그는 연무진의 그늘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둘이다. 그것도 상당히 강한 놈들이야.]

전음성이 다가드는 존재들의 위험성을 알려 주었다.

그가 상당히라는 수식어를 붙였다면 정말 강한 자들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때, 창을 통해 쏘아지는 강력한 두 줄기 강기가 그의 가슴과 목을 노리고 들었다.

혁련소의 눈이 섬광을 발하며 창 쪽으로 날아갔다. 날아들던 강기는 이미 그의 손짓에 소멸되어 버렸다.

와장창!

창이 박살 나며 혁련소의 육신이 창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갔다.

재빨리 사방을 둘러본 그의 눈에 좌우로 갈라서 도주하는 그림자 둘이 보였다.

[오른쪽을 맡아라.]

언제나 알아서 움직이는 존재의 전음성에 혁련소는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머금었다.

고개를 끄덕인 그는 이내 우측을 달리는 그림자를 향해 몸을 날렸다.

팟!

엄청난 속도의 경공은 자신을 보호해 주는 전음성의 주인공이 가르쳐 준 것이다.

경공의 정점이라는 이형환위를 보통의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빠르기로 그림자를 쫓았다.

‘야습을 한 자 치고는 지나치게 빠르군.’

상대의 속도가 보통이 아니었다. 자신의 경공을 감안하면 금방 잡혔어야 할 대상은 지금도 방향을 바꾸어 가며 십여 장 앞을 달리고 있었다.

갈지자로 내달리는 그림자는 좀처럼 잡히질 않았다. 직선을 달리면 금방 잡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는 지형지물을 교묘히 활용하며 도주하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

뇌리를 스쳐 가는 불길함. 혁련소는 전력을 끌어올려 그림자를 향해 직선으로 뻗어 갔다.

진로를 방해하는 건물이나 나무들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허공을 가르는 바람 소리가 울리며 도주하는 인물과의 거리가 공격 범위 안으로 좁혀졌다.

“멈춰!”

쐐액!

혁련소의 손끝에서 발출된 강력한 지력(指力)이 그림자의 등을 노리고 날아갔다.

퍽!

“윽!”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가던 그림자가 휘청거리며 꼬꾸라짐과 동시에 혁련소가 떨어져 내렸다.

어깨를 관통당한 인물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바닥을 기었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보냈지?”

혁련소는 발로 바닥을 기는 자의 얼굴을 들었다.

핏빛으로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혁련소를 노려보는 인물은 순식간에 자신의 혀를 물었다.

퍽!

“끄윽!”

하지만 혁련소의 발길질이 그것을 막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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