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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229화 (227/425)

# 229

<귀환무사 229화>

귀환무사 2부

4화

허리를 숙인 인물의 시선이 사내를 좇는다. 사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마디 뱉었다.

“돌아오면 수련동에 가두도록 해.”

몸을 일으킨다 싶은 순간 사내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허리를 편 인물이 그때야 한숨을 내쉰다.

“소주에 대한 믿음이 이제야 생기셨나 보군.”

전귀들의 대지, 신강으로 들어선 것에 대한 걱정 따위는 손톱만큼도 보이질 않는다.

자신도 소주인에 대한 걱정은 없다. 무적의 호위무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항시 지켜보고 있으니 신교라도 자신의 소주인을 어찌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인물은 사내가 사라져 간 방향을 응시하며 가볍게 웃었다.

“허허! 수련동이라…….”

그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가란다고 고분고분 들어갈 혁련소가 아니다.

무사들을 두들겨 패고 다시 도망치지만 않으면 다행인 것이다. 머리가 아파 오자 손으로 머리를 툭 치고선 휘적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네놈도 수련을 더 해야겠구나. 세 번은 들켰다, 이놈아! 쯧쯧쯧!”

그가 허공에다 대고 핀잔을 주고서 걸음을 옮기자 공간이 흔들리며 사람의 형상이 쑥 튀어나왔다.

얼음장처럼 차갑게 생긴 청년이었다.

“젠장…….”

인물이 사라져 간 방향을 보며 인상을 구긴 청년은 고개를 숙이고서 같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세 번 걸렸으니 삼 일 동안을 수련동에 갇혀야 한다.

그곳이 얼마만큼 힘든 곳인지 잘 알고 있는 청년은 눈앞의 인물이 귀가 밝음을 저주했다.

“백 년을 더 산 노인네가 귀도 밝지.”

앞서 가던 인물이 움찔하는 것이 보이자 청년은 흠칫하며 자신의 입을 막았다.

청년에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을 둘 꼽으라면 눈앞의 노인과 무단 가출을 한 작은 주인이다.

이유는 그만이 알 뿐이다.

“네놈의 그 입 때문에 육 일로 늘어났다.”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삼 일 더 늘어났다.”

* * *

연무진은 자신의 뒤를 느릿하게 따라오는 혁련소를 돌아보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첫 패배를 안겨 준 그였지만, 벗의 따뜻함이 느껴지자 연무진은 살아오면서 지금처럼 좋은 적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어때? 한잔하고 갈까?”

“좋지.”

“저 산을 넘어가면 꽤 괜찮은 객잔이 있으니 그곳에서 내가 한잔 사지.”

연무진은 눈앞에 펼쳐진 장대한 산을 바라보았다.

천년빙설이 정상을 덮고 있는 장대한 산은 자신의 고향이자 모든 것이 존재하는 곳. 그러나 연무진의 얼굴은 이내 어둡게 가라앉는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부친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자신을 노리고 칼을 가는 존재들의 모습 또한 부친의 얼굴과 어우러져 함께 나타났다.

‘그놈의 극마전만 아니라면 이 친구와 더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텐데…….’

극마전(極魔戰).

신교의 가장 큰 행사인 그것을 위해 자신은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권력과 영광, 그리고 가문의 자존심이 자신의 어깨에 달려 있었다. 수백 년을 이어 온 극마전의 역사에서 자신의 가문은 단 한 번의 패배조차 없었다.

그 역사를 자신이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젠장.’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싫었다.

연무진은 고개를 돌려 혁련소를 다시 돌아봤다.

여전히 그는 하늘을 보며 느릿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 여유로움이 연무진은 너무나 부러웠다.

살짝 시기심마저 올라왔다.

“달려 볼까?”

“또?”

“자네의 그 느긋함이 보기 싫어서 말이야.”

“별종이군.”

“내가 원래 좀 그래.”

휘이익!

이번에도 연무진이 먼저 달렸다.

혁련소가 그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너만큼 나도 별종이거든.”

쾅!

바닥을 차고 오른 혁련소의 육신이 쏘아진 화살처럼 날아갔다.

* * *

맹독을 지닌 독사(毒蛇)를 독한 화주에 넣어 십 년을 묻어 놓으면 독과 주정(酒精)이 어우러져 기막힌 맛을 낸다.

그것을 꺼내 천산의 빙설과 섞어 마시면 그야말로 천하제일의 명주로 탄생하니 사람들은 그것을 가리켜 빙설로(氷雪露)라고 불렀다.

천산 인근에서만 구할 수 있는 빙설로는 연무진이 가장 좋아하는 술이었다.

천산객잔이라는 곳을 찾은 연무진과 혁련소는 빙설로를 벌써 다섯 병째 마시고 있었다.

“역시 최고야.”

연무진이 연신 감탄사를 내뱉기 바쁘다.

빙설로와 가장 궁합이 잘 맞는다는 산양을 저민 육포를 한 입 한 연무진은 마주 앉은 혁련소를 보며 물었다.

“그곳은 어때?”

“뭐가?”

“사람들 살아가는 것 말이지. 모든 이들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무척 궁금한데?”

혁련소가 피식 웃는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 별거 있나?”

“솔직히 그곳을 한 번이라도 구경하고 싶은 것이 내 소원이지. 군림천하를 이룬 사람들의 생활이 어떤지 무척 궁금하거든…….”

“똑같아. 수련하고 또 수련하고…… 그러다가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 더 강한 것을 얻기 위해 또 수련하고…… 그야말로 죽을 맛이지.”

말을 늘어놓던 혁련소의 눈가에 슬쩍 주름이 잡혔다.

‘지금쯤 나를 잡아 오라는 명이 떨어졌겠지?’

도망쳐 온 자신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을 호위무사들이 떠오르자 저절로 탄식이 쏟아졌다.

제2장 신교 입성

신교주, 연유극의 얼굴이 다소 밝아졌다.

지난 밤 그토록 애를 태웠던 아들이 돌아온 것이다.

오자마자 인사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쾌함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저 돌아온 것이 좋을 뿐이었다.

“이틀을 남겨 놓고 돌아오다니, 괘씸한 놈!”

입은 그렇게 말을 했으나 얼굴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조치양이 고개를 조아리며 입을 열었다.

“그동안 내색은 못했지만 속하, 십 년은 더 늙은 것 같습니다.”

“놈이 극마전을 승리하면 보상이 되겠지.”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조치양이 확신하자 연유극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초마와 검마의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극마동(極魔洞)에서 수련 중이라 들었습니다. 극마전이 이틀이 남았으니 오늘쯤이면 교주님을 뵈러 올 것입니다.”

연유극의 눈동자가 섬광을 발했다.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아이들을 배출했다고 하더군. 힘든 승부가 되겠지?”

“소교주를 믿으십시오. 비록 여린 마음이 걸리기는 하지만 누구보다 뛰어나신 분입니다. 분명 교주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야겠지.”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으며 턱을 쓰다듬는 연유극을 지켜보던 조치양이 고개를 조아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벗을 한 분 데리고 오셨습니다.”

“벗이라니?”

“중원에서 만나신 듯합니다. 그다지 위험해 보이지 않으니 그냥 모른 척하시지요.”

연유극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정파의 아이라면 곤란하지 않겠느냐? 자칫 상대에게 꼬투리를 잡힐 수도 있지 않느냐?”

“곤란한 일이 생기면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으니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연유극의 안면 근육이 실룩거렸다.

“놈! 한 번도 그냥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군.”

“젊음이 그래서 좋지 않습니까?”

“그대는 그게 탈이다.”

연유극은 조치양의 저러한 모습이 불만이었다. 언제나 연무진을 감싸고도는 그 때문에 버릇은 물론이고 소심하고 나약하게 변했다고 여겼다.

연유극이 몸을 일으켰다.

“놈에게로 가겠다.”

“모시겠습니다.”

둘은 빠른 걸음으로 연무진의 거처로 향했다.

* * *

혁련소는 사방을 둘러보며 탄성을 발했다.

“멋지군.”

마교의 건축물들은 그의 놀람을 끌어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척박한 지형에 황궁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성곽과 전각들은 신교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대변하듯 했고, 곳곳에서 느껴지는 강대한 기운들은 역시 이곳이 천하만마(天下萬魔)의 중심임을 여실히 느끼게 해 주었다.

연무진이 문득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피의 역사로 세워진 곳이지.”

“네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사실을 말하는데 뭐가 어때서.”

“누가 보면 이곳을 무척 싫어하는 사람처럼 보일 거다.”

“맞다, 싫어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연무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창가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 그의 뒷모습이 왠지 그늘져 보이자 혁련소의 눈동자에 이채가 나타났다.

연무진이 씁쓸한 어조로 말을 늘어놓는다.

“그냥 치열한 삶이 싫을 뿐이야. 태어나면서부터 사람을 죽이는 방법만을 배우는 곳이 이곳이지. 싸워서 이겨야만 존재할 수 있고, 약하고 도태된 자들은 스스로 죽어 가는 이곳이 언제부턴가 싫어지더군. 물론 이런 나를 이곳의 사람들은 나약한 존재라 비웃고 있지.”

“확실히 의외군. 그 입에서 그런 소리라니…….”

“네 말처럼 신교도라면 이런 말을 해선 곤란하겠지. 솔직히 네가 아니면 누구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생각 잘 해라. 난 어쩌면 너희 신교와 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 말에 연무진이 피식 웃었다.

혁련소가 말을 이었다.

“위치에 따라서 자신을 바꾸어야 할 때도 있어. 책임과 의무란 그럴 때를 두고 나온 말이지. 강자일수록 더 많은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법이고.”

연무진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마치 우리 아버님처럼 말하는군.”

“아버님이 옳으신 거다.”

“그래, 그렇겠지.”

연무진의 그늘이 더욱 짙어졌다.

그늘은 이내 우울함으로 바뀌었고, 그것은 막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던 연유극의 노기를 불러 왔다.

“나약한 놈!”

나지막한 호통 소리에 연무진이 돌아섰다.

연유극의 노기 어린 눈동자가 그의 전신을 쓸었다. 고개를 조아린 연무진은 그의 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며 허리를 숙이고만 있었다.

연유극의 시선이 혁련소를 향해 돌아갔다.

“벗이라고 들었다.”

“혁련소라고 합니다.”

연유극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자신의 신분을 알고서도 이렇듯 당당한 태도는 근 십 년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는 외부인이 함부로 들어올 곳이 아니다. 어디서 온 누구의 자손이더냐?”

“마땅히 내세울 만한 가문이 아닌지라…….”

“제 벗입니다. 어찌 사소한 것을 물으십니까.”

연무진이 거들었다.

머리는 조아렸지만 목소리에서는 반항기마저 얼핏 묻어났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함부로 허락 없이 외부인을 들이다니…… 도대체 네놈은 정신이 있는 놈이냐!”

“피해를 줄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말씀드리지 않았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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