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8
<귀환무사 228화>
귀환무사 2부
3화
“잡혀가다니? 누구에게?”
“극성스러운 숙부님들.”
“혹시 몰래 가출을 한 건가?”
“…….”
“하하하하!”
연무진은 눈물까지 머금고서 크게 웃었다
가볍게 일그러진 얼굴로 그를 바라보던 혁련소가 씁쓸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려 버렸다.
연무진은 자신이 이렇듯 통쾌하게 웃어 본 지가 언제인지를 새삼 떠올렸다. 철이 들어 세상을 알아 버린 이후론 처음이었다.
“알았다! 내 입에 주술을 걸어서라도 절대 너의 신분을 말하지 않겠다. 으하하하!”
“그만 좀 웃지 그래.”
일그러진 혁련소를 보며 연무진은 더욱 크게 웃었다.
* * *
둘은 산 하나를 넘어 또 다른 산의 초입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산동에서 신강까지는 엄청난 거리다.
며칠 사이에 호북을 가로지르고 있는 그들은 한 달 남짓 안에 신강까지 가야 했다.
연무진의 극마전 참가 때문이다.
잠시 말없이 질주하던 혁련소가 눈빛을 발했다.
“누가 우릴 기다리는군.”
“응?”
연무진이 그를 돌아보며 의아한 빛을 보인다.
자신에겐 아무런 기척이 들리질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그도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을 발했다. 전방의 숲속에서 느껴지는 기운, 수십 명으로 보이는 일단의 무리들이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연무진이 혁련소를 돌아봤다.
‘대단하군.’
자신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무리들의 기척을 감지한 그의 경지가 새삼 놀라웠다.
감탄의 빛을 품은 연무진의 귓속으로 전음이 들려왔다.
[그냥 지나치는 것이 좋겠어. 약한 자들이야.]
연무진은 고개를 돌려 길을 막아서고 있는 무리들을 보았다.
하나같이 흉험한 빛을 품고 있는 그들의 기운이 그다지 대수롭지 않아 보이자 고개를 끄덕였다.
[산적들로 보이는군. 칼을 뽑는 것조차 아까운 놈들이니 자네 말대로 그냥 가도록 하지.]
연무진이 쉽사리 응하자 혁련소가 이채를 발했다.
신교의 인물이라면 자신들을 막아선 무리들을 도륙을 내는 것이 정상이다.
그가 연무진에게 전음을 보낸 것은 쓸데없는 살육을 염려해서인데 의외로 연무진이 쉽게 자신의 뜻을 받아들이니 조금은 의아했다.
‘확실히 의외군.’
신교의 소교주라는 지위에 걸맞지 않은 연무진의 심성은 여전히 그에게 낯설었다.
역시 사람은 겪어 보기 전엔 절대 평가해선 안 된다는 선인들의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질주하는 둘과 길을 막아선 자들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들었다.
무리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손짓을 하며 뭐라고 떠드는 것이 혁련소의 눈에 보였다.
‘산적이라도 눈은 제대로 박혔군.’
무리들의 대화를 들은 혁련소의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고수다. 도망가자.’ 라고 떠들던 우두머리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달려가는 속도를 보고서 알아본 모양이다. 산적치고는 상당한 경험이 있는 듯 보였다.
무림인들을 터는 산적들은 대부분이 숫자상의 우위를 믿고 덤벼들다가 몰살을 당한다. 저 정도의 빠른 반응이면 적어도 한두 번은 그런 일을 겪어 본 자들이 분명했다.
숲속으로 황급히 사라지는 무리들을 보며 연무진이 웃음을 지었다.
“산적치고는 보는 눈이 제법이군.”
“그러게.”
“그만 가 볼까?”
“그러지.”
파앗!
바닥을 차고 오른 둘은 순식간에 무리들이 섰던 곳을 지나 산의 깊숙한 곳으로 내달렸다.
돌아가는 것보다는 산을 가로지르는 것이 훨씬 시간이 단축되기에 둘은 쉬지 않고 산의 능선과 협곡들을 가로질렀다.
* * *
반나절을 더 달린 그들은 작은 고을의 초입에 이르러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상당한 거리와 시간을 달렸던 둘은 조금의 지친 기색도 없이 고을의 객잔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평화로운 고을이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연무진이 중얼거렸다.
인가라곤 고작 스물 정도가 전부로 보이는 고을은 초저녁을 맞아 밥 짓는 연기를 곳곳에서 뿜어내고 있었고 좁은 길은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얼굴과 손이 흙먼지로 검게 더렵혀진 아이들은 혁련소와 연무진을 보고서는 신기한 눈초리로 뒤를 쫓아오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그러다가 그들이 돌아보면 걸음을 멈추고 두려운 얼굴을 하곤 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둘의 뒤를 졸졸 따랐다.
“객잔이 없겠지?”
“작은 고을이니 당연히 없겠지.”
“어쩔 수 없지. 오늘은 산에서 짐승을 잡아 노숙을 해야겠군.”
“낭만이 넘치고 좋지, 뭐.”
연무진의 말에 혁련소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을의 정취를 감상했다.
강호의 험난함과는 거리가 먼 고을의 평화로움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얼굴을 간질이는 연기와 가끔 자신들을 보고는 몸을 숨기는 동네 아낙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어디 술이나 얻어 볼까?”
“괜히 사람들 불편하게 하지 말자고.”
“기다려 봐.”
자그마한 집이 전부인 고을에서 그나마 제법 규모가 있어 보이는 집을 발견한 연무진이 눈을 찡긋하고서는 대문을 두들겼다.
끼이익!
대문이 열리며 초로의 노인이 고개를 내밀었다.
“뉘시오?”
검게 그을린 얼굴을 한 노인은 연무진을 보며 두려운 듯 움츠린 기색으로 물었다.
“지나가는 객입니다. 고을에 객잔이 없어 혹 술을 담아 놓으신 것이 있으면 조금 살까 하고 이렇게 문을 두드렸습니다.”
정파의 협객처럼 예가 넘치는 어조였다.
혁련소가 피식 웃을 정도였다. 연무진의 환한 표정에도 노인은 두려운 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술이라뇨, 저희는 절대 술을 담그지 않습니다. 그럼.”
황급히 문을 닫아 버리는 노인. 연무진이 머쓱한 표정으로 혁련소를 돌아봤다.
묵묵히 지켜보던 혁련소는 노인의 태도에 뭔가 미심쩍은 기분이 들었지만 이내 걸음을 놓았다.
뒤를 따라오던 연무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이상하군. 뭔가에 잔뜩 겁을 먹은 듯 보이는데. 그렇지 않나?”
“혹시 모르지. 관가에서 금주령이라도 내렸는지…….”
“금주령? 다른 객잔에선 모두 술을 팔았으니 그건 아닌 거 같고…… 그나저나 이거, 술도 없이 밤을 보내게 생겼군.”
혁련소는 주변을 돌아봤다.
역시나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주민들은 자신과 눈이 마주치면 숨기 바빴다.
모두가 두려움에 가득한 눈빛이다. 곳곳을 둘러보던 연무진이 다가오며 고개를 저었다.
“짐작이 가는군. 나 때문인 거 같은데? 사람들 시선을 좀 봐. 모두 나를 먼저 흘긋거리고는 자네를 보잖아.”
“그게 어때서?”
연무진이 씁쓸한 표정으로 자신의 복장을 내려다본다. 신교의 무사들이라면 누구나 어깨와 가슴 부근에 신교의 문양이 들어간 옷을 입는다.
지금 자신이 입은 옷도 마찬가지였다. 혁련소도 그제야 주민들이 극도의 불안감을 보이는 이유를 짐작했다.
“신교를 두려워하고 있어.”
“그만큼 나쁜 짓을 많이 했다는 반증이지.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이런 시선을 받게 될 줄은 몰랐군.”
연무진의 얼굴이 씁쓸하게 변해 갔다.
혁련소가 한마디 던졌다.
“네가 교주가 되어 제대로 하면 되겠지. 문파란 적어도 자신의 권역에선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야 해. 하물며 무림과는 상관없는 일반 백성들은 더더욱 그렇지.”
“그게…… 가능할까?”
연무진이 씁쓸한 표정으로 깊은 숨을 내쉬었다.
혁련소는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이런 것에 고뇌하는 신교의 소교주라니…….
‘웃기는 친구야, 확실히…….’
* * *
섬서는 예로부터 천하의 또 다른 세상인 강호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정파의 연합체인 정도맹이 그곳에 있었고, 천하구파의 핵심 세력인 화산 또한 그곳에서 거대한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곳이 섬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우선하는 존재가 그곳에 있다. 그 존재 때문에 섬서는 강호인들에게는 성역과도 같은 곳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거대한 백색의 성.
하늘의 높음을 시기라도 하듯 성의 첨탑은 구름을 두르고 오연하게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인간이되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초인(超人)의 대지는 오늘도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서 그 위대함을 고고하게 뿌려댄다.
성의 뒤쪽 능선에 눈을 시원하게 해 주는 거대한 잔디밭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는데, 그곳에 한 사내가 우뚝 서 있었다.
사내의 입이 뜨거운 숨결을 토해 냈다.
강렬한 시선은 자신의 검 끝을 주시하며 흔들렸다.
“훅!”
땀으로 번들거리는 상체는 주변 공기와의 온도 차로 인해 안개 같은 수증기를 뿜어내었고, 육신을 가득 채운 수많은 부상의 흔적들이 뱀처럼 꿈틀거린다.
검을 직시하던 사내의 눈동자가 흔들림을 멈추었다. 동시에 눈동자를 채우고 있었던 강렬한 기운도 사라졌다.
세상을 담은 듯 고요하고 깊은 사내의 눈동자에 한 인물의 영상이 나타났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다.”
철컥!
솟아나듯 나타난 인물이 사내의 검을 받아 들었다.
검을 받아 든 인물이 뒤로 물러나자 다른 인물이 나타나 사내에게 물을 내밀었다.
“그놈은 아직 소식이 없느냐?”
차가운 음성이 사내에게서 흘러나오자, 물을 내민 인물이 허리를 꺾으며 대답했다.
“태산에서 신교의 소교주와 싸움을 벌였다고 합니다.”
“신교의 아이와?”
“그렇습니다. 우연히 싸우게 되었나 봅니다.”
“죽였나?”
자신의 아들을 믿는 것일까, 아니면 신교의 소교주를 우습게 여긴 것일까.
대뜸 죽였는지를 물어 온다. 허리를 굽힌 인물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자신의 주인은 언제나 저러했고,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것이다. 그에게는 충분히 저럴 자격이 있으니까.
그는 공손히 대답했다.
“죽이지는 않았습니다만, 함께 신교로 가셨다고 합니다.”
사내의 시선이 그제야 인물에게로 돌아갔다.
세상을 담은 듯 고요하고 깊게 가라앉은 눈동자엔 아무런 감정조차 떠올라 있지 않았다.
“신강으로 갔단 말이냐?”
“벌써 지척까지 들어섰다고 전서가 전해 왔습니다.”
“이유는?”
“그것까지는…… 어쩌면 비슷한 성정으로 인해 벗이 되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신교의 소교주와 놈이 비슷한 성정을 지녔단 말이냐?”
“소주의 성정이 주공을 닮지 않으셨습니까. 신교의 작은 주인이라면 당연히 패도를 추구할 것이고, 그렇다면 두 분이 비슷한 성정이 아니겠습니까? 해서 짐작해 봤습니다.”
“내가 패도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이나?”
“세상이 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