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225화 (223/425)

# 225

<귀환무사 225화>

우드득!

“보아선 안 될 것을 보았으니 너는 죽어야 한다.”

그의 손에 목을 잡힌 어린 동자승의 육신이 움직임을 멈추고 축 늘어졌다.

동광의 육신이 유령처럼 숲 속으로 스며들었다. 봉두난발의 괴인도 그를 따라 숲으로 사라졌다.

“동광 사숙! 송유야!”

비쩍 마른 청년 승이 주변을 돌아보며 동광과 죽은 동자승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아무도 보이지 않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어딜 간 거야?”

아무리 둘러봐도 둘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청년 승의 어깨를 움켜쥐는 손이 있었다. 기겁을 한 청년 승이 몸을 돌리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하하! 나를 찾는 것을 보니 밥 때가 된 모양이군.”

환하게 웃는 동광을 보며 청년 승은 가슴을 쓸어내리는 시늉을 했다.

“송유는요?”

“송유? 그 아이를 왜 여기서 찾느냐?”

“동광 사숙을 모시러 보냈는걸요.”

동광이 껄껄 웃으며 청년 승의 어깨를 툭 쳤다.

“하하! 보나 마나 산문 밑에 고기를 잡으러 갔을 게다. 혼내지 말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꾸나!”

“끙! 그렇게 혼이 나고도 정신을 못 차렸나 봅니다.”

둘은 몸을 돌려 연무장을 걸었다.

“하하! 이놈아! 너는 안 그런 줄 아느냐? 돌아오면 그냥 모른 척하여라. 알겠느냐.”

동광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인자했다.

둘이 사라지자 산문의 좌측 숲에서 죽립을 쓴 인영이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죽립 사이로 드러난 그의 눈동자는 동광의 뒷모습을 향한 채 가늘게 흔들렸다.

“천년소림의 영광이 백척간두에 걸렸구나.”

죽립인은 시선을 들어 웅장한 소림을 바라보았다.

검을 들고 살아가는 무사들의 성지, 무의 신이라는 달마조사의 영령이 깃든 숭산은 회색빛 안개로 드리워져 있었다.

‘소림이여…….’

* * *

쾅!

사인의 절대 고수가 뿜어낸 장력이 혁련천후의 육신을 강타했다.

거대한 기의 폭풍이 혁련천후를 쓸고 지나갔다. 혁련천후조차도 합공의 위력을 온전히 다 피할 수는 없었다. 장포 곳곳이 사정없이 찢겨 날아갔다.

“악!”

독고혜와 영호수란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그 누구도 생각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빙마 요성제와 구검마의 대형, 동소의 죽음으로 끝날 거라 여겼던 전투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자들의 배신으로 모두를 경악과 혼란 속으로 빠트렸다.

콰우우!

폭풍이 가시자 장내가 드러났다.

한쪽 무릎을 꿇은 혁련천후의 모습에 독고혜는 두 눈을 부릅뜨며 날아오르려다가 혁련천후의 눈빛을 보고는 그 자리에 멈췄다.

혁련천후의 앞에 늘어선 자들은 소림사의 사대천불이었다.

사대천불은 더 이상 승려의 모습이 아니었다.

오직 광불만이 두 다리로 서 있을 뿐, 나머지 셋은 사지가 찢긴 채 나뒹굴고 있었다.

그들의 돌연한 변화에 그토록 호전적이던 십팔나한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서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했다.

“대체 저들이 왜 신마성주를……!”

“설마 사대천불도 적과 한통속이었단 말인가!”

모두가 불신으로 흔들리고 있을 때, 한쪽 무릎을 땅에 대었던 혁련천후가 느릿하게 몸을 세웠다.

장포가 찢겨 날아가 곳곳에 맨살이 드러나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추호도 변함이 없었다.

“빌어먹을 땡중 새끼들이!”

“대갈통을 떼어 목탁을 만들어 주마!”

“잠깐!”

분노한 오왕과 화산의 제자들이 몸을 날리려고 했으나 혁련강이 그들을 제지했다. 왜 말리냐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오왕을 향해 혁련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두는 그 눈빛에 담긴 뜻을 감히 어기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혁련천후가 고개를 들었다. 순간 광불의 눈에 경악의 빛이 떠오른다.

자신들 모두의 공격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 낸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입가엔 은은한 미소마저 머금고 있었다.

“어떤 청년이 죽어 가며 내게 전해 주더군.”

치르륵!

천살강기를 품은 그의 검이 느릿하게 전방으로 세워졌다.

광불은 여전히 경악에 치켜 뜬 눈을 깜박이지 못하고 있었다.

혁련천후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소림에 괴물이 있다고 말이지. 누군지 몰랐었는데, 네놈들 중 하나가 그 괴물임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모든 이들의 혁련천후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툭!

혁련천후의 손에서 작은 물체가 광불의 앞으로 떨어졌다. 군웅들의 입에서 신음성과도 같은 비명이 흘러나왔다.

녹색보석이 박힌 반지가 태양에 반짝이며 바닥을 굴렀다.

반지는 광불의 발 앞까지 굴러가 멈추었다.

“천왕이라고 했던가? 아니지, 기우량이라고 해야 맞겠지. 네놈들, 소림이 배출한 역사상 최고의 기재라는 전대의 정도맹주!”

“……!”

“그 친구가 그러더군. 그 악마 같은 놈이 너희 소림에 있다고.”

우우웅!

휘황찬란한 백색의 빛이 혁련천후의 육신을 둘렀다. 그의 두 눈은 오직 광불을 향하고 있었다.

광불의 육신이 미세한 떨림을 보였다. 그러더니 고개를 젖히고 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

내공이 담긴 광소에 수준이 약한 사람들이 귀를 틀어막으며 고통에 휘청거렸다.

“크흐흐…… 과연 혁련세가의 씨답구나.”

광불이 한 번의 변화를 거듭했다.

광소를 터트리는 그의 육신은 붉은색 마기로 넘실거렸다.

그 지독한 마기에 청년 무사들이 목을 움켜쥐며 비틀거렸다.

부상당해 쓰러졌던 자들이 피를 토하며 죽어 갔다.

“안타깝구나, 본승에게 네놈 같은 후계자가 있었더라면 이토록 허망한 결과는 없었을 것을……. 그때 죽이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으로 남는구나.”

“왜, 그랬지? 왜 사부와 나를 노렸느냐?”

“후후! 그건 네놈의 잠재력이 꽤나 거슬렸기 때문이다. 물론 죽은 네놈의 친구, 무당의 꼬마 놈도 마찬가지고…….”

“그랬군, 그래서 명진이 죽은 거였군. 그렇다면 네놈이 죽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고 봐야겠지.”

화악!

혁련천후의 육신이 뜨거운 기운으로 둘러졌다.

“진정 아까운 놈이로다!”

광불은 진정으로 안타까운 빛을 나타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의 육신을 두른 마기가 더욱 광포한 움직임을 보이며 그가 선 주변부터 미세한 진동이 시작되었다.

“모두 오십 장 밖으로 물러나라!”

혁련천후의 음성이 신마성의 모든 이들의 귓속을 울렸다.

“주공!”

“물러서라, 소천.”

담대소천이 청룡언월도를 들고 그를 돕고자 나섰지만 혁련천후의 눈빛이 그것을 막았다.

다른 오왕도 마찬가지였다.

혁련천후의 주변을 휩쓸던 기의 폭풍이 가라앉으며 주변은 정적에 휩싸였다. 극강에 이른 천살강기와 구룡삼세를 하나로 엮어 만든 그만의 신공은 마치 폭풍 전야의 고요함을 담고 있었다.

뒤이어 공명이 일었다.

우우웅!

혁련천후의 검이 불꽃을 머금고 있었다.

새파랗고 강렬한 불꽃을.

“이 자리에서 너를 죽이고 소림을 찾아갈 것이다. 그날이 너희들과 본가와의 악연이 끝나는 날이 될 것이다, 광불.”

경천지동(驚天地動).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리는 대격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혁련천후의 검이 번뜩일 때마다 어김없이 잘린 머리가 떨어졌다. 최후까지 버텨 내던 광불은 하늘을 원망하며 자폭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혁련천후는 용납하지 않았다. 두 팔이 날아가고 두 다리가 차례로 분리되어 바닥을 굴렀다.

“죽어 저승에 가면 명진에게 용서를 빌거라.”

퍽!

머리를 잃어버린 광불이 거목이 쓰러지듯 꼬꾸라졌다.

그것으로 천하대전은 막을 내렸다.

* * *

숭산.

무림이라는 세상이 생겨나고 그 이후로 오늘날까지 성역으로 받들어지고 있는 소림사가 자리 잡고 있는 그곳의 정상에 두 인물이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서 있었다.

혁련천후와 육승이었다.

육승이 소림사의 한 곳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자가 제마동에 들었습니다.”

“…….”

“뚫고 들어가기가 호락호락한 곳이 아닙니다.”

그제야 혁련천후의 눈가에 감정이 일었다.

소림을 향해 고정되어 있던 그의 눈동자에 묘한 기운이 어렸다.

비웃음!

그랬다. 그것은 분명 비웃음이었다.

“방장은 뭐라고 하던가?”

음성은 무척이나 차가웠다.

“스스로 마기를 몰아내겠다고 하더군요. 물론 출입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웃기는 자들이군.”

주변에 한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육승의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렸다. 지금 소림은 멸문지화를 당할 수도 있는 엄청난 위기에 봉착했다. 눈앞의 존재가 그러리라 마음먹으면 소림으로서는 절대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육 호법!”

“하명하십시오, 성주!”

“가서 전해라, 내가 이곳에서 하루를 기다려 주겠다고.”

“알겠습니다.”

육승이 소림사를 향해 몸을 날렸다. 혁련천후는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 흘렀다. 태양이 지고 달이 떠올랐다.

그리고 달이 지고 태양이 다시 하늘의 가운데로 떠올랐을 때, 소림의 장문인이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에겐 죽은 자의 수급이 들려 있었다.

강호를 피바람으로 몰고 간 원흉의 수급이었다. 멸망을 막기 위해 소림은 스스로 그의 목을 베어 혁련천후에게 바쳤다.

“향후, 백 년간 소림의 봉문을 청합니다.”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혁련천후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대명 영락 오 년, 삼월에 소림은 스스로 산문을 걸어 잠그고 백 년간의 봉문을 선언했다.

초유의 사태에도 강호는 차분했다.

누구 하나 놀라는 이 없이 오히려 다른 소문이 돌았다.

“소림의 봉문은 신마성의 허락 없이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이다.”

정파를 대표하던 다섯 가문의 수장들도 은퇴를 선언하고 초야로 들어갔다.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다만 그들이 은거를 선언하기 전에 만난 인물이 하나같이 신마성주로 밝혀졌을 뿐이다.

* * *

“아빠아~.”

아이의 외침에 혁련천후는 뒤를 돌아보았다.

다섯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뛰어오고 있었다.

“에구, 저러다 또 넘어지지.”

영호수란이 재빨리 일어나 아이에게로 달려갔다.

“그러다 란 매가 넘어지겠어, 천천히 가.”

독고혜의 근심 어린 목소리에 혁련천후는 빙그레 웃으며 강물에 드리운 낚싯대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독고혜가 벌떡 일어섰다.

“왔어요!”

첨벙!

그녀의 낚싯대가 크게 휘어졌다.

뒤이어 커다란 잉어 한 마리가 요동을 치며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머! 월척이다!”

“월척이다!”

영호수란과 아이가 환호성을 지르며 다가왔다.

혁련천후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러고 보니 그의 망태기에는 고기라고는 한 마리도 없었다.

그때 그의 뒤쪽에 왕전 등이 우르르 몰려왔다.

“좀 잡으셨습니까?”

“…….”

“오늘도 땡 치신 모양이네, 쯧쯧쯧.”

퍼석!

혁련천후의 손에 쥐어졌던 낚싯대가 가루로 화해 사라졌다.

모두는 천천히 일어서는 혁련천후를 보며 불안감에 몸을 떨었다.

“모처럼 대련이나 한번 하지.”

“……예?”

“한 명씩 돌아가면서 다 할 테니 따라와.”

휭!

걸어가는 혁련천후의 손에는 어느새 검이 쥐어져 있었다.

퍽!

“하여간에 매를 버는 데는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 났다니까. 망할 놈.”

왕전의 머리에 주먹이 연타로 작렬했다.

영호수란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걸어가는 왕전 등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금창약, 준비해 놓을게요!”

독고혜는 아이를 안고 일어섰다.

“가시게요?”

“아무래도 오늘은 술을 많이 드실 것 같으니까 미리 술상을 봐 둬야지.”

“같이 가요, 언니.”

휘이잉!

두 여인은 따뜻한 봄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그녀들이 걸어가는 저만치 앞에 거대한 백색의 궁이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었다.

신마(神魔)가 머무는 궁이었다.

(귀환무사 1부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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