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4
<귀환무사 224화>
제9장 군림천하
묵련의 총사는 당황했다.
난데없는 뇌전이 떨어져 상당수가 죽어 나갔는데 그게 뇌전이 아니었다.
지금 저 앞에 떨어져 내린 둘의 손에서 만들어진 가공할 무공이었다.
“처, 천왕께서 놈들에게 당하셨단 말인가? 이, 이럴 수가…….”
저들이 돌아왔다면 자신들의 주인이 당했단 것을 뜻한다.
총사는 머릿속이 새카맣게 변했다.
손과 발이 어지러워 말을 듣지 않는다.
빙마 요성제가 빙궁의 무사들에게 전투태세를 명하고는 총사에게 소리쳤다.
“뭣하시오! 명을 내리시오! 총사!”
“……!”
총사는 그 말마저도 들리지 않았다.
“총사! 놈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어서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동소가 발악하듯 외쳤다.
“이건, 이건…….”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천왕의 죽음을 짐작한 총사는 공황 상태에 빠졌다.
흐려진 동공은 거침없이 흔들렸다. 어지럽게 얽혀 버린 머릿속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퍽!
순간, 총사의 머리가 하늘로 솟구치며 피가 쏟아져 동소의 육신을 흠뻑 적셨다.
“궁주!”
동소가 두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총사의 목을 베어 버린 이는 요성제였다.
“적을 앞에 두고 우물거리는 꼴이라니!”
총사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싸늘히 읊조린 요성제가 검을 치켜들며 외쳤다.
“모두 적들을 맞이하라! 빙궁의 위대함을 놈들에게 보여 주거라!”
“우아아!”
고작 이백에 불과한 빙궁의 고수들이 거친 함성을 쏟아 내며 무기를 뽑아 들었다.
그들에겐 대지를 뒤덮은 오만의 기병도, 천지간에 가장 강하다고 일컫는 신마성주와 일존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듯 보였다.
요성제가 동소를 돌아보며 말했다.
“묵련은 귀하가 이끌어야겠소.”
“알겠소!”
동소가 총사를 대신하여 묵련을 지휘했다.
그들은 여전히 오백을 상회하는 머릿수를 자랑했다. 살아남은 구검마들과 철갑신마의 후예들이 그에게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신마성을 노려보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신마성부터 쓸어버립시다!”
“좋다! 어차피 놈들만 없으면 정도맹과 저깟 군병들은 허수아비에 불과할 터이니 그러자꾸나!”
맞장구를 친 동소는 요성제를 보며 말했다.
“빙궁도 신마성을 쓰러뜨리는 데 함께해 주셔야겠소.”
“알겠소이다.”
둘은 전열을 재정비하기 위해 각각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 * *
독고혜는 사람들의 눈에도 아랑곳 않고 혁련천후의 손을 살며시 쥐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걱정했어요, 모두가…….”
독고혜의 따뜻한 눈빛에 혁련천후는 모든 것이 사르르 가시는 기분이었다.
“최고.”
영호수란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배시시 웃는다.
혁련천후는 잠시 피의 전장을 잊을 수 있었다.
더불어 이들과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어온다.
‘모든 것을 끝내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적진으로 시선을 던지자 이내 눈빛은 차가움으로 변했다.
셋의 해후를 멀찌감치 바라보던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 그에게로 다가왔다.
“무사히 돌아오니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구려.”
맹주 남궁기가 환한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누구보다 그의 귀환이 반가운 인물이 그였다. 그의 귀환여부 때문에 십팔나한들과 몇몇 세가에게 곤욕을 치르지 않았던가.
혁련천후는 담담히 물었다.
“꽤 번거로운 일을 당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허허! 이 자리가 원래 그런 게 아니겠소, 괜찮소.”
남궁기는 진심으로 그를 반겼다.
그 마음에 얼굴에 묻어나자 혁련천후는 옅은 미소로 화답했다.
십지신검 독고무가 정도맹 진영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저들은 고깝다는 표정들이군, 마음에 안 들어.”
십팔나한을 비롯한 몇몇 세가의 인물들이 이쪽을 바라보며 꽤나 불편한 기색을 비치고 있었다.
중간에서 사대천불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양측을 번갈아 쳐다보며 조금은 당황한 모습이었다.
혁련천후는 씁쓸함을 금치 못했다.
자신과 신마성이 어떻게 싸워 줬는데, 지금껏 저런 자들이 남아 있는지.
이유는 능히 짐작했다.
지금껏 자신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났던 정파의 기득권을 빼앗긴 것에 대한 불편함이 아니겠는가.
그때였다.
“놈들이 움직입니다!”
관승이 소리쳤다.
적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북해빙궁의 고수들이 진의 중앙에 포진되어 있었다.
총사의 죽음으로 요성제의 역할이 커진 탓이다.
“전투태세를 갖추라!”
남궁기의 말이 떨어지자 모두가 빠르게 대열을 갖추며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신마성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질풍대와 청룡단, 그리고 백호단은 신마각의 무사들 좌우에 포진했다.
청룡단의 수장을 맡은 진승에게 혁련천후가 말을 건넸다.
“매화각주라고 들었다.”
“그렇습니다! 사숙조님!”
진승은 공손히 머리를 조아렸다.
이미 혁련천후는 화산의 하늘이 되어 있었다.
혁련천후의 입가에 웃음이 떠오른다.
기분이 좋았다. 자신과 함께하는 다섯을 제외하고도 이렇듯 출중한 기도를 보이는 제자가 더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흡족했다.
“반드시 살아남도록 하여라.”
“예!”
진승은 군의 장수처럼 큰 소리로 대답했다.
혁련천후는 시선을 적진으로 돌렸다. 그다지 빠르지 않은 속도로 적들이 전진을 시작하고 있었다.
“개새끼들……!”
좌우에 포진한 마교의 고수들이 적개심을 드러냈다. 특히 장용백은 성난 야수처럼 으르렁거렸다.
혁련천후의 지시가 떨어지면 그가 가장 먼저 적진으로 달려들 것이 분명했다.
물론 빙궁의 고수들을 향해서다.
혁련천후는 조부, 혁련강을 슬쩍 쳐다봤다.
마침 그도 자신을 돌아보고 있었다. 둘의 눈빛이 교차되며 혁련천후의 입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검을 들어라!”
우와!
신마각의 무사들이 일제히 고함을 지르며 기운을 뿜어 냈다. 주변이 난폭한 기운으로 요동쳤다.
청룡단과 백호단, 그리고 질풍대의 무사들도 두려움을 몰아내려는 듯 악을 쓰며 기합을 지른다.
혁련천후의 검이 앞으로 뻗어졌다.
“내가 먼저!”
역시 장용백이 가장 먼저 앞으로 내달렸다.
“하여간에 성질머리하고는!”
“우리가 뒈질 수는 없지.”
오왕의 육신이 허공을 가르며 솟아올랐다.
신마각의 무사들을 필두로 세 무력 단체들은 적진의 측면으로 질풍처럼 내달렸다.
혁련천후는 좌우를 돌아보았다.
독고혜와 영호수란이 그를 향해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십지신검 독고무가 옆으로 섰다.
“부디 조심해야 한다, 알겠느냐.”
“예, 오라버니.”
“염려 마세요.”
혁련천후와 독고무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독고무가 피식 웃었다.
“나 먼저 가겠네.”
“그러십시오.”
쾅!
바닥을 차고 오른 독고무가 섬전처럼 허공을 갈랐다. 돌아보니 혁련강과 영호도성은 이미 허공에 몸을 띄우고 있었다.
혁련천후도 검을 뽑았다.
스르릉!
마지막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무자비하게 끝내 버릴 심산이었다.
“조심하거라.”
“조심하세요.”
“나 좀 지켜 줘요.”
* * *
모용단승의 검은 용서를 몰랐다.
진호와 진명은 서로를 보호하며 적의 육신을 베었다.
진천은 그 누구보다 잔인한 살수를 적의 육신에 퍼부었다.
청명과 청진의 환술은 적의 중심부를 연이어 강타했다. 집단전에서 그들의 활약은 더욱 빛이 났다.
혁련천후와 혁련강은 적진에 스며들어 특정한 인물만을 저격했다.
자폭을 하는 자들만 골라서 죽이는 것이 둘의 목표였다.
덕분에 지금껏 단 하나의 자폭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투는 치열했다.
“요성제!”
뇌어양이 포효를 터트리며 빙마 요성제를 덮쳤다. 장용백과 천마사로, 그리고 장로들은 빙궁의 호법들과 장로들을 덮쳤다.
서걱!
수급 하나가 피를 뿌리며 솟구쳤다.
철갑신마의 후예의 것이었다. 주인을 잃은 거대한 육신을 스치고 지나가는 혁련천후에게 거인들이 복수의 대도를 들이밀었다.
퍽!
그러나 뒤쪽에서 들이닥친 혁련강의 검이 더욱 빨랐다.
거대한 육신이 두 동강으로 잘라져 대지로 쓰러졌다. 영호세가의 대공자 영호진의 가슴을 노리고 거대한 대도가 날아들었다.
마주한 적을 상대하느라 뒤늦게 눈치 챈 영호진이 피하기란 불가능한 거리와 속도였다.
“감히!”
조윤의 장창이 빙궁 고수의 목을 꿰뚫고 지나갔다.
“앞뒤를 살피며 싸워야지!”
“고맙습니다!”
감사를 표한 영호진은 용맹하게 다시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조윤의 눈빛이 전장을 쓸고 지나갔다.
위기에 처한 아군의 모습이 보이자 지체 없이 그곳으로 몸을 날렸다.
오왕은 강했다.
그들이 지나가는 곳은 어김없이 적의 피와 살로 난무했다.
“으라차! 목을 내놓아라! 이놈들아!”
“너희들이 갈 곳은 지옥뿐이다.”
콰지직!
“크아악!”
왕전의 대도와 북궁천소의 굉혈도는 자비를 모르는 지옥의 사자처럼 걸려드는 모든 적들의 생명을 소멸시켰다.
담대소천의 청룡언월도는 그 누구보다 많은 살상자를 만들어 내며 춤을 추었다.
거대한 전장에서 그들이 있는 주변이 동그랗게 공간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 광포함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아군조차도 두려워 가까이 가기를 꺼렸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자!”
“오왕께서 계신다! 용기를 내어 적을 맞이하라!”
진승이 고함을 지르며 청룡단의 무사들을 독려했다.
청년 무사들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그들은 오왕을 보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자신들의 꿈이자 우상인 그들이다. 함께 싸우는 기회가 평생에 몇 번 있겠는가.
그들은 용맹스럽게 적을 맞아 검과 도를 휘둘렀다.
서걱!
검후의 검은 적의 수뇌부들만 골라서 빛을 뿌려 댔다.
이미 그녀의 손에 저승으로 날아간 빙궁의 장로만 다섯을 넘어갔다. 그리고 구검마의 둘도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바닥을 굴렀다.
이미 그녀는 강호의 여제가 되어 있었다.
“나도 있다고! 자식들아!”
영호수란의 짜랑짜랑한 목소리가 전장을 울렸다.
그녀의 검이 지나가면 어김없이 피가 튀었다. 독고혜만큼이나 그녀도 수많은 적들의 숨통을 끊어 놓고 있었다.
난전 중에 혁련강이 혁련천후의 곁으로 다가왔다.
“놈이 언제 어느 시점에서 모습을 드러낼지 모르니, 주의하거라.”
“알겠습니다.”
그랬다.
천왕은 죽지 않았다. 이 대 일의 격돌에서 그는 부상을 입고 도주했다. 그만큼 천왕은 강했다.
자신들이 합공을 하고서도 죽이지 못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었다.
해서 언제든 다시 나타날 거라 확신했다.
그 전에 최대한 적의 전력을 줄여 놓아야 했기에 혁련천후는 잠시도 쉬지 않았다.
“최대한 세력을 줄여야만 합니다. 손속에 사정을 두지 마십시오!”
“그러마!”
둘은 다시 적진으로 스며들었다.
걸리는 모든 자들이 그들의 손아래 핏물로 화해 사라졌다.
* * *
자청하여 대소림의 산문 앞에 선 동광은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서 산문으로 이어지는 길목을 날카롭게 살폈다.
기억조차 없던 시절, 사부의 손에 이끌려 소림의 산문을 넘어선 지 어언 이십 년. 그동안 동광은 사부의 진전을 이어받아 고수 소리를 듣는 어엿한 소림의 중진으로 성장했다.
그런 동광이 하찮은 문지기를 스스로 자청한 이유는 오직 그만이 알 뿐이다.
“올 때가 되었는데…….”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
동광의 얼굴은 초조함으로 채워졌다.
그때 동광의 눈동자가 섬광을 발했다.
소림의 제자라면 절대 보여선 안 될 사악한 기운이 그의 전신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가 주시하던 산문의 입구에 봉두난발의 괴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괴인의 오른팔은 어깨부터 잘려 나가 붉은 선혈을 뚝뚝 흘려 내고 있었다.
동광의 시선은 오직 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소 사숙!”
뒤에서 앳된 목소리가 동광을 불렀다.
탁! 탁! 탁!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동광의 눈빛에 살기가 스치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