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3
<귀환무사 223화>
천왕이 자신의 검에 손을 가져가며 소리쳤다.
동소가 황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진정하십시오, 총사! 모두가 련을 위한 충정에서 한 말이 아닙니까.”
하후광이 끼어들자 총사는 검집에서 손을 뗐다.
“놈들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각 부대는 각자의 위치에서 명령을 기다려라! 그리고 하후광! 너는 아이들 몇을 데리고 그분을 찾아라!”
“알겠습니다.”
머리를 조아린 하후광이 뒤로 물러나자 총사는 동소에게도 명령을 내렸다.
“너는 자폭이 가능한 아이들을 모아서 본좌에게 데리고 오너라.”
동소도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갔다.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던 총사는 시선을 건너편으로 던졌다.
역시 그들도 자신들처럼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는 독고혜를 발견하고는 얼굴을 굳혔다.
‘대단한 계집이었다. 저 정도면 오성보다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저 정도 전력이라면 우리만으로는 힘들다.’
여자에게 패한 것에 대한 수치심 따윈 애초부터 없었다.
다만 절대 고수의 수에서 자신들이 불리하다는 염려 때문에 마음이 어지러울 뿐이었다.
지금 자신들 중에서 일대일로 검후를 맞상대할 고수가 없다는 것이 더더욱 불안감을 가져왔다.
게다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백선녀 영호수란도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구검마의 하나가 그녀에게 일방적으로 몰리는 것을 똑똑히 보지 않았던가.
‘천왕께서 뭔가 착오를 하셨다. 당신, 하나만 무적의 경지에 들면 모든 것이 뜻대로 될 것이라 생각한 그 부분이 잘못이야. 당장 신마성주와 일존, 그자가 아니더라도 전전대의 십팔나한들이 나한진으로 덤벼들면 그분도 결코 장담할 게 못 된다.’
총사의 속내는 점점 어지럽게 얽혀 들었다.
그가 복잡한 속내를 다스리지 못하고 있을 즈음, 북해빙궁의 궁주, 빙마 요성제가 다가왔다.
“총사! 언제까지 이러고 계실 작정이오. 놈들에게 전열을 가다듬을 시간을 주지 않소이까?”
“요 궁주! 저들을 보고도 그런 말씀이오?”
총사는 혈야평의 한쪽을 구름처럼 채우고 선 악연의 군사들을 가리켰다.
그들은 칼과 창을 마갑에 걸어 두고 활을 손에 쥐고 있었다.
무려 오만에 달하는 숫자다. 그것은 곧 한 번 공격에 오만 개의 화살이 자신들에게 쏟아짐을 뜻하는 것이다.
“흥! 저깟 군병들이 날린 화살쯤은 호신강기로도 막아 낼 수 있소. 너무 신중한 것이 아니오?”
요성제는 코웃음을 쳤다.
“천왕께서 곧 오실 것이오. 그때까지는 함부로 나서지 않는 것이 이롭소, 궁주!”
“도대체 이런 시기에 늦으시는 이유가 무엇이오?”
“그분은 신마성주와 그놈의 조부라는 일존과 격돌했소. 아무리 무극의 경지에 든 그분이라도 시간이 걸림은 당연하지 않겠소.”
총사는 다그치는 요성제를 다소 언짢은 기색으로 대했다.
요성제 역시 그다지 좋은 기색이 아니었다.
당초 신강 정복만을 염두에 두었던 그는 이곳까지 오게 된 것부터가 불만이었는데 공격이 지연되자 꽤나 불만이었다.
그의 속내를 짐작한 총사가 속내를 억누르고 부드러운 말로 그를 달랬다.
“천왕께서 오시면 곧 결판이 날 것이니 그때까지만 참아 주시오, 성주!”
“크흠! 알겠소.”
불만을 표출하던 요성제가 마지못해 물러가자 총사는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에 오른 자신의 처지가 지금처럼 후회스러운 적이 없었다.
콰르릉!
다시 뇌전이 몰아쳤다.
시커멓게 변한 하늘이 이내 굵은 빗줄기를 쏟아 냈다. 묘한 대치상황은 좀처럼 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정도맹은 정도맹대로 혁련천후와 혁련강이 돌아오기를 기다렸고 묵련은 천왕을 기다렸다.
그리고 주윤의 군사들은 담대소천의 명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모두가 기다리는 셋에게 전쟁의 향방이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묘한 대치 상태는 오히려 모두에게 극도의 긴장감을 심어 주었다.
신마성의 인물들은 독고혜의 주변에 모여 혁련천후와 혁련강을 기다렸다.
그때 정도맹 측에서 가벼운 소란이 일어났다.
“무슨 일이지?”
모두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진유가 빠르게 뛰어왔다. 조윤이 그를 보며 물었다.
“무슨 일인데 소란이냐?”
“십팔나한들께서 강공을 주장하십니다.”
“강공을?”
“그렇습니다! 언제까지 사숙조를 기다릴 순 없다고 하시는군요. 맹주께서 극구 말리고 있습니다만 워낙 성정이 불같은 분들이라…….”
조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득도할 승려들이 불같은 성미라니…… 웃기는군.”
“그자들에게 동조하는 자들은?”
북궁천소가 묻자 진유는 씁쓸한 얼굴로 대답했다.
“역시 우리와 함께하는 세가를 제외한 곳에서 십팔나한들과 뜻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들이 문제였다.
순간 듣고만 있던 독고혜의 눈동자에 차가움이 감돌았다.
런 상황에서까지 분열을 조장하는 그들에 대한 분노였다. 그녀는 시선을 정도맹이 주둔하고 있는 곳으로 던졌다.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이미 극의 경지에 가까워진 그녀다. 당연히 모든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언제부터 맹이 그들의 눈치를 보았소!”
“눈치가 아니오! 그들이 있어야 승리할 수 있소이다!”
“허어! 맹주가 되었으면 과단성을 보여 주시오! 어찌 그런 나약한 말씀만 하는 것이오!”
십팔나한들과 남궁기 간의 설전은 점점 과열되고 있었다.
그때 정도맹의 일부 무사들이 신마성이 주둔하고 있는 곳으로 몰려왔다.
청룡단과 백호단, 그리고 질풍대의 무사들이었다.
“빌어먹을! 또 싸움질들이냐!”
질풍대주 관포가 씩씩거리며 걸어왔다.
그는 맹의 수뇌부들을 보고는 바닥에 침을 뱉으며 분통을 터트렸다.
진유가 손을 입으로 가져가며 눈치를 주었으나 관포는 거침이 없었다.
“젠장맞을! 내가 맹주가 되면 저 오대세가부터 확 바꿔 버릴 거다!”
“들린다!”
“상관없다! 젠장맞을 노땅들! 언제부터 오대세가야, 지들이…….”
진유는 잔뜩 미간을 찌푸리고 관포를 쳐다본다.
“나도 이곳에 있으면 안 될까?”
“너는 정도맹의 간부잖아.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깟 대주 자리는 필요 없어. 저 늙은이들 장단에 더 이상은 놀아나지 못하겠다.”
질퍽거리는 땅바닥에 그대로 털썩 주저앉으며 품속에서 술병을 꺼내 들었다.
왕전이 히죽 웃더니 관포에게 말을 걸었다.
“흐흐! 성질머리가 제법이군. 그런데 전투 중에 술을 입에 대다니,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관포의 눈이 대번에 고리눈으로 변했다.
그러나 상대가 왕전임을 알아보고는 벌떡 일어섰다.
“그게, 성질이 나서…….”
“흐흐! 그 술병 내놔.”
왕전이 손을 내밀자 관포는 재빨리 술병을 건넸다. 조윤을 비롯한 모두의 눈이 묘하게 변하며 왕전을 바라본다. 역시 그들의 예상은 어긋나지 않았다.
“크…… 죽이는군.”
단숨에 술병을 비워 버린 왕전이 입맛을 다시자 관포는 울상이 되었다.
왕전이 그런 관포에게 씩 웃어 주었다.
“전투가 끝날 때까지 이곳에 있어라. 그것이면 술값으로 충분하겠지?”
“정말입니까?”
“싫으면 말고.”
“아닙니다!”
* * *
쏴아아!
폭우는 태풍으로 이어졌다.
어지간한 나무가 그대로 부러지며 양측 진영을 난무했다. 회오리바람이 일어 흙탕물이 양측 진영을 흠뻑 적셨지만 아무도 움직이는 자, 없었다.
“빌어먹을! 늦겨울에 웬 태풍이 불고 지랄이야!”
장용백이 투덜거리며 오만상을 썼다.
운기조식을 끝낸 그는 완벽하게 내공을 회복한 상태였다.
부상 부위를 천으로 질끈 동여맨 그는 적진을 바라보며 욕설을 퍼부었다.
“개새끼들!”
철천지원수인 북해빙궁의 고수들이 그곳에 있었다. 빙마 요성제의 얼굴을 보자 그의 눈이 불을 뿜었다. 뇌어양이 어느새 그의 옆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도 내공이 돌아온 상태였다.
“경거망동 마라.”
“보고도 가만히 있으려니 돌아 버리겠습니다!”
“허허! 이놈아! 나중에 때가 되면 원수는 갚아질 게다.”
좋은 말로 달래는 뇌어양, 그러나 그 누구보다 빙궁에 대한 원한이 사무치는 그다.
장용백이 그걸 모를 리 없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뒤로 물러섰다.
꽈르릉!
콰지직!
“으악!”
갑자기 적진에서 소란이 일었다. 뇌전이 떨어진 것이다. 제아무리 고수라도 자연의 힘 앞에서는 미약한 존재에 불과했다.
몇이 새카맣게 그을려 그 자리에서 죽어 버렸다.
그것을 본 정도맹의 고수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제대로 죗값을 받는구나! 나쁜 새끼들아!”
“하늘은 뭐 하나! 몇 번 더 내려쳐라!”
“푸하하하!”
번쩍!
콰지직!
뇌전이 또 내리쳤다.
이번에 더욱 강력했다.
허공으로 솟구치는 주검들이 확연하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정도맹의 고수들은 더더욱 환호했다.
콰쾅!
뇌전은 계속 이어졌다. 환호하던 정도맹의 고수들도 얼굴이 굳어졌다.
뇌전이 아님을 느낀 것이다. 그때, 누군가가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저, 저기…….”
“성주님이시다!”
“노주님이 오셨다!”
신마각의 무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독고혜를 비롯한 신마성의 인물들이 일제히 앞쪽으로 몰렸다.
모두가 적진의 상공을 바라보았다. 폭우를 뚫고 허공을 가르는 물체, 분명 사람의 형상이었는데 그토록 기다리던 혁련천후와 혁련강이 틀림없었다.
“흐흐! 그럼 그렇지, 감히 어떤 놈이 주공을 해할 수 있단 말이냐.”
“아주 제대로 작살을 내시는군, 크흐흐!”
왕전과 북궁천소가 연신 험악한 웃음을 흘려 낸다.
담대소천이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독고혜를 향해 허리를 굽혔다.
“다녀오겠습니다!”
폭우가 그의 갑주를 때리며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은빛 투구를 머리에 쓴 담대소천이 폭우 속으로 질주했다.
처처척!
오만 기병이 일제히 그를 향해 말 머리를 돌리는 광경은 무척이나 장엄했다.
담대소천의 눈빛이 주연을 향해 돌아갔다.
주연이 그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말 머리를 기병들에게로 돌렸다.
“전군 전투준비!”
뿌우웅!
주연의 명이 떨어지자 오만 기병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우아아!”
그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러 대자 천지가 흔들렸다.
그 앞을 담대소천이 달렸다.
모두가 창과 검을 들어 그를 경배했다. 대열의 끝까지 말을 몰아간 그는 말머리를 돌려 신마성으로 향했다.
투왕을 상징하는 청룡언월도가 하늘로 솟구친다.
“저분이 나, 담대소천의 주인이시다! 나를 위해, 저분을 위해, 오늘 너희들의 목숨을 요구하고자 한다! 후회하지 않겠느냐!”
“충!”
대지가 진동한다.
내리던 폭우도 그 기세에 눌려 멈칫하는 착각마저 들어온다.
말머리를 적진으로 돌린 담대소천이 청룡언월도를 수직으로 세웠다.
그는 땅으로 내려서는 혁련천후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마침 혁련천후의 눈빛이 그에게로 향했다.
둘의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뜨거운 기운이 둘 사이에 뇌전의 기운처럼 흐른다.
[이건 우리들의 싸움이다. 괜한 목숨을 잃게 하고 싶지가 않다.]
[이 순간은 이들도 주공의 사람들입니다.]
[때를 기다리고 있어라. 놈은 아직 죽지 않았다. 돌이킬 수 없는 위험에 처할 때 그들의 도움을 받겠다.]
단호했다.
담대소천은 그의 속내를 이해했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오르며 고개가 숙여졌다.
[알겠습니다.]
혁련천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어린다.
언제나 물러날 때를 아는 담대소천이 그는 좋았다. 담대소천은 기병을 혈야평의 능선 쪽으로 물리고는 자신은 진영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