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
<귀환무사 222화>
장수는 지난날, 진천도 보았던 섬서주둔군의 사령관 주연이었다.
“모두 무사하십니까?”
“아직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우리는 즉시 그곳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함께하시겠습니까?”
주연이 말 위로 몸을 던지며 물었다.
진천이 물었다.
“방향이 어디요?”
“저자들이 도주하는 쪽입니다!”
주연이 묵련의 무리들이 몸을 날리는 방향을 가리켰다.
진천의 눈동자에 새파란 광망이 생겨났다.
“주모님! 저 먼저 가겠습니다!”
쾅!
바닥을 차고 오른 진천의 육신이 쏘아진 화살처럼 빠르게 질주하는 것을 본 군병들은 입을 벌렸다.
기병들이 말 머리를 돌렸다.
“도독께 돌아간다!”
두두두…….
* * *
담대소천의 분노는 대단했다.
분노가 실린 청룡언월도는 폭풍처럼 움직이며 적의 육신을 잘라 냈다.
그 누구보다 파괴적인 무공을 사용하는 것이 투왕 담대소천이다.
북궁천소의 파괴력도 분노한 그에겐 손색이 있었다.
퍽!
날이 아니면 면으로 적을 후려갈긴다.
수박처럼 터져 버리는 머리, 이미 그의 주변은 참혹한 살육의 현장으로 화해 있었다.
철갑신마의 후예라는 거인들도 이미 열을 넘어가는 사망자를 내고 있었다.
거인들의 수가 줄어들자 압도적인 수를 자랑하던 묵련도 오왕과 마교 고수들의 난폭함에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숫자상의 우위는 무의미할 뿐이었다.
그러나 오왕과 마교의 고수들도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그들 역시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었다.
“소천! 주공을 찾는 것이 좋겠다!”
조윤이 난전 중에 그에게로 다가왔다.
“두 분이 함께하고 계신다. 믿어라.”
그 단호함에 조윤은 입을 닫았다.
그때, 북궁천소와 왕전, 관산악이 그들의 옆으로 내려섰다.
“놈들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관산악이 심각한 어조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꽤나 거칠어진 호흡이 지금의 그가 어떤 상태인지 짐작하게 했다.
“자폭을 하려는 것일까?”
“저 정도로 강한 놈들이 스스로 죽음을 택하지는 않을 거다. 뭔가 뜻하는 바가 있겠지.”
관산악의 말처럼 거인들과 몇 남지 않은 인물들이 조금씩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마교의 고수들이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자 그들을 빠르게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어! 도주하는데?”
“쫓을까?”
“당연하지!”
담대소천이 가장 먼저 몸을 날렸다.
가장 후미에서 도주하던 묵련의 고수들이 그에게 거리를 내주었다.
결과는 어김없는 죽음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거인들과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 들지 않았다.
추격전은 상당한 시간 동안 이어졌다.
쫓기는 자와 쫓는 자가 막 혈야평의 초입에 이를 때였다.
거인들이 도주하는 반대편에서 상당수의 무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흰 독수리 문양이 새겨진 거대한 깃발을 앞세운 그들을 발견한 조윤의 얼굴이 구겨진다.
“북해빙궁이다!”
“젠장맞을! 하필이면 이때에…….”
“정도맹이다!”
관산악이 북쪽을 가리켰다.
먼지가 일며 질주해 들어오는 묵련의 고수들이 보였는데, 그 뒤를 신마성과 정도맹의 고수들이 쫓고 있었다.
“주모님이다!”
오왕과 마교의 고수들은 추격을 포기하고 방향을 틀었다.
짧은 시간에 그들은 합류했다.
모두의 건재함을 발견한 독고혜의 얼굴이 다소 풀어졌다.
모두가 추격을 멈추었다.
쫓기던 묵련도 북해빙궁과 합류하며 적당한 거리 밖에서 진을 치기 시작했다.
영호도성과 사대천불이 다가왔다.
“큰 신세를 졌소이다. 덕분에 맹의 본단이 무사하게 되었소!”
광불이 오왕과 마교의 고수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때 정도맹 고수들의 뒤쪽에서 가벼운 소란이 일었다.
“맹주께서 오셨다!”
“십팔나한들께서도 오셨다!”
모두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남궁기와 소림의 전대 십팔나한들이 고수들을 이끌고 장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남궁기는 곧장 오왕에게로 다가왔다. 그들이 본단을 노렸던 묵련의 고수들을 중도에서 요격한 사실을 전서로 받고는 곧장 고수들을 이끌고 달려온 것이다.
감사와 겸양을 주고받은 그들은 적진을 살피며 한곳에 모였다.
잠시 수뇌부들과 의견을 나눈 신마성의 인물들은 이내 독고혜와 영호수란의 곁으로 모였다.
정도맹의 인물들은 검후, 독고혜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모두가 경탄의 빛으로 가득한 눈을 하고 있었다.
신마성에서의 전투에서 그녀가 보여 주었던 경지는 실로 대단했다.
구파의 장로를 일격에 참살했던 적의 수장을 그녀가 물리치는 모습을 그들은 잊지 못했다.
또 영호수란은 전대의 거마, 백발검마의 목을 베어 전황을 아군에게로 끌어오지 않았던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독고혜의 아름다운 얼굴이 매우 어둡게 느껴졌다.
전투에서 죽어 간 무사들 때문이다.
모두가 잠시 침묵을 보였다. 잠시 침묵을 보였던 독고혜가 머리카락을 쓸어 뒤로 넘기며 어둡게 가라앉은 영호수란의 어깨를 어루만져 주었다.
영호수란이 그녀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무사하시겠죠?”
“그럼, 당연히 무사하실 거야.”
수심 어린 빛으로 물어오는 영호수란의 어깨를 독고혜는 다독거렸다.
그러나 그녀의 속내 역시 근심으로 가득했다.
엄청난 거리를 도약 없이 날아오던 인물, 그녀는 태어나서 지금껏 그런 경지를 밟았던 인물이 있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조차 없었다.
천하의 오성이 놀라서 주춤거리지 않았던가?
“수적으로 너무 열셉니다.”
왕전이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묵련만이라면 비슷했다. 그러나 북해빙궁의 고수들이 이백에 달했다. 물론 마교를 침공할 때 천에 가까웠던 그들에 비하면 무척이나 적은 수였다.
그러나 그것이 더 긴장감을 불러왔다.
최정예만 추려서 온 것이다.
마교의 고수들이 극한의 살기를 드러냈다.
적진의 가운데, 거대한 깃발이 꽂혀 있었는데, 그 밑에 백발백염의 노인이 오만한 자세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빙궁주 요성제가 바로 그였다.
“죽일 새끼…….”
좀처럼 말이 없는 독로가 이를 갈며 낮게 부르짖었다.
상당한 피해를 입은 마교였다.
요격전에서 반수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게다가 교주 뇌어양과 장용백이 꽤나 심한 부상까지 당했다.
둘은 지금 진의 후미에서 운기조식에 든 상태였다.
양진영이 서로를 바라보며 이를 갈 때였다.
두두두두…….
대지가 울렸다.
양진영의 측면이 먼지 구름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먼지 구름이 걷히기 시작하며 엄청난 대병력이 서서히 시야에 들어왔다.
주연이 이끄는 오만의 기병이었다.
선두에 선 주연이 손을 들자 대군은 이동을 멈추었다.
묵련 측은 긴장감을 드러내며 그들을 예의 주시했다. 정도맹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국가의 군대는 언제나 조심해야 할 대상이다.
자칫 그들의 심기를 거슬리면 백만 대군의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야 하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처하게 된다.
어쩐 일인지 담대소천은 그들에게 가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주연도 그에게로 오지 않고 대군의 앞에서 묵련의 진영을 차갑게 응시했다.
삼면이 대치 상태에 놓인 지경으로 변하자 어느 쪽도 쉽사리 공격 명령을 내리지는 못했다.
참으로 묘한 상황으로 바뀐 것이다.
“후후! 덕분에 시간을 벌게 되었군.”
조윤이 군사들을 응시하며 웃었다. 영호수란이 담대소천을 보며 환하게 웃어 준다.
“저 사람들, 전부가 대장 아저씨 부하들인가요?”
담대소천은 그저 옅은 미소로 화답했다. 분노로 이글거렸던 그의 눈동자는 평소처럼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멋진데요, 그런데 왜 가만히 있는 거죠? 혹시 가만히 있으라고 지시하신 건가요?”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제 역할을 하는 겁니다.”
조윤이 대신 대답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기병들 때문에 묵련은 쉽사리 공격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만으로 부상자들이 운기조식을 할 시간을 벌지 않았던가.
담대소천의 시선이 독고혜를 향했다. 혈야평의 건너편을 응시하는 그녀의 옆모습은 수심으로 가득했다.
[기병들 덕분에 대치 상태가 오래될 듯하니 우리가 주공을 찾아보는 게 좋지 않겠냐?]
[두 분이 함께하시지 않느냐. 천하에 그 누가 그분들을 감당할 수 있겠나. 그냥 더 기다려 보도록 하자.]
담대소천은 여전히 완고했다.
[설마 놈들의 대가리가 세 마두의 무공을 모조리 익힌 것은 아니겠지.]
[모르는 일이다, 그것은…….]
정말 그렇다면 그야말로 역사상 전무후무한 괴물이 탄생하는 것이다. 하나만으로 세상을 피로 씻어 낼 그들이다. 하물며 셋의 마공을 익힌 인물이라면 혁련천후와 혁련강이 합공을 한다고 해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놀라울 정도로 강한 자였어요.”
독고혜의 음성이 그들의 귓속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실수를 깨달았다.
그녀도 전음을 엿들을 수 있는 경지로 올라섰음을 깜박한 것이다.
모두가 그녀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도약 없이 산을 넘어 능선까지 비행하더군요. 그런 자를 두 분께서 상대하고 계셔요. 그분들을 믿지만, 반드시 이겨 내실 거라 믿지만…….”
독고혜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북궁천소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흐흐! 주공을 믿으십시오. 그분께는 그 누구도 감당 못할 최후의 수단이 있습니다. 설사 옥황상제라도 그것을 막아 내지는 못합니다.”
“싫어요! 그 상황까지 간다는 게…….”
독고혜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상황까지 간다는 자체가 싫었다. 최후의 수단을 사용한다면 혁련천후는 다시는 무공을 사용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녀는 그것이 그에게 패배보다 더한 치욕이라 여겼다.
* * *
“젠장! 저놈들이 어떻게 몰려온 것이냐?”
총사는 오만의 대병력을 응시하며 으르렁거렸다. 이미 그들로 인해 산동과 호북 쪽에서 자신들의 동료들이 몰살되었음은 보고를 통해 알고 있는 그였다.
하지만 설마 저들이 이곳까지 오게 되리라곤 생각조차 못했던 그였기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놈들이 투왕과 관련이 있는 듯했습니다.”
거인 중 하나가 그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하후광이었다. 총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게 무슨 소리냐?”
“정도맹의 본단을 치러갈 때 놈들이 투왕과 함께 나타났습니다. 저기 저, 붉은 갑주를 걸친 놈이 저들을 거느리는 장수로 보였는데, 투왕의 명령에 따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게 사실이냐?”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하후광의 시선은 투왕에게 고정되었다. 적의로 가득 찬 그의 눈동자는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
죽은 자신의 동료들 중, 다섯이 투왕 담대소천의 청룡언월도에 당한 것이다. 그는 자신들과 상극의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검이 뚫지 못하는 자신들의 피부를 그의 청룡언월도는 거침없이 베어 버렸다.
그에게 죽은 다섯 모두가 그것을 모르고 달려들었다가 당한 것이다.
“눈엣가시 같은 놈들…….”
총사의 얼굴 근육이 심하게 뒤틀렸다.
그랬다.
그 누구보다 오왕은 그들에게 크나큰 장애물로 다가왔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벌써 정도맹의 본단은 그들이 점령했을 것이다.
당연히 정도맹은 사기가 떨어질 것이고 어쩌면 지금쯤은 벌써 확고한 승기를 잡고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총사! 이대로 가만히 보고만 계실 작정입니까?”
물어오는 동소는 당장에라도 공격을 하자는 태세였다. 하후광이 눈동자를 번득이며 총사를 응시했다. 그도 동소와 같은 심정이었다.
“천왕께서 아직 오시지 않았다. 그분이 오실 때까지 기다린다.”
“신마성주와 그의 조부라는 일존이 그분과 부딪혔습니다.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시는 것도…….”
“닥쳐라! 감히 그분께서 놈들에게 당하기라도 했단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