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1
<귀환무사 221화>
접전 중, 그들은 자살 공격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사대천불의 행동 반경을 좁혀 놓기 일쑤였다.
자살 공격을 들어서 알고 있던 사대천불은 가급적 그들의 몸에 공세를 퍼붓지 않고서 구검마들을 상대했다.
당연히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으악!”
콰지지지직!
처절한 단말마와 굉음이 주변을 울렸다. 뒤쪽에서 전장을 지켜보던 총사의 눈이 부릅떠졌다.
주변에서 난전을 벌이던 모든 이들이 각자의 진영으로 몸을 뺐다.
엄청난 기운이 주변을 몰아쳤기 때문이다.
잠시 싸움이 중단되었다.
모두가 굉음이 울린 곳으로 시선을 주었다.
피를 뚝뚝 흘려 내는 검을 손에 쥐고 차갑게 선 검후의 모습이 보였다.
적포인의 목을 쳐 내고 칼에 묻은 핏물을 내공으로 태워 버리는 백선녀의 모습도 보였다.
“이곳은 신마성의 대지! 물러서지 않으면 용서치 않겠다!”
나지막이 말한 목소리는 피아를 막론하고 모두의 귓속을 생생하게 울렸다.
모두가 경악한 시선으로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총사의 얼굴에 지독한 살기가 나타났다.
“과연 놈의 계집이라 대단하구나. 좋다! 네년들은 본좌가 직접 상대해 주지!”
그가 드디어 처음으로 대도를 뽑아 들었다.
“뭣들 하느냐! 쳐라!”
총사의 명령으로 전투는 다시 이어졌다.
앞으로 나서려던 진천과 사공진무를 뒤로 물린 독고혜는 영호수란마저도 물렸다.
한 발 앞으로 나선 그녀는 싸늘함이 감도는 시선으로 총사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당신이 무리들의 수장으로 보이는군요. 좋아요! 당신을 죽이겠어요.”
“후후! 간덩이가 부은 남편을 얻더니 네년도 전이된 모양이구나. 감히 본좌 앞에서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다니…….”
“이런! 썅!”
총사의 거친 욕설에 진천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독고혜의 검이 진천보다 빨랐다.
천살강기를 두른 그녀의 검이 총사의 심장을 노리고 뻗어졌다.
속도는 상상을 불허했다. 총사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지며 몸을 회전시켜 공세를 벗어났다.
“모두들 다른 분들을 도우세요! 명령이에요!”
두 손으로 검을 쥔 독고혜의 싸늘한 명령에 멈칫거린 진천 등은 그녀의 뜻이 완고함을 느끼고는 이내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마지막까지 머뭇거린 영호수란이 조부, 영호도성의 곁으로 뛰어가는 것을 본 독고혜는 시선을 총사에게로 던졌다.
“당신의 목은 내가 베어 주겠어요.”
“닥쳐라! 어린 계집!”
콰과광!
총사의 대도가 불을 뿜었다.
도강과 검강이 뇌전 치듯 작렬하자 주변에 쓰러졌던 시신들이 훼손되며 사방으로 날아올랐다.
저절로 둘의 주변이 커다란 원형의 공간으로 변했다.
산자들도 무지막지한 기운을 피해 멀찌감치 떨어졌던 까닭이다.
독고혜의 검은 보다 더 파괴적이었다. 천살강기가 더해진 그녀의 공격은 주변을 초토화시킨 것도 모자라 오 장 밖에까지 영향력을 미쳤다.
까가강!
번쩍!
“악인이 갈 곳은 지옥뿐!”
꽈과광!
“가랑이를 찢어 주마!”
굉음과 섬광, 뒤이어 치솟는 흙먼지가 둘을 삼켜 버렸다.
제8장 혈전, 난전
흑야는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았다.
금치문에게서 받은 그것은 과연 명검이었다. 육신이 한철보다 강하다는 철갑신마의 후예들도 이 검 앞에선 두부처럼 썰어져 나갔다.
그러나 자신도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말았다.
주르륵!
허리 어름에서 진득한 핏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통증 따윈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다만 전투에서 이탈한 것이 화가 날 뿐이었다.
“야! 인마! 서둘러 성으로 돌아가서 진무에게 치료받아!”
접전 중에도 그가 걱정되었던 북궁천소가 고함을 질렀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신경이 끊어졌는지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빌어먹을……!”
검을 지탱하여 간신히 몸을 일으킨 그는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점점 시야가 흐릿하게 변해 갔다.
‘이대로 갈 순 없는데…….’
주인의 군림천하를 보지 못하고는 도저히 눈을 감을 수 없었다.
그가 천하에 우뚝 서는 그날을 보고 싶었다.
“후…….”
흐려지는 의식을 간신히 잡고 있던 그는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군병들을 느끼며 어둠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 * *
“반드시 놈을 성까지 데려가라! 너희들 모두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알겠느냐!”
담대소천의 포효성이 주변을 울렸다.
언제나 담대하고 강인한 모습만을 보였던 그가 아니었다.
그는 한 마리 야수처럼 광포하게 움직였다. 흑야가 죽어가고 있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전장에서 몸을 뺄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 미친 듯이 청룡언월도를 휘둘렀다.
콰지직!
청룡언월도가 거인의 육신에 작렬했다.
살이 갈라지며 피가 튀었지만 거인은 대도를 휘두르며 전진했다.
악귀처럼 움직이는 거인의 목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개새끼들!”
왕전이 대도가 붉은 선혈로 얼룩졌다.
거인의 목을 자른 것이다.
“우욱!”
마교의 장로 곽송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대노한 장용백이 곽송을 벤 거인에게 달려들었다. 무모한 돌격에 뇌어양이 자신의 앞을 마주한 적을 제쳐 두고 그에게로 몸을 날렸다.
검로의 검이 장용백을 베어 가는 거인의 다리를 향해 떨어졌다.
깡!
진기의 소모가 극심했던 검로의 검은 잠깐 거인을 주춤하게 만들었을 뿐, 부상을 입히지 못했다.
광로의 장력이 주춤거리는 거인의 등에 작렬했다.
제아무리 철갑신마의 후예라도 명문혈을 정통으로 가격당하자 피를 게워 내며 비틀거렸다.
장용백의 대도가 그런 거인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죽여 버린다! 개새끼들!”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장용백은 몸을 돌려 다른 거인에게로 다가갔다.
뇌어양이 장용백을 나무랐다.
“정신 차려라! 용백! 저들의 죽음을 헛되이 할 작정이더냐!”
장용백의 눈에서 기어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싸늘하게 식은 채, 핏물 속에서 뒹굴고 있는 동료들이 보였다.
“살아라! 살아서 마교를 재건해야 저들이 지하에서 웃지 않겠느냐!”
“으흐흐! 알겠습니다! 살아남겠습니다.”
그때였다.
쾅!
둘의 뒤쪽에서 강력한 폭발이 일었다.
순간 방심했던 둘은 폭발의 여력에 휘말려 주르륵 밀려나며 피를 뿌렸다.
“교주!”
천마사로가 일제히 뇌어양에게로 달려갔다.
중심이 흐트러진 채로 밀려가는 뇌어양의 육신으로 번쩍이는 검강과 도강들이 날아들었다.
천마사로가 막아 내기엔 거리가 너무 멀었다.
순간 모든 마교 고수들의 얼굴에 절망이 어린다.
어렵사리 검강은 막아 낸 뇌어양, 그러나 그보다 더 파괴적인 도강이 그의 목을 베고 지나간다.
“교주!”
서걱!
섬뜩한 소리가 마교 고수들의 귓속을 울렸다.
“괜찮으십니까?”
“허허! 덕분에 부끄러운 일은 피했구려.”
담대소천이었다.
그의 청룡언월도가 뇌어양을 노렸던 자들을 베어 버린 것이다.
그제야 달려온 마교의 고수들이 그에게 무한한 감사의 눈빛을 전했다.
뇌어양과 함께 날아갔던 장용백이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다가왔다.
“장 전주께서는 교주를 모시고 물러나시오.”
“크허허! 평생을 다해도 갚지 못할 은혜를 입었소이다! 크허허!”
장용백은 뇌어양을 보며 뜨거운 눈물을 줄줄 흘렸다.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던 그가 자신을 보며 옅은 미소를 보이자 이내 엉엉 울음을 터트린다.
담대소천의 눈동자가 전장으로 돌아갔다.
평소의 그가 아니었다.
오직 살기만을 떠올린 그의 눈동자는 악마의 그것처럼 섬뜩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 * *
놀랍게도 묵련의 총사가 독고혜의 검을 피해 전장의 한곳으로 숨어들었다.
여전히 담담한 호흡을 보이는 독고혜는 그를 쫓지 않고 그 자리에서 전황을 살폈다.
영호수란이 독고혜의 곁으로 날아왔다.
“언니! 놈들이 물러나요!”
흠칫한 독고혜가 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과연 묵련은 빠르게 퇴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 다급함이 어렸다.
“쫓아가서 섬멸시켜야 해! 란 매는 이곳에서 수습을 맡아 줘.”
독고혜가 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남으라고 남을 영호수란이 아니다. 그녀는 천마사로에게 눈을 찡긋 감더니 이내 독고혜의 뒤를 쫓았다.
“용백! 교주를 모셔라!”
쾅!
천마사로의 육신도 전장으로 향했다.
독고혜는 십지신검의 옆으로 내려섰다.
“오라버니! 놈들을 쫓으세요!”
“오냐!”
전신을 적의 핏물로 흠뻑 적신 독고무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마침 십전무제와 사대천불이 다가왔다. 독고무가 영호도성에게 다급히 말을 건넨다.
“놈들을 쫓아서 섬멸해야겠습니다!”
“그러세.”
“모두 적을 쫓아라!
사대천불의 명령이 떨어지자 살아남은 정도맹의 고수들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적을 추격했다. 그 선두에는 악승과 신마각, 그리고 화산의 제자들이 있었다.
추격전은 혈야평의 초입까지 이어졌다.
빠르게 도주하던 묵련의 고수들이 순간 그 자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드넓게 펼쳐진 평원을 까맣게 메우고 달려오는 수만의 군병들, 그 기세가 자못 대단하자 그들은 순간 당황하여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동소가 총사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이런……!”
총사는 즉답을 못했다.
그는 꽤나 심각한 부상을 입고 있었다. 독고혜와의 대결에서 밀린 것이다. 그것이 퇴각의 이유였다.
두두두…….
대군은 거침없이 그들을 향해 질주해 들어왔다.
아니 그들을 향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기마병들이 질주하는 앞을 막아선 꼴과 같았다.
총사가 다급함에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에게 첫 패배의 아픔을 가져다준 검후 독고혜를 필두고 신마성과 정도맹의 고수들이 폭풍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총사!”
동소가 재촉하자 총사는 짜증스러운 어조로 명령을 내렸다.
“좌측으로 간다!”
“총사! 좌측은 위험합니다. 그곳에 오왕이 모조리 몰려 있습니다.”
“놈들도 있지만 서장의 아이들도 그곳에 있다!”
철갑신마를 이르는 말이다.
총사는 빠르게 진영을 살폈다.
일천에 이르던 병력이 고작 이백 정도가 살아남아 있었다. 완벽한 참패다.
그의 얼굴이 참담하게 구겨진다.
“좌측으로!”
앞뒤로 몰린 묵련은 빠르게 좌측으로 질주를 시작했다. 그들을 추격하던 신마성의 무리에서 진천과 사공진무가 방향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기마병들을 향해 몸을 날리는 것이 보였다.
“형님!”
선두에서 말을 몰아오는 장수의 등에 기댄 흑야가 보였다.
허리를 끈으로 단단히 둘러맨 것도 보였다.
눈을 감은 흑야의 얼굴과 힘없이 늘어진 그의 팔은 진천과 사공진무의 얼굴을 경악으로 물들였다.
“멈추어라!”
사공진무가 내공을 담아 소리치자 수만의 기병들이 놀랍게도 그 자리에 멈추었다.
적을 쫓던 독고혜가 어느새 그들의 지척으로 다가와 있었다.
독고혜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흑야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신마성의 분들이오?”
선두에 선 장수가 묵직한 어조로 물었다.
대답은 독고혜가 대신했다.
“그렇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호랑이처럼 생긴 장수가 말에서 내렸다.
그의 등에 묶인 흑야의 사지가 흔들리는 꼴을 본 진천의 손이 허공을 번득이자 묶었던 끈이 끊어지며 흑야의 육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털썩!
“진무 님! 그분을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대번에 흑야의 위중함을 알아본 사공진무는 흑야를 안고 신마성으로 뛰었다.
진천의 눈동자가 지독한 분노가 휩싸인다.
그는 장수를 돌아보며 싸늘하게 물었다.
“형님들은 어디 계시오?”
“진천 님이시군요. 지금 도독 님과 그분의 친우들은 적과 전투 중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