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
<귀환무사 219화>
천왕.
묵련의 주인이자 혁련세가에 있어 궁극의 적인 그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단리황과 제갈각, 그리고 적용백은 보는 것만으로 호흡이 거칠어짐을 느끼고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저절로 그들의 손은 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오성의 셋이 검을 뽑았음에도 천왕은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의 이글거리는 눈동자는 여전히 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혁련천후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린다.
“꽤 자신이 있는 모양이군.”
“후후! 자신? 그건 본좌와 비등한 상대를 만났을 때 들어야 하는 소리가 아닌가? 너희들이 그 정도의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후후후…….”
혁련천후가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상대보다 먼저 검을 뽑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혁련강도 검을 뽑았다.
“간단하군. 너만 죽이면 모든 것이 끝나겠지.”
“후후! 그게 가능할까?”
우우웅!
천왕의 육신이 미증유의 거력을 발산했다. 단리황을 비롯한 오성이 둥그렇게 천왕을 둘러쌌다.
“부탁하겠소. 이곳은 우리에게 맡기고 당신들은 퇴각하는 맹의 무사들을 보호하시오.”
“……!”
셋의 눈동자가 일제히 혁련강의 얼굴에 고정되었다. 눈동자가 흔들린다.
심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는 천왕의 엄청남을 겪을 때와 다를 바 없었다.
그가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던 그들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불과 조금 전의 그와는 차원이 다른 거력을 전신에 두르고 있었다.
“견오라고 하오. 이 이름이면 부탁을 들어주실 수 있겠소?”
치르륵!
혁련강의 육신을 두른 천살강기가 서서히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혁련천후도 다를 바 없었다.
셋은 천왕을 노려보고는 이내 정도맹의 부대들을 쫓았다. 후미에서는 추격하는 묵련의 고수들과 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후후! 미약한 놈들이지만 있었다면 조금은 도움이 되었을 텐데…….”
“우리만으로 충분하다. 물론 둘이서 하나를 상대하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은 있다만 강한 놈이니 고개를 들 수는 있겠어.”
콰르릉…….
쩌저적!
맑았던 하늘에 갑작스러운 천둥과 뇌전이 몰아쳤다.
그리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뇌전이 셋의 주변에 떨어지며 자연의 위대함을 뽐냈지만 셋은 움직이지 않았다.
* * *
번쩍!
콰르릉!
뇌전과 천둥, 그리고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오왕은 적을 기다렸다.
“주공의 판단이 틀렸단 말인가…….”
“조금 더 기다려 보자.”
예상과는 달리 적은 아직껏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조윤의 눈이 좌측으로 돌아갔다.
그곳엔 흑야가 몸을 감추고 있다. 그가 그곳에 있음을 아는 그들에게도 흑야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당연히 달려올 적이 그를 발견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이번엔 조윤의 시선이 우측으로 돌아갔다. 뇌어양을 비롯한 마교의 고수들이 그곳에 있다.
그들의 측면에 관산악이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흑야가 흔들고 자신들이 헤집어 놓으면 그들이 적의 후방을 쓸어버릴 작전을 그들은 세워 놓고 있었다.
꽈르릉!
뇌전이 숲의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지독한 폭우임에도 뇌전이 떨어진 곳은 이내 불길이 치솟는다.
“온다!”
조윤이 눈빛을 발하며 전방으로 시선을 던졌다.
미세하게 땅의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날카롭게 전방을 주시하던 모두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 적들의 수가 실로 엄청났다.
“모조리 몰려왔군.”
왕전이 그답지 않게 굳은 표정이다.
조윤이 우측과 좌측을 번갈아 살폈다. 흑야와 마교의 고수들도 이미 적의 출현을 눈치를 챘을 것이다. 북궁천소가 물었다.
“머릿수가 천에 이른다. 어떻게 할 셈이냐?”
“흔들고 정도맹의 본단으로 빠져야지. 가급적 강해 보이는 놈들만 골라서 죽이자고.”
“빌어먹을 새끼들! 쪽수가 장난이 아니군.”
북궁천소가 대도를 뽑아 들며 으르렁거렸다.
두두두두…….
강호의 무파들에겐 전무한 삼백에 달하는 기마 부대가 관도를 따라 질주해 들어왔다.
기마 부대의 좌우를 경공으로 날아오는 고수들의 숫자는 대략 오백, 거의 일천에 육박하는 대병력이었다.
제아무리 그들이라도 감당하기란 불가능한 숫자였다. 게다가 선두에서 날아오는 자들의 수준은 놀라울 정도로 비약거리가 길었다. 고수라는 소리다.
“준비해라!”
조윤이 눈에 힘을 주며 몸을 일으키려고 할 때였다.
쐐애액!
폭우를 뚫고 수만 발의 강전들이 하늘을 덮었다.
좌우에서 묵련의 부대를 덮친 강전들은 기마 부대를 그대로 진흙탕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들었다.
기습에 놀란 적들이 우왕좌왕하며 이동 속도가 늘어졌다. 좌우를 날아오던 고수들은 그 자리에서 연이어 날아오는 강전들을 무기를 휘둘러 막아 내기 급급했다.
엄청난 양의 강전이 쏟아졌지만 죽어 나가는 자는 거의 없었다.
다만 최초의 기습에 기마병들은 반 이상이 몰살을 한 듯 보였다.
“뭐야? 저건!”
“누구지? 엄청난 숫잔데?”
지켜보던 오왕이 뜻밖의 상황에 눈을 동그랗게 했다.
우와아아…….
갑자기 사방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들렸다.
조윤과 왕전, 그리고 북궁천소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소천! 놈이 왔군.”
“자식! 때마침 잘 와 주었네. 우리도 가자!”
셋의 육신이 자리를 떠나 적진으로 질주했다.
동시에 적의 좌측에서 핏물을 터졌다. 은신했던 마교의 고수들이 행동을 개시한 것이다.
“침착하게 적을 맞이해라!”
거대한 체구의 적포인이 마상에서 사자후를 터트리며 묵련의 부대를 지휘했다.
기습에 당황하여 상당한 피해를 입은 묵련은 짧은 시간에 안정된 대처를 보이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기마 부대가 양측을 까맣게 메우고 달려드는 군병들을 향해 돌진했다.
강전에 희생된 동료들의 복수를 다짐한 그들은 파괴적인 공세를 퍼부으며 군병들을 휩쓸기 시작했다.
일반 군병들이 무공으로 다져진 강호의 기마 부대를 당해 낼 순 없는 노릇이다.
고작 이백에 불과한 묵련의 기마대는 수만에 달하는 군의 기마병들을 휩쓸었다.
“으아악!”
장창이 쓸고 지나간 자리엔 어김없이 두서넛의 시신이 나뒹굴었다.
그러나 군병들도 예사롭지 않았다. 묵련의 기마대도 하나둘씩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일대일로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음에도 군병들은 두려움을 모르고 그들을 향해 부딪혀 갔다.
전장에서 익힌 조직력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콰지직!
“크아악!”
갑자기 묵련의 기마대 뒤쪽에서 말과 사람이 하늘로 솟구치며 피를 뿌려 댔다.
두두두!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흑마가 지나가는 자리엔 피와 살들이 난무했다.
청룡언월도가 번쩍이는 빛을 뿜어내며 적들을 육신을 쪼갠다.
“도독을 호위하라!”
“도독이시다!”
장수들이 큰 소리로 담대소천의 등장을 알렸다.
그를 일반 군병의 장수로 오인했던 묵련의 기마대들은 반 이상이 핏물에 쓰러지고서야 그의 존재를 알아챘다.
세상에 청룡언월도를 무기로 사용하는 존재는 딱 하나! 전설의 싸움꾼, 투왕 담대소천뿐이다.
적은 군병들을 포기하고 담대소천을 노렸다.
“기병은 능선으로 물러나라!”
담대소천은 기마병을 뒤로 물렸다.
그의 말 한마디에 수만의 군병들은 물밀듯이 뒤쪽으로 물러났다. 물러나는 군병들에게서 시선을 거둔 담대소천은 말 머리를 돌려 적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팟!
청룡언월도에 부딪힌 빗줄기들이 팍 하는 소리를 내며 수증기로 화했다.
주변은 아수라장으로 변해 있었다.
적진으로 스며든 마교의 고수들과 자신의 벗들로 인해 빗물은 핏물로 바뀐 지 오래다.
간혹 보이지 않는 검이 꽤 강해 보이는 적의 목을 그대로 잘라낸다. 어둠 속의 제왕, 흑야의 솜씨였다.
우웅!
청룡언월도가 들려지며 주변이 광포한 기운으로 요동쳤다.
“나라의 군병들을 해한 죄, 참수에 해당하며 국가의 치안을 어지럽힌 죄, 역시 참수에 해당한다. 그러나 네놈들의 가장 큰 죄는…….”
그가 말에서 내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속삭이듯 한말이지만 모두의 귓속을 생생하게 파고들었다.
“주공의 심기를 어지럽힌 것이다.”
쾅!
콰지지직!
강력한 도강이 횡으로 날아가 전마들의 몸을 베었다. 전마들이 날뛰며 피를 뿌리자 모두가 몸을 날려 바닥으로 내려섰다.
몇은 주변에서 파생된 강기에 목이 날아가기도 했다.
담대소천이 그들을 향해 달려드는 것으로 일 대 오십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오너라, 이놈들.”
우우웅!
청룡언월도가 울고 있었다.
* * *
신마성의 앞을 흐르는 작은 강줄기는 그 색이 핏빛으로 변해 버렸다.
미처 신마성으로 들어가지 못한 정도맹의 고수들은 추격해온 묵련과 생사결전을 벌였다.
악승에 의해 간신히 목숨을 구한 그들이 신마성으로 들어가기가 무섭게 주변은 난공불락의 요새로 변해 버렸다.
진이 펼쳐진 것이다.
“으악!”
진을 뚫지 못해 우왕좌왕하던 묵련의 고수들에게로 연속적으로 불꽃이 떨어졌다.
상당한 거리에서 날아온 그것은 어김없이 하나씩의 목숨을 앗아 갔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진은 수시로 변했다. 변화하면서 만들어 낸 살상기관들에 상당수가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도무지 방법이 없자, 묵련은 잠시 뒤로 물러났다.
뒤늦게 총사가 현장에 도착했다.
수하들에게 보고를 받은 그는 신마성의 주변 외곽을 예의 주시하며 한동안 서성이더니 섬뜩한 눈빛을 발했다.
“고작 이따위를 뚫지 못해 아까운 병력을 잃다니! 당장 성으로 가서 화약을 가져오너라! 그동안 놈들이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게끔 철저히 포위망을 경계하라!”
* * *
“놈들이 공격을 멈췄네요?”
진천이 옆의 사공진무와 진천을 보며 말했다.
장거리 공격을 퍼붓던 진천이 손을 내리고 이마에 땀을 훔쳤다.
그 옆에서 마찬가지로 청진과 청명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워낙 내공의 소모가 큰 공격 방법이었기에 둘은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사공진무의 얼굴색이 그다지 밝지 못했다. 진천이 그를 보며 물었다.
“얼마나 견딜 수 있냐?”
“조금…….”
“조금? 그게 어느 정돈데?”
“놈들이 만약 화약을 사용한다면 반 시진을 버티기 힘들다.”
진천이 그답지 않게 얼굴색이 굳어진다.
그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정도맹의 고수들이 곳곳에서 대열을 정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신마성까지 퇴각하는 와중에 상당한 피해를 입은 그들은 사대천불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진천의 시선이 첨탑으로 향했다.
그곳에 독고혜와 영호수란, 그리고 십지신검 독고무가 있었다. 진천의 육신이 순간,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첨탑에 모습을 나타냈다.
독고혜가 따스하게 웃어 주며 그를 반겼다.
“여기 계셨습니까?”
“수고 많으셨어요. 덕분에 진을 지켰어요.”
“하하! 그게 제 힘입니까? 모두가 저 진무의 작품인걸요.”
독고무가 진천의 어깨를 툭 쳐 주었다.
“확실히 자네들은 하늘도 놀랄 재주를 지녔네, 놀라울 뿐일세.”
진천이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쾅! 쾅! 쾅!
천지를 뒤흔드는 폭발음이 연속적으로 터졌다.
모두의 시선이 황급히 폭발이 일어난 곳으로 돌아갔다. 진천의 눈에 다급함이 떠오른다.
“화약입니다!”
우려했던 상황이 일어났다.
강변 주변을 철통처럼 두르고 있던 사공진무의 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가공스러울 정도의 강력한 폭발은 연이어 일어났다.
“전투태세로 갖추어라!”
정도맹의 고수들이 일제히 성곽으로 올랐다.
신마성의 인물들은 독고혜를 중심으로 모였다. 강변과 성의 정문까지는 오십여 장, 뚫리기만 하면 순식간에 공격 사정권에 접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