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218화 (216/425)

# 218

<귀환무사 218화>

자칫 기운이 흐트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뒤를 바짝 따르고 있던 혁련강과 영호도성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어린다.

[장차 세상은 저 아이들에 의해 바뀔 것이오.]

[허허! 그렇습니까?]

[분명 그렇게 될 것이오. 그건 그렇고 얼른 아이를 보았으면 좋겠소만…….]

[전쟁이 끝나면 당연히 그래야지요. 허허! 저 아이들에게서 태어날 아이의 미래가 선합니다. 고금에 다시없을 귀재가 분명 나오지 않겠습니까.]

[허허! 그러면 얼마나 좋겠소.]

둘은 전음으로 좋은 말을 주고받았다.

앞을 달려가던 셋의 얼굴이 슬쩍 붉어졌다.

혁련강과 영호도성이 깜빡한 것이 하나 있었다. 셋이 전음을 도청하는 무공을 익히고 있음을…….

휘이익!

상당한 속도로 그들은 질주했다.

눈앞의 사물들이 빠르게 뒤로 지나갔다.

가장 뒤쪽에서 이동 중인 백호단의 무사들은 잔뜩 긴장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던 까닭이다.

낮은 구릉을 넘어서자 전장이 펼쳐졌다.

“우리가 제일 늦었군.”

그랬다.

다른 부대들은 이미 전장에 뛰어든 상태였다.

철갑신마의 후예들과 전투를 벌인 것이 시간을 잡아먹은 것이다.

그들은 볼 것 없이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모조리 죽여 버려!”

* * *

격렬한 전장의 뒤쪽 능선에 두 인물이 피비린내를 실어 나르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서 있었다.

뒷짐을 지고서 전장을 바라보는 자의 뒤쪽에 섰던 자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총사! 신마성주 일행이 후미를 급습하여 전열이 일거에 흐트러지고 있습니다!”

목소리의 임자는 구검마의 대형, 동소였다.

놀라운 일이다. 그가 상관으로 받드는 인물이 있었다니…….

천왕에 이어 실질적인 이인자로 불렸던 동소가 아닌가.

동소는 등을 돌리고선 채, 전장을 바라보는 적포인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

“후후! 놈들의 모든 전력이 모였단 말이군.”

동소의 다급함과는 달리 총사라 불린 인물은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눈빛을 번득였다.

동소가 의구심 어린 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신호를 보내라! 놈들이 모조리 이곳으로 몰려들었다고 말이다.”

“신호탄을 쏘란 말입니까?”

“그렇다! 놈들의 본단을 노릴 것이다.”

“……!”

“후후! 약한 아이들만 골라서 이곳에 온 이유를 이제야 알았느냐? 서둘러 신호를 띄워라! 철갑신마의 후예들과 광승의 후예들이 정도맹을 접수할 것이다. 우린 그동안 놈들의 발목만 잡아 주면 역할을 다하는 것이지! 근거지를 잃는다면 놈들의 세는 급격히 흔들릴 것이다.”

동소는 그제야 알았다는 듯, 다른 자에게 신호탄을 쏠 것을 지시했다.

신호탄이 오르는 것을 본 동소가 총사를 보며 다시 물었다.

“놈들의 기세가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저 신마성의 놈들은 아군에게 상당한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총사께서 직접 나셔야 하지 않습니까?”

“……!”

총사는 말없이 동소가 가리킨 신마성의 인물들을 응시했다.

폭발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그들에 의해 자신의 수하들이 연신 피를 뿌려 댔다.

특히 서른으로 보이는 무력 부대의 돌파력은 단연 발군이었다.

흩어지지 않고 돌파와 접전을 병행하는 그들의 주변이 수하들의 시신으로 가득했다.

차가운 눈동자에 은은한 살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응! 저놈들이 전장을 이탈합니다!”

“오왕이라는 놈들이 아니더냐?”

“맞습니다, 그놈들입니다.”

둘의 눈에 전장을 빠져 북쪽으로 질주하는 넷이 보였다.

그런 그들의 뒤를 뒤따르는 인물들이 있었는데 마교의 고수들이었다.

총사라는 자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설마, 본련의 작전을 짐작했단 말인가?”

그들의 이동 방향은 정도맹이 있는 북쪽이었다.

총사라는 자의 얼굴에 처음으로 초조함이 나타났다.

“여긴 네가 맡아라! 본좌는 정도맹으로 가는 부대와 합류하겠다.”

팟!

말이 끝남과 동시에 육신이 사라졌다.

경천동지할 경공에 동소의 눈에 감탄이 어렸다가 사라진다.

동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혁련천후에게로 돌아갔다.

뿌드득!

저절로 이가 갈렸다. 그에 의해 죽은 형제가 둘이나 되었다. 자신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장에서 후퇴라는 걸 맛보았다.

“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마!”

쾅!

동소의 육신이 전장으로 날아갔다.

* * *

쾅!

“우악!”

혁련천후는 중원으로 돌아온 이래 가장 파괴적인 살수를 연신 펼쳐 냈다.

궁극의 적이 묵련인 탓에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그 옆을 함께하고 있는 독고혜와 영호수란 역시 그 누구보다 강력한 파괴력을 뽐냈다.

모두가 천살강기의 위력 때문이었다.

“주공! 놈들이 뒤로 물러납니다!”

악승이 소리쳤다.

과연 적들이 조금씩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혁련천후의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힘에 부쳐서 물러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적용세를 찾았다.

“뒤로 물리시오!”

치열한 접전을 펼치던 적용세가 검을 휘두르고는 뒤로 빠지며 혁련천후를 돌아보았다.

악승이 큰 소리로 외쳤다.

“병력을 뒤로 물리시랍니다!”

자초지종을 물어볼 여념이 없었던 적용세는 내공을 담은 목소리로 외쳤다.

“적을 따르지 말고 뒤로 물러서라!”

“물러서라!”

곳곳에서 부대를 책임진 고수들의 외침이 이어졌다. 물러서던 적들을 쫓던 정도맹의 고수들이 의아함을 보였다.

그러나 전장에서 명령은 목숨보다 더한 것, 모두는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전투는 중단되었다.

뒤로 물러서던 적들도 어느 시점에서 물러남을 멈추고 대열을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열의 정비가 끝났음에도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도맹의 수뇌부가 한 곳으로 모였다.

“피해 상황은 어떠한가?”

신기수사 적용백이 적용세와 관승을 보며 물었다. 전신이 피로 흠뻑 적셔진 그는 제법 거칠어진 호흡을 보이고 있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사망자가 오십은 넘어갈 듯싶습니다. 게다가 전투 불능에 가까운 부상자가 백에 이릅니다.”

모두가 굳어진 얼굴로 적진을 노려보았다.

“놈들은 삼백이 넘은 사망자를 낸 듯 보이오. 이 정도면 압승이라 할 만하지만, 놈들의 지원 부대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일이니…….”

곳곳에 자잘한 부상을 입은 단리황의 무거운 어조에 혁련천후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 그가 혁련강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을 본 혁련강이 나지막이 말했다.

“적의 지원군은 오지 않을 것이오.”

“왜 그렇게 생각하시오?”

단리황이 물었다.

모두가 혁련강에게 시선을 던졌다.

대답은 영호도성이 대신했다.

“조금 전, 신마성의 오왕과 마교의 고수들이 전장을 벗어나 정도맹의 본단으로 갔소.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오.”

신기수사 적용백이 뭔가를 알았다는 듯 눈을 빛냈다.

“혹, 놈들이 본단을 노린단 말이오?”

“놈들은 수세에 몰리지도 않았음에도 신호탄을 쏘았소. 그것을 수상히 여긴 성주가 그렇게 판단하고 전력의 일부를 본단으로 돌린 것이오.”

모두가 대번에 경직된 표정으로 바뀌었다.

침묵을 지키고 있던 제갈각이 입을 열었다.

“그들만으로 놈들을 막아 낼 수 있을지가 걱정이오. 본단을 노린다면 필시 상당한 전력이 투입될 것이 아니겠소?”

모두가 혁련천후를 흘긋 쳐다봤다.

그는 묵련의 진영을 응시하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단리황이 뭔가를 물어보려다 입을 닫았다.

모두가 그의 시선을 좇아 적진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들도 이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혁련천후의 시선은 그들이 아닌 위쪽을 향해 있었다. 마침 혁련강의 시선도 그와 같은 곳을 향해 던져졌다.

순간 혁련강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놀람이 극에 달한 그의 눈동자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어떤 상황이라도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던 혁련강이다.

“감당할 상대가 아니군요.”

“허허! 그렇구나, 저 정도라면 힘들겠어.”

느닷없는 둘의 대화에 모든 이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둘을 쳐다보았다. 먼 곳을 응시하던 혁련천후가 몸을 돌렸다.

“지금 즉시 퇴각 명령을 내리셔야 합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시오? 성주!”

혁련강이 나섰다.

“서두르시오! 시간이 없소!”

단리황이 조금은 짜증스러운 빛을 보였다.

“정도맹 역사에 적을 앞에 두고 퇴각을 한 예는 한 번도 없었소. 우리더러 그 최초의 불명예를 안으란 것이오?”

혁련천후의 눈가에 싸늘함이 감돌았다.

“늦으면 모두 죽습니다.”

그 말을 한 그는 독고혜와 영호수란의 옆에 우뚝 서 있는 악승을 불렀다. 재빨리 뛰어온 악승에게 그는 명령을 내렸다.

“성으로 돌아가라!”

“예!”

묻지도 않고 그저 충성스럽게 대답한 악승이 다시 신마각의 무사들에게로 뛰어갔다.

단리황을 비롯한 정도맹의 수뇌들은 당최 연유를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정도맹의 본단은 포기하십시오! 모두 신마성으로 가야 합니다!”

“이보시오! 성주! 도대체 그게 말이 되는 소리요?”

단리황이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저길 보시오.”

혁련강이 손을 들어 묵련의 고수들이 서 있는 능선의 위쪽을 가리켰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던져졌다.

“어억!”

단리황과 제갈각의 입에서 괴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진기를 다스리던 적용백은 얼굴 근육까지 심하게 뒤틀렸다. 하늘에 까만 점이 떠 있었다.

놀랍게도 그 점은 엄청난 속도로 자신들이 선 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게 새라면 놀랄 자,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새가 아니었다. 그랬기에 천하를 울리는 절대자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어 버린 것이다.

적용세가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모두 퇴각한다! 방향은 정도맹이 아닌 신마성이다! 서둘러라!”

느닷없는 명령에 모두는 웅성거렸다.

“뭣들 하느냐! 서둘러 퇴각하라!”

“퇴각하라!”

관승이 정도맹의 고수들 쪽으로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웅성거리던 군웅들이 일제히 뒤쪽으로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독고혜와 영호수란이 빠르게 다가왔다.

“저도 함께 싸우겠어요!”

그녀도 이미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혁련천후의 고개가 단호하게 좌우로 흔들렸다.

“돌아가서 기다려.”

그 단호함에 그녀는 혁련강과 영호도성에게 눈빛으로 도움을 구했다.

“허허! 너희들이 이곳에 있으면 우리가 제대로 힘을 쓸 수 있겠느냐. 염려 말고 성으로 돌아가 기다리면 곧 따라갈 것이니라.”

혁련강의 그 같은 말에 그녀들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혁련천후를 바라보았다. 혁련천후는 영호도성을 쳐다봤다.

“성을 부탁드립니다.”

잠시 머뭇거린 영호도성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돌아오게나.”

눈빛으로 감사를 전한 그는 사랑하는 두 여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눈과 눈이, 마음과 마음은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했다.

“조심해요.”

“얼른 오세요.”

혁련천후는 두 여인을 향해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바람처럼 몸을 날렸다.

“괜찮겠죠?”

“믿어, 이제 이 세상에서 저분을 감당할 사람은 없을 거야.”

두 여인은 사라져 가는 혁련천후를 응시하며 서로의 손을 꼭 쥐었다.

제7장 드디어 나타나는 혁련가의 적

콰아앙!

쿠오오오!

대지를 두 발로 밟고 내려선 자의 주변 공간에 소용돌이가 생겨나며 광포하게 요동쳤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적색 일색인 그는 눈동자마저도 섬뜩한 홍광으로 번득였다.

“후후! 네놈들이 혁련가의 마지막 핏줄들인 모양이군…….”

지옥의 겁화처럼 불타오르는 그의 눈동자가 오직 혁련천후와 혁련강만을 향했다.

둘은 말없이 적포인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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