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216화 (214/425)

# 216

<귀환무사 216화>

* * *

혁련천후의 검이 극성의 천살강기를 두르기 시작했다.

혁련강과 독고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껏 그들은 극성의 천살강기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철갑신마의 후예들이 생각 이상으로 강력하자 전력을 사용하기로 작정했다.

치르륵!

검을 두른 천살강기가 광호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당신은 내 옆에서 떨어지지 마!”

“알았어요.”

독고혜가 재빨리 혁련천후의 옆으로 바짝 붙었다. 혁련강이 그들보다 먼저 뛰어들었다.

그는 적들의 수장으로 보이는 하후광을 덮쳤다.

꽈광!

검과 대부가 부딪히며 강력한 기운들이 사방으로 뻗어 갔다.

“우욱!”

하후광이 답답한 소리를 내며 주르륵 뒤로 물러났다. 혁련강은 그런 하후광을 곧장 따라붙으며 폭발적인 연속 공격을 퍼부었다.

물러서면서 수비에 급급해진 하후광은 경악했다.

‘힘을 감추고 있었구나!”

조금 전과는 차원이 다른 힘이 혁련강의 검에 담겨 있었다.

그는 혁련강의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의 눈동자 깊숙한 곳에서 폭발하는 섬광을 보는 순간, 불안감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우억!”

우측에서 기괴한 비명이 터졌다.

핏물이 솟아오르며 그 단단했던 거인의 육신이 갈라졌다. 전투가 시작된 이래, 최초의 사망자는 혁련천후의 검에 의해 생겨났다.

하후광의 가슴 한쪽에 쿵 하는 충격이 전해졌다. 핏줄보다 더한 연으로 맺어진 수하의 죽음이 전해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곳을 돌아볼 수도, 갈 수도 없었다.

동료의 죽음에 분노한 거인들, 셋이 싸우던 상대를 제쳐두고 혁련천후를 향해 그대로 돌진했다.

가공할 힘이 그에게 집중되며 떨어졌다.

콰앙!

혁련천후도 감히 부딪힐 생각은 못했다.

신법을 펼쳐 공세를 벗어난 그는 검후를 살폈다. 그녀는 자신의 곁을 바짝 따르고 있었다. 지친 기색도 없었다.

안도의 숨을 내쉰 그는 잠시 여유를 틈타 전장을 살폈다.

“응!”

그제야 멀찌감치 떨어져 전장을 지켜보는 정도맹의 인물들이 보였다.

영호수란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보았다. 그들이 오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상대는 강했다.

‘이 정도면 하나가 오성에 버금간다.’

비록 하나를 죽이긴 했지만 철갑신마의 진경을 이는 거인들은 대단했다.

이들 말고도 광승 무요의 진경을 이은 적들은 아직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고 있다. 어쩌면 그들은 거인들보다 더 강한 고수일 가능성이 높다.

그 옛날의 광승이 철갑신마보다 강했기 때문이다.

“후퇴한다!”

하후광의 입에서 퇴각 명령이 떨어졌다.

그는 혁련강의 공세에서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다른 자들의 도움이 있었던 까닭이다.

잠시 전장에서 벗어났던 혁련천후가 하후광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혁련강도 하후광의 좌측으로 쇄도해 들어갔다.

“놈을 막아라!”

하후광이 재빨리 뒤로 물러나자 거인, 셋이 혁련천후와 혁련강을 막아섰다.

경천동지의 능력을 지닌 둘이라도 철갑신마의 진경을 이은 셋을 단시간에 제압하기란 불가능했다.

하후광이 이를 갈며 묵련의 본대가 있는 북쪽으로 몸을 날렸다. 다른 거인들도 뒤를 경계하며 뒤를 쫓았다.

“쫓지 마시오!”

도주하는 무리들을 쫓으려던 뇌어양과 마교의 고수들은 혁련강의 제지로 걸음을 멈추어야만 했다.

장용백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씩씩거렸다.

“악독한 새끼! 수하들을 먹이로 던져 주고 내빼다니…….”

“그만 하여라! 쫓는다고 어찌할 수 있는 상대들이 아님을 알잖느냐.”

뇌어양이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돌렸다.

틀린 말이 아니다.

혁련강과 혁련천후가 없이는 그들을 쫓아도 뾰족한 수가 없다. 자칫 자신들이 당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콰과광!

영호도성이 합류했다.

그러나 그는 거인들의 엄청난 파괴력 앞에 혀를 내둘러야만 했다.

그는 지금껏 이들과 싸운 일행들이 얼마나 강한 적들과 싸웠는지를 몸소 겪을 수 있었다.

서걱!

혁련강의 검이 거인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다른 하나도 혁련천후의 검에 의해 피를 뿌리고 쓰러졌다. 살아남은 거인이 흉성을 터트리며 달려들다가 측면에서 들어온 검후의 검에 목을 내주고 말았다.

“우와!”

백호단의 무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의 눈동자엔 환희와 열망, 그리고 경외심이 가득했다.

도저히 꿈꿀 수 없는 경지를 밟은 초인들의 신위에 저절로 가슴이 뜨거워졌다.

“아미타불! 참으로 난적을 해치우셨소이다!”

사대천불이 다가오며 합장을 했다.

영호수란이 새처럼 날아와 혁련천후와 독고혜의 상세를 살폈다.

“괜찮아, 우린…….”

독고혜가 미소로 대답했다.

사대천불의 시선은 일제히 혁련강에게 고정되었다. 그가 보여 준 무위는 절대 신마성주의 아래가 아니었다.

아직 그의 정체를 모르는 사대천불이다.

“다른 부대들은……?”

혁련천후가 영호수란을 보며 물었다.

“모두 예정된 방향으로 움직이고 계세요.”

영호수란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백호단의 새로운 단주이자 무당, 진무각의 각주인 도겸이 손에 뭔가를 들고 뛰어왔다.

그는 혁련강과 혁련천후에게 손에 든 것을 내밀었다. 자기로 만들어진 호리병이었는데 매화를 갈아 만든 음료가 그 안에 들어 있었다.

백호단의 무사 몇도 마교의 고수들에게 그것을 전하고 있었다.

눈빛으로 고마움을 표시한 혁련천후는 하나는 조부에게 건네고 하나는 자신이 조금 마신 후, 검후에게 건넸다.

영호도성은 죽은 자들의 시신을 땅에 묻을 것을 백호단에 지시하고는 돌아와서 혁련강에게 말했다.

“잠시 쉬었다 출발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허허! 그럽시다, 늙은 육신에 힘을 좀 썼더니 영 상태가 엉망인 듯하오.”

혁련강이 짐짓 삭신이 쑤신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영호도성은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사대천불은 그런 혁련강을 여전히 의문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 * *

단리황과 제갈첨은 단리세가와 하북팽가, 제갈세가, 그리고 개방의 고수들이 주축이 된 부대를 이끌고 가장 먼저 혈야평으로 진입했다.

오성에 속한 강자 둘이 이끄는 데다가 팽가와 개방의 수뇌부가 함께하는 탓에 그들은 자신감에 넘쳤다.

특히 젊은 고수들은 난전을 기회 삼아 자신의 이름을 떨칠 요량으로 보무도 당당하게 진군했다.

아직 해는 하늘의 가운데에 떠올라 있었다.

넓게 횡으로 펼쳐서 이동 중인 그들은 적의 기습 따윈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 다소 흐트러진 군세를 보이고 있었는데, 가장 선두에서 이동 중이던 단리황이 그것을 의식한 듯, 주의를 시키고는 대열을 재정비했다.

“다른 부대들은 어떻다고 하던가?”

단리황이 바로 뒤쪽을 따르고 있던 개방의 방주, 구절신개를 보며 물었다.

개방 최초로 타구봉으로 초절정을 밟은 구절신개가 공손히 대답했다.

“신마성주 일행과 묵련의 특공대로 보이는 자들이 부딪혔다합니다만, 결과는 아직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보고받는 대로 소식을 올리겠습니다.”

“특공대?”

“아마도 맹의 첩보망을 파괴한 장본인들이 아닌가 합니다.”

“흠…… 고작 특공대 정도로 신마성주와 그의 조부라는 자가 속한 일행을 어찌할 순 없겠지. 그건 그렇고 미리 척후를 보낸 아이들에게선 소식이 없는가?”

구절신개가 그 부분에서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올 때가 지났습니다만……. 어쩌면 적에게 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다시 보내겠습니다.”

“아니네, 괜한 인력 낭비를 할 필요는 없네. 어차피 저 건너에서 모두 집결하기로 했으니 우린 그곳으로 가면 되지 않겠나. 그때 다시 논의해 보세.”

구절신개가 고개를 숙이고는 조금 뒤쪽으로 물러났다.

제갈첨이 주변을 둘러보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흠! 전면전을 벌이기엔 딱 좋은 장소요. 기습전을 벌이기엔 너무 넓고 트여 있으니 집결지까지는 별다른 일은 없을 것 같군.”

“생각이 있는 놈들이라면 이런 곳에서 기습전을 펼칠 수는 없겠지. 더욱이 놈들도 정보망을 돌리고 있다면 맹의 부대들이 상당히 짧은 간격을 유지하며 이동 중임을 알지 않겠나? 당연히 어설픈 전력으로 달려들지는 않을 걸세. 뭐, 상당한 전력을 몰아온다면 모를까.”

“몸이 근질거리지 않는가?”

“허허! 사실 그동안 너무 평온한 생활을 해 왔지. 용성의 침공 때도 나서지 않았던 우리가 아닌가. 이번 기회에 제대로 힘을 써 봐야지. 그래야 강호가 우리를 입에 담지 않을 걸세.”

단리황의 말에 제갈첨이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너무 과신을 금물이네. 놈들의 드러나지 않은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무도 모르네. 어쩌면 우리들보다 더 강한 고수들도 있을 테고 말이야…….”

“당연히 그렇겠지. 하지만 이 나이에 죽음 따윈 두렵지 않다네. 오히려 이런 난세를 맞이하니 젊었을 때의 호기가 생겨 조금은 흥분된다네.”

제갈각은 단리황을 응시하며 가볍게 웃었다.

그들은 세수 백을 바라보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벌써 진토가 되었을 나이다.

강산이 열 번을 변하고도 남을 세월을 살아왔건만 아직도 호승심이 남아 있음에 스스로도 놀라웠다.

대화를 멈춘 단리황은 뒤를 따라오는 부대를 흘긋 돌아보았다.

적진을 향하는 걸음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들은 평온한 모습이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전방으로 돌렸을 때, 단리황의 눈동자에 빠르게 다가오는 일단의 무리들이 잡혔다.

뒤이어 뒤쪽에서 구절신개의 걸걸한 음성이 들렸다.

“적이다!”

정보통이라 앞선 둘보다 먼저 알아본 모양이다. 평온은 이내 급박함으로 바뀌었다. 별도의 지시가 없었음에도 모두는 빠르게 전투대형으로 진을 갖추었다.

제갈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상당한 숫자가 몰려오네.”

“어리석은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섰단 말인가?”

“숫자로 보아 작정하고 오는 모양일세.”

모두가 긴장감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특히 호승지심을 보이던 젊은 고수들은 막상 적의 출현이 현실로 다가오자 얼굴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지며 전방을 향해 굳은 자세를 취했다.

적들은 빨랐다.

나타난다 싶더니 어느새 부대의 전방 이십 장 거리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적의 수는 대략 백여 명, 단리황이 이끄는 부대와 엇비슷한 수준이었다.

적의 수가 엇비슷함을 본 정도맹의 고수들은 다소 긴장감을 지워 낼 수 있었다.

엇비슷한 수라면 오성의 둘이 이끄는 자신들이 유리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게다가 팽가의 가주와 개방의 방주도 있었으니, 승리는 자신들의 것이라 확신하는 자들마저 생겨났다.

적진에서 쇠꼬챙이처럼 비쩍 마른 노인이 앞으로 나섰다.

“예까지 죽으러 온다고 수고했다. 네놈들은 이곳에서 뼈를 묻게 될 것이다.”

“생긴 것과는 달리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늙은이군. 그 말처럼 실력이 되는가 보겠다.”

단리황이 성큼 앞으로 나서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운이 없다고 생각해라. 노부의 부대와 마주친 것을…….”

차갑게 받아친 노인이 손을 들자 뒤쪽에 늘어섰던 모두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단리황도 뒤를 돌아보며 가볍게 소리쳤다.

“모두들 검을 뽑아라!”

채채채챙!

일제히 검과 도를 뽑아 들자 순식간에 주변은 날카로운 기운으로 난무했다.

묵련의 고수들은 이미 무기를 뽑아 들고 서서히 다가서고 있었다.

“쳐라!”

노인의 명이 떨어지자 백여 명에 달하는 자들이 일제히 직선으로 달려들었다.

“적을 섬멸하라!”

단리황의 명령에 정도맹의 고수들도 달려드는 적을 향해 곧장 몸을 날렸다.

* * *

푸드득!

수석 장로 적용세의 어깨 위로 전서구가 내려앉았다.

주변을 이동하던 조윤과 왕전이 적용세를 바라보았다.

“모든 부대가 적을 맞이했다고 하오.”

전서를 읽은 적용세가 침중한 기색으로 둘을 돌아보며 말했다. 조윤이 물었다.

“전황은 어떻다고 합니까?”

“단리 노야께서 이끄는 부대가 가장 강력한 적을 맞은 것 같소. 다른 곳은 미미한 정도의 기습을 받았다고 하니 별 피해야 없겠소만…….”

왕전이 좌측으로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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