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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215화 (213/425)

# 215

<귀환무사 215화>

출진 준비란 그게 전부였다.

천왕이 명이 떨어졌다.

하후광을 선두로 모두는 혈야평을 가르며 정도맹의 본대로 질주를 시작했다.

지켜보던 천왕의 눈동자가 새하얗게 빛을 발했다.

‘놈들의 후방을 흔들어 줄 아이들이 투왕! 놈에 의해 몰살 직전까지 몰렸다.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전면전을 벌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내가 놈들을 너무 과소평가했어…….’

그러나 후회란 없었다.

아직도 그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 * *

깡!

“헉!”

전선의 최전방에서 척후를 담당하던 정도맹의 순찰당주 최염은 눈을 의심했다.

적의 허리를 베었건만 오히려 자신의 검이 부러졌다.

“흐흐!”

퍽!

최염의 머리가 수박처럼 박살이 난다.

핏물이 뚝뚝 흐르는 대부를 든 거인은 살기가 진득한 눈으로 전방을 응시했다.

이미 이곳에 은신했던 정도맹의 고수들은 모조리 싸늘하게 식어 버렸다.

“전진한다!”

그들은 믿기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직선으로 곧장 달렸다.

평원의 가운데 조금 솟아 있던 숲에서 번쩍이는 섬광들이 그들을 향해 쏟아졌다.

선두에선 하후광이 대부를 휘두르자 허공에서 수십 발의 불꽃이 튀기며 모조리 튕겨 날아갔다.

거인 하나가 섬전처럼 숲으로 뛰어들었다.

퍽!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핏물이 튀었다.

비명조차 없었다.

전신을 핏물로 목욕을 한 거인이 숲을 나오자 그들은 다시 질주를 거듭했다.

그들이 질주하는 좌우측에서 전서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거인이 대부를 던지려고 했으나 하후광이 말렸다.

“그냥 내버려 둬라! 알고도 못 막는 공포를 느끼며 좌절하게 만들어 주겠다!”

거인들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달렸다.

* * *

“척후조 두 곳이 몰살을 당했습니다!”

적용세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옆을 지키던 관승이 자신의 대도를 움켜쥐며 일어섰다. 질풍대주 관포도 뒤를 따라 몸을 세웠다.

적용세가 고개를 젓는다.

“수뇌부는 가급적 쉽게 움직여선 곤란하다. 조금 더 기다려 보도록 하지.”

그때 전서구 몇 마리가 더 날아들었다.

전서를 읽어 가는 적용세의 얼굴이 더욱 경직되어 갔다.

“놀랍군, 나백이 죽고 모든 위치를 바꾸었건만 정확히 그곳으로 움직이고 있다니…….”

전서에는 적의 이동 방향이 여러 갈래라 적혀 있었는데 하나같이 정도맹의 첩보 부대가 은신과 매복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

관승이 이를 갈았다.

“아직도 맹 내에 첩자가 있는 모양입니다! 빌어먹을!”

“누군지 알 수가 없으니…… 난감하군.”

관포가 얼굴을 붉히며 거친 소리로 나섰다.

“일단 우리도 부대를 나누어 놈들을 맞아야 하지 않습니까? 이대로 두었다간 첩보대원들은 모조리 죽음입니다! 장로님!”

“성급하게 굴지 마라!”

“그들을 죽게 내버려 두잔 말입니까? 그럴 순 없습니다!”

관포가 당장에라도 밖을 향할 듯 움직이자 관승이 말렸다.

“경거망동 말라니까! 맹주께서 복안이 있으시겠지. 그러니 지시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

“형님!”

“어허! 그래도!”

관승이 호통을 치자 관포는 이를 악물며 잡은 대로를 신경질적으로 탁자 위에 놓았다.

관포의 심정을 헤아리기라도 했을까? 장로 소무영이 들어서며 말을 건넸다.

“모두 동시에 출진이 결정되었네. 준비들 하시게나.”

적용세가 급히 물었다.

“신마성은 어찌한다던가?”

“그들은 독자적으로 출진할 것이라 했네. 독자적이라도 함께 가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 우리도 얼른 서두르세.”

넷은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적용세의 눈에 바삐 움직이는 신마각의 무사들이 보였다. 그는 악승을 잡고 물었다.

“어느 방향으로 출진하는가?”

“청룡단의 아이들을 보호하라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전왕과 창왕께서 함께하신다고 합니다!”

“오! 그런가!”

적용세는 다소 마음이 놓였다.

신마각도 그랬지만 오왕의 둘이 함께한다면 젊은 인재들의 피해를 최소한 줄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오왕은 모두 돌아왔는가? 한동안 보이지 않더니 말일세.”

“투왕, 소천 님을 제외하고는 모두 돌아오셨습니다!”

관승이 끼어들었다.

“우리 질풍대와는 어느 분이 함께하시오?”

“도왕과 살왕께서 함께하신다고 들었소! 아! 그리고 진천 님도 함께하실 것이오!”

“진천이라면……?”

“환영마객이라 불리시는 진천 님 말이오.”

순간 관포의 얼굴에 안도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비록 용맹하기로 첫손에 꼽힐 그였지만 적과의 전면전에 대한 긴장감은 어쩔 수 없었던 그였다.

물론 정도맹에서도 전대의 고수들이 각 부대마다 편성되겠지만 그래도 당대 천하를 뒤흔드는 엄청난 존재들이 질풍대와 함께한다고 하자 적잖이 안심되었다.

악승이 적용세에게 허리를 숙이고는 빠른 걸음으로 신마각의 무사들을 따랐다.

“우리도 서두르자!”

“예!”

* * *

콰지직!

아름드리 거목이 도끼질 한 번에 대지로 쓰러진다. 거목 뒤에서 은신했던 자의 육신까지도 두 동강으로 썰어졌다.

거인들은 놀랄 만한 파괴력으로 곳곳에 은신했던 정도맹의 무사들을 도륙하며 전진을 거듭했다.

꽤 강했던 고수들이 속절없이 그들의 손길에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으합!”

청성의 이대 제자 고승이 전력으로 거인의 허리를 검으로 후려쳤다.

깡!

놀랍게도 쇳소리가 울린다. 찢어진 장포 사이로 맨살이 보였는데 가느다란 흔적만이 남았을 뿐 선혈조차 흐르지 않았다.

“이, 이럴 수가…….”

넋을 뺀 고승의 머리로 거인의 대부가 떨어졌다.

퍽!

“흐흐! 가소로운 새끼들…….”

주변을 비릿하게 채운 피비린내를 즐기며 거인들은 다시 질주를 시작했다.

그들은 오직 직선으로 달렸다. 보이는 것, 걸려드는 모든 것들을 부수며 거침없이 정도맹의 본대를 향했다. 그런 그들이 걸음을 세웠다.

“마교의 쓰레기들…….”

하후광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걸린다. 끝이 올라간 눈동자는 자신들의 앞을 막아서는 인영들을 향해 던져졌다.

“또 만나는군, 빌어먹을 개새끼들!”

장용백이었다.

거한들을 향해 던져진 그의 눈동자는 지독한 한으로 번득였다.

“경거망동 마라!”

뇌어양이 앞으로 뛰쳐나가려는 장용백을 잡았다.

“후후! 신마성의 졸개로 전락한 모양이군. 그렇게라도 살고 싶었나? 뇌어양.”

“졸개를 해도 과할 정도로 대단한 곳이더군. 그곳은…….”

“자존심도 팔아먹었군. 천년마도의 요람이라는 마교가 남의 주구 노릇이나 하다니, 후후!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군.”

천마사로가 조용했다.

하후광의 지독한 모욕에도 그들은 고요함, 그 자체를 유지하며 거인들을 노려보았다.

그런 그들의 뒤쪽에서 혁련천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옆을 검후가 따르고 있었다.

순간, 하후광의 눈동자에 기광이 어렸다.

“철갑신마의 진경을 이은 놈들인가?”

“함부로 그분의 존명을 입에 담은 죄로 네놈의 육신을 들개의 먹이로 썰어 주겠다.”

“그것도 괜찮겠군, 들개의 먹이라…….”

“네놈이 보아하니 신마성의 성주인가 하는 그 애송이인가 보군. 어쩌나? 제대로 전쟁이 벌어지기도 전에 죽게 되었으니…….”

하후광이 자신의 대부를 양손에 쥐었다.

거인들도 일제히 그의 좌우로 늘어섰다.

주변이 폭발할 듯한 가공할 기운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저놈은 양보하십시오.”

혁련천후가 하후광을 가리키며 뇌어양을 바라보았다.

“부탁하겠소, 성주.”

“빚은 제게도 있습니다.”

가볍게 고개 숙인 혁련천후가 몸을 돌려 거인들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가 독고혜를 바라본다.

“시작하지.”

“그래요.”

천적 간의 만남이다.

삼백 년의 시공간을 넘어 신마와 세 마두의 하나인 철갑신마의 재회였다.

제6장 혈전

번쩍!

드드드…….

다섯 조로 나뉘어 이동하던 정도맹의 부대들은 막 다섯 방향으로 갈라지는 지점에서 걸음을 멈추고 전방을 바라보았다.

대낮임에도 뇌전이 연이어 작렬하며 대지를 울렸다.

잠시 조부, 영호도성과 함께하기 위해 혁련천후와 떨어졌던 영호수란이 초조한 기색으로 영호도성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

“허허! 그래, 가서 돕자꾸나.”

영호수란의 어깨를 어루만져 준 그는 다른 부대를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모두가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으니 예정된 방향으로 이동들을 하는 게 좋겠소.”

“저희가 돕겠습니다!”

오왕이 앞으로 나섰다.

영호도성은 고개를 저었다.

“모두가 그럴 필요 없네. 이동 방향이 저쪽인 부대만 나와 함께 가는 게 좋겠네. 자네들은 저들을 이끌어야지. 저곳은 노주와 성주가 함께 계시니 염려 말게나.”

“아미타불! 빈승들이 저쪽이구려.”

사대천불이 앞으로 나왔다.

뒤로 백호단과 구파의 중진들이 따랐다.

그들이 지금 엄청난 결전이 벌어지는 방향으로 이동하는 부대였다.

아쉬움을 드러내는 오왕들에게 눈빛으로 마음을 전한 영호도성은 이내 뇌전이 번쩍이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호위 아저씨들! 나중에 봐요!”

영호수란이 손을 흔들어 주고는 영호도성의 뒤를 쫓았다.

조윤을 비롯한 넷은 잠시 그곳을 말없이 응시했다. 그때 신기수사 적용백이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허허! 이제 우리도 출발합시다.”

“아, 예!”

“모두들 몸조심하시고 일 차 집결지에서 보십시다.”

적용백이 이끄는 부대가 가장 우측 방향으로 이동을 시작하자 단리황이 이끄는 부대도 좌측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줄지어 다른 부대들도 예정된 방향으로 이동을 다시 시작했다. 조윤이 모두를 보며 소리쳤다.

“일차 집결지에서 보자!”

* * *

전장으로 들어선 영호도성과 사대천불은 놀라운 광경에 저절로 얼굴이 돌처럼 경직되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싸움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는데, 놀라운 것은 적의 사상자가 하나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에 있었다.

물론 아군의 사상자도 없었다.

“저들이 마교와의 전쟁에서 위력을 발휘했다는 철갑신마의 후예들인가 봅니다.”

“아미타불! 과연 대단한 자들이오이다. 저들과 싸워 지금껏 쓰러진 자가 없다니…….”

영호도성과 사대천불은 전장에 끼어들 것을 잠시 보류했다.

흐름이 중요했다.

도와주려는 마음에 어설프게 뛰어들었다간 오히려 아군의 흐름을 끊을 수 있었다.

그것을 짐작한 영호수란은 초조한 기색으로 혁련천후와 독고혜를 바라보았다.

“허어! 강호에 새로운 여제가 탄생했소이다. 검후라고 했소이까? 과연 대단하오. 대단해…….”

광불이 놀랍다는 빛으로 검후 독고혜를 가리켰다.

그랬다.

지금 그녀는 그 누구 못지않은 몸놀림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녀가 휘두른 검과 거인의 대부가 부딪히자 움찔하고 물러서는 쪽은 거인이었다.

백호단의 무사들은 그런 검후를 보며 열망에 어린 눈빛들을 발산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천하제일 미녀라는 꼬리표보다는 검후라는 단어가 더욱 가슴 깊이 다가왔다.

꽝!

전장에서 파생된 강기가 백호단의 무사들 쪽으로 강력하게 쇄도해 들어오는 것을 영호수란이 검을 들어 쳐 내자 비껴 나간 강기로 인해 주변 숲이 난데없는 폭발에 휩싸였다.

“정신들 바짝 차려라!”

영호도성이 단단히 주의를 주고는 서서히 전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힘을 보태기 위해서다.

함께 가려던 영호수란은 영호도성이 전음으로 말리는 바람에 백호단과 함께 있어야만 했다.

조금 전, 그녀가 보여 주었던 놀라운 광경으로 인해 백호단 무사들의 눈빛은 검후를 볼 때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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