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9
<귀환무사 209화>
그러나 진승은 이미 전장의 중심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그 용맹함에 청룡단의 단원들은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두려움을 품었던 얼굴이 이내 험악하게 구겨지며 다가오는 적들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다.
“얼른 덤벼! 새끼들아!”
“썅! 내가 바로 청룡단의 식신, 육돈이다! 한꺼번에 덤벼, 개자식들아!”
서른에 달하는 무사들이 일거에 강렬한 투기를 발산하자 다가들던 묵련의 고수들이 주춤했다.
청룡단은 정도맹 무력 부대들 중, 유일하게 신마성에서 몇 개월을 수련했던 최고의 유망주들로 구성된 집단이다.
비록 대정문과의 일로 인해 정도맹으로 돌아갔던 그들이지만 지금까지도 그때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오왕과의 수련으로 다져진 그들의 정신력은 놀라울 정도였는데, 잠시 보였던 두려움을 걷어 내고 투기를 드러내자 대단한 위력으로 적을 움찔하게 만들었다.
* * *
꽝!
소천왕 곽범의 검이 불꽃을 피워내며 강력하게 돌아갔다.
상대도 피하지 않고 대도를 휘두르자 주변 공간이 흔들리며 강력한 기운들을 사방으로 쏟아 냈다.
“흐흐! 네놈들이 사천왕의 제자들이라지? 덕분에 진급하게 생겼군.”
결코 만만치 않았던 직격에도 묵련의 고수는 담담했다. 그에 반해 곽범은 다소 답답한 기색을 보였다. 내공에서 밀린 것이다.
‘위험하다!’
곽범은 황급히 시선을 돌려 상황을 살폈다.
다른 소천왕들은 다른 고수들과 치열한 난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소걸개가 좌충우돌하며 그들을 돕고 있었다. 그때 곽범의 눈이 커졌다.
화산의 무복을 걸친 젊은 청년이 전장으로 뛰어드는 것을 본 것이다.
“돌아가! 위험하다!”
이곳은 자칫 파생된 기운만으로도 죽을 수 있는 고수들의 전장이다. 청룡단의 단주 정도가 끼어들 곳이 아니었다.
“흐흐! 감히 나를 앞에 두고 한눈을 팔다니…….”
“닥쳐라!”
곽범이 벼락같이 검강을 퍼부었다.
무시무시한 강기가 다발로 짓쳐 들자 묵련의 고수도 전력으로 대도를 뻗었다.
곽범이 빠르게 옆쪽으로 이동했다. 청룡단주 진승이 뛰어든 방향이었다.
“교활한!”
속은 묵련의 고수가 이를 갈며 뒤를 따라붙었다.
“청룡단주는 속히 마차로 돌아가라!”
곽범의 염려 어린 목소리에 진승은 씩 웃었다.
“배우기를 이렇게 배워서 말이지요…… 엇! 위험합니다!”
곽범은 뒤쪽에서 느껴지는 막강한 기운에 황급히 몸을 틀어 회전시켰다.
간발의 차이로 도강이 옷깃만을 자르고 지나갔다.
“합!”
진승의 검이 불을 뿜었다.
곽범을 베는 것에 실패하고 무게중심이 흐트러진 묵련의 고수가 크게 놀라며 진승의 검을 막아 갔다.
퍽!
그러나 생각 이상으로 빨랐던 진승의 검이 어깨를 베고 지나가자 핏물이 튀었다.
불행히도 무기를 잡은 오른쪽 어깨였다. 그걸 놓칠 곽범이 아니었다. 불필요한 행동을 배제한 직선공격이 상대의 가슴에 작렬했다.
심장을 관통한 곽범의 검이 등 뒤까지 삐져나왔다. 볼 것도 없이 즉사였다. 검을 뽑은 곽범이 진승을 보며 눈빛을 발했다.
“역시 화산이군. 고맙다. 덕분에 살았어.”
“별말씀을…….”
얼굴까지 붉게 상기되어 버린 진승의 어깨를 곽범이 툭 쳐주었다.
“저쪽도 도와줘야겠지?”
“아, 알겠습니다. 가시죠!”
* * *
독고혜는 영호수란과 함께 본대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앉아 시원한 늦겨울의 바람을 즐기고 있었다.
회복한 그녀는 같은 여인인 영호수란조차도 가슴이 떨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고작 한 시진이 지났을 뿐인데, 보고 싶어. 신기하지 않아? 이런 마음이…….”
“저도 그래요.”
“란 매는 그이를 얼마만큼 사랑해?”
“풋! 너무 유치해요. 언니, 조금 변하신 거 아세요?”
독고혜가 눈을 동그랗게 했다.
“내가 변했어?”
“그럼요, 예전의 날카로움은 하나도 보이지 않아요. 마치 여신이 되신 것처럼 그저 부드럽고 온화하기만 한걸요. 그래 가지고 싸움이나 하겠어요?”
“그럼, 그분의 적이라면 난 누구보다 무섭게 그들을 대할 거야. 죽여야 한다면 그렇게 할 거고……. 그건 란 매도 마찬가지 아닌가?”
“당연하신 말씀!”
서로의 손을 잡은 그녀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대지와는 달리 하늘은 수많은 별들이 아름다움을 뽐내며 반짝이고 있었다.
그때 독고혜가 우측을 응시하며 눈을 반짝였다.
뒤이어 영호수란도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숲이 흔들리며 누군가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 화산의 제자예요.”
영호수란이 놀라는 사이 독고혜는 이미 화산의 제자 앞에 서 있었다.
뒤늦게 발견한 화산의 제자들이 몰려왔다.
숲에서 나온 화산의 제자는 전신이 피로 물들은 상태였다.
가쁜 호흡을 보이는 그의 명문혈에 독고혜가 진기를 주입시켰다.
“이봐! 무슨 일이야!”
진천이 다급하게 물었다.
“적의 기습이…… 헉! 헉! 소천왕이 배신을…….”
“소천왕이 배신을 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보급 부대가 위, 위험합니다. 지, 진승 사형도 그곳에 계십니다.”
막대한 진기가 들어가자 헐떡였던 제자는 빠르게 기력을 회복하며 또렷하게 말했다.
진천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디냐!”
“저쪽으로 십 리 정도 밖입니다.”
진호가 독고혜를 보며 다급하게 말했다.
“저희들이 다녀오겠습니다.”
쾅!
대답을 할 여가도 없이 셋이 그대로 제자가 가리킨 방향으로 날아갔다.
뒤이어 청명과 청진도 몸을 날렸다. 혁련강이 다가오며 물었다.
“무슨 일이냐?”
“보급 부대가 기습을 받았는데, 전투 도중 소천왕의 둘이 갑자기 적으로 돌변하는 바람에 소걸개 어르신이 그만 목숨을 잃으셨습니다. 그리고 청룡단과 백호단원들도 적에게 포위를 당했습니다.”
그 말에 모두는 적잖이 놀랐다.
비록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현실로 나타나자 마음이 무거웠다.
게다가 앞으로 그와 같은 상황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욱이 스스로 드러내기 전에는 누가 적인지 알아낼 방도가 없다는 것이 크나큰 문제였다.
“일단 아이들을 구하세. 모두 함께 가 보도록 하지.”
혁련강의 말에 모두는 빠르게 전장으로 이동했다.
* * *
숲을 가르며 질주한 진천의 눈에 피를 흘리며 악전고투를 벌이는 진승의 모습이 잡혔다.
한눈에 보기에도 상당히 지쳐 보이는 진승은 주변에 청룡단원으로 보이는 무사들 몇이 쓰러져 있었다.
진천과 진호 등은 숲을 뛰쳐나오며 큰 소리로 물었다.
“어떤 새끼들이 소천왕이야!”
“저, 저놈들입니다!”
청룡단원 하나가 난전 중임에도 불구하고 손을 들어 좌측을 가리켰다.
그곳에 곽범과 또 다른 소천왕이 얼마 전까지 동료였던 자들과 한데 뒤섞여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진천의 눈썹이 하늘로 치켜 올라갔다.
“빌어먹을 새끼들! 오늘 한번 뒈져 봐라!”
“저쪽은 일단 접어 두고 아이들부터 구해!”
진호가 진천의 목덜미를 잡아 반대편으로 돌려서 밀었다. 성난 진천과 진명이 곧장 진승이 싸우고 있는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힘내라! 화산이 도우러 왔다!”
청룡단원들이 고함을 지르며 동료들을 독려했다. 진천과 진명이 묵련의 고수들을 향해 달려들 때였다.
쾅!
묵련의 진영에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달려가던 진천과 진명이 흠칫하며 걸음을 세웠다. 그런 그들의 머리 위로 시커먼 그림자들이 넘어가며 소리를 질렀다.
“하하! 사숙님들! 저희들 먼저 갑니다!”
“야하!”
청명과 청진이 머리를 넘어 곧장 묵련의 고수들을 향해 내달리자 진천의 얼굴 근육이 뒤틀렸다.
“저런 망할 놈들!”
“뭐야? 저 폭발을 일으킨 게 저놈들이었단 말이야?”
“진천 사부의 환술을 배웠으니 저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닐 겁니다. 어서 가시지요, 놈들에게 공을 빼앗기겠습니다.”
둘은 바닥을 차고 날아올랐다.
화산의 다섯 제자들이 뛰어들자 전황은 정도맹 쪽으로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청명과 청진이 대량살상이 가능한 장거리 공격을 연신 퍼부었다. 강력한 폭발에 몇이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진승! 사숙! 이쪽으로 피하십시오!”
청명이 진승에게 소리쳤다.
전신을 핏물로 목욕을 한 진승은 고개를 저었다.
연신 거친 호흡을 하면서도 그는 둘에게 씩 웃어 주었다.
“제법 강해졌구나! 좋아! 화산의 위력을 보여 주자고! 헉! 헉!”
“위력은 저희들이 보여 줄 테니 그냥 쉬시는 것이…….”
“시끄러! 얼른 움직여!”
진승을 덮쳐 가던 자의 허리에서 핏물이 튀어 올랐다. 진천이 그 앞에 나타났다.
그는 진승을 보며 아래위로 눈을 부라리고는 그대로 적진 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진승이 지친 육신을 이끌고 진천의 뒤를 따르려고 몸을 돌렸으나 누군가의 손에 의해 어깨가 잡혔다.
“쉬어라, 난 화산의 제자들이 다치는 꼴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대사형!”
매화무적 진유의 얼굴이 진승의 눈을 찔렀다.
진유의 따뜻한 눈길을 본 진승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쪽으로 물러났다.
“곧 도와 드리러 가겠습니다!”
“그럴 시간이 있을까…….”
스르릉!
매화무적 진유의 독문 병기 매화검이 어둠 속에서 그 빛을 번쩍이며 검집을 빠져나왔다.
진유는 느릿하게 전황을 살폈다. 전투는 두 곳으로 나뉘어 벌어지고 있었다.
한곳은 화산의 다섯 제자들이 가세하는 바람에 정도맹이 유리함을 점하기 시작했으나 다른 곳은 그렇지 못했다.
용호상박의 전투를 벌이고 있는 넷을 진유는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배신을 한 것이냐, 아니면 처음부터 적이었더냐…….”
쾅!
그의 육신이 섬광처럼 그곳으로 날아갔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던 진유는 목이 잘려 죽어 있는 소걸개를 발견했다.
그의 익살스러움과 따뜻한 인간미를 기억하는 진유는 분노가 일어났다.
“성진! 이놈!”
어깨 위로 검을 세운 진유의 육신이 이제는 적이 되어 버린 소천왕의 일인을 향해 폭풍처럼 달려들었다.
꽝!
곽범을 핍박하던 둘이 좌우로 갈라지며 뒤쪽으로 물러섰다.
진유가 그 자리에 섰다.
성진의 입가에 진득한 비웃음이 떠올랐다.
“후후! 감히 너 따위가 끼어들 자리가 아닐 텐데…….”
“배신을 한 것이냐!”
“배신? 쿡쿡! 누가 누굴 배신했단 말이냐? 우리가 정도맹을? 크하하하!”
성진과 또 하나의 소천왕 형도혁이 크게 웃었다.
“지금껏 실력을 숨기고 있었던 놈들이네. 조심해야 할 걸세.”
곽범이 다가오며 말했다.
진유는 곽범의 호흡이 꽤 거친 것을 느꼈다. 그리고 다른 한 명도 가슴이 크게 뛰고 있었다.
그에 반해 광소를 터트리는 저들은 멀쩡해 보였다.
“제가 돕겠습니다.”
“고맙네.”
곽범은 거절하지 않았다.
세상은 매화무적 진유를 소천왕의 아래로 보고 있었다. 그것은 소천왕들이나, 진유, 스스로도 같은 생각이다.
하지만 진유는 전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분노를 다스리자. 나 스스로가 어느 정도로 발전했는지를 직접 겪어 보겠다.’
오왕과 수련을 해 온 그다.
천하최강의 존재, 일존에게서 무공까지 사사한 그다.
‘보여 주마! 수련의 성과를…….’
입술을 지그시 깨문 진유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졸지에 상대할 적이 하나 더 늘었음에도 반대편에 선 둘은 담담한 기색을 보인다.
곽범이 진유의 옆에 서며 싸늘하게 외쳤다.
“지금껏 우릴 봐준 것이냐?”
“후후! 그걸 이제야 깨달은 모양이군. 그동안의 정리를 생각해 봐준 건 사실이지. 하지만 이젠 그만 끝을 봐야겠어.”
“가증스러운 놈들!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이를 가는 곽범, 진유의 이어진 말이 배신자들의 얼굴을 굳어지게 만들었다.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 모양이군. 내가 어디 소속인지를 생각해 봐. 내가 왔다면 그분들도 올 것이라는 말이지.”
흠칫!
신마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