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208화 (206/425)

# 208

<귀환무사 208화>

“살수가 아닌 자가 이 정도의 쾌검이라…… 꽤 성가신 놈이 있었군.”

당금 중원엔 쾌검을 구사하는 고수는 극히 드물었다.

언제부턴가 파괴력을 중점으로 하는 검법이 유행하기 시작했었는데, 그 시작은 무려 오십 년 전부터 이어진 것이다.

기본적으로 파괴력을 중시하는 도법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여기서 두 조로 갈라선다. 천소와 진천은 나와 함께 가고 나머지는 산의 우측 능선으로 이동하는 것이 좋겠다.”

“합류 지점은……?”

“사흘 후에 본대에서 만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몸조심하십시오, 주공!”

조윤을 비롯한 일행들이 빠르게 우측으로 돌아서 사라졌다.

혁련천후도 곧장 산의 능선을 향해 몸을 날렸다.

곳곳에서 간혹 느껴지는 날카로운 기운들이 신경을 거슬렸지만 무시하고 곧장 경공을 펼쳤다.

대략 일각을 달렸을까? 능선에서 조금 모자란 지점에서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뒤따르던 북궁천소와 진천이 좌우를 살피며 옆에 섰다.

북궁천소가 연신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생각보다 매복한 놈들의 수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렇군.”

“닥치는 대로 쓸어버릴까요?”

“너희 둘은 전처럼 놈들을 최대한 흔들어라! 단, 강자들이 나타나면 가급적 부딪히지 말고 본대로 돌아가. 난, 다른 곳을 가 보겠다.”

진천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혼자 가시겠단 말입니까?”

“너희들 걱정이나 해. 간다!”

둘이 뭐라 할 새도 없이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어딜 가시는 거지?”

“흠! 생각이 있으시겠죠? 그럼 우린 신 나게 때려 부수러 가 볼까요?”

“흐흐! 좋지!”

둘은 기감에 걸려든 적을 제거하기 위해 숲 안으로 스며들었다.

* * *

혁련천후는 묵련의 본단을 가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수하들을 따로 보내고 자신만 움직이는 것이다. 혼자라면 지옥에서라도 죽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놈들은 우리의 동선을 놓쳤다. 게다가 정도맹은 제집 보듯 훤하게 들여다보니 분명 방심하고 있을 것이다.’

그 점을 노렸다.

설마 자신들의 본단으로 누군가가 침투해 들어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팟!

바닥을 차고 오른 그의 육신이 섬광처럼 산의 정상으로 내달렸다.

그러나 멀리 못 가서 그는 속도를 멈추고 은밀하게 움직여야 했다.

생각과는 달리 곳곳에서 전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강대한 기운들이 꿈틀거림을 느꼈던 까닭이다.

‘혈야평에서 힘을 소진시키고 이곳에서 마무리를 하려고 하는 모양이군.’

그는 기감을 최대한 열어 주변을 살폈다.

생생하게 걸려드는 기운들은 하나같이 무시무시했다.

이 정도면 거의 구파의 장문들과 필적하는 수준이다. 신마성의 입장에선 신마각주 악승과 비슷한 경지라고 볼 수 있었다.

그에겐 그다지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나 신마각의 무사들이나 정도맹의 여타 고수들은 그렇지 못하다. 난전 중에 저 정도의 고수들이 떼로 몰려들면 상당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해치우고 가면 본단으로 잠입하기가 까다로워진다.’

갈등이 생겨났다.

가까운 미래를 위해서는 이들을 죽여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적의 경계망이 더욱 조여질 게 뻔했다.

고개를 들어 산의 정상을 응시했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주변과 어우러진 묵련의 본단은 전율이 일어날 만큼 거대했다.

혁련천후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일단 저곳으로 간다.’

생각보다 행동이 더욱 빨랐다.

나는 새가 무색하리만치 빠른 속도로 그는 정상으로 경공을 펼쳤다.

그 정도 속도라면 바람을 가르는 소리라도 나는 게 정상이지만 미세한 소음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점점 거대한 묵련의 본단이 가깝게 느껴졌다.

거리가 좁혀질수록 건물은 더욱 크게 느껴졌다. 놀랍게도 성곽은 이중으로 둘러져 있었다.

‘대단한 건축물이군.’

직접 보니 더욱 믿기지 않았다.

고대 진시황이 쌓았다는 만리장성도 이보다는 쉽게 지었을 거란 생각마저 들었다.

놀라는 와중에도 그의 육신은 멈추지 않고 달렸다. 그러다가 성곽의 돌 틈이 보이는 거리까지 도달하자 그제야 이동을 멈추고 어두운 곳으로 스며들어 은신했다.

성곽 위에서 상당수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확실히 느슨하군.’

들려오는 소리들은 음담패설 등이 섞인 일반적인 잡담들뿐이었다.

돌출된 성곽을 엄폐물로 삼아 위를 올려다보았다. 병기를 어깨에 두른 무사들이 오 장 거리로 성곽을 늘어서 있는 것이 보였다.

모두가 그다지 강해 보이지 않는 평범한 무사들로 여겨지자 그는 즉각 행동에 들어갔다.

십 장을 넘어가는 성곽을 단 한 번의 도약으로 까마득한 높이로 넘어갔다. 상당한 숫자의 경계 병력이 있었지만 그의 기척을 느낀 자는 전무했다.

성곽을 넘어선 혁련천후는 허공에서 상당히 놀랐다.

외곽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성 안쪽은 상당히 깊었다. 거의 삼십 장에 달하는 높이였다.

어지간한 고수라면 다리 하나는 그냥 부러지고도 남을 높이다.

‘갈수록 사람을 놀래게 만드는군.’

소리 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 그는 우측의 전각 밑으로 스며들어 주변을 살폈다.

성 내는 상당히 조용했다.

곳곳에 켜진 불들이 많았지만 사람의 기척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주변이 이상할 정도로 고요하자 그는 눈빛을 발하며 더욱 깊숙한 곳으로 스며들었다.

우당탕!

난데없이 요란한 소름이 이동 방향 앞쪽에서 들려왔다. 재빨리 몸을 은신한 그는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이런 빌어먹을 새끼가! 감히 어디서 대꾸질이야!”

퍽!

“으윽!”

덩치가 상당한 사십 대 초반의 장한이 주먹을 휘두르자 앞에 섰던 자가 저만치 날아가 떨어졌다.

장한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듯 뛰어가더니 쓰러진 자의 복부를 그대로 걷어찼다.

“으악!”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날아간 자가 벽에 부딪혀 바닥으로 떨어졌다. 장한이 그 앞에서 허리춤에 손을 얹고 씩씩거렸다.

“옛날의 네놈이 아니다! 그러니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말을 들어야 그 잘난 목숨은 보전할 수 있어! 알아들었냐? 이 빌어먹을 새끼야!”

퍽!

장한의 발길질이 연이어 터졌다. 이미 의식을 잃은 듯, 꼼짝도 하지 않는 인물을 보며 장한은 가래침을 뱉고는 나왔던 전각으로 도로 들어갔다.

혁련천후는 눈에 내공을 끌어 올려 쓰러져 있는 인물을 살폈다.

순간 그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저자는……!”

* * *

정도맹의 청룡단과 백호단은 장로 소걸개의 지휘를 받으며 보급품을 운송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각파의 유망주들로 구성된 그들은 실질적인 전장에 투입되기보다는 후방에서 보급품을 지원해 전장의 고수들을 돕는 역할을 맡은 것이다.

젊은 혈기로 무장된 그들은 그러한 임무가 불만이었는지 표정들이 하나같이 시큰둥해 보였다.

달구지 위에서 팔자 좋게 누워 술병을 입에 처박고 있는 거지가 뒤를 돌아보며 큰 소리를 질렀다.

“크헐헐! 이놈들아! 그 썩은 쌍판들 좀 펴라. 어디 죽으러들 가냐? 에잉!”

발갛게 익은 코를 실룩거리며 소걸개는 연신 소리를 질러 댔다.

그 익살스러운 모습에 몇몇 대원들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장로님! 속도를 좀 내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약 보름 전에 새로운 청룡단의 단주로 임명된 화산의 진승이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큼! 낮술이 음주의 최고봉이거늘, 젠장맞을 해는 이리도 빨리 떨어지는고…….”

“어둠이 내리기 전에 본진으로 가야 합니다!”

“알았다! 이놈아! 불알에 땀나도록 뛰어가면 될 것 아니냐.”

소걸개가 자신의 중요 부위를 손으로 쥐고 흔드는 시늉을 하자 다시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성정이 곧은 진승도 얼굴을 실룩거렸다.

“흘흘! 서두르자.”

이동속도가 상당히 빨라졌다. 서서히 대지가 어둠으로 잠기기 시작하며 전장이 가까워지자 대원들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졌다.

선두에서 말을 몰아가는 흑색 장포의 인물들이 갑자기 손을 들어 대열의 이동을 멈추게 했다.

놀랍게도 손짓 한 번에 보급 부대 전체가 신속하게 이동을 멈추었다.

눈빛으로 무언가를 주고받던 그들 중, 하나가 빠르게 전방으로 경공을 펼쳐 사라졌다.

청룡단주, 진승의 눈빛이 그들을 보며 반짝 빛을 발했다.

눈앞의 인물들은 정도맹에서는 선택받은 자들이다.

소천왕.

정도맹의 하늘이라는 사천왕의 제자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보급 부대가 전장에 도달할 때까지 그들의 역할은 물품과 단원들을 보호하는 것에 있었다.

“뭐야? 적이라도 나타난 걸까?”

“그러게, 이거 은근히 떨리는걸.”

젊은 무사들이 잔뜩 긴장감을 보인다.

신마성에서 위탁 수련을 거쳤던 진승도 제법 굳은 얼굴로 주변을 날카롭게 살폈다.

그때 전방으로 사라졌던 소천왕의 일인이 돌아왔다. 그는 소걸개에게 낮은 목소리로 뭔가에 대해 보고했다.

언제나 익살맞은 표정만을 보이던 소걸개의 붉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것을 본 단원들의 얼굴은 더욱 경직되었다.

“정말 묵련이 나타났나 봐.”

“장로님 표정을 보니 꽤 강한 놈들이 몰려온 모양이다. 빌어먹을! 후방이라 안전할 줄 알았더니 이게 뭐야!”

“겁먹긴…… 싸우다 죽는 게 소원이라며?”

“자식아! 그거야 그냥 하는 소리였지.”

백호단원들 일부가 술렁거렸다.

잠시 보급 부대는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소걸개도, 소천왕들도 아무런 명령을 내리지 않고서 전방을 뚫어져라 쳐다보고만 있었다.

정적은 이내 깨졌다. 숲이 흔들리더니 일단의 무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후후! 정도맹의 어린 양들이 모조리 이곳에 있었군.”

어렴풋이 내리깔린 어둠 속에서도 그들의 눈동자는 섬뜩한 안광을 발했다.

주변이 싸늘한 기운으로 급속도로 채워졌다.

반사적으로 검을 뽑아 드는 청룡단과 백호단원들, 선두에서 묵련의 고수들을 차갑게 노려보던 소천왕들도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소걸개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묵련의 잡종들이 여긴 어쩐 일이냐? 이 노개의 술이라도 빼앗으려고 기어왔더냐!”

개방의 전매특허인 악취가 묵련의 고수들을 덮쳤다.

모두가 슬쩍 뒤로 물러섰다.

단순한 악취가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걸개는 개방 역사상 유일하게 독으로 대성한 인물이다.

악취는 그가 독을 사용하려 한다는 신호나 다름없었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다짜고짜 사납게 외쳤다.

“쳐라!”

“모두 방원으로 진을 치고 적을 맞아라!”

청룡단주 진승이 큰 소리로 명을 내리자 단원들은 평소에 해왔던 훈련대로 빠르게 방어진의 최고봉인 방원의 형태로 바뀌었다.

백호단도 청룡단의 좌측에 방원을 짜고 날아드는 묵련의 고수들을 맞이했다.

장내는 이내 치열한 전장으로 바뀌었다.

소천왕과 소걸개가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묵련에서도 몇이 청룡단과 백호단의 가운데로 뛰어들었다.

“물품을 보호해! 마차에서 거리를 두지 마라!”

“흐흐! 화산의 애송이가 제법이구나.”

“냄새나는 주둥이 좀 닫아 줄래?”

진승이 벼락같은 움직임으로 자신을 보며 비웃던 묵련의 고수를 덮쳤다.

그 빠르기가 대단하자 비웃음은 놀람으로 바뀌며 몸을 틀어 공세를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진승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빨랐다.

서걱!

“으악!”

진승의 검이 최초의 사망자를 만들어 냈다.

화산 매화각의 각주이자 진호와 진천 등의 사제인 그는 단원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너희들은 마차를 지켜라! 적이 다가오면 모두 한꺼번에 공격해! 난 저곳으로 가겠다!”

진승이 몸을 돌려 소걸개와 소천왕들이 난전을 벌이고 있는 전장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청룡단원들이 다급하게 외쳤다.

“단주님! 위험합니다!”

“단주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