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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206화 (204/425)

# 206

<귀환무사 206화>

짙은 눈썹에 험상궂은 용모의 그는 지난날 혁련천후와 몇 차례에 걸쳐 시비가 있었던 장로, 명보진인이었다.

전신에 자잘한 상처를 입은 그는 연신 거친 호흡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눈빛만큼은 매섭기 그지없었다.

우웅!

조건의 검이 강기로 둘러졌다.

그 길이가 무려 한 자에 이르자 살아남은 자들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진다.

“죽어 다시 태어나면 묵련의 종으로 태어나거라. 그럼 이렇게 허망하게 뒈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후후!”

“지랄을 해라, 지랄을…….”

뒤쪽에서 들려온 걸쭉한 욕설에 조건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숲이 흔들리며 일단의 무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양측 모두의 얼굴이 놀람으로 물들었다.

“신마성주!”

시종일관 여유를 보였던 조건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선두에서 걸어오는 존재, 바람에 흑발을 휘날리며 자신을 쳐다보는 그를 조건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혁련천후의 입을 뚫고 싸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사나운 사냥개군.”

조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한마디로 긴장감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후후! 노부가 운이 좋군. 네놈을 가장 먼저 베어 버릴 기회를 얻다니…….”

조건이 몸을 돌려 다가오는 신마성의 인물들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다른 묵련의 고수들도 잔뜩 긴장감을 드러내고는 그들을 주시했다. 위기를 모면한 무당과 곤륜의 고수들이 빠르게 신마성의 인물들에게로 이동했다.

“흐흐! 꽤 낯이 익은 양반이군.”

왕전이 명보진인을 보며 험악하게 웃었다. 지난날의 구원을 떠올린 명보진인은 혁련천후에게 허리를 굽혔다.

“도와주심에 감사드리오! 성주!”

“쉬고 계시오. 놈들은 우리가 처리하겠소.”

차갑게 응대한 그가 시선을 조건에게 돌렸다.

자리에 없는 담대소천을 제외한 오왕, 모두가 느릿하게 묵련의 고수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명보진인의 얼굴에 반가움이 떠올랐다. 신마성의 인물들과 함께 있던 도량을 보았기 때문이다.

“도량아!”

“사숙! 무사하셨군요.”

도량이 명보진인의 전신을 살펴보며 눈을 동그랗게 하더니 이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 있는 사문의 어른들을 보자 도량은 묵련의 고수들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사숙! 조금만 쉬고 계십시오!”

챙!

검을 뽑아 든 도량이 신마각의 무사들과 함께 앞으로 나섰다.

“주공! 놈들은 저희에게 맡기시지요. 아이들의 수련의 성과를 시험해 봐야겠습니다.”

“……!”

조건은 한눈에 보아도 상당한 고수다.

화산의 제자들이나 모용단승이 감당하기엔 벅찰 것이다. 그럼에도 혁련천후는 물러섰다.

여차하면 자신이 나서면 되는 것이다.

“그러지.”

진호를 비롯한 셋과 모용단승이 나섰다.

“감히, 노부를 능멸하려 들다니…….”

조건의 얼굴이 보기 싫게 구겨졌다. 진호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쪽팔리긴 하지만 우리 넷이 네놈과 붙겠다. 그러니까 그런 개 같은 표정 따윈 집어치우라고.”

“목을 잘라 들짐승의 먹이로 만들어 주지, 애송이들!”

“주둥이만큼이나 실력이 되는지 궁금하군. 이름이나 알고 싸우자. 우린 화산의 각주들이고 저 친군 모용세가의 대공자야. 이름이 뭐야?”

조건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하룻강아지에 불과한 화산의 제자들이다.

그는 대답을 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는 그대로 넷을 향해 달려들었다.

“목을 썰어 주마. 애송이 새끼들!”

“와라, 늙은 마두 새끼야!”

동시에 조건의 수하들도 신마각의 무사들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 * *

지켜보던 무당의 인물들과 곤륜의 장로는 이 같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전쟁 중이다. 적은 무조건 섬멸하고 보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신마성주와 그보다 강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나도는 그의 조부는 뒤쪽에서 느긋한 태도를 보이며 싸움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게다가 싸움의 귀신들이라는 오왕까지도 전장에 끼어들지 않고 있었으니…….

‘설마 저 어린 화산의 각주들이 저 무시무시한 자를 이겨 낼 거라 생각하는 것인가. 게다가 저 친구들은 일개 각의 무사들로 보이는데 우리도 감당하지 못한 저들을 저들만으로 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인가.’

명보진인의 속내는 의구심으로 가득했다.

그는 혁련천후를 흘긋 쳐다보았다. 천상의 선녀와도 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들 사이에서 그는 그저 담담한 빛으로 전장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도대체 저 여유는…….’

마침 자신을 돌아보는 혁련천후와 시선이 부딪히자 그는 놀란 아이처럼 시선을 피했다.

그 모습에 혁련천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어른거렸다.

검후 독고혜의 입가에 화사한 미소가 떠올랐다.

[저러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에요. 저분들도 당해 내지 못했던 자들이니까요.]

[그렇겠지.]

[흠! 저도 싸우고 싶어요. 얼마나 강해졌는지 무척 궁금해요.]

[더 강한 자들과 곧 부딪히게 되겠지. 그땐 당신의 도움이 무척이나 필요할 거야.]

[칫! 또 둘이서만 속삭여요.]

영호수란의 전음에 둘은 놀란 얼굴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시큰둥한 얼굴을 한 영호수란이 혀를 쏙 내밀어 보였다.

[저도 전음을 엿들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나도 끼워 줘요.]

다른 이가 들었다면 기절초풍을 할 일이다.

전음을 엿듣는 수준의 고수가 몇이나 되겠는가. 오왕도 불가능한 경지가 그것이다.

[흥! 노주께서 제게도 천살 강기를 듬뿍 주셨거든요? 왜, 아까워요?]

[축하해, 란 매!]

자신을 노려보는 영호수란에게 슬쩍 웃어 준 혁련천후는 다시 전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구검마의 하나인 조건을 맞이해 넷은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은 조건의 날카로운 공세를 때론 피하고, 때론 막아 내며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 중, 모용단승의 빠르기는 발군이었다.

마치 자살 공격을 연상시키는 그의 직선 공격은 조건도 움찔하기가 일쑤였다.

게다가 그에 못지않게 호전적인 성향을 보이는 진천의 검은 연신 조건의 육신을 노리며 검강을 일으켰다.

깡!

조건의 검과 부딪혔음에도 진천의 속도는 전혀 줄지 않았다.

진호와 진명은 속도 위주가 아닌 파괴력을 중점에 둔 검초를 폭풍처럼 펼쳐 냈다.

왕전에게 전수받은 도법을 검초에 응용한 초식은 조건도 난생처음 당해 보는 것이었기에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다.

‘꽤 성장했군. 구파의 장로 정도는 되겠어.’

혁련천후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의 생각이 사실이라면 진정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고작 일 년이 조금 넘는 수련으로 그 정도의 경지를 밟은 예는 역사에 없었다.

모두가 스스로의 각오가 남달랐던 까닭이었다.

그의 시선이 묵련의 고수들과 집단전을 벌이는 신마각의 무사들을 행해 던져졌다.

짧은 시간에 전세는 압도적으로 신마각으로 기울어 있었다.

이미 신마성에 들기 전부터 천하최강의 집단전 부대로 불리던 그들이다.

하물며 오왕에게 돌아가며 무공을 전수받은 그들이니 그 위력은 가히 천하를 진동시키고도 남을 정도였다.

“대단하구나, 대단해…….”

“정도맹의 질풍대가 저만 할까.”

지켜보던 무당과 곤륜의 장로들은 반쯤 입이 벌어져 있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상황이 코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양파의 장로들과 중진급들로 구성되었던 부대가 저들에게 몰살 일보 직전까지 몰렸었다.

그런 묵련의 전투부대를 신마성의 일개 각의 무사들로 보이는 청년들이 압도적으로 몰아붙이고 있었으니…….

‘이게 신마성의 힘인가…….’

명보진인은 구원을 떠올렸다.

이토록 강력한 집단과 으르렁거렸던 자신들이 새삼 미련스럽게 느껴졌다.

그는 신마각의 무사들과 함께하는 도량을 보며 괜한 뿌듯함을 느꼈다.

무당에서의 도량이 아니었다. 폭발적인 검법과 움직임은 그도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대단했다.

‘도량아! 네가 무당의 미래이니라.’

괜히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더불어 지난날, 명수진인과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한 회한이 밀물처럼 올라왔다.

제3장 거침이 없다

스스슥!

키를 훌쩍 넘어가는 마른 갈대밭을 이동하던 정도맹의 부대가 갈대밭이 끝나 가는 지점에서 이동을 멈추고 자세를 낮추었다.

선두에서 날카롭게 주변을 살피던 총호법 관승의 눈이 번쩍 빛을 발했다.

“산악 지역이 시작되는군. 지금부터는 일 차 집결지까지 최대한 조심하며 전진한다.”

“호법님! 저희 부대만 단독으로 입산하실 생각입니까?”

“왜,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차라리 다른 부대와 합류하여 오르심이 좋을 듯합니다.”

수하 하나가 위험을 알려 온다.

그러나 관승은 고개를 저었다. 천하에 용맹하기로는 으뜸가는 그였기에 대답 없이 그대로 발걸음을 산의 초입으로 놓았다.

굳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던 다른 고수들이 이내 뒤를 쫓아 걸음을 같이했다.

“가장자리 쪽을 고수들이 맡고, 그 외는 추진 형태로 이동한다!”

관승의 명이 떨어지자 부대는 빠르게 무리의 가운데가 뾰족하게 튀어나오는 형태의 진으로 바뀌었다. 이동 속도와 좌우 방어에 중점을 둔 일종의 군진이었다.

일각이 지나자 숲의 밀도가 상당히 높아졌다. 큰 나무들과 잡목들이 어우러져 햇빛조차 스며들지 않아 칙칙하고도 음습함이 고수들의 긴장감을 가중시켰다.

푸드득!

“헉!”

수풀 속에서 새가 날아오르자 몇몇 고수들이 기겁을 하며 호흡을 삼켰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엄청난 중압감과 긴장감은 어이없는 상황을 자주 만들어 냈다.

“긴장을 풀어라!”

관승이 나지막이 소리쳤다.

지나친 긴장감은 적의 기습 시에 반응 속도를 더디게 한다. 더욱이 이런 숲은 매복 공격이 용이한 곳이다. 반응속도에 따라 생사가 갈리는 법이다.

“지나치게 조용하군요.”

날카롭게 생긴 청년이 관승의 옆으로 다가오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상당한 미남형인 그는 광주진가의 후계자, 진가경이었다. 관승이 손을 들어 이동을 멈추게 했다. 그러고는 우측과 좌측을 손으로 가리켰다.

팟!

고수 둘이 좌우로 빠르게 몸을 날렸다. 척후를 보낸 것이다.

“저들이 돌아올 때까지 이곳에서 기다린다.”

주변을 날카롭게 쓸어본 관승이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진가경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다른 부대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호법님!”

“아직 별다른 전투는 발발하지 않았다고 했으니 별일이야 없겠지.”

“맹의 방침은 전면전인데 몇몇 부대들이 따로 떨어져 이동하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우리도 그중 하나가 아닙니까?”

관승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가죽주머니를 열어 물을 마신 관승이 입을 훔치며 대답했다.

“질풍대와 우린 척후를 맡지 않았느냐. 그저 임무에 충실하면 그뿐이다.”

“어! 맹의 전서굽니다!”

진가경이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이라고 해 봤자 좁은 틈으로 스며드는 햇살이 전부였는데, 그곳으로 전서구 하나가 빠르게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관승이 몸을 일으켜 손을 뻗었다. 그의 팔에 내려앉은 전서구는 붉은 천을 다리에 감고 있었다.

전서를 읽는 관승의 얼굴이 점차 굳어졌다.

“또 바뀔 모양이군!”

그가 전서를 거칠게 내던지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모두가 의구심이 어린 시선으로 관승을 쳐다보았다. 관승이 진가경을 보며 거칠게 말했다.

“넌 여기서 척후를 나간 아이들이 돌아오면 함께 본진으로 오너라! 그리고 나머진 모두 본진으로 돌아간다!”

“본진으로 말입니까?”

“그렇다! 몇몇 부대가 놈들의 기습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새로운 작전을 수립할 모양이니 서둘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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