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
<귀환무사 201화>
제1장 비영전주 육승, 신마성과 함께하다
묵련의 등장으로 인해 강호의 분위기는 싸늘히 얼어붙었다.
위기감을 느낀 정도맹은 전대의 고수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흔쾌히 응한 그들이 하나둘 초야를 떠나 강호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과거 천하를 떨쳐 울렸던 절대고수들도 있었다.
그로 인해 무사들의 사기는 나날이 드높아만 갔는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 있었다.
바로 신마성을 달갑게 여기는 자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탁!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자들이로고.”
찻잔을 내려놓는 혁련강의 손길에서 은은한 분노가 느껴졌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영호도성이 침통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일부 세력들에 의해 반신마성의 분위기가 확산되는 모양입니다만, 가장 큰 문제는 소림이 신마성을 달갑지 않게 보는 것이지요. 그들의 영향력은 정도맹에 버금갑니다. 지금껏 공식적인 입장 표명은 하지 않고 있지만 만약 그들이 부정적인 견해를 공식적으로 밝힌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옹졸한 자들 같으니.”
“어쩌면, 자존심 때문에 그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껏 태산북두라 불리며 강호의 정세를 주도해 왔던 소림의 입장에서 당대 천하를 뒤흔들며 급부상하고 있는 신마성이 반가울 리가 없을 테니까요.”
“단순히 그러한 이유 때문에 반신마성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이라면 실망이오. 부처를 모시는 자들이 어찌 그리도 옹졸할 수가 있단 말이오.”
혁련강은 은은한 노기마저 드러내었다. 그러다가 돌연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정 그렇게 나온다면 어쩔 수가 없지 않겠소. 이 전쟁에서 빠져 줄 수밖에.”
“그건…….”
“원하지 않는 자들을 위해 싸워 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소.”
혁련강의 단호한 태도에 영호도성 내심 탄식을 쏟아 냈다.
하긴 자신이라도 혁련강의 입장이라면 이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컷 도와주고 배척을 당한다면 누군들 저러지 않을까.
“무제께 신세를 좀 져야겠소.”
“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다 해 보겠습니다.”
“우리의 뜻을 정도맹의 수뇌부에 전해 주시오.
영호도성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꿔 달라며 간청을 하고 싶었지만 혁련강의 가라앉은 눈빛을 보니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혁련강이 말을 이었다.
“전쟁에 방해가 되면 정도맹도 적으로 간주하겠다는 것, 역시 함께 전해 주었으면 하오.”
“노야…….”
그 말에는 영호도성도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혁련강이 더욱 차가워졌다. 혈육 앞에서는 언제나 웃음을 잃지 평소의 그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영호도성이 침중한 어조로 물었다.
“성주도 같은 생각입니까?”
“나보다 더 강경하게 나갈 아이가 아니오.”
영호도성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혁련천후의 성정이라면 능히 그러고도 남는다. 영호도성이 일어섰다.
“하면 즉시 다녀오겠습니다.”
“부탁하겠소.”
혁련강이 말을 이었다.
“영호세가는 강호의 존경을 받는 명문이오. 괜히 우리 때문에 정도맹과 등을 돌리는 일은 없었으면 하오.”
그 말은 곧 신마성과 함께하면 곤란함을 겪을 수도 있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함께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뜻까지 내포되었다고 보면 옳았다.
혁련강의 그 같은 말에 영호도성은 껄껄 웃었다.
“신마성이 만드는 세상에 우리 영호세가도 함께하고 싶은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듣지 않은 것으로 하고 이만 떠나겠습니다, 허허허.”
혁련강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덕분에 훌륭한 손주 며느리를 얻게 되었소.”
문고리를 잡아 가던 영호도성이 몸을 돌렸다. 그의 입가에도 어느새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덕분에 천하제일의 손주 사위를 얻었습니다.”
* * *
천왕이 분노했다.
개파대전과 동시에 천하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하며 자신만만해했던 그는 며칠 사이에 수백 명이 죽어 나가는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천왕은 신마성을 흉수로 지목하고는 고수들을 급파하기에 이르렀다.
도합 일천의 대병력이 신마성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그들은 신마성을 코앞에 두고도 공격을 하지 못하고 백어산의 능선에 진을 쳐야만 했다.
신마성, 전체를 두르고 있는 철벽의 방어진 때문이었다.
사공진무의 기관진법에 진천의 환술이 더해진 그것은 스스로 생문을 열기 전에는 백만 대군으로도 어찌할 수 없을 만큼 견고한 방어력을 자랑했다.
간혹, 성정이 급한 묵련 고수들 몇이 신마성의 성곽으로 접근했다가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묵련이 대공세의 전략을 세워 나가고 있을 즈음 조윤을 비롯한 오왕이 첨탑에 올라 묵련의 진지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정도맹이 코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치겠다고 저 정도의 대규모 병력을 보내다니. 확실히 대단한 놈들임에는 틀림이 없군.”
조윤의 말에 술병을 든 채로 기둥에 비스듬히 기대고 섰던 장용백이 히죽 웃었다.
“아마 지금쯤 속에서 열불이 나 몇 놈이 뒈졌을 거요. 눈앞에서 멀뚱멀뚱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흐흐흐! 진즉에 본교도 기관진법에 뛰어난 인재를 발굴할 걸 그랬소. 그랬다면 빙궁 따위에게 굴욕을 당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말이오.”
웃고는 있지만 회환이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조윤이 말을 이었다.
“진무는 천고에 드문 귀재요. 어쩌면 우리들 전체보다 그놈 하나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오.”
“하여튼 여긴 괴물들의 집합소요. 어떨 땐 빙궁 놈들이 고맙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소. 덕분에 신마성과 인연을 맺지 않았소, 흐흐흐.”
진심이 깃든 말이었다.
장용백의 말에 지금껏 듣고만 있던 흑야가 한 걸음 앞으로 나오며 첨탑의 끝에 섰다.
그는 백어산을 날카롭게 살펴보고는 입을 열었다.
“정도맹이 움직이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나?”
조윤이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그도 그것에 의문을 지니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다. 전대의 고수들이 합류하면서 사상 최강의 전력이 모였다고 하던데, 묵련이 이런 움직임을 보였음에도 가만히 있다니 말이다. 머리가 있는 자들이라면 지금쯤 어떤 식으로든 움직였을 텐데…….”
장용백이 끼어들었다.
“제대로 미운털이 박힌 듯하오. 그렇지 않다면 적들이 전력을 분산한 것을 알고서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니 말이오. 쩝! 미안하오.”
장용백이 말을 하다 말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정도맹에서 신마성을 비난하는 세력들이 주로 내세우는 이유가 바로 마교가 신마성과 함께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것이 중립을 표방하던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조윤이 옅은 웃음을 짓고서 장용백을 응시했다.
“주공을 모르시오?”
“…….”
조윤이 뒷짐을 하고서 몸을 돌려 먼 곳을 아련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장용백이 남은 술을 비우고는 그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분은 함께하는 사람을 가장 소중히 여기시는 분이오. 지금 그분의 마음이라면 정도맹보다 마교를 택할 것이오. 적어도 귀하들은 지금 우리와 함께하고 있지 않소.”
“…….”
조윤이 몸을 돌려 장용백을 응시했다.
“신마성은 감사하게 여기고 있소. 우리와 함께해 주는 것에 대해서 말이오.”
장용백은 속에서 뜨거운 것이 불끈 치밀어 오름을 느꼈다.
이럴 때 멋진 말로 화답을 해 줘야 하는데 그런 쪽에서는 영 재주가 없는 장용백이었다. 해서 괜히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거 괜히 얼굴이 다 화끈거리네.”
투박한 웃음이 절로 목을 타고 넘어왔으나 이어져야 할 말이 나오지 않았다.
흑야가 미미한 미소를 슬쩍 짓고는 몸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이런 분위기는 질색이다.”
“얼음 같은 놈.”
“닥쳐.”
흑야는 이내 휘휘 사라졌다.
조윤과 장용백이 서로를 보며 피식 웃었다.
* * *
“헉! 헉!”
도량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헐떡거렸다.
얼마나 지독하게 수련을 했는지 등이 닿은 벽에 땀이 스며들 정도였다.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지친 도량의 앞에는 관산악이 버티고 서 있었다.
“고작 그 정도로 헐떡이다니, 그래 가지고 어떻게 고수가 되겠단 말이냐!”
나지막이 꾸짖는 그의 이마에도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도량이 고개를 흔들었다.
“헉! 헉! 더 이상은…… 헉! 헉!”
가슴이 터질 듯한 고통 때문에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지금 넌, 화산의 아이들보다 현저히 떨어진다. 놈들은 너보다 훨씬 약한 상태에서 우리와 만났다. 하지만 지독한 근성으로 모든 것을 이겨 냈지. 허약한 정신 상태로는 절대 그 아이들을 추월할 수 없다.”
관산악은 도량의 자존심을 자극했다.
도량이 고개를 들어 관산악을 응시했다.
흐렸던 눈동자에 은은한 오기가 서렸다.
언제나 관산악의 이런 수법은 제대로 먹혔다.
지금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를 꽉 깨문 도량이 휘청거리며 일어섰다.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관산악을 똑바로 향했다.
관산악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좋아! 지금부턴 무당이 자랑하던 태극무혜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깨닫는 시간이 될 것이다. 참고로 화산의 아이들은 그것을 깨닫는 데 반 시진이 걸렸지. 너는 어느 정도인지 시작해 볼까?”
도량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굵은 힘줄이 돋아나더니 파르르 떨리던 입술이 벌어지며 평소의 도량으로는 보기 힘든 거친 욕설이 쏟아졌다.
“젠장! 갑니다!”
도량이 그대로 관산악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관산악은 여유롭게 도량의 공세를 벗어났다.
“후후! 네놈 입에서 욕설이 나오다니,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군.”
“으합!”
꽝!
도량의 육신이 달려들던 속도의 두 배 빠르기로 튕겨 나갔다.
바닥을 세차게 구른 도량이 벌떡 일어나더니 다시금 관산악을 향해 달려들었다.
도량의 야차처럼 구겨진 얼굴을 보며 관산악은 여전히 웃음을 지우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동자엔 미세한 감탄의 빛이 나타나 있었다.
‘재질은 화산의 아이들을 능가하는 놈인데, 근성이 부족했었어. 하지만 저 눈빛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군.’
지금 도량이 보이는 눈빛은 진천과 모용단승에 못지않았다.
관산악의 눈에 묘한 빛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 정도로는 묵련의 경비견도 당해 내지 못한다! 더 힘을 내 봐!”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만큼이나 혹독한 것은 없는 법, 도량은 없던 힘까지 끌어내어 관산악을 노렸다.
퍽!
도량의 복부에 관산악의 주먹이 꽂히자 새우가 허리를 꺾듯 급격하게 오므라들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으으…….”
하늘이 노래지는 통증에 도량은 일어서지 못하고 바닥에 꿈틀거렸다. 관산악은 여전히 웃었다.
일어나려 발버둥을 치던 도량은 몸을 뒤집어 하늘을 바라보는 자세, 그대로 크게 뻗었다.
눈이 시리도록 시퍼런 하늘이 펼쳐졌다.
그 하늘에 흑발을 늘어뜨린 차가운 사내의 모습이 나타나 있었다.
[네 형이 원했던 무당을 만들어라.]
도량은 문득 그가 보고 싶었다.
그의 차가운 얼굴이 새삼 떠오르며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한 형과 하나로 겹쳐졌다.
자신에게 검을 건네주며 보였던 그의 눈빛에 담긴 것을 도량은 하루도 잊지 않았다.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뭘?”
관산악이 눈을 동그랗게 하고서 도량을 쳐다보았다.
“반드시 형이 원하고 꿈꾸었던 무당을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이 자식이 무슨 헛소리야?”
“도와주십시오!”
“야! 일어나, 인마!”
관산악은 가슴이 철렁했다. 지나친 수련 탓에 도량이 미친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생겨났다.
그는 가까이 다가가서 도량의 얼굴을 살폈다.
“으압!”
“으헉!”
도량이 벌떡 몸을 일으키자 크게 놀란 관산악은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도량이 웃었다. 그런 도량의 눈동자는 강렬함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다시 시작하시죠.”
“어쭈?”
“자! 갑니다!”
“흐흐흐! 이제야 슬슬 마음에 들기 시작하는군. 그래. 오너라, 이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