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
<귀환무사 200화>
“그건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의심을 부추기는 말이었다. 공야무는 마치 육승은 잊은 듯이 다그치고 나왔다.
“놈! 냉큼 답하지 못할까!”
싸아아!
강대하게 뿜어지는 기운 속에 살기가 들어 있음을 깨달은 셋은 흠칫하며 뒤로 물러섰다.
“신마성주, 그자가 너희들의 사숙조냐고 물었다!”
그때 육승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저, 저자야말로 맹과 정파를 배신한 가증스러운 노물이오!”
“……!”
공야무의 두 눈이 살광을 폭사시켰다.
뒤이어 육승을 향해 검을 뻗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던 진호가 황급히 검의 궤적을 차단하며 나섰다.
“이놈들이!”
공야무의 검이 방향을 바꿔 진호를 노리자 진청과 진명이 재빨리 좌우에서 협공을 가했다.
까가강!
검과 검이 부딪히며 불꽃을 튕겨 냈다.
대수롭지 않게 보았던 화산 제자들의 공세가 상상 이상으로 파괴력이 있자 공야무는 크게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하마터면 팔 하나가 날아갈 뻔했던 상황이었다.
‘이놈들이 이렇게 강했다니!’
“씨팔! 사천왕이면 함부로 사람을 죽여도 되나!”
진청이 성을 내며 달려들었다.
쐐애액!
진청의 검이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며 날아들자 공야무는 순간 당황했다. 그가 알고 있던 화산의 검법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도 당대를 주름잡는 거물, 진청의 공격은 쉽게 막혀 버렸다. 그러나 뒤를 이어 들어온 진호와 진명의 공격으로 인해 공야무는 진청을 포기하고 다시 뒤로 물러서야 했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던 육승은 진청 등의 무공에 내심 크게 놀랐다.
‘화산의 질풍각주가 저토록 강했다니…….’
그는 진호를 알고 있었다. 진청도 진명도 모두 알고 있었다.
그의 기억에 셋은 그다지 보잘것없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천하의 공야무를 상대로 대등하게 싸우다니.
그때였다. 진명의 어깨에서 피가 튀었다. 휘청거리며 물러나는 진명을 대신하여 진청이 성난 늑대처럼 달려들었다.
“사천왕이고 나발이고 목을 따 버린다!”
진호가 공야무의 좌측을 노렸다.
하지만 공야무는 손쉽게 둘의 합공을 벗어났다. 짧은 시간에 셋은 벌써 자잘한 부상을 입고 있었다. 일취월장한도 공야무라는 절대 고수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놀라고만 있던 육승의 얼굴에 절망감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그는 다급한 마음에 신마성을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두 눈을 부릅떴다.
누군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들고 있었다. 그는 화산의 제자들을 뛰어넘어 곧장 공야무를 향해 달려들었다.
번쩍!
꽝!
“우욱!”
시야를 가려버린 흙먼지 속에서 누구의 것인지 모를 신음이 터져 나왔다.
모두는 황급히 뒤로 물러나 흙먼지를 주시했다.
휘이잉!
바람이 불어와 흙먼지를 쓸고 지나갔다. 그러자 공야무의 처참한 몰골이 드러났다.
“크억!”
검붉은 선혈을 연신 게워내며 고통스러운 몸짓을 보이는 공야무, 그 앞에 혁련강이 서 있었다. 그는 노한 얼굴로 공야붕을 향해 싸늘히 외쳤다.
“하늘이 내려 준 네 마리 용을 사천왕이라고 한다더니, 네놈이 어찌 동도에게 살수를 전개하느냐!”
추상과도 같은 호통이 공야무의 속을 다시 한 번 흔들어 놓았다.
“우웩!”
한 사발이 넘는 선혈을 다시 게워 낸 공야무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 혁련강을 올려다보았다.
불신으로 가득한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꺼질 듯 급격히 빛을 잃어 가고 있었다.
진청 등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진청은 아예 뒤로 털썩 주저앉았다. 혁련강이 그들을 향해 미소를 머금었다.
“허허! 이놈들아! 상대를 가려서 싸우는 법을 배우지 못한 모양이구나. 그렇게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어서 어찌하려 하느냐.”
입 주변이 피로 얼룩진 진호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의 어깨를 어루만져 준 혁련강이 다시 육승을 응시했다.
“정도맹의 비영전주입니다.”
진호가 육승을 대신하여 신분을 알려 주었다. 혁련강의 눈빛에도 살짝 놀람의 기운이 어렸다.
육승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혁련강을 마주했다.
“같은 식구들끼리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혁련강의 물음에 육승은 입을 떼지 못했다.
잠시 육승을 가라앉은 눈으로 응시하던 혁련강이 신마성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놓았다.
“따라오시게.”
육승이 공야무를 보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더니 돌연 바닥에 떨어져 있던 공야무의 검을 쥐었다. 진호가 놀라서 다가갔다.
“죽일 작정이십니까?”
“살려서 많은 것을 물어봤자 대답할 자가 아니니, 죽여야지요.”
“그래도 사천왕인데…….”
“껍질일 뿐이오. 그것은…….”
서걱!
육승의 검이 공야무의 목을 긋고 지나갔다.
피를 뿌리며 떠오른 수급이 몇 바퀴 돌더니 이내 바닥으로 떨어져 풀숲으로 굴러 들어갔다. 만감이 교차하는 시선으로 죽은 공야무를 응시하던 육승은 이내 휘청거리며 혁련강의 뒤를 따랐다.
어떻게 된 일인지 혁련강은 육승이 공야무를 죽이는 행위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한참을 걷던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육승은 뒤를 따라오고 있었는데 화산의 제자들은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었다.
“뭐 하는 게냐.”
“버섯을 구해야 합니다.”
“…….”
* * *
혁련천후는 여전히 독고혜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혁련강이 그런 혁려천후를 응시하며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창백하게 변해 버린 그의 얼굴은 한눈에 보아도 그가 어떤 상태인지를 알 수 있었다.
“참으로 미련한 놈이로다. 스스로 가장 위험한 방법을 택하다니.”
그는 혁련천후의 등에 장심을 갖다 대고는 진기를 흘려보냈다. 같은 천살강기여서 독고혜가 잘못될 일은 없었다.
강대한 천살강기가 명문혈을 통해 빠른 속도로 혁련천후의 단전으로 흘러들어 갔다. 그러자 창백했던 혁련천후의 얼굴이 서서히 홍조를 비치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에 혁련강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맺혔다.
“네 하나의 몸이 아니거늘! 어찌 이런 미련한 짓을 했단 말이더냐!”
하나뿐인 혈육의 고통을 함께해 줄 수 없다는 것이 혁련강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가문을 위해서라면 이런 위험은 절대 허락하지 않았을 그였지만 독고혜를 향한 혁련천후의 마음이 어떠한지 알고 있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다.
한데 지쳐가는 그를 보고 있자니 억장이 무너졌다.
차라리 이럴 거면 자신에게 도움을 청할 일이었다.
“후우…….”
그때 문이 열리며 영호수란이 들어섰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혁련강이 그녀를 향해 말했다.
“아이야! 너의 천살강기로 나의 명문혈을 강하게 후려치거라! 순수한 천살강기여야만 하느니, 서두르거라!”
영호수란의 표정이 굳어졌다.
명문혈은 사혈이다. 자칫 잘못하면 혁련강이 크게 다칠 수도 있는 곳이다. 그런데 후려치라니. 그것도 강하게.
그녀가 선뜻 움직이지 않자 혁련강이 다시 말했다.
“나를 믿고 시키는 대로 하거라.”
영호수란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말처럼 혁련강을 믿어야 했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는 혁련강의 등을 후려쳤다.
퍽!
순간, 혁련강의 입에서 핏물이 토해졌다.
동시에 혁련천후의 등에 닿아 있던 그의 우장에서 번쩍이는 광채가 피어올랐다. 찬란한 황금색 섬광이 안개처럼 솟아오르더니 혁련천후와 독고혜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놀라운 변화에 영호수란은 눈조차 깜박이지 못했다.
그때 혁련강의 전음이 영호수란의 귓전을 때렸다.
[밖에 나가 우리가 깨어날 때까지는 아무도 이곳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라. 너도 마찬가지니라, 아이야!]
“알겠습니다.”
영호수란은 재빨리 밖으로 나가 문을 닫고는 그 앞을 지켰다.
꽉 쥐어진 그녀의 손은 이미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시간이 점점 흘러갔다.
그래도 안에서 별다른 기척이 없자 영호수란의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때, 거처로 이어지는 별관의 문을 통해 홍무가 들어섰다.
“미음을 준비했습니다.”
“지금은 안 돼요, 돌아가세요.”
영호수란의 단호한 태도에 홍무가 돌아갔다.
잠시 후, 십지신검 독고무가 들어왔다. 영호수란이 고개 숙여 인사를 하자 독고무는 그녀의 초췌함에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여긴 내가 있을 테니 잠시 눈이라도 좀 붙이는 게 좋겠소.”
“아닙니다.”
영호수란이 고개를 젓자 독고무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노주께서 드셨다고 들었는데, 안에 계시오?”
“예, 한데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죄송합니다.”
독고무도 대충 사정을 짐작하고는 한숨을 내쉬며 방문을 응시했다. 뒤이어 다른 몇 명이 더 들어왔다가 되돌아갔다.
독고무도 돌아갔다.
하지만 영호수란은 끝까지 방문을 떠나지 않았다.
* * *
혁련천후가 눈을 떴다.
악몽을 꾸었을까? 전신이 식은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눈을 뜨기가 무섭게 그는 독고혜를 찾았다. 그런데 그녀가 없었다. 분명 옆에 누워 있어야 할 그녀가 사라졌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혁련천후는 박차고 일어나 문을 열었다. 하지만 밖에도 사람이라고는 없었다.
“혜 매!”
목 놓아 불러 보았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그녀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피가 싸늘히 식어 갔다.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요란하게 뛰었다. 전신의 털이란 털은 죄다 곤두섰다.
‘설마…….’
그때였다.
끼이익!
문이 열렸다. 문틈으로 휘황찬란한 햇살이 들이치며 그의 몸을 비추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밖을 나가지 않았던 혁련천후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햇살 너머에 누구의 것인지 모를 그림자가 서 있었다.
혁련천후는 볼 수 없었지만 그림자는 그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한껏 가늘어진 혁련천후의 눈동자에 하얀 발 하나가 들어왔다. 뒤이어 다른 발도 들어왔다.
“깨어나셨군요.”
파르르…….
혁련천후의 눈빛이 급격히 흔들렸다.
이 목소리를 어찌 잊을 수 있으랴. 햇살 속에서 섬섬옥수가 나오더니 그의 뺨을 따뜻하게 감쌌다.
“악몽을 꾸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