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
<귀환무사 199화>
“적설모를 풀지 마라!”
“그렇다면 놈들을 어떻게 찾아내실 생각입니까?”
“각자 산개하여 놈들을 찾는다. 발견하는 즉시 신호탄을 쏘아라! 그리고 각 조에 광마대가 한 명씩 붙는다.”
“예!”
조진의 명령이 떨어지자 뒤쪽에 늘어서 있던 죽립인들이 앞으로 나섰다. 칙칙하고도 음습한 분위기를 지는 그들이 다가오자 동료들조차도 슬그머니 뒤로 물러서기 바빴다.
“천왕께서 지켜보신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놈들을 찾아내어 목을 따 버린다! 알겠느냐!”
“충!”
우렁찬 대답 소리에 주변 숲이 진동했다.
모두가 각각의 조를 이루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마지막으로 조진이 두 명의 광마대원을 거느리고 숲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때였다.
퍼퍼퍽!
뭔가 둔탁한 소리가 조진의 귀를 자극했다.
숲으로 뛰어들려 했던 조진이 벼락같이 방향을 틀어 소리가 난 곳으로 몸을 날렸다. 그곳에 조금 전까지 멀쩡했던 수하 세 명이 목이 잘린 채 죽어 있었다.
‘살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었다.
그렇다면 상대는 대단한 수준의 살수일 가능성이 높다. 조진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걸려드는 기운이라고는 수하들의 것이 전부였다.
조진의 낯빛이 굳어졌다.
‘이토록 짧은 시간에 결코 만만치 않은 수하들을 셋이나 죽이고 나의 기감에서 멀어질 수 있다니.’
조진은 비로소 깨달았다.
상대는 자신이 생각하는 그 이상의 고수라는 것을.
* * *
“헉! 헉!”
육승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전신이 성한 곳이 없었다. 곳곳에 드러난 상처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흘렀다. 오른팔은 탈골이 되었는지 달리는 와중에도 심하게 너덜거렸다.
그나나 두 다리는 멀쩡했는지 달리는 속도는 매우 빨랐다.
육승은 뒤를 돌아보았다.
백여 장 뒤에서 공야무가 쫓아오는 것이 보였다. 그와 함께 자신을 쫓던 적포인은 언제부턴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육승은 이를 악물었다.
“신마성으로 가야 한다. 그것만이 내가 살 수 있는 길이다.”
육승은 신마성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다.
자신을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 줄 곳은 오직 그곳뿐이라 여겼다. 신마성주 혁련천후의 차가운 얼굴이 떠올랐다.
“이젠 믿을 곳은 신마성뿐이다.”
천하의 안녕을 그에게 걸었다. 자신이 알아낸 놀라운 사실을 그에게 전해 줘야 했다.
정도맹은 어젯밤 이후로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쐐액!
공기를 가르고 날아드는 몇 발의 암기가 육승의 뺨을 간발의 차이로 스치고 지나갔다.
얼굴에서 피가 튀었지만 육승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달렸다.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여겼느냐!”
공야무의 날카로운 고함이 생생하게 귀를 울렸다.
어느새 공야무는 삼십여 장 밖까지 쫓아오고 있었다. 부상을 입은 육승의 진력이 고갈되기 시작하면서 둘 간의 거리는 급격하게 좁아지고 있었다.
조금을 더 좁혀지면 검강의 사정권에 들어선다. 그러면 육승은 신마성에 이르기도 전에 죽을 수밖에 없다.
쐐애액!
공야무의 손이 연속적으로 암기를 쏟아 냈다.
햇빛에 반짝이며 날아간 그것들은 어김없이 육승의 전신 곳곳에 박혀들었다.
퍼퍼퍽!
“으윽!”
허공에서 휘청거린 육승은 뼈를 잘라 내는 고통에도 이를 악물고는 혼신의 힘을 다해 질주했다. 눈앞에 백어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저곳만 넘어가면 신마성이다.
“신마성을 향할 속셈이로군! 어림없다! 이놈!”
공야무도 육승의 속셈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래서 백어산을 넘기 전에 그를 잡을 요량으로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신마성엔 자신도 장담할 수 없는 고수들이 즐비하다.
운이 나쁘다면 되레 자신이 죽을 수도 있기에 그는 어금니를 악물고 혼신의 힘을 다해 뒤를 쫓았다.
쐐애액!
육승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뭔가를 던졌다.
펑!
공야무가 달려오는 전방에 시커먼 연기가 확 생겨났다. 순간적으로 시야를 빼앗겨 버린 공야붕. 그때를 이용해 육승은 십 장 정도를 더 벌릴 수 있었다.
“사지를 찢어 주마! 이놈!”
공야무가 다시 속도를 높였다.
* * *
“버섯이 많다고 하더니 하나도 없잖아.”
“나 참, 좀 진득하게 찾아보세요. 분명 이곳에 버섯밭이 있었단 말입니다.”
진청과 진호가 티격태격하며 산을 헤집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버섯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홍무가 버섯을 구해 오라고 했기 때문인데, 홍무가 시킨다고 할 그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버섯을 구하러 나선 것은 영호수란이 버섯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둘은 눈에 불을 켜고 버섯을 찾고 있었다.
“옳지!”
진청이 옆으로 쪼르르 뛰어갔다. 그곳에 버섯이 꽤나 많이 자라고 있었다.
진호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이거 송이버섯이 확실하냐?”
“들은 것과 똑같은 모양이니 맞을 겁니다.”
“혹시 독버섯일 수도 있는데, 네가 한번 먹어 봐라.”
진호가 하나를 뚝 떼어서는 진청에게 내밀었다.
진청이 인상을 그리자 진호는 아예 입에다 갖다 대며 재촉했다.
“너도 이제는 고수가 되었으니 독버섯을 먹고 죽지는 않을 거다. 하니 냉큼 먹어 봐.”
“사형이 드시면 안 됩니까?”
“난 오기 전에 밥을 많이 먹어서.”
“저는 세 그릇이나 먹었는데요.”
진청이 자꾸 외면하자 진호의 눈썹이 슬그머니 위로 치켜 올라갔다. 그가 뭐라 말을 하려고 할 때였다.
쐐액!
난데없이 파공성이 울렸다. 뒤이어 뭔가가 그들을 향해 섬전처럼 날아들었다. 진호가 검을 뽑아 날아드는 뭔가를 쳐 냈다.
깡!
“뭐야!”
“뭐야? 저놈들은…….”
모두의 시선이 뒤쪽으로 돌아갔다. 이쪽을 향해 맹렬하게 달려오는 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마치 새처럼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자도 있었다.
“거리로 보면 앞에서 뛰어오는 놈이 던진 것 같은데요?”
“보아하니 쫓기고 있는 것 같은데, 왜 우리한테 암기를 던졌을까?”
“그러게요.”
셋이 동시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뒤쪽의 인물을 응시하고는 낯빛이 굳어졌다.
“엄청난 속돕니다. 저 정도면 우리보다 훨씬 더 빠르겠지요?”
“그래, 그렇게 보인다.”
“그나저나 누가 나쁜 놈인 거야?”
진명이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셋은 잠시 갈등했다.
저대로 두면 쫓기는 자가 곧 따라잡혀 죽을 것이 뻔했다. 모른 척하자니 마음이 내키지 않았고 그렇다고 무작정 끼어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쫓기는 것으로 짐작되는 자가 큰 소리로 외쳤다.
“헉! 헉! 신마성의 무사들이시오!”
“얼레? 우리를 아는 눈친데요?”
다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정도맹의 비영전주 육승이오! 나를 성주께 데려다주시오. 부탁하오!”
“비영전주!”
셋이 동시에 크게 놀랐다.
비영전주는 장막에 가려 있는 신비의 인물이다. 세상에 신분을 결코 드러낸 적이 없었던 그는 정도맹주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인물이기도 했는데, 눈앞의 피투성이 인물이 스스로 비영전주임을 밝혔으니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한때 육승이 직접 신마성을 방문한 적도 있지만 그때도 그가 비영전주라는 것을 아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셋은 육승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신비에 가려진 비영전주가 이처럼 처참한 몰골을 당했다는 것 자체가 의심스러운 일이었다.
“신표를 보여 주시오!”
육승의 눈동자에 조급함이 가득했다.
그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이미 공야무는 어느새 오 장 거리 밖에 이르러 있었다. 이 정도면 눈앞의 저들을 무시하고 자신을 죽일 수 있는 거리였다.
“애당초 신표 따윈 없소! 부탁이오! 나를 성주께 데려다 주시오! 천하의 안녕이 걸린 일이오!”
“화산의 제자들은 놈의 말을 믿지 말거라!”
공야무의 차가운 음성이 들림과 동시에 육승의 등을 향해 떨어지는 날카로운 검강이 번쩍 빛을 발산했다.
그대로 두면 육승이 피할 수가 없어 보이자 진호가 자신도 모르게 검을 휘둘러 공야무의 공격을 쳐 냈다.
꽝!
“웃!”
신음과 함께 뒤로 밀려 버린 진호의 얼굴이 제법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공야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당신은 또 누구요?”
진청이 검을 뽑아 들고 공야무를 막아섰다.
위기를 모면한 육승은 셋의 뒤쪽으로 돌아가서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진력이 고갈된 까닭에 더는 달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노부는 공야무라는 사람이다.”
“사천왕…….”
“저놈은 비영전주를 사칭한 흉악한 놈이다. 지금은 맹의 공무를 수행하는 중이니 썩 비켜섯거라!”
셋은 난감했다.
진호가 뒤를 돌아보았다. 더 이상 말할 기력조차 없었던 육승은 간절한 염원을 담은 눈빛을 그에게 주었다. 진호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공야무에게 시선을 주었다.
“화산의 질풍각주 진호가 공 노야를 뵙습니다.”
“수고가 많다.”
“잠시 저자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노야!”
공야무의 얼굴 근육이 실룩거렸다.
“감히 나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냐?”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자가 진짜든 가짜든, 사숙조께 도움을 청하셨습니다. 저희들 입장에서는 그분께 여쭙는 것이 우선이니 노야께서는 부디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숙조? 누가 너희들의 사숙조란 말이냐?”
순간 진호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절대 드러내선 안 되는 혁련천후의 비밀을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낸 것이다. 진천과 진명의 눈총이 그에게 쏟아졌다.
공야무가 다시 물었다.
“화산에 장로들 말고 사숙조가 있었단 말이냐?”
당황한 진호는 대답을 못하고서 우물거렸다.
그때 진청이 발끈하며 나섰다.
“노야께서 본 화산의 족보까지 따질 자격은 없지 않습니까?”
“진청!”
“제가 틀린 말을 했습니까?”
놀란 진명이 황급히 말렸지만 진청은 한마디 더 뱉은 뒤였다.
그때 진호가 다시 나섰다.
“저자는 신마성으로 데려가 조사를 하겠으니 노야께서는 그만 돌아가시지요. 만약 가짜로 밝혀지면 그때 포박해서 보내 드리겠습니다.”
노기를 비치던 공야무의 눈빛이 돌연 번뜩였다.
그가 물었다.
“신마성주가 너희들의 사숙조였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