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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197화 (195/425)

# 197

<귀환무사 197화>

적포인이 가르며 육승을 덮쳤다.

그는 육승이 죽었다 깨어나도 감당할 수 없는 절대고수다. 그래서일까. 육승은 자신을 죽이려 날아드는 적포인의 주먹을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죽음을 받아들일 줄 알다니. 확실히 네놈은 죽이기에 아까운 놈이로다.”

적포인의 입가에 미소가 걸릴 때였다.

육승이 돌연 두 팔을 교차하며 몸을 움츠렸다. 뒤이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눈부신 섬광이 피어올랐다.

펑!

“엇!”

적포인의 입에서 당혹성이 터졌다.

섬광이 워낙에 밝고 강했던 탓에 그는 뻗었던 주먹을 회수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공야무도 한순간 눈을 뜨지 못했다.

둘이 시력을 회복했을 때에는 이미 육승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런…….”

쾅!

적포인이 분을 이기지 못하고 힘껏 땅을 굴렀다.

* * *

사대천불의 수장인 광불이 이른 아침부터 정도맹주 나백의 거처를 찾았다.

맹주실을 호위하는 무사들이 그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맹주를 뵈러 왔네.”

무사 하나가 공손히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맹주께서는 지금 주무시고 계시는지라…….”

“급한 용무이니 기별을 넣어 주게나.”

“지난밤을 꼬박 새우셨는지라…… 송구하지만 기침하시면 다녀가셨다고 전해 올리겠습니다.”

무사의 단호한 태도에 광불은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었다. 하지만 밤을 새웠다는 말에 더는 재촉하지 못했다.

사실 지금 천하에서 누구보다 골치 아픈 이가 바로 나백이다. 그것을 아는 광불이기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섰다.

“일어나시면 전해 주시게나.”

“그리하겠습니다.”

광불이 나백의 거처를 찾았다가 돌아갈 즈음. 사천왕의 일인인 남궁기의 거처를 찾은 이가 있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흑색 일색으로 치장을 한 초로의 노인이었는데 바로 묵련이 보낸 사자였다.

남궁기는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흑의 노인을 날카롭게 응시했다.

흑의 노인도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정도맹의 한가운데에서 사천왕의 시선을 마주하고도 눈 하나 깜박이지 않는 그의 담력이 놀라울 정도였다.

남궁기의 입이 벌어지며 싸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곳이 거드름을 피울 정도로 호락호락한 곳은 아닐 텐데…….”

“두려워할 곳도 아닌 듯하오만…….”

“내가 명을 내리면 그대는 이곳에서 죽어야 한다.”

“묵련이 용서하지 않을게요.”

흑의 노인은 기세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다.

천왕의 서찰을 지니고 정도맹을 찾은 그는 나백을 대신하여 나선 남궁기와 지금껏 기 싸움을 벌이는 중이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질풍대주 관포가 들어섰다.

“어찌 되었느냐?”

남궁기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물었다. 관포는 흑의 노인을 한차례 노려보고는 공손히 대답했다.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습니다. 암영밀위들도 어디를 가셨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암영밀위들도 몰라?”

“그렇습니다.”

둘은 흑의 노인을 앞에 두고도 거침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일종의 기세 싸움이었는데, 그것을 모를 리 없는 흑의 노인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이 서찰은 맹주께 직접 전해야 하는 것이니 이 몸은 이만 가 보겠소.”

챙!

대도를 뽑아 든 관포가 노인의 앞을 막아섰다. 담담한 표정의 노인은 관포를 무시하고 남궁기를 응시했다.

남궁기도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곳이 아니지 이곳은…….”

“무슨 뜻이오?”

“맹주께서 직접 그대를 찾으실 때까지 이곳에 있어 줘야겠네.”

“응하지 않는다면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말이오?”

“물론이네.”

남궁기가 손짓을 하자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자들이 있었다.

하나같이 날카로운 기운을 풍기는 그들은 신속하게 흑의 노인을 에워쌌다. 도저히 정파의 인물들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섬뜩한 기운을 풍기는 자들이었다.

바로 맹주의 수신호위라는 암영밀위들이 그들이었다. 정공을 익히는 다른 정파인들과는 달리 오직 살인 무예만을 익힌 그들은 흑의 노인보다 더 한 섬뜩함을 발산했다.

잠시 남궁기를 노려본 흑의 노인이 두 팔을 슬쩍 쳐드는 시늉을 해 보였다.

“좋소. 정 그렇다면 이곳에서 머물 수밖에.”

남궁기가 눈짓을 하자 암영밀위들은 흑의 노인을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관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공 노야께서도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그 늙은이도 말이더냐?”

“예. 지난밤 경계를 섰던 무사들의 말로는 그분들이 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정문이 아닌 다른 곳으로 나가셨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남궁기의 표정이 굳어졌다.

더불어 불쾌한 기색마저 비쳤다.

“도대체 알 수가 없는 자들이 아니냐.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말도 없이 자리를 비우다니. 육 전주, 그 아이도 자리를 비웠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렇습니다.”

“이런, 고얀…….”

남궁기의 얼굴이 화로 인해 붉어졌다. 잠시 분을 삭이던 남궁기가 다른 것을 물었다.

“신기수사와 수석호법은 거처에 있다고 하더냐.”

“예.”

“그들에게로 가겠다.”

“알겠습니다.”

* * *

정도맹의 모처에서 전서구 한 마리가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빠른 속도로 북쪽을 향한 전서구는 신마성의 허공을 선회하고는 가장 높은 첨탑으로 날아갔다.

“태허장문이 전서를 보낸 모양이군.”

진천이 팔을 뻗자 전서구는 그 위에 내려앉았다.

품속에서 모이를 꺼내 전서구에게 먹인 그는 다리에 묶인 천을 끌렀다. 이내 표정이 변했다.

“오호! 묵련에서 사자를 보냈단 말이지.”

전서의 내용은 그것이었다.

진천은 곧장 첨탑을 내려가 뇌어양의 거처로 향했다. 첨탑의 좌측에 세워진 제법 큰 규모의 건물이었는데, 바로 마교주 뇌어양의 거처였다.

혁련강과 혁련천후의 부재 시에는 조윤이 모든 대소사를 맡았으나 그마저도 지금 모종의 임무 때문에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해서 뇌어양이 임시로 성의 업무를 관할하고 있었다.

물론 혁련천후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허허! 어서 오시게.”

뇌어양이 들어오는 진천을 반갑게 맞았다. 그는 진천의 손에 쥐어진 전서를 보고는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인가?”

“태허장문이 이것을 보내왔습니다.”

진천이 내민 전서를 읽은 뇌어양이 적잖이 놀란 기색을 비쳤다.

“사자를 보냈단 말인가.”

“하여간에 배짱 하나는 알아줘야 할 놈들입니다. 가장 강력한 적에게 선전포고를 한 것도 모자라 사신까지 보내다니 말입니다.”

뇌어양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공문을 천하에 보내고서 또다시 사자를 보내다니. 배짱이고 뭐고를 떠나 그 의도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뇌어양은 묵련이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했지만 반대로 그만큼 자신감에서 우러나오는 행동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다.

“놈들이 돌아갈 때 사로잡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사로잡는다…….”

“잡아서 족치면 뭐라도 좀 알아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성주라면 그렇게 지시를 내렸겠지?”

“당연하지요.”

진천의 대답에 뇌어양이 눈빛을 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그렇게 하세나. 단, 혼자서는 위험하니 몇 명을 더 데리고 가게나.”

“그럼 진유와 악승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무리하지 말고 곧장 돌아와야 하네.”

“산 채로 묶어서 대령하겠습니다.”

진천은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뇌어양도 그의 능력을 알기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진천은 뇌어양의 거처를 나와 자신의 거처로 빠른 걸음을 놓았다. 황급히 지필묵을 준비한 그는 묵련의 사자가 정도맹을 떠날 때를 알려 달라는 글을 적어 전서구의 다리에 묶어서 날려 보냈다.

“독수리가 덤비면 그냥 싸워라! 네가 이긴다!”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듯 전서구는 날갯짓을 퍼덕이며 그의 머리 위를 배회하더니 이내 정도맹이 있는 쪽으로 날아갔다.

“그나저나 주공께서는 여전히 그러고 계신가?”

진천이 혁련천후가 있는 곳을 돌아보며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정문을 넘어서는 거한이 있었다.

진천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저 덩치는.”

“으하하! 탁철이 왔습니다!”

탁철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신마성 전체를 뒤흔들었다.

* * *

나백은 해가 떨어질 무렵에 거처에서 나왔다.

무겁게 굳은 그를 보며 모두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남궁기가 나백을 찾은 것은 나백이 돌아온 지 한 시진쯤이 지났을 때였다.

몹시 피곤했던 나백도 남궁기의 방문을 물리칠 수 없었기에 그를 맞이했다. 남궁기가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말했다.

“이런 시기에 대체 어디를 다녀온 겐가.”

“일이 있어서…….”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어디를 다녀오다니. 분명 나백의 호위 무사들은 그가 지난밤을 새운 까닭에 거처에서 자고 있다지 않았는가.

뜻밖인 것은 남궁기는 나백이 자리를 비웠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가 다시 말했다.

“묵련에서 사자를 보냈다네.”

“그렇습니까?”

나백은 의외로 담담했다. 남궁기는 그러한 반응에 내심 의아했지만 내색하지 않고서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만나 볼 텐가?”

“그러지요.”

“몸이 상당히 무거워 보이네만……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겐가?”

“아닙니다, 함께 가시겠습니까?”

나백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연히 남궁기는 함께 간다고 대답했다.

둘은 묵련의 사자가 감금되어 있는 곳으로 걸었다. 나백의 조금 뒤를 걷던 남궁기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장포가 찢어졌군. 혹 싸움이라도 한 것인가?”

“아, 아닙니다. 빨리 돌아온다고 숲을 이용했는데, 나뭇가지에 걸린 모양입니다.”

나백이 서둘러 대답했다.

남궁기의 두 눈이 이채를 머금었다. 오늘따라 나백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지만 이내 그런 생각을 떨쳐 냈다.

정도맹주를 수상하게 여길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둘은 말없이 걸었다. 조금을 걸어가자 무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는 건물이 나왔다. 그 건물 안에 묵련의 사자가 감금되어 있었다.

무사들이 허리를 굽혀 둘을 맞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선 나백은 암영밀위들에게 둘러싸인 흑의 노인을 보고는 순간적으로 안광을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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