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
<귀환무사 196화>
“그럼 몽땅 풀어서 잡으면 될 것 아니냐! 모든 책임은 내가 질 것이다. 하니 당장에 모든 무사들을 총동원하여 놈들을 찾아내거라!”
“총동원령은 상부의 허락을 먼저 받으셔야…….”
퍽!
도광이 수하의 가슴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무방비로 얻어맞은 자가 사정없이 날아가 꼬꾸라졌다. 도광이 쓰러진 수하를 향해 살벌하게 말했다.
“한 번만 더 말대꾸를 하면 네놈부터 죽여 버리겠다!”
“아, 알겠습니다.”
둥! 둥! 둥!
총동원을 알리는 북소리가 산 전체로 울려 퍼졌다. 뒤이어 곳곳에서 묵련의 무사들이 새카맣게 몰려 나왔다.
* * *
신마성과 묵련의 보이지 않는 싸움이 막을 올린 가운데 신마성만큼은 고요함에 젖어 있었다.
혁련천후의 거처.
그곳에서 영호수란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혁련천후를 바라보며 안타까워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혁련천후의 옆에는 독고혜가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그런 독고혜의 손을 잡고 있는 혁련천후는 매우 초췌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금 그는 무의식의 상태였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의 손을 통해 엄청난 양의 기운이 독고혜의 체내로 계속해서 스며들고 있었다.
벌써 열흘이 넘어가도록 이런 상황은 반복되었다. 어지간한 고수라면 벌써 죽음에 이르렀을 수도 있을 만큼의 혹독한 치료 방법이었지만 혁련천후이기에 가능했다.
영호수란은 둘이 무사하기를 빌고 또 빌었다.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어서 더더욱 안타까웠다.
그때였다.
우웅!
혁련천후의 몸에서 은은한 공명이 일었다. 더불어 독고혜의 육신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의 나신을 통해 쾌쾌한 냄새를 풍기는 누런 연기가 조금씩 흘러나왔다.
타다닥!
영호수란이 호신강기를 일으키자 연기는 이내 불꽃을 튕기며 소멸되었다. 그러기를 한 식경쯤 지났을 때, 혁련천후가 감았던 눈을 떴다.
다물어진 그의 입술이 벌어지며 격한 호흡을 쏟아 냈다.
“후욱!”
영호수란이 황급히 그의 명문혈에 장심을 대었다. 바닥난 진력을 보충시키고자 했지만 혁련천후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괜찮으니 이럴 필요 없다.”
“괜찮기는요, 이러다가 언니보다 먼저 큰일 나겠어요.”
울먹이는 영호수란을 향해 혁련천후는 희미하게 미소를 머금었다.
흐려진 눈빛은 그가 얼마나 많은 진력을 소모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었다.
“물 좀 가져다줄 수 있겠느냐.”
“알았어요, 금방 가져올게요.”
영호수란이 황급히 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여전히 거친 호흡을 보이는 혁련천후가 고개를 돌려 독고혜를 응시했다.
벌써 열흘째 자신의 천살강기를 그녀의 몸에 주입시켰지만 그녀는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외형상으로는 완벽했지만 내면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갑자기 지독한 현기증이 몰려왔다. 방 안이 빙글빙글 돌며 참을 수 없는 구토가 치밀고 올라왔다.
“우욱!”
시커멓게 죽어 버린 핏물이 입을 통해 쏟아졌다.
“악!”
마침 물그릇을 들고 들어서던 영호수란이 크게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황급히 혁련천후의 등에다 손을 갖다 대고 진기를 불어넣으려 했다.
“조부님은.”
“아직…….”
“소천은 왔느냐.”
“그분도 아직…….”
“우악!”
또다시 시커먼 핏물이 목을 타고 넘어왔다.
영호수란이 혼비백산하더니 기어코 울음을 터트렸다.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자신이 이토록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흑흑!”
“후욱!”
혁련천후는 아득해지려는 의식의 끈을 다시 잡았다. 흐릿하게 변해 가던 눈빛이 다시 정광을 되찾았다.
‘여기서 포기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반 시진이 흐르면 어느 정도의 천살강기가 회복된다. 그때까지 정신을 잃어선 절대 안 되었다. 반 시진 간격으로 천살강기를 주입시키지 않으면 그녀의 맥이 급격히 약해진다.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
‘살려 주겠다. 반드시…….’
혁련천후는 다시 대법을 준비했다.
천살강기를 끌어 올리고 내공을 일주천시키자 다시 무아지경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젠 흐느끼는 영호수란의 음성조차 들리지 않는다.
우웅!
몸 안에서 천살강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더불어 그의 안색은 밀랍처럼 창백하게 변해 갔다.
* * *
지난날.
신마성과 대정문의 대참사가 벌어졌던 용현의 외곽을 걷는 이가 있었다.
유림의 학사들이 즐겨 입는 장삼을 걸치고 머리에는 건을 쓴 그는 연신 뒤를 돌아보며 걸음을 빨리했다.
그 모습이 마치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보였다.
잠시 후, 인파가 북적이는 저잣거리로 들어선 그는 주변을 오가는 무림인들의 수가 평소보다 더 많음을 깨닫고는 길가를 택해 걸었다.
간혹 구파일방의 무사들이라도 보이면 얼굴을 숙이는 행동을 반복했다. 그러다가 전방에 한 무리의 무사들이 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객잔과 객잔의 사이에 나 있는 골목길로 슬쩍 몸을 숨겼다.
청색 무복에 검을 찬 그들은 청성파의 고수들이었다.
“맹주가 전면전을 선포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다비문이라는 곳으로 포고장을 보냈다고 하더구나. 하긴 나라도 그리했을 것이다. 감히 신생 문파 주제에 천하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하다니.”
“맞습니다. 다비문이라는 곳이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는 모르지만 놈들이 우리 정파를 너무 우습게 여긴 게 아니겠습니까. 이참에 압도적으로 쓸어버려 다시는 사파의 무리들이 건방을 떨지 못하게끔 해 줘야 합니다.”
무사들의 대화를 듣고 섰던 인물이 크게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멀어져 가는 청성파의 고수들을 응시하며 눈빛을 떨었다. 정광이 번뜩이는 눈동자가 어딘가 눈에 익었다.
그랬다. 그는 바로 맹주 나백에게조차 알리지 않고 은밀하게 정도맹을 빠져나온 비영전주 육승이었다.
그가 정도맹을 나온 시점은 나백이 다비문의 선전 포고장을 받고 곧장 전면전을 선포하기 이전이었다. 해서 무사들의 대화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맹주께서 결단을 내리셨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들의 개파식에 불참하고 곧장 전쟁으로 돌입하실 작정이신가?’
육승의 눈빛이 점점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
‘놈들은 어쩌면 맹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맹주께선 너무 서두르신다. 자칫 잘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서둘러 일을 처리하고 맹으로 돌아가야 한다.’
육승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주변을 살폈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저잣거리가 불야성을 이뤄 가고 있었다. 잠시 저잣거리 곳곳을 살펴보던 육승은 이내 어딘가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한 시진 정도가 더 흐르자 사위에는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수많은 취객들로 북적거리던 저잣거리도 오가는 사람이라고는 하나 없었다.
그곳에 육승이 다시 나타났다.
주변을 살피던 그가 난데없이 화들짝 놀라는 기색을 보이더니 다시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거의 동시에 육승이 섰던 곳에 또 다른 인물이 유령처럼 모습을 나타내었다. 육승을 쫓아 움직이는 공야무였다.
“낌새를 챘단 말인가.”
분명 육승의 기운을 느끼고 전속력으로 달려왔건만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내공을 끌어 올려 주변을 감지했지만 느껴지는 기운은 아무것도 없었다.
공야무가 다시 사라졌다. 그러자 육승이 다시 나타났다.
그는 공야무가 사라져 간 방향을 쳐다보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가라앉은 눈빛에는 불신과 분노가 한데 뒤섞여 있었다.
‘공 노야! 역시 당신이…….’
육승은 공야무가 맹을 배신한 흔적을 찾아내었다.
그때의 충격은 이루 말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혹시나 했는데 자신을 쫓아 움직이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을 하니 주체할 수 없는 배신감에 올라왔다.
‘누군가? 맹을 배신한 또 다른 존재는…….’
배신자는 한 명이 더 있었다. 그가 누군지는 육승도 아직 모르고 있다.
그때였다.
“……응?”
육승이 벼락같이 좌측으로 시선을 돌렸다.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며 서 있었다. 육승이 익히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결코 이곳에 있어선 안 되는 사람이기도 했다.
“맹을 지켜야 할 비영전주가 이 시간에 이곳엔 어인 일인가?”
묵직한 목소리가 적포인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육승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그 뒤에 사라졌던 공야무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육승을 보며 싸늘히 웃었다.
“후후후, 결국 여기서 보게 되는구나.”
육승은 공야무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지금 그를 혼돈과 충격에 빠트린 인물은 공야무의 옆에 서 있는 적포인이었다.
또 한 명의 배신자가 어쩌면 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육승은 절망감에 하마터면 털썩 주저앉을 뻔했다.
적포인이 말했다.
“네놈의 비상함이 항상 마음에 걸렸었지. 해서 죽이고자 했다면 벌써 죽였을 것이다만, 이용을 해먹을 가치가 있어 지금껏 살려 두었지. 하지만 이젠 어쩔 수 없이 너를 죽여야겠다.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면 네놈은 절대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을 알아내었을 테니까.”
또 한 명의 배신자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육승의 눈빛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러더니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바보였소.”
“……뭐?”
“비영전의 기밀이 새어 나갔을 때 왜 당신을 용의 선상에 올려 두지 않았는지 모르겠소. 한 번이라도 의심을 해 봤더라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
“그게 네놈의 한계라고 보면 되겠지.”
“크하하하!”
육승이 돌연 고개를 젖히고 앙천광소를 터트렸다.
적포인이 육승을 향해 다가섰다. 육승은 광소를 멈추지 않았다. 둘 간의 거리가 이 장으로 좁혀지자 그제야 육승이 광소를 멈추고 적포인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완벽한 나의 패배임을 인정하겠소.”
“당연하지. 우린 네놈이 태어나기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으니까. 하니 이제 그만 죽어 줘야겠다, 육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