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
<귀환무사 194화>
“놈들의 출발 예상 시각은 언제쯤으로 보이더냐?”
“예상대로 놈들은 정도맹에 집결한 다음 움직이려고 합니다. 사천이나 북방의 먼 곳에서 합류하는 놈들의 시간을 계산하면 대략 보름 정도가 걸릴 듯합니다.”
“전대의 고수라는 놈들도 상당수가 폐관을 깨고 정도맹으로 몰려들었다고 했느냐?”
“그렇습니다. 가장 먼저 소림의 사대천불과 십팔나한이 정도맹에 입성했다고 전해 왔습니다. 지금껏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던 소림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면 놈들의 각오가 대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각오 따위는 필요 없다. 압도적인 힘 앞에선 그 어떤 것도 무용지물에 불과한 것이다. 그 옛날 선조들께서는 완벽한 힘을 얻지 못해 실패를 하셨다만 본 좌는 다르다. 감히 어쩔 수 없는 압도적인 무력의 차이로 추풍낙엽처럼 쓸어버릴 것이다.”
천왕은 자신감이 철철 흘렀다.
수십 년을 준비한 자신의 계략이 무조건 성공할 거라는 확신도 가득했다. 자신의 몸 안을 흐르는 세 마공의 강력한 힘을 그는 믿었다. 그것들을 극성으로 연마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지하로 숨어든 이후로 얼마 전에야 비로소 그 끝에 이를 수 있었다.
그때였다.
“보고입니다!”
대전의 문을 통해 한 인물이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바람처럼 달려와 천왕을 향해 오체투지를 하며 외쳤다.
“신마성의 인물들 움직였다 합니다. 하온데 방향이 정도맹이 아니라고 전해 왔습니다.”
“정도맹을 향한 것이 아니라면 어디로 갔단 말이냐?”
“놈들이 성을 나오기가 무섭게 백어산에서 동향을 살피던 아이들을 모조리 척살하는 바람에 더 이상의 행적은 알아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언제나 천왕의 지근거리에 있던 자가 몸을 일으키며 큰 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을 그따위로 하는 게냐! 가장 요주의 대상인 놈들의 행적을 놓치다니!”
분기를 삼킨 자가 천왕을 보며 머리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아이들을 풀어 최대한 빠른 시간에 놈들의 동선을 알아내도록 하겠습니다.”
“화를 낼 필요는 없다. 정도맹이 아니라면 이곳으로 곧장 움직였지 않겠느냐.”
의외로 천왕은 담담했다.
어떤 변수조차도 누를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반응이었다.
“그래도 놈들은 신경을 쓸 필요가 있겠지. 당장에 아이들을 풀어 놈들의 동선을 파악하여 보고하라! 그리고 다시 아이를 보내 빙궁의 요성제에게 약속 날짜를 반드시 지키라고 전해라!”
“존명!”
천왕이 대전을 빠져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잠시 응시하던 노인이 아직까지 오체투지를 풀지 않은 자에게 물었다.
“당연히 신마성주도 함께 나섰겠지?”
“모두가 변복으로 움직여 하나하나의 신분은 파악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변복을 했단 말이냐?”
“예, 천왕께 아뢰려 했는데 그만 기회를…….”
그 말에 지금껏 말없이 좌중이 술렁거렸다. 그중 사악한 한 마리 뱀을 연상시키는 초로의 노인이 말하고 나섰다.
“이상한 놈들이군. 굳이 개파대전에 참석을 하면서 변복을 하다니.”
백발에 붉은 눈동자를 지닌 인물이 말을 받았다.
“뭐가 어떻게 되었건 간에 이곳으로 올 것만은 확실하니 우린 그저 기다리면 되지 않겠소. 제아무리 신마성주가 강하다고 해도 본성의 정예들과 맞닥뜨리면 도리가 없을 것이오.”
“후후후, 비록 천왕께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하나 우리들도 각각의 마공을 극성에 이르렀으니 둘이 합공을 하여도 충분히 신마성주쯤은 감당할 수 있을 것이오.”
“으하하하!”
좌중이 한바탕 크게 웃었다.
그들에게서는 천왕에 못지않은 자신감이 철철 흘러넘쳤다.
* * *
용현의 외곽을 흐르는 강은 예로부터 어종이 풍부하기로 유명했다.
당연히 어촌이 형성이 되기 마련이었고 타 지방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도 꽤나 많이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객상촌이라는 곳이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는데, 그곳에 일단의 무리들이 들어선 것은 해가 서산을 향해 천천히 넘어가는 저녁 무렵이었다.
그들의 수는 모두 열한 명, 하나같이 검은 무복에 도를 두르고 있었는데 바로 변장을 하고 다비문을 향해 나선 신마성의 고수들이었다.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가시지요.”
선두에서 이동하던 조윤이 역시 변장을 하고 움직이던 천마사로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세.”
모두는 객상촌으로 들어섰다. 규모가 작은 어촌이라 객잔이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그곳에도 술을 파는 곳은 있었다. 객잔이라 할 수 없을 만큼 초라한 규모였지만 각종 음식과 술의 이름을 적어놓은 깃발을 보고는 몇몇 인물들이 반가움을 드러냈다.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왕전과 북궁천소, 장용백 등이었다.
“흐흐! 술파는 곳이 없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군.”
“그러게 말이오.”
“며칠 후면 술을 마시지도 못할 테니 오늘만큼은 제대로 한번 마셔 봐야겠군.”
“좋소!”
마당에 마련된 탁자에 엉덩이를 내린 그들은 서둘러 술과 음식을 시켰다.
검로가 장용백을 보며 혀를 찼다.
“네놈은 그 술만 아니었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크게 되었을 게다.”
“저는 지금으로도 충분히 만족합니다. 교주와 사로께서 함께하시는데 부러울 것이 뭐 있겠습니까?”
“하여튼 저 능구렁이 같은 놈!”
독로가 장용백의 너스레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조윤이 장용백에게 물었다.
“요즘 단승, 그놈을 지도한다고 들었소. 꽤 늘었다고 합디다만…….”
“꽤 늘기만 했겠소. 재주는 그렇다 쳐도 놈의 그 지독한 근성은 가히 천하제일입디다. 생김새도 성주와 비슷하지 않소. 가끔 대련을 하다가 성주로 착각하고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오. 하여튼 놈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대성할 것이오.”
“놈만이 아니오. 화산의 아이들도 그 아이에 비해 결코 모자라지 않소. 특히 그 진청이라는 놈은 어쩌면 화산의 역사를 바꾸어 버릴지도 모르는 놈이오. 그 독기하고 승부 근성은 나도 놀랄 지경이더라고.”
왕전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신마성에서 수련을 하는 모두가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해서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성주의 덕이 아니겠소. 그가 아니었다면 놈들은 벌써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을 게요. 평생을 두고 감사해야 할 놈들이오.”
“그거야 우리도 마찬가지요. 우리도 주공이 아니었다면 이 정도로 발전하지는 못했을 것이오. 어쩌면 오왕이라는 이름도 벌써 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오.”
“본교도 충분히 감사하고 있소. 그분 때문에 교주께서 안정을 되찾으셨으니 평생을 두고 갚아야 할 은혜를 입었소이다.”
장용백의 그 같은 말에 천마사로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빙궁에 의해 중원으로 숨어들 때 그 얼마나 피눈물을 흘리며 원통했던가.
사실 그땐 천마사로조차도 미래가 없다고 여겼었다. 그러나 지금은 신마성과 함께하면서 옛날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희망이 생기자 하루하루가 그저 활기차고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자신들을 받아 준 혁련천후의 덕분이었다.
“흐흐! 술 냄새 한번 좋구나.”
아낙이 들고 오는 술병을 바라보며 장용백이 침을 삼켰다. 어수룩한 시골이라 독한 화주에 삶은 닭이 전부였지만 모두는 짧은 시간에 남김없이 비워 버렸다.
식사가 끝나고 더는 마실 술이 없자 모두는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지금 그들은 묵련의 본거지로 향하는 중이었다. 개파식을 명분으로 도발해 온 묵련이 곳곳에 매복을 했을 거라 확신하고는 미리 전선을 살피러 가는 중이었다.
물론 매복한 묵련의 고수들을 척살하는 임무도 함께하고 있었다. 그래서 소수만 나선 것이었다.
“목적은 놈들의 전선을 살피고 흔드는 것에 있습니다. 혹, 위급한 상황에 처하면 무리할 필요 없이 곧장 후방으로 물러나셔야 합니다. 주공께서 한 명의 부상자도 용납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흠.”
물러서라는 말에 천마사로가 답을 않자 조윤이 빙그레 웃으며 다시 말했다.
“조무래기들보다야 나중에 제대로 된 놈들과 크게 한판 붙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성주께서 그리하라고 했다면 따를 수밖에.”
“그리하겠네.”
마교의 고수들은 누구보다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은 묵련과의 다가올 전쟁을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었다. 바로 빙궁과의 재회 때문이다. 빙궁에 대한 복수심이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원천이었다.
“늦으면 노숙을 면치 못하니 경공으로 이동해야겠습니다.”
“그러세.”
모두는 객상촌을 나서기가 무섭게 경공을 펼쳤다.
미리 정해 둔 동선을 따라 두 시진 정도를 이동한 끝에 울창한 숲이 좌우로 높게 펼쳐져 있는 지점에 다다를 수 있었다.
조윤이 모두를 향해 주의를 주었다.
“여기부터가 놈들의 매복 가능성이 높은 지점입니다. 지금부터 두 조로 나뉘어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놈들의 근거지까지 어느 정도가 남았지?”
“빠른 걸음으로 대략 두 시진이면 산의 초입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정상까지 대략 두 시진 정도가 걸릴 것입니다.”
“흠! 거의 반나절이 남은 거리군. 이곳부터 매복이 있다면 유격전을 펼치면서 최대한 아군에게 피해를 주자는 속셈이라 봐야겠군.”
검로의 말에 조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매복이 있다면 그렇다고 봐야 합니다. 하지만 매복도 현재로선 확신할 수 없습니다. 눈으로 직접 보기 전엔 그 무엇도 알 수 없으니 말입니다.”
“분명 놈들의 최전선은 이쯤에서 시작될 걸세. 그렇지 않다면 근거지에서 농성전 비슷하게 흘러갈 텐데, 중원을 먹어 버릴 야욕을 지닌 놈들이라면 그렇게는 하지 않겠지. 자! 우리는 저쪽 방향을 맡도록 하겠네. 반나절 후에 이곳에서 보세나.”
천마사로와 장용백이 빠르게 숲의 우측으로 스며들었다.
그들의 뒷모습을 잠시 응시하던 조윤이 일행들에게 좌측으로 가자는 눈빛을 보내고는 먼저 몸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