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
<귀환무사 192화>
콰쾅!
“이런!”
황급히 자리를 피한 장용백과 모용단승은 우측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곳에 격렬한 대련을 펼치고 있는 매화무적 진유와 신마각주 악승이 있었다.
둘은 실전을 방불케 하는 격렬함으로 용호상박의 접전을 펼치고 있었는데, 수련하던 모든 무사들이 숨죽여 둘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식한 놈들! 저러다가 한 놈이 죽지, 죽어.”
장용백이 한 자 깊이로 생겨난 구덩이를 쳐다보며 혀를 내둘렀다.
모용단승은 둘을 지켜보며 눈빛을 발했다. 진유의 유연함 속에 묻어나는 파괴력과 악승의 폭발적인 움직임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스슥!
그때 그의 옆으로 시커먼 그림자가 나타났다. 순간 주변이 음식 냄새로 진동했다.
신마성의 대표 숙수, 홍무였다.
“할 만하냐?”
“그냥저냥요.”
“흠! 꽤 강해졌는데, 나하고 한번 붙어 볼까?”
모용단승이 홍무를 돌아봤다.
유심히 그의 눈을 쳐다보던 모용단승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싫어요.”
“왜.”
“그냥요.”
“망할 놈.”
홍무는 모용단승의 뒷모습을 보며 투덜거렸다.
흑야와의 수련을 통해 발전한 자신의 경지를 시험해 보고 싶었지만 아무도 받아 주지 않았다.
유일하게 받아 준다는 사람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는 홍무가 싫었다.
‘쳇! 환자를 상대로 무슨…….’
전신을 천으로 둥둥 둘러맨 철무옥을 떠올리며 홍무는 인상을 그렸다.
[내가 그래도 흑야 형님과 비긴 몸이야, 자식아.]
홍무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에게는 그저 개똥같은 말로밖에 들리지가 않았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연무장을 응시하던 홍무가 호흡을 들이마시고는 조금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점심 시간입니다!”
상당한 발전을 이룬 듯, 그의 목소리는 신마성 전체로 퍼져 나갔다.
무사들의 고개가 일제히 홍무에게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고기에 붙었던 파리 떼가 한꺼번에 날아가듯 식당으로 내달렸다.
진유와 악승도 대련을 중단했다.
“다음에 또 하시지요.”
“좋소.”
“대단하십니다, 두 분!”
홍무가 둘에게 다가가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를 응시하는 둘의 시선이 묘했다.
홍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도 수련을 좀 해야 하는데…….”
“살수가 무슨 수련이야.”
“그러니까 실전에 가까운 수련이 부족해서……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혹시 저하고 좀 상대를 해 주시면 안 될까……요.”
“됐거든.”
“거절이다.”
악승이 무뚝뚝한 어조로 받아치고는 성큼 걸었다. 진유도 마찬가지였다.
홍무도 재빨리 보조를 맞추며 다시 말했다.
“그러니까 저…… 한 번만 상대를 해 주시면 앞으로 최고의 요리로 모시겠습…… 에라이!”
간절한 어조로 말을 하던 홍무가 눈을 부라리며 둘을 노려보았다.
둘이 바람처럼 저 앞을 날아가고 있었다.
요즘 홍무는 모든 이들에게 기피 대상 일호로 낙점 받은 상태였다.
이유는 그의 실험 대상이 되어 주기 싫어서였다.
홍무는 흑야의 진전을 이어받고 있는 중이다. 천하에 그 누가 흑야의 살법을 전수받은 홍무에게 공격 대상이 되고 싶겠는가.
홍무의 얼굴이 이내 처량하게 바뀌었다.
“어쩔 수 없지. 뒷산에서 늑대를 상대로 할 수밖에…… 에효.”
홍무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영 쓸쓸해 보였다.
* * *
천하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거대한 성.
산의 정상에 세워진 탓에 곳곳에 세워진 첨탑이 구름에 가릴 정도였는데, 그 첨탑의 가장 끝부분에 한 인물이 오연한 표정으로 세상을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적색 곤룡포를 걸치고 핏빛보다 더 붉은 적발을 늘어뜨린 인물, 바로 어둠의 장막 뒤편에서 세상을 관조하려는 야망을 보였던 천왕이었다.
세상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동자는 열망으로 들끓었다.
“천하를 얻고자 스스로를 버린 지 삼십 년이 흘렀다. 이제 본좌의 위대함을 만천하에 뿌릴 때가 되었구나.”
심장의 박동이 빨라졌다.
저 풍요로운 중원 천하를 손아귀에 틀어쥘 생각을 하니 가슴이 마구 뛰었다. 강호의 모든 이들이 곧 있으면 자신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경배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있었고 그럴 힘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래서일까. 세상을 내려다보는 천왕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두 눈이 새파란 살기를 담았다.
“기다려라, 혁련세가. 네놈들과의 악연은 나의 대에서 반드시 끝내 줄 것이다.”
수백 년을 음습한 지하에서 고통스럽게 지샌 선조들의 한이 천왕의 가슴을 적셨다.
자신 역시 선조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신분과 얼굴까지 지워 버렸다. 삼십 년이라는 긴 세월을 오직 혁련세가를 무너뜨리기 위한 일념만으로 뼈를 깎는 고통 속에 살아왔다.
천하는 덤이다.
이제 그 모든 것에 대한 보상을 받을 때가 온 것이다.
묵련! 아니 스스로 다비문(多秘門)이라 명명한 자신의 문파는 얼마 후에 만고에 빛나는 위대한 문파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우르릉!
난데없이 천둥이 울렸다. 뒤이어 벼락이 천왕의 지척 허공에서 거미줄처럼 작렬했다.
번쩍!
쩌저적!
가공할 자연의 힘 앞에서도 천왕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았다.
쏴아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조차도 천왕의 들끓는 가슴을 식혀 주지 못했다. 그때 그의 뒤쪽에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자들이 있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자들이었다.
“천하의 모든 문파에 본문의 개파를 알리도록 하거라.”
“존명!”
“정도맹과 구대문파는 물론이고 정파라는 탈을 쓴 모든 문파에도 똑같이 전해져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존명!”
대답을 하는 자들의 목소리는 마치 유령의 울부짖음처럼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꽈르릉!
쩌저적!
천둥벼락이 다시 하늘을 덮었다.
하지만 천왕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는 결국 지우지 못했다.
* * *
신마성의 주요 인사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혁련강을 비롯한 오왕과 그 외의 고수들. 그리고 영호도성과 뇌어양은 물론이고 마교의 고수들까지 모도 새롭게 지어진 신마전에 모였다.
스스로 신마성의 사람임을 천명한 금치문까지 함께했다. 혁련천후만이 그 자리에 없었다.
독고혜 때문이었다.
모인 모든 인물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모두는 차례로 한 장의 첩지를 읽었다. 가장 뒤쪽에 앉았던 신마각주 악승이 매화무적 진유와 함께 붉은 첩지를 읽으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첩지를 읽은 마지막 사람들이었다.
첩지에는 다비문의 개파를 알리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 아래에 천왕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직인이 유난히도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조윤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일단 놈들의 초청에 응해 주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영호도성이 아무 말도 않고 혁련강을 돌아보았다.
혁련강이 조금은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당연히 가야지. 가지 않는다면 천하가 비웃지 않겠소.”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영호도성이 이번에는 뇌어양을 응시했다. 눈빛으로 뜻을 묻자 뇌어양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그들은 천하의 모든 문파에 똑같이 개파를 알렸을 것이오. 세를 과시할 목적이든, 다른 수작이 숨었건 간에 일단은 초청에 응하는 것이 좋을 듯하오이다.”
북궁천소가 끼어들었다.
“수작을 부리면 그 자리에서 처부수면 되지 않겠습니까. 저희도 찬성입니다.”
조윤이 다시 말하고 나섰다.
“두 분의 뜻을 알았으니 주공께는 제가 말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장용백이 묻고 나섰다.
“인원은 어느 정도로 하는 게 좋겠소이까.”
“아무래도 다는 갈 수가 없으니 소수만 추려서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충분한 방어 전력은 남겨 두어야지 않겠습니까.”
“놈들이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고 있소. 군웅들이 모인 자리에서 무슨 개수작을 부릴지도 모르는데, 소수만 간다면 위험하지 않겠소.”
조윤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가 움직이는 것이 좋습니다. 어차피 그곳에서 전면전이 벌어질 가능성은 낮습니다. 사건이 터진다면 그곳을 향하는 도중이거나 아니면 식이 끝나고 돌아가는 시점이 되겠지요. 그런 연유로 기습이나 암습엔 기동력이 좋은 소수가 참가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조윤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좀처럼 말이 없던 천마사로의 독로가 말하고 나섰다.
“무인들의 자존심을 이토록 교묘하게 이용하다니, 결코 예사로운 곳이 아닌 듯하오.”
“상당한 세월을 준비해 온 놈들입니다. 결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닙니다. 아니 어쩌면 강호의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적이 될지도 모릅니다.”
조윤의 말에 뇌어양이 이채를 머금으며 물었다.
“신마성에선 놈들에 대한 정보를 이미 알고 있었소?”
“모든 것은 주공께서 말씀드릴 것입니다.”
“알고 있었던 게 사실이군. 허허! 정보의 부족함을 안타까워하더니 이제 보니 그게 아니었네그려.”
“죄송합니다. 주공께서 갑자기 바빠지시는 바람에 대종사께 미처 말씀드릴 기회를 잡지 못했습니다.”
조윤이 머리를 조아리자 뇌어양은 손사래를 쳤다.
조윤이 이번에는 천마사로를 향해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신교 쪽에서는 장 전주님과 사로께서 함께 가 주셨으면 합니다만.”
“알겠소.”
“알겠네.”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주공을 뵙고 오겠습니다.”
조윤은 이내 대전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보다 빨리 대전으로 돌아왔다.
“뭐라고 하시더냐?”
성격이 급한 왕전이 급히 물었다. 조윤은 혁련강과 영호도성 등을 향해 입을 열었다.
“주공께서도 허락을 하셨습니다. 한데…….”
조윤이 말끝을 흐리자 모두가 그를 주목했다.
목이 말랐는지 조윤은 술 한 잔을 기울이고는 말을 이었다.
“만에 하나 그들과 전쟁이 벌어져도 주공께서는 한동안 정도맹과 함께 움직이지 않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당연하지, 우리도 그렇게 예상하고 있었네.”
“두말하면 잔소리지. 뒤에서 설거지를 해 줄 일이 있나.”
뜻밖의 반응에 되에 조윤이 머쓱한 표정이 되었다.
영호도성이 물었다.
“다른 말은 없었는가?”
“지금부터 주공께서 세우신 계획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좌중이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한쪽 구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앉았던 금치문까지도 눈을 동그랗게 치뜨고는 귀를 기울였다.
조윤의 말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