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
<귀환무사 191화>
* * *
정도맹의 모든 정보를 담당하는 비영전은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움직이는 집단이다. 구성원들의 면면은 맹주 나백과 전주 육승만이 알고 있을 정도로 비영전은 철통같은 보안을 유지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정도맹과 대립 관계에 있는 세력들이 척살 일 순위에 올려놓은 존재들이 바로 비영전주 육승과 비영전 소속의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꾸루룩!
육승의 거처로 천하에서 날아든 전서구들이 수도 없이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했다.
며칠 전부터 나가는 전서보다 들어오는 전서의 양이 수배는 많았는데, 대부분이 섬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의문의 공사에 관한 것들이었다.
육승의 얼굴이 가볍게 찌푸려져 있었다.
“알려지지 않은 절대 고수들이라…….”
측정 불가의 고수들이 모처로 모여든다는 정보를 입수한 지가 며칠 전이었다. 그 이후로 같은 내용을 알리는 전서가 끊임없이 날아들고 있었다.
“대체 어떤 단체이기에 이토록 빠른 시간에 그 많은 자들이 모여들 수 있단 말인가.”
심각한 표정으로 다른 전서를 펼쳐 가던 육승이 돌연 눈빛을 발했다.
“이분들이 드디어 나오셨구나.”
전서에는 사대천불의 등장을 적어 놓고 있었다.
육승의 표정이 모처럼 밝아졌다. 사대천불이라면 엄청난 도움이 된다. 사대천불이 나왔다면 그들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는 전대의 십팔나한들도 은거를 깨고 나왔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전면전이 벌어졌을 때, 고수의 숫자가 많은 쪽이 승리하는 것은 천고불변의 진리와도 같은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사대천불과 전 전대의 십팔나한들의 가세는 정도맹으로서는 천군만마를 얻는 것과 같다고 봐야 했다.
육승은 마지막 전서를 펼쳤다.
일순 두 눈을 부릅떴다.
“헉!”
[비영전주! 그대가 이 전서를 받을 때쯤이면 비영전의 쥐새끼들은 모조리 지옥으로 떠났을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본련은 세상에 그 위대함을 드러낼 것이니 더 이상의 허튼수작은 부리지 않는 것이 네놈들의 수명을 조금이라도 연장하는 길이 될 것이다.]
전서를 쥔 육승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육승이 놀란 이유는 필체에 살기를 담을 정도의 고수라서가 아니었다. 비영전은 전서를 보낼 때, 그들만의 암호로 적어서 보낸다.
그리고 묶는 방식 그들만의 방식을 사용한다. 그것은 맹주 나백을 비롯한 사천왕들도 모르는 극비였는데, 협박성 글이 적힌 전서는 그 모든 것을 완벽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이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천하에 나와 그들만이 아는 것을 어떻게…….”
육승은 좀처럼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그는 의문의 전서를 다시 펼쳐 자세히 살폈다.
내공까지 끌어 올려 전서를 살피던 그가 갑자기 눈빛을 번쩍 발하더니 전서를 삼매진화의 수법으로 태웠다.
가루로 변해 버린 전서가 탁자 위에 흩날렸다.
육승은 가루를 손가락으로 골라 가며 더욱더 자세히 살폈다. 육승의 얼굴이 조금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창백하게 질려 갔다.
도대체 무엇을 알아낸 것일까.
육승의 입술을 뚫고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럴 수가…….”
* * *
신마성으로 돌아온 혁련천후는 가장 먼저 독고혜를 찾았다.
지금 그녀는 진천이 특수하게 설치를 한 진법 안에 머물고 있었다.
우웅!
공간이 진동하며 주변 사물이 급격하게 바뀌어 갔다.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던 혁련천후는 손을 뻗어 한 곳을 살짝 두드렸다.
그러자 환경이 또다시 다른 모습으로 바뀌며 작은 초옥이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그 자리에서 초옥을 응시하던 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잠을 자듯, 눈을 감고 누워 있는 독고혜의 모습이 비수처럼 심장을 아프게 찔러 왔다.
자신을 보며 환하게 웃어야 할 그녀는 천년만년이라도 누워 있을 것처럼 미동조차 없었다.
그녀의 옆에 앉은 그는 죽은 자의 그것처럼 차갑기 그지없는 손을 잡아 갔다. 느껴지는 것이라곤 미세하게 움직이는 맥박의 흐름뿐이었다.
-단전을 깨끗이 비우고 새롭게 모든 것을 채워야 합니다. 오직 주공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돌아오기가 무섭게 사공진무는 그렇게 말을 했었다.
그렇게만 한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는 말도 들었다.
혁련천후는 독고혜의 옆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지금 그는 독고혜를 살리기 위해 최후의 방법을 시도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자칫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녀를 잃을 수도 있는, 그로서는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생애 최대의 결단이었다.
서서히 그의 육신이 천살강기로 둘러지기 시작했다. 짙은 백색에서 점점 투명하게 흐려지더니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투명색으로 바뀌었다.
스슷!
독고혜의 가녀린 육신이 둥실 떠올랐다.
혁련천후의 가슴 어름까지 떠오른 그녀의 육신이 서서히 붉어지기 시작했는데, 보이지 않는 천살강기의 기운이 몸속으로 스며들며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츠츠!
혁련천후의 육신에서 흘러나온 또 다른 기운이 그와 독고혜의 육신을 두르기 시작했다. 무형의 천살강기와는 달리 그것은 둘의 영상을 휘감으며 울타리 모양으로 변해 갔다.
초옥 안의 공기가 엄청난 압력을 발산하며 쩌렁 하는 공명을 울려 냈다.
파파팟!
독고혜의 몸을 감싸고 있던 옷가지가 갈기갈기 찢겨 날아갔다. 백옥 같은 피부는 이미 보기에도 섬뜩하게 붉게 변해 있었다.
무형의 기운은 끊임없이 그녀의 피부를 통해 흡수되고 있었는데, 그와 반대로 혁련천후의 안색은 점점 더 창백하게 변해 갔다.
또르륵!
굵은 땀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자세로 혁련천후는 한 식경 가까운 시간 동안 미동조차 않았다. 그렇게 다시 한 식경 정도가 흘러갔을 때, 혁련천후의 두 눈에서 강렬한 섬광이 폭사되었다.
뒤이어 그의 전신이 눈부신 백색의 섬광으로 뒤덮였다.
그러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붉게 변했던 독고혜의 나신이 혁련천후와 똑같이 백색의 섬광으로 뒤덮였다.
투두두둑!
방바닥으로 시커먼 액체가 떨어졌다. 독고혜의 몸에서 흘러내린 것들인데, 아수라마기가 액체로 화한 것이었다.
“후욱!”
혁련천후는 심호흡을 길게 했다.
이제 마지막 단계만 남았다. 이것만 성공하면 독고혜는 완벽한 회복은 물론이고 자신에 버금가는 고수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부디 잘 견뎌 다오.’
우우웅!
혁련천후의 장포가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낼 수 있는 최고의 힘을 발산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장포가 찢어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을 때, 염원을 담은 기합성이 그의 입술을 뚫고 터져 나왔다.
“으합!”
* * *
영호수란의 아름다운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 앞에 영호도성과 오왕 모두가 모여 있었다. 사공진무가 그런 그들을 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정말 괜찮은 거 맞죠?”
“아하하. 괜찮다니까……요.”
“정말이죠? 정말 두 사람 다 괜찮은 거 맞죠?”
“하하하! 그렇다니까요. 제가 언제 실없는 말을 하는 걸 봤습니까!”
사공진무는 모두를 향해 더욱더 환하게 웃어 보였다. 영호도성이 영호수란의 어깨를 다독거려 주면서 좋은 말로 달래었다.
“두 사람 다 무사하다고 하니 이제 그만하거라.”
“두 눈으로 보기 전엔 안심을 할 수가 없어서…….”
“성주가 어디 보통 사람이더냐. 허허허.”
모두의 표정이 꽤나 밝았다.
지금 그들은 사공진무를 통해 독고혜가 고비를 넘겼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어쩌면 천고에 없을 기연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두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을 수가 없어서 사공진무를 달달 볶아 대는 중이었다. 덕분에 괜히 사공진무만 애를 먹어야 했다.
그는 서둘러 이 피곤한 자리를 뜨고 싶었다.
“약을 제조해야 하기에 저는 이만…….”
“같이 가자.”
황급히 자리를 피하는 사공진무, 눈치를 살피던 진천도 슬그머니 사공진무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왕전이 특유의 거친 미소를 머금었다.
“흐흐흐, 이렇게 되면 만사가 다 해결되는 건가?”
“아직 확신할 순 없다.”
“재수 없는 소리하고는.”
누구보다 신중한 조윤의 말에 모두가 일제히 그를 노려보았다.
결국 조윤도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야 했다.
제6장 묵련, 모습을 드러내다
신마성의 연무장에서 장용백과 모용단승이 수련을 하고 있었다.
둘은 지금 대련을 하고 있었는데, 모용단승은 공격을, 장용백은 방어만 하고 있었다. 강력한 기운들이 서로 충돌하며 연무장의 바닥에 수도 없이 구덩이를 만들었다.
“훅!”
모용단승은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런 그의 전신은 흘린 땀으로 인해 무복이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헉! 더는 못하겠습니다.”
“꽤 좋아졌군, 꼬마!”
장용백이 씩 웃으며 이마의 땀을 훔쳤다. 모용단승이 고개를 숙였다.
“지도에 감사드립니다.”
“감사는 개뿔! 나중에 술이나 사라.”
“알겠습니다.”
공손히 고개 숙이는 모용단승을 바라보는 장용백의 눈동자에 감탄의 빛이 어렸다가 사라졌다.
그는 얼마 전부터 모용단승의 수련을 맡고 있었다. 모용단승의 지나치게 차가운 성격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던 그는 마치 제자를 들인 양 최선을 다해 수련을 도왔다.
짧은 시간에 자신의 이마에 땀을 흘리게 만들 정도로 모용단승은 엄청난 발전 속도를 보여 주었다.
‘이거 그냥 강제로 제자를 만들어 버려?’
욕심이 저절로 생겨났다.
지금껏 제자가 없었던 그였다. 마교에 숱한 청년들이 있었지만 그의 마음을 충족시킨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모용단승은 달랐다.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깨우치고 둘을 가르치면 다섯을 깨우쳤다.
게다가 초식의 운용은 백전노장을 방불케 했다. 그만큼 두뇌가 뛰어나다는 것이다.
장용백이 모용단승을 보며 탐욕의 시선을 빛내고 있을 때, 뒤에서 강기 다발이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