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
<귀환무사 182화>
“뭐냐? 그건.”
“제가 창작한 요리인데 세상에서 처음으로 맛보시는 영광을 드리겠습니다.”
홍무가 붉은 양념으로 버무린 고기 요리를 탁자 위에 놓으며 요상한 웃음을 흘렸다. 마침 안주가 떨어졌던 탓에 관산악은 젓가락을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맛나게 먹어 가던 관산악의 얼굴이 대번에 일그러졌다.
“이 새끼! 뭘 넣었냐?”
“……?”
“이거 엄청 맵잖아! 자식아! 크악!”
관산악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불행하게도 그는 매운 것을 전혀 먹지 못했다. 그것을 모르고 홍무는 가장 맵게 요리를 만들었으니 한데 얻어터지는 건 당연했다.
“너, 내게 엿 먹이려고 고의적으로 맵게 만들었지?”
“헉! 아닙니다! 금 장주께서 천하제일의 맛을 자랑하는 조선의 청양고추를 요리에 쓰라고 주시기에 그것을 갈아 넣어 만들었을 뿐입니다. 매콤하고 맛있기만 하다던데…….”
홍무가 울상을 지으며 우물거렸다.
자신의 첫 창작품이 실패작으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 * *
흑야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빛났다.
전방에 보이는 음습한 분위기의 폐장원, 그곳에서 날카로운 기운들이 곳곳에서 번득이고 있음을 감지했다.
“진천, 어떠냐?”
“십전무제의 기운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흠! 일단 들어가서 알아보는 것이 좋겠지?”
“좋다! 들어가자.”
바닥을 차고 오른 셋이 야조와도 같은 빠르기로 폐장원의 담을 넘어갔다.
동시에 사방에서 불이 켜지며 주변이 환하게 밝아졌다.
처척!
바닥에 내려선 셋의 주변을 죽립인들이 에워싸며 나타났다. 나타난 숫자는 모두 다섯, 하나같이 날카로운 기운을 발산했다.
왕전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제대로 찾아왔군. 부상막의 멸천조인가 하는 놈들이다.”
“확실하냐?”
“확실하다.”
흑야가 선뜻 앞으로 나섰다.
“이곳에 너희들이 납치를 한 여인이 있지?”
죽립인들은 대답이 없었다. 턱까지 내려쓴 죽립으로 인해 그들의 표정조차 살필 수 없었다.
횡으로 늘어선 그들은 검을 겨눈 자세로 셋을 노려보기만 했다. 그때 흑야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이놈들이 전부다. 의도적으로 여러 곳에서 기운을 발산한 것이라면 우리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군. 어디로 갔지? 네놈들의 동료들 말이다.”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오직 셋을 노려보며 자세만을 잡고 있는 것이 공격을 할 의향도 없어 보였다.
진천이 정색으로 얼굴을 굳혔다.
[조심하십시오. 이놈들…… 자폭을 하는 놈들입니다.]
[어쩐지…….]
흑야와 왕전은 기감을 최대한으로 열었다.
[역시, 놈들의 몸속이 내공의 폭주로 상당히 흔들리는군.]
폭발의 위력을 모르니 섣불리 공격할 순 없었다.
비록 진천이 한번 당해 보기는 했지만 시전자의 무공 수위에 따라 위력에 차이가 있음은 능히 짐작되었기에 셋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다리에 내공을 담았다.
여차하면 경공을 펼쳐 폭발의 범위에서 벗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흑야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일단 피하는 척, 주변으로 몸을 은신한 후, 기척을 감추어라. 내가 해결한다.]
그의 방법을 짐작한 둘은 그대로 몸을 뽑아 올려 장원의 담을 넘어 숲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상당한 거리를 날아간 듯 보였던 그들은 죽립인들의 지척에 몸을 은신했다.
표홀한 신법으로 허공에서 방향을 바꾸어 장원의 지붕 위로 소리 없이 내려선 흑야는 죽립인들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킨 채 움직이지 않았다.
‘놈들이 뭘 하는 거지?’
자신들을 찾아 움직이든가, 아니면 동료들을 찾아 나섰어야 할 그들이 전혀 미동조차 없자 의구심이 밀려왔다.
사방이 훤한 마당은 살수를 펼치기 힘들다. 죽이려고 마음먹는다면 그다지 어려울 게 없었지만 문제는 그들이 자폭을 할 시간을 주어선 곤란했다.
[진천! 환술로 장거리 공격을 해 봐.]
[놈들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 통할까 걱정입니다만, 한번 해 보지요.]
진천의 손바닥에 조그마한 빛의 구슬이 피어났다. 진천은 구슬을 얇은 원형으로 변형시켜 그대로 죽립인들을 향해 날렸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조차 없이 날아간 그것들이 죽립인들의 육신에 닿으려는 찰나, 가장 가까운 곳에 섰던 자의 몸이 그대로 빛의 구슬들을 향해 돌진했다.
“멀리 떨어져!”
콰콰콰…….
흑야의 고함이 터지며 천지가 괴멸하는 듯 엄청난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흑야가 은신했던 장원의 지붕이 하늘로 솟아오르며 엄청난 열과 바람이 주변을 몰아쳤다. 장원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화해 무너졌다.
진정 가공할 만한 위력이 아닐 수 없었다.
제법 규모가 컸던 장원이 폭발의 위력으로 폭삭 내려앉는 광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전율을 불러일으켰다. 불똥이 사방으로 튀어 오르며 주변 숲이 이내 화염에 휩싸였다.
거대한 화마가 이내 하늘로 치솟으며 주변을 환하게 밝혔는데, 그 한가운데에 흑야와 왕전 등이 우뚝 서 있었다.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이거 정말 놀랄 노 자군.”
“지독한 놈들입니다. 공격을 가하면 무조건 자폭하게끔 이지를 제압해 놓은 듯합니다. 동료들을 이렇듯 가볍게 버리다니…….”
“이지를 제압당한 게 아니야. 조금 전의 눈빛들은 결코 탁하지 않았거든. 놈들은 제정신으로 이런 공격을 택한 것이다.”
셋은 소름이 돋아남을 느꼈다.
죽음 직전에 동귀어진의 수법으로만 사용할 줄 알았건만 싸우지도 않고 오직 죽일 작정으로만 자폭을 택하다니…….
불길에 휩싸인 장원의 잔해를 바라보며 흑야가 중얼거렸다.
“무엇이 저들을 저렇듯 쉽게 목숨을 버려 가며 싸우게 만들었을까…….”
“적이지만 대단한 충성심입니다. 솔직히 저라도 저렇게는 못할 텐데 말이지요.”
왕전이 뭔가가 떠오른 듯 둘을 돌아보며 말했다.
“혹시 광신도들이 아닐까? 광신도들은 자신이 믿는 대상을 위해선 뭐든 하는 족속들이 아니더냐?”
“어쩌면…….”
“이거, 앞으로는 싸우기에 앞서 적들의 몸부터 살펴보고 싸워야겠습니다. 난전 중에 몇 놈이 저런 방식으로 무작정 자폭을 한다면…… 어이구야.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진천이 몸서리를 쳤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수준이 약한 인물들이라면 영문도 모르고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안다고 해도 죽음을 면치 못할 정도로 대단한 위력이었다.
“내공만으로 저 정도의 폭발을 일으킬 수는 없다. 이건 분명 강탈당한 관의 화약과 관련이 있을 거다.”
“설마 몸에 숨길 수 있을 정도의 소량으로 저만한 폭발을 일으킨다는 게 가능할까요? 엄청난 고성능 폭약이 아니면 불가능할 텐데…… 뭐, 놈들이 놀랄 만큼 뛰어난 화약 제조 기술을 보유했다면 가능하겠습니다만, 옛날의 축융 가문도 이 정도는 아니었으니 그것도 아니고…….”
“강한 놈들만 살아남았다고 가정하면 앞으로는 놈들을 사로잡는 게 힘들다고 봐야겠군. 그렇다면 잠입해서 캐내는 것뿐인데, 근거지가 어딘지 전혀 모르고 있으니, 상당히 골치 아프게 되어 버렸어.”
콰르르…….
전각이 완벽하게 무너져 내리며 굉음을 일으켰다.
왕전이 성큼 돌아섰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다. 다시 흩어져서 찾아보도록 하지.”
“적들과 조우하면 혼자로선 벅차니 도움을 받을 수 있게끔 최소한의 거리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그럼 전 저쪽으로 갑니다!”
진천이 먼저 동쪽 숲으로 몸을 날렸다.
뒤이어 왕전과 흑야도 각기 다른 방향으로 몸을 날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콰르릉…….
그들이 모습을 감추자 곧 천둥이 울리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주변 숲, 전체를 모조리 태울 수도 있었던 화염은 짧은 시간에 자연의 힘에 굴복하며 소멸되었다.
* * *
어두운 밤임에도 죽립을 걸친 자들이 빠른 속도로 북쪽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스물 남짓 정도로 보이는 그들은 작은 교자를 들고 있었는데 그 위에 수척한 얼굴을 한 영호수란의 모습이 보였다.
혈도를 제압당한 듯 그녀는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채, 그저 흔들리는 교자에 몸을 맡기고만 있었다. 많이 울었는지 눈가가 제법 부어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지부가 나온다. 서둘러라!”
길에 익숙한 듯, 그들은 거침없이 질주를 거듭했다. 그러다가 뒤쪽에서 들려온 강력한 폭발음에 모두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뒤를 돌아봤다.
시뻘건 불길이 하늘로 치솟는 것을 본 대형으로 불리던 자가 눈빛을 번득였다.
“과연 엄청나군. 전보다 더욱 강력한 폭발이야. 저 정도면 제아무리 오왕이라도 최소한 중상을 면치 못할 것이다.”
“대형! 아이를 보내 놈들의 결과를 살펴봐야겠습니다.”
“좋아. 하나만 보내서 어떻게 되었는지 즉시 보고토록 하여라. 자! 우린 다시 출발한다!”
뒤쪽으로 죽립인 하나가 빠르게 되돌아갔다.
나머지 죽립인들은 이내 가던 길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폭발 현장으로 되돌아가던 죽립인이 산의 능선을 막 넘으려던 때였다.
어둠 속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유령처럼 나타나더니 순간 번쩍이는 빛이 죽립인을 향해 날아갔다.
퍽!
“우욱!”
느닷없는 기습에 어깨를 내준 죽립인이 휘청거리며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그 옆으로 누군가가 내려섰다. 두 눈에서 살광이 번들거리는 그는 바로 십전무제 영호도성이었다.
퍽!
발길이 날아와 죽립인의 얼굴을 그대로 강타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죽립인은 그대로 얼굴을 감싸 쥐고는 고통스러움에 몸을 비틀었다.
“어디로 갔느냐?”
“끄어…….”
“그 아이를 어디로 데려갔느냐?”
서걱!
섬뜩한 소리와 함께 죽립인의 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핏물을 머금은 검이 죽립을 벗겨 내고 눈동자 앞에서 멈추었다.
“말하지 않으면 이번엔 눈동자를 하나씩 쑤셔 주마. 어디로 갔느냐?”
“끄…….”
“자폭을 해도 소용없다. 네놈이 내공을 일으키는 순간 목을 자를 테니 말이야. 그러니 조금이라도 고통 없이 죽고 싶다면 어서 말하거라!”
죽립인은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발길질로 인해 박살이 나 버린 구강 때문에 말이 나오질 않았다. 자폭을 하려고 해도 이미 두 번의 공격으로 몸 안은 만신창이가 된 상태여서 기폭을 일으켜 내공의 점화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