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
<귀환무사 180화>
“확실하냐.”
“그때는 낮이어서 확신을 할 순 없지만 밤이라면 최소한 저 정도의 폭발은 가능할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의 낯빛이 변했다.
확신을 할 수 없어도 의심이 가면 무조건 가 봐야 한다. 어차피 쫓는 자들이 부상막의 살수들이 아닌가.
“저곳으로 간다!”
왕전이 가장 먼저 몸을 날렸다. 그 뒤를 북궁천소와 다른 이들이 쫓았다.
전력을 다해 달린 까닭에 일각이 채 못 되어 폭발이 일어난 지점에 다다를 수 있었다. 숲은 그야말로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주변 나무에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타 버린 육편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는데, 열기 때문에 지글지글 타들어 가고 있었다. 한참 떨어진 곳에 짓이겨진 시신들이 더 있었다.
진천이 그들을 살펴보고는 외쳤다.
“부상막의 놈들입니다.”
“자폭을 한 놈도 부상막의 놈이라면 이놈들은 왜 자폭을 하지 않았지?”
“그러게요.”
진천이 아리송한 표정을 짓자 조윤이 나섰다.
“자폭을 하기도 전에 당했거나 아니면 저놈들은 상대적으로 수준이 낮아 자폭을 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 그래서 먼저 죽었을 테고.”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왕전이 주변을 살펴보며 진천에게 말했다.
“일단 십전무제의 기운부터 살펴봐.”
“예.”
진천이 즉시 환술을 펼쳤다. 전과는 다르게 제법 긴 시간을 소모한 진천이 인상을 찡그렸다.
“느껴지지 않는 거냐?”
“예, 전혀요.”
흑야가 물었다.
“혹시 폭발의 기운에 사라질 수도 있느냐?”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분이 이곳에 계셨다고 해도 폭발의 범위에 들었다면 발생한 열로 인해 기운이 소멸되었다면 제가 느끼지 못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오! 예리하십니다?”
진천이 흑야를 보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너만 똑똑한 줄 알았냐.”
툭!
진천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은 흑야가 재빨리 폭발의 여파 밖으로 걸어가서는 숲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진천이 환술로 흔적을 찾는다면 그는 살수 특유의 직감으로 흔적을 찾는데, 그 확률이 진천에 못지않았다.
하지만 이내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숲을 빠져나왔다.
왕전이 시큰둥하게 진천을 쳐다보았다.
“인마! 놈들의 기운을 환술로 찾는 방법을 연구 좀 하지 그랬냐?”
“그게, 제게 익숙한 기운만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도 저보다 약하면 찾을 수도 없습니다.”
“그럼 십전무제는 어떻게 된 거냐? 함께 지낸 날도 없는데…….”
“하하! 지금 우리가 찾고 있는 사람하고 꽤 오랫동안 함께 지냈지 않습니까.”
영호수란을 말하는 것이었다.
왕전이 얼굴을 실룩거리며 투덜거렸다.
“수란은 너보다 약하니까 찾을 방도가 없다고 봐야 하냐?”
“쩝! 아쉽지만 그렇다고 봐야죠.”
조윤이 피식 웃으며 진천의 어깨를 어루만져 주었다.
“그래도 네가 없었더라면 이 정도까지도 쫓아오지 못했다.”
사실 진천의 환술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많았다.
사람의 기운만으로 행방을 추적하는 것도 그렇고 그 외에도 무공으로 분류하기 힘든 것들이 수없이 많았다. 환술로만 따진다면 단연 진천이 고금 최강이라 할 수 있었다.
조윤이 앞으로 나섰다.
“혹시 모르니 주변부터 샅샅이 뒤져 보자.”
“몰려서 다닐 것이 아니라 흩어져서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
“그럼 전 저쪽으로 갑니다!”
“나는 이쪽이다.”
모두는 다시 사방으로 흩어졌다.
제3장 정도맹의 구애
휘이잉!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백어산을 바라보고 선 혁련천후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고 음울했다.
뭔가 자꾸만 틀어진다는 기분이 자꾸만 들었다.
당장은 독고혜가 걱정이었다. 그만큼 큰 걱정은 바로 혁련강이 감감무소식이라는 점이었다.
다가올 묵련과의 전쟁을 생각하면 조부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어쩌면 그 하나만으로 전력의 삼 할을 차지한다고 볼 수도 있다.
정마대전 같은 전쟁에서는 절대고수의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이었다.
‘위기가 찾아온 건가…….’
머릿속이 좀처럼 정리되지 않았다.
찬바람이 불어와 가슴을 쓸고 지나갔건만 실타래처럼 엮인 혼란스러움은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혁련천후는 독고혜를 잠시 잊고 묵련을 떠올렸다.
‘어떤 식으로 모습을 드러낼까?’
지금처럼 수면 아래에서 은밀하게 움직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대대적인 공세를 펼칠지, 아니면 역사적으로 강호제패를 노렸던 집단들이 해 온 것처럼 정식으로 개파를 선언하고 공개적인 움직임을 보일지 예측을 할 수가 없었다.
당장은 후자 쪽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전대미문의 세력을 자랑하는 그들이니 보란 듯이 개파를 선언하고 강호에 도전장을 내밀 가능성이 농후하다.
힘에 자신이 있었던 모든 문파들이 항상 그래 왔으니까…….
‘차라리 그렇게 나와 준다면 우리에게 유리할 텐데…….’
만약 지금처럼 지하에 숨어서 은밀하게 강호를 조금씩 흔든다면 엄청난 장기전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드러나지 않은 자들이 천하 곳곳에서 혼란을 조성한다면 제아무리 정파의 저력이 대단하다고 해도 막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보가 있어야 한다. 반드시!’
언제나 부족했던 정보의 필요성이 새삼 다가온다. 현재로선 정도맹의 첩보 기관인 비영전의 정보에 구 할 이상을 기대고 있는 실정이니 스스로 작전을 수립하고 움직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전처럼 자신과 수하들만 있다면 그저 부딪히면 부수고 들려오면 찾아가면 그뿐이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신마성의 인원도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화산파와 마교가 있다.
영호수란의 영호세가와 모용단승의 모용세가는 이미 자신의 가슴속에 혈육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무당도 새롭게 자리를 잡고 있다. 유일한 벗이었던 명진의 동생, 도량의 무당이 아닌가. 그것들이 강호의 위기를 외면할 수 없는 이유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묵련의 주적이 바로 자신의 가문, 혁련세가라는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혁련천후는 혼란을 떨쳐 내기 위해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때 누군가 그의 뒤쪽에 내려섰다. 차갑기로는 흑야에 버금가는 모용단승이었다.
“정도맹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육승이라는 자입니다.”
돌아선 혁련천후는 모용단승의 전신을 빠르게 훑었다. 지난날과는 확연히 다른 비범한 기운이 전해졌다.
“제법 발전했군.”
“아직 멀었습니다.”
“요즘은 검로와 수련한다고 들었다. 할 만하느냐.”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그의 파괴력을 배워라. 다른 사람들은 네게 쾌검이 더 어울린다고 하지만 내가 본 너는 파괴력 위주의 검법이 더 잘 어울린다. 알겠느냐?”
모용단승이 잠깐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저를 강하게 만들어 주시겠다고 약조하셨습니다. 전 그날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검로든 누구든 가르치면 배우기는 하겠습니다만…….”
결국 자신더러 가르쳐 달라는 소리였다. 모용단승의 패기가 넘치는 태도에 혁련천후는 혼란함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언제 봐도 그는 과거의 자신과 흡사했다.
“물론 그 약속은 반드시 지킬 것이다.”
“모시겠습니다.”
모용단승이 돌아섰다.
좀처럼 웃지 않는 그의 얼굴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사실 그동안 섭섭했었다. 언제쯤 혁련천후가 직접 지도를 해 줄까 하면서 보낸 나날들이었다.
한데 이제 그 확답을 들었다. 기분이 좋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겠는가.
둘은 경공을 펼치지 않고서 느릿하게 걸어서 첨탑을 내려갔다.
모용단승의 조금 뒤에서 걸음을 옮기던 혁련천후가 뜬금없이 질문을 던졌다.
“곧 있으면 식구가 늘 듯한데 가문엔 알렸느냐?”
“예……?”
모용단승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혁련천후는 그런 모용단승의 옆을 지나가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산악이라면 모용세가를 일류의 반열에 들게 할 능력이 있다.”
“아…… 예.”
모용단승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언젠가 모용미에게 직접 관산악과의 관계를 개의치 않겠다는 말을 전한 적이 있었다. 한데 혁련천후를 통해 관산악이 언급되자 기분이 묘했다.
혁련천후는 모용단승의 그러한 반응을 달리 받아들였다. 해서 한마디 덧붙였다.
“좋은 놈이다. 그놈은…….”
* * *
육승은 귀빈실에서 혁련천후를 기다렸다.
귀빈실로 오는 동안에 신마성의 곳곳을 살펴본 그는 내심 놀람을 금치 못했다. 지금껏 자신이 알고 있었던 신마성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규모만을 따진다면 구대문파 중에서 최대를 자랑하는 소림사에 필적할 정도라 할 수 있었다.
‘진정 놀랍구나. 그토록 단시간에 이 정로까지 성장할 수 있다니…….’
놀라움의 한편에는 서늘함이 공존했다.
‘이들이 만약 정도맹의 적으로 돌아선다면…….’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쫙 돋아났다.
대정문이 정체불명의 세력과 손을 잡고 신마성을 공격했던 사건으로 인해 혹시라도 신마성이 정도맹과 등을 돌리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은 신마성과 함께하기를 원하는 인사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물론 육승도 그런 인물들 중의 하나였으며 제발 그런 일이 벌어지기 않기를 그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
스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에 육승은 생각을 접고 고개를 돌렸다. 간단한 요리와 술병을 든 홍무가 안으로 들어섰다.
“기다리는 동안에 술이라도 한잔 하시지요.”
홍무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술과 요리를 내려놓았다.
별생각 없이 홍무를 응시하던 육승의 눈빛이 살짝 이채를 발했다.
“감사하오, 귀하의 신분은…….”
“신마성의 숙수를 맡고 있습니다.”
“아, 그러셨소. 고맙게 잘 마시겠소.”
홍무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대답하고는 허리를 숙여 보이고 귀빈실을 나섰다.
홍무의 뒤를 쫓던 육승의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렸다. 어이없다는 뜻을 품은 헛웃음이 그의 얼굴에 떠올라 있었다.
육승이 비록 첩보 기관을 맡고 있다지만 그도 초절정에 근접한 대단한 고수다.
비록 홍무가 의도적으로 기운을 감추고 있다고는 하지만 결코 육승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