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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179화 (177/425)

# 179

<귀환무사 179화>

한데 그것마저도 혁련강이 뒤를 따라붙으면서 하루라도 편할 날이 없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에 혁련강의 손에 죽어간 수하들만 해도 스무 명이 넘는다.

“일존, 이놈…….”

혁련강은 상식을 벗어난 존재였다. 눈앞에 있어도 죽일 수가 없었다.

합공을 해도 소용이 없었고 독과 암기는 무용지물에 불과했다.

손유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배를 타고 간다!”

“알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손유는 빠르게 객잔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다로 이어지는 강가의 포구에 이르렀다.

“저곳입니다!”

손유는 수하들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포구가 아닌 강가에 작은 쾌속선이 흐르는 강물에 가볍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손유가 배를 이용할 것을 알고 미리 준비를 해 둔 모양이었다.

손유가 다가가자 몇이 배에서 뛰어내리더니 머리를 조아렸다.

그들을 응시하던 손유의 얼굴이 경련을 일으켰다. 자신과 저들 모두를 합해 봤자 간신히 열 명을 채울 수 있었다. 물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수하들이 더 있지만 그래도 과거에 비하면 조족지혈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참담함에 손유는 질끈 눈을 감았다.

“일단 저들과 먼저 출발하십시오. 나머지도 저희들이 그곳으로 데려가겠습니다.”

손유가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그에게 내밀었다.

“이걸 지니고 있어야 그곳에 들어갈 수 있다. 가져가거라.”

“알겠습니다. 허면 조심해서 가십시오, 성주님.”

객잔에서 이곳까지 손유를 안내했던 자들이 빠르게 멀어져갔다. 잠시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손유는 배에 몸을 실었다.

제법 강하게 부는 바람덕분에 배는 상당한 속도로 강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손유는 선실로 들어가지 않고 부는 바람에 몸을 맡겼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눈빛은 매우 흐렸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당초 중원 정벌을 기치로 보무도 당당하게 입성했었다. 초반 정도맹의 남해 지부를 점령하면서 승승장구까지 했었다. 그땐 대업이 눈앞에 잡힐 듯 가깝게만 느껴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중원 정벌은 고사하고 신마성에 의해 멸문지화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손유는 이 모든 것이 악몽처럼 느껴졌다. 그러다가 신마성과 혁련천후에 대한 증오심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내 영혼을 파는 한이 있더라도 네놈들만큼은 용서하지 못한다.’

수하 하나가 다가왔다.

“술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드시고 잠시라도 쉬시는 게 어떨는지요. 그동안에 너무 쉬지 못하셨습니다.”

손유는 입술을 질끈 깨물어 증오심을 억눌렀다. 수하들 앞에서 처지를 비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수하의 안내로 선실로 들어갔다.

그때였다.

좌측 강변의 우거진 숲에서 뭔가 움직였다. 사람인지 동물인지는 모르나 확실히 뭔가 움직였다.

애석하게도 손유를 포함한 용성의 모든 고수들은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 * *

영호도성은 산중에 털썩 주저앉아 부상을 돌보았다.

몇 번에 걸친 혈전으로 몸 곳곳에 자잘한 부상을 입고 있었다. 그는 장포를 찢어 부상 부위를 단단히 묶고는 다시 일어섰다.

영호수란을 찾기 전에는 한시도 쉴 수가 없었다.

사로잡은 살수를 통해 얻어 낸 정보로는 가까운 곳의 폐장원에 자신들의 동료들이 있다고 했다.

해서 지금 그곳을 찾아 이동하고 있었다.

그러던 터에 난데없이 여인의 뾰족한 비명이 들려왔다.

“악!”

허공을 질러가던 영호도성이 한순간 방향을 틀어 비명이 울린 곳으로 내달렸다. 우거진 숲 속에 죽립을 쓴 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 앞에 여러 명의 여인들이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지금껏 수도 없이 죽여 버린 자들과 동질의 기운을 지니고 있었다.

“당장 일어서지 못하겠느냐!”

끌려가지 않으려고 반항하는 여인을 향해 죽립인은 가차 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가슴을 얻어맞은 여인이 그대로 축 늘어졌다.

피를 뿌리며 날아가던 여인이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지며 축 늘어졌다. 그 모습에 다른 여인들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누구든 반항하면 저렇게 만들어 주겠다!”

“사, 살려 주세요!”

죽립인들의 눈동자가 진한 색욕으로 물들었다. 풀어헤쳐진 옷 섬 사이로 살짝 내비치는 탐스러운 가슴은 색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흐흐! 형님! 여기서 우리가 먼저 재미를 보고 데려갑시다.”

“그럴까?”

“며칠을 굶었습니다. 도저히 못 참겠습니다! 형님!”

“좋다!”

여인들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는 사색이 되었다. 황급히 두 손으로 가슴을 가리며 몸을 움츠리는 여인들. 그런 여인들을 향해 죽립인들이 천천히 다가섰다.

그때였다.

쐐액!

난데없이 뒤쪽에서 파공성이 울리자 죽립인들이 일제히 뒤돌아섰다. 언제 뽑았는지 검으로 날아든 기운을 후려쳤다.

깡!

“우악!”

형님이라고 불렸던 죽립인이 비명과 함께 뒤쪽으로 튕겨 날아갔다. 난데없는 상황에 죽립인들이 저마다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

그런 그들의 앞으로 영호도성이 나섰다.

영호도성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느릿하게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런 그에게서 질식할 것만 같은 살기가 뿜어졌다.

무공을 모르는 여인들이 이내 창백하게 질려갔지만 영호도성은 기운을 거두지 않았다. 그는 다짜고짜 죽립인들을 향해 싸늘히 물었다.

“그 아이는 어디 있느냐?”

“…….”

“네놈들이 데려간 신마성의 아이가 어디 있냐고 물었다.”

번쩍!

“컥!”

죽립인 하나가 목을 움켜쥐며 꼬꾸라졌다. 이내 머리가 몸에서 분리되어 떨어지자 여인들이 비명을 질러 댔다.

“아아악!”

“죽은 네놈의 동료들이 그러더군. 주변의 폐장원에 네놈들의 본진이 있다고…… 그곳이 어딘지 말하여라!”

영호도성의 기도에 압도되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 중 하나가 용기를 내어 외쳤다.

“누구냐! 네놈…… 컥!”

말을 다 잇지도 못하고 목이 뎅강 잘려 날아갔다.

“그 아이는 어디에 뒀느냐. 아니 폐장원은 어디 있느냐?”

그때였다. 좌측에 섰던 죽립인들이 벼락같이 암습을 가해왔다.

워낙에 가까웠던 데다 쾌검을 구사한 것이어서 검은 순식간에 영호도성의 목젖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영호도성은 암습 따위에 당할 존재가 아니었다.

퍽!

그의 좌수가 암습을 가한 자의 가슴을 뚫고 등 뒤에까지 튀어나왔다.

“끄어어어…….”

그 가공할 광경에 다른 자들이 사방으로 몸을 날렸다.

영호도성은 가장 빠르게 움직인 자를 쫓아 몸을 날렸다. 둔탁한 소음과 함께 머리가 박살이 나며 추락하는 복면인. 영호도성이 다른 자들을 찾아 돌아섰을 땐 이미 모두 숲 속에 몸을 은신한 뒤였다.

도주를 한 것이 아니었다.

곳곳에서 미세한 기척이 감지되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부상막 특유의 자객술을 펼치려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용기는 있었던 놈들이군.”

나지막이 중얼거린 영호도성은 촉각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렸다.

희미하게나마 감지되던 기척이 완전히 사라졌다. 지금껏 그가 죽였던 부상막의 다른 자들보다는 확실히 강한 자들임에 틀림이 없었다.

영호도성은 숲의 한가운데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상대가 먼저 나오기를 기다렸다. 이제부터는 누가 빠르냐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는 것이다.

고요했다.

짐승들의 울음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여인들이 때를 놓치지 않고 북쪽으로 도망치면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전부였다.

영호도성은 더 참지 못하고 검에 강기를 끌어 담았다.

생사를 모르는 영호수란 때문에 더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릴 순 없었다. 그가 검을 힘껏 휘두르자 반월 모양의 강기가 우측 숲으로 날아갔다.

파파파팟!

베어진 수풀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지만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영호도성이 이번에는 좌측의 숲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이번에도 비명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때 영호도성의 눈동자가 섬광을 발했다.

사방으로 흩날리는 파편들 사이로 선혈이 튀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영호도성은 섬전처럼 수풀 속으로 뛰어들었다.

바로 그때 사방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결국 영호도성이 먼저 뛰어든 셈이 되었다.

하지만 죽립인들의 검보다 영호도성의 검이 더 빨랐다.

퍽!

“크악!”

한명의 목을 쳐 냈다. 대가로 어깨에서 피가 튀었다.

풍차처럼 회전하며 두 번째 목을 쳐 냈다. 이번에도 허리를 내주는 대가를 치렀다. 세 번째는 검이 아니라 주먹으로 가슴을 부셔 버렸다.

“크윽!”

가슴이 함몰되며 꼬꾸라지는 죽립인. 마지막 남은 죽립인이 수풀 너머에서 두 눈을 부릅뜬 채 영호도성을 응시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장원의 위치를 대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다.”

영호도성은 성큼 죽립인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다가 문득 이상한 점을 느꼈다.

크게 놀란 것처럼 보이던 죽립인의 눈빛이 흐릿하게 변하더니 표정마저 결연하게 변해 갔다. 뭔가를 단단히 결심했을 때 나타나는 표정이었다.

“으아아!”

죽립인이 괴성을 지르며 영호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검은 쥐고 있지도 않았다. 그 순간 영호도성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자살 공격!’

그러나 피하기엔 너무 늦어 버린 상황이었다.

콰앙!

* * *

“뭐야, 저거!”

경공을 펼치던 왕전 등은 난데없이 밤하늘을 밝히며 피어오르는 섬광을 발견하고는 경공을 중단했다.

거리상으로 상당히 먼 곳이어서 어떤 종류의 폭발인지 가늠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이런 외딴 산중에서 저런 폭발이 일어나다니…….”

왕전이 중얼거리듯 말하자 진천이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화약은 아닙니다!”

“화약이 아니라니?”

“화약은 폭발할 때 저런 불꽃을 내지 않습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화약이 폭발했을 때와는 확실히 다릅니다.”

“화약말고 저런 폭발을 일으키는 물질이 또 있느냐?”

“글쎄요…….”

진천이 손으로 턱을 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뭔지 알았다는 듯 눈빛을 발하며 목청을 높였다.

“어쩌면 놈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에 말씀드렸던 부상막의 그 자폭하는 놈들 말입니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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