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175화 (173/425)

# 175

<귀환무사 175화>

“어떻게 찾아내지?”

“현재로써는 방법이 없다.”

조윤의 말에 북궁천소가 눈을 부라리며 성을 냈다.

“자식아! 그럼 이대로 돌아가잔 말이냐?”

“성으로 돌아가서 주공과 의논을 한 다음, 진천을 데리고 와야겠어. 놈의 환술에 기대를 걸어 볼 수밖에…….”

“창잡이의 말이 옳다.”

담대소천이 거들고 나오자 북궁천소도 더는 성을 내지 못했다. 조윤의 말대로 진천의 환술 말고는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본 모두는 신마성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날리려고 할 때였다.

숲 속에서 관산악이 불쑥 모습을 드러내었다.

“참 빨리도 온다.”

“노주하고 같이 있었던 거 아니냐?”

“나도 지금 찾고 있는 중이다. 홀로 싸우시다가 어디론가 사라지셨는데. 워낙에 빨라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관산악은 혁련강의 싸우는 모습을 연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조윤이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그분이야 걱정할 것도 없다. 혹시 모르니 주변을 조금 더 살펴보도록 하지.”

“난 저쪽을 맡지.”

“나는 우측.”

모두는 영호수란의 흔적을 찾아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고는 자심 후에 다시 한자리에 모였는데, 그곳은 그야말로 죽은 자들의 주검이 난무하는 참혹한 현장이었다.

“노주께서 이놈들과 맞닥뜨리신 모양이군.”

“모조리 천살강기에 당했군. 시신의 상태로 보면 꽤나 화가 나신 모양이다.”

조윤이 처참하게 찢겨진 시신들을 보며 낯빛을 굳혔다. 그러다가 용성의 장로 소태를 발견하고는 혀를 내둘렀다.

그는 분명 독고혜를 찾아 전장을 빠져나갈 때까지만 해도 살아 있었던 자였다.

결코 무시할 수 없었던 그가 가슴이 두 짝으로 갈라진 채 죽어 있었다.

“설마 도주하는 놈들을 쫓아가기라도 하신 건가?”

“어쩌면 그럴 수도…….”

“위험하지 않을까. 아무리 그래도 천하를 넘봤던 놈들인데…….”

“무모하신 분은 아니니 걱정할 것 없다.”

모두는 다시 움직였다.

몇 명은 혹시 몰라 혁련강이 이동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남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들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죽립을 깊게 내려쓴 자가 홀연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턱까지 가려 버린 죽립을 쓴 인물은 느릿하게 참혹한 현장을 살폈다.

“어리석은 놈들! 고작 자식의 죽음 때문에 이런 말도 안 되는 경우를 당하다니…….”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였다.

천천히 주변을 살피던 인물의 시선이 한 곳에서 멈췄다. 팔이 잘리고 배가 갈라져 죽은 시신이 있었는데, 바로 손유의 동생인 손무의 시신이었다.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듯 손무의 두 눈은 부릅떠져 있었는데, 흰자위만 남은 눈동자는 보는 이로 하여금 섬뜩함을 느끼게 했다.

인물의 눈동자에 조소가 어린다.

“멍청한 놈들. 고작 신마성 따위에게 발목을 내주다니.”

발을 들어 손무의 눈을 감겨 준 죽립인은 다시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죽립을 쓴 자들의 시신을 발견하고는 유령처럼 그곳으로 미끄러졌다.

관절조차 구부리지 않는 놀라운 신법이었다. 죽립인들을 바라보던 인물의 눈동자에 진한 살기가 드리운다.

“복수는 반드시 해 줄 것이다.”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은 인물은 천천히 죽은 자들의 시신에 손을 갖다 대며 일종의 의식 같은 행동을 보였다. 하나하나의 주검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 같은 것을 읊조리던 인물이 마지막 죽립인의 시신에서 손을 떼고 일어섰다.

죽립인의 시선이 북쪽의 백어산을 향했다. 그 너머에 신마성이 있다.

잠시 그 자리에서 백어산을 응시하던 죽립인이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고 돌아서려고 할 때였다.

뒤쪽에서 미세한 기척이 전해지자 죽립인은 마치 땅속으로 꺼지듯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잠시 후, 적포인이 섰던 자리에 백의를 걸친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호수처럼 잔잔한 눈동자에 허리에 백색의 보검을 찬 그는 놀랍게도 영호수란의 조부인 십전무제 영호도성이었다.

그는 주변을 돌아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허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토록 많은 자들이 죽었단 말인가.”

영호도성은 미간을 찌푸린 채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어느 지점에 이르러 안광을 번뜩였다.

“저자는…….”

스슥!

한 발을 뗀다 싶더니 어느새 영호도성은 손무의 시신 앞에 나타나 있었다.

지난날 광동에서 용성과 교전을 벌일 때 보았던 손무를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용성이 이곳을 들어왔단 말인가? 그렇다면 누가 이들을 이렇게…….”

영호도성은 말끝을 흐리며 북쪽을 응시했다. 신마성이 있는 방향이었다. 어쩌면 신마성이 용성과 충돌을 했을 수도 있다.

가슴 한쪽에서 스멀거리며 피어나는 기분은 불안감이었다. 신마성에는 금쪽같은 손녀, 영호수란이 있지 않은가.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찾아왔건만…….’

간밤에 그는 악몽을 꾸었다.

영호수란이 피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향해 울부짖는 꿈이었다. 그래서 날이 밝기가 무섭게 신마성으로 달려오는 길이었다.

‘꿈은 반대라고 했다.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어지간한 일에는 미동조차 보이지 않는 철혈의 심장을 지닌 십전무제 영호도성도 손녀의 안위가 걱정되자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재빨리 신마성이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가 사라지자 다시 적포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엄청난 고수다. 본좌의 이목을 이토록 가까운 거리까지 감출 수 있는 자라면 결코 이름이 없는 자는 아닐 터! 하면 대체 누구란 말인가.’

영호도성이 사라져 간 곳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에 이르러 자취를 감추었다.

휘이잉!

바람이 불어와 피 냄새를 퍼트리자 숲 곳곳에서 짐승들이 몰려 나왔다.

뒤이어 하늘을 까맣게 뒤덮으며 까마귀 떼가 몰려들었다. 죽은 자들의 시신으로 만찬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 *

활력이 넘쳤던 신마성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혁련강과 영호수란을 찾아 나섰던 모두는 결국 그들을 찾지 못하고 성으로 돌아와 있었다. 혁련천후와 사공진무는 보이지 않았다.

독고혜의 치료 때문에 그녀의 거처에 가고 없었다.

매화무적 진유가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청명과 청진의 상태가 위중하다는 것을 들어서였다.

조윤이 그를 달래 주었다.

“진무가 있지 않느냐. 하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진유가 이를 악다물며 고개를 숙인다.

조윤이 그런 진유의 어깨를 어루만져 주었다. 한쪽 옆에서는 전신을 천으로 둘둘 감은 왕전과 북궁천소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평소의 그들과는 달리 지금껏 둘은 말 한마디 않고서 술만 마셨다.

둘은 모든 사태가 자신들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 자책하고 있었다.

쾅!

“빌어먹을!”

왕전이 탁자를 주먹으로 내려치며 울분을 토해 낸다. 모두가 둘의 속내를 이해하고는 그저 바라보고만 있다.

벌컥벌컥!

독한 화주가 벌써 열 병째다.

그러나 둘은 취기를 몰랐다. 보도 못한 담대소천이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둘에게 말을 건넸다.

“그만들 해라. 진무를 믿고 주공을 믿어라.”

왕전이 들은 척도 않고 병째 입으로 가져간다. 한쪽에 팔짱을 하고서 벽에 기대어 섰던 흑야가 둘을 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꼴사납게 굴지 마라. 술만 마신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닥쳐!”

“곧 진천이 온다. 당장 노주와 수란을 찾을 생각을 해야지. 술 마시며 분풀이를 한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흑야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조윤이 거들고 나섰다.

“곧장 움직여야 할지도 모르니 술은 적당히 마셔라.”

“빌어먹을 새끼들! 맨 정신으론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이런다. 그런 네놈들은 속이 편해서 참 좋겠다!”

왕전의 그와 같은 말에 조윤이 왕전의 멱살을 쥐며 화를 터트렸다.

“닥쳐! 누군 마음이 편해 이러고 있는 것으로 보이냐! 나도 화를 참느라 죽을 맛이란 말이다!”

그때 문이 열리고 진천이 들어섰다.

덜컹!

“뭡니까? 지금 싸우는 겁니까?”

관산악이 다급한 빛으로 물었다.

“어떻게 되었냐?”

진천이 얼굴이 꽤나 굳어져 있었다.

모두가 불안한 기색으로 진천만을 바라보았다. 한숨을 길게 내쉰 진천이 자리에 앉으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장의 위기는 넘겼습니다만, 시간이 조금 더 지나 봐야 확실하게 알 듯하답니다. 전날의 수란과는 비교조차 안 되는 강력한 아수라마기에 당하셔서…….”

“진무 놈이 그렇게 말했단 말이냐?”

“……예.”

모두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진다. 사공진무가 그렇게 말을 했다면 상황은 생각보다 더 위중하다고 봐야 한다.

“긍정적으로 생각들 하세요. 금 장주가 자신이 지닌 모든 영약들을 내놓았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주공은 뭐라고 하시더냐.”

“말씀을 듣지 못했습니다. 치료를 하는 내내 아무 말씀이 없으셔서…….”

“젠장!”

쾅!

왕전이 탁자를 거칠게 내려치고는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었다. 진천이 왕전과 북궁천소를 보며 달랬다.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형님들이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이 날 뻔했습니다. 주공께서도 그 점을 아시기에 두 분께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는 겁니다.”

잠시 좌중에 침묵이 흘렀다.

조윤이 침묵을 깨며 진천에게 물었다.

“수란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이 가능하겠느냐.”

“일단 가 봐야겠습니다. 가서 보고 방법이 없으면 어떻게든 찾아봐야지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가진 재주를 다 동원해 보겠습니다.”

그때 묵묵히 듣고 앉았던 담대소천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난 잠시 다녀올 곳이 있다.”

모두가 그를 주목했다. 벗어 두었던 갑주와 흉갑을 걸친 담대소천이 진유를 보며 말했다.

“튼튼한 말 한 필만 준비해 두거라.”

“어딜 가는 거냐?”

“황궁.”

모두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황궁엔 동창보다 더 은밀하게 움직이는 집단이 있지. 그들의 정보력은 개방이나 하오문은 우습게 여길 정도다. 천하의 모든 대소사가 그들에게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조윤이 물었다.

“사람을 찾는 일에 그들을 동원하려는 것을 황제가 허락을 하겠느냐?”

“그걸 물으려고 가는 게 아니다.”

“……뭐?”

“앞으로 싸워야 할 놈들에 대한 정보를 미리 좀 파악해 봐야겠다. 다시는 황궁과 연을 잇지 않으려 했는데…….”

담대소천이 밖으로 나갔다. 모두는 담대소천의 뒷모습을 보며 아무 말도 건네지 못했다.

지금 담대소천의 심정은 어쩌면 혁련천후만큼이나 무겁고 침통할지도 모른다.

“큰 결심을 했군.”

“그렇지. 어쩌면 황궁의 도움을 받는 대가로 금군에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소천은 건문제가 대장군의 지위를 직접 하사했을 정도로 대명 최고의 명장으로 불렸다. 당시 연왕이었던 지금의 황제도 그때부터 소천에게 상당한 구애를 보냈었지. 자신의 딸을 준다고 했을 정도로 말이야. 그러니 그냥 도움을 줄 영락제가 아니다. 소천도 그걸 알고 가는 것이다.”

좌중이 다시 한 번 무겁게 가라앉는다.

모두는 머릿속으로 담대소천이 없는 오왕을 그려 보았다. 결과는 하나같이 고개를 젓는 것이었다.

그가 없는 오왕은 한쪽 날개를 잃은 독수리나 다름없으리라.

왕전이 벌떡 일어서더니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그러고는 큰 소리로 담대소천을 향해 외쳤다.

“언제 돌아올 거냐!”

담대소천이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하자 왕전은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

“돌아오지 않으면 내 손으로 황궁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릴 테니 알아서 해라! 망할 놈아!”

담대소천은 한 번 더 웃어 주고는 말에 올랐다.

모두가 어느새 왕전의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들은 말을 몰아 신마성을 빠져나가는 담대소천의 뒷모습을 보며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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