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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173화 (171/425)

# 173

<귀환무사 173화>

죽립인은 감탄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결심을 굳혔다. 그가 수하들을 향해 다시 명령을 내렸다.

“뭣들 하느냐! 어서 저자를 죽여라!”

휘이익!

북궁천소는 다시 달려들기 시작하는 적들을 향해 아낌없이 굉혈도를 휘둘렀다. 굉혈도가 빗나가면 어깨로 가슴을 부수었고 그것마저도 실패하면 머리로 받아서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

퍽!

“크악!”

적들은 동료들의 주검을 밟으며 끊임없이 달려들었다.

북궁천소의 입에서 점점 더 가쁜 숨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눈빛도 눈에 띄게 탁해져 있었다. 그도 인간이었기에 지쳐 가고 있었던 것이다.

콰지직!

“크악!”

굉혈도가 지나간 자리에는 어김없이 피가 쏟아졌다.

북궁천소역시 곳곳에서 피를 흘렸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광포한 몸짓을 보이며 적들을 죽여 나갔다.

그 모습이 마치 이리 떼에 둘러싸인 한 마리 대호와도 같았다.

팟!

북궁천소의 허리에서 피가 튀었다. 간발의 차이로 치명적인 부상은 피했지만 전투력에 손실을 줄 정도로 피가 콸콸 흘렀다.

“후후후, 천하의 도왕도 이젠 어쩔 수가 없게 되었구나.”

죽립인의 두 눈이 흡족함으로 물들었다.

누가 봐도 북궁천소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 보였다.

그때였다.

“크악!”

적들의 맨 뒤쪽에서 거센 기운이 일었다. 뒤이어 숲을 헤치며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선두에 북궁천소만큼이나 거칠게 생긴 장용백이 보였다.

“도왕! 이 장용백이 왔소!”

그 뒤에 다른 마교의 고수들이 뛰어들었다. 천마사로도 보였다.

“이런……!”

다 잡은 고기를 앞에 두고 잠시 여유를 보였던 죽립인의 눈동자가 당혹감으로 흔들렸다. 그는 독로의 손짓 한 번에 다섯 명이나 되는 수하들이 목을 움켜쥐고 쓰러지는 광경에 두 눈을 찢어져라 치켜떴다.

“자폭을 감행하는 놈들이니 조심하라고.”

북궁천소가 마교의 고수들에게 경고성을 보냈다.

위기를 벗어났다는 생각에 그는 툴툴거리며 웃었다. 하지만 이내 독고혜를 떠올리고는 낯빛이 일그러졌다.

그는 장용백을 향해 외쳤다.

“주모께서 위험하니 난 그곳으로 가야겠소. 당신들이 여기를 좀 맡아 주시오.”

“그곳엔 노주께서 가셨으니 함께 이놈들이나 쓸어버리고 성주를 도우러 갑시다!”

“……노주께서.”

북궁천소는 한순간 긴장감이 탁 풀어졌다.

혁련강이 갔다면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다. 긴장이 풀어지자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코 주저앉을 수는 없었기에 호흡을 가다듬으며 눈빛을 고쳤다.

“주공은 어디 계시오!”

“저쪽으로 가 보시오!”

“고맙소.”

북궁천소는 청진과 청명을 수풀 아래로 밀어 넣고는 곧장 장용백이 가리킨 곳으로 몸을 날렸다.

“쫓아라!”

죽립인이 명령을 내렸지만 그 앞을 장용백과 마교의 고수들이 막아섰다. 장용백의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가장 뒤쪽에 선 죽립인에게로 돌아갔다.

“너희들은 건드려선 안 될 사람을 건드렸다. 이 장용백조차도 두려운 존재를 건드리고도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고 여겼다면 오산이지. 후후후.”

“마교의 잔당 주제에 말이 많구나!”

“그 말로 네놈의 죽음은 정해졌다!”

쾅!

대노한 장용백이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이미 전장은 일방적으로 마교의 고수들에게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천마사로의 폭풍 같은 공세는 북궁천소와의 오랜 싸움으로 체력이 고갈된 자들이 감당할 것이 못 되었다.

짧은 시간에 상대적으로 무공이 약했던 복면인들은 제대로 저항조차 못해 보고 모조리 죽었다. 그저 열 명 남짓한 죽립인들만이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있을 뿐이었다.

자폭이 가능한 자들이었다.

“신마성과 손을 잡다니. 네놈들은 마인으로서의 자존심도 없느냐!”

죽립인이 부들부들 떨며 장용백을 향해 부르짖었다. 장용백의 뒤에서 초로의 노인이 소리 없이 앞으로 나서며 싸늘하게 읊조렸다.

“외세와 결탁해 강호를 넘본 네놈보다야 낫지.”

뇌어양이었다.

가급적 싸움에 뛰어들지 않던 그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벌어진 죽립 사이로 드러난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패주라고해도 마교의 대종사는 언제나 두려운 존재다.

철컥!

뇌어양의 손에 대종사를 상징하는 검이 쥐어졌다. 그가 그 검을 들어 죽립인들을 향해 겨누었다.

“자존심을 잃어버린 마도인의 무서움이 어떤지 친히 보여 주리라.”

* * *

부상막의 이인자인 요랑(謠郞)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말도 안 되는 광경에 잠시 넋을 놓았다.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왕전을 다 잡았다고 여기는 순간 난데없이 나타난 한 노인에 의해 수하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자폭을 할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모조리 황천길로 떠나 버린 것이었다.

‘대체 저자는 또 누구란 말인가?’

요란의 흔들리는 눈동자는 왕전과 자신의 한가운데에 오연하게 서 있는 노인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혁련강이었다.

그는 요란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곧장 거목 아래에 쓰러져 있는 독고혜를 살폈다.

‘엄청난 고수다.’

요란은 등을 보인 혁련강에게 달려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저 작은 육신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움직이면 죽는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잠시 잠을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나아져 있을 게야.”

독고혜의 창백한 얼굴을 가볍게 쓰다듬는 혁련강의 입가에 인자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잠시 그녀를 응시하던 그가 몸을 일으켜 왕전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젠 내게 맡기고 물러나도록 하거라.”

“주모님은 괜찮으십니까?”

“서둘러 이 아이를 진무에게 데리고 가거라. 여기 걱정은 말고.”

“……!”

더 물으려던 왕전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했다. 혁련광의 눈동자에 서서히 떠오르는 가공할 살기. 왕전은 살아오면서 이토록 지독한 살기는 처음이었다.

새파란 광망이 눈동자의 중심에서 폭발을 일으킨다.

왕전이 재빨리 독고혜를 안아 들었다.

“그럼 전 성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왕전이 바람처럼 장내를 벗어나자 혁련강은 천천히 죽립인들을 향해 돌아섰다. 그와 시선이 마주친 자들이 일제히 흠칫하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허허! 네놈들 덕분에 모처럼 화를 내보게 되었구나.”

어린아이 어르듯 한 어조에는 전율을 불러오는 살기가 묻어났다. 살기를 전문적으로 운용하는 부상막의 인물들이서 체감 살기는 실로 엄청났다.

“그대도…… 신마성에서 왔느냐.”

죽립인의 목소리는 아주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혁련강은 대답 없이 느릿한 걸음으로 그들을 향했다. 그가 지나가는 주변 공간이 아지랑이처럼 울렁거렸는데, 마침 날아가던 곤충 하나가 그대로 ‘팍’ 하는 소리를 내며 가루로 화해 흩날렸다.

죽립인들의 눈빛이 다시 한 번 떨리는 순간이었다.

“이 늙은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뭔지 아느냐?”

“……!”

“가족이지. 물론 너무 늦게 깨달았다만…… 네놈들이 다시금 일깨워 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고통 없이 죽여 주마.”

치르륵!

혁련강의 손끝에 천살강기가 떠올랐다.

* * *

서걱!

잘려 떨어진 머리가 바닥을 구르며 피를 뿌려 낸다.

조금 전까지 살아 있던 동료들의 주검에 이르러 움직임을 멈춘 머리는 죽음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잘린 부위에서 기름이 끓고 있었다. 천살강기의 흔적이었다.

콰아아아!

“크아악!”

전장의 한복판에서 강기 폭풍이 일어나자 피와 살이 튀었다. 그 한가운데에 혁련천후가 서 있었다.

그의 검이 지나간 자리에는 어김없이 피와 죽음이 난무했다.

살육의 장은 끝이 없었다.

조윤과 흑야 등은 죽여도 죽여도 끊임없이 덤벼드는 용성과 부상막의 고수들을 상대하며 대체 무엇이 이들에게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게 만들었는지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혁련천후만은 수없이 많은 죽음을 양산하면서도 거침이 없었다.

그의 분노는 대단했다.

겁을 집어먹고 뒤쪽으로 물러나는 자들까지 쫓아가 머리를 베고 사지를 잘랐다. 어떤 이는 살려 달라며 빌다가 무참히 목이 날아갔다.

“으…….”

용성의 고수 하나가 그 무자비함에 넋을 놓고 신음을 흘리다가 스스로 심장을 찔러 자결하기도 했다.

“후욱!”

살광으로 인해 붉게 충혈이 된 혁련천후의 두 눈이 천천히 전장을 쓸고 지나갔다.

적들의 피를 뒤집어쓴 그의 전신에서 뜨거운 김이 무럭무럭 흘러나왔다.

“이놈!”

용성주 손유의 검이 불을 뿜었다.

드디어 아들의 복수를 할 수 있게 생겼다며 기뻐했던 그의 분노는 혁련천후만큼이나 크고 거대했다.

복수는커녕 대업을 위해 동고동락했던 수하들마저 무참히 잃어버렸으니 그 분노는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꽝!

검과 검이 부딪히며 파생된 여파가 주변에 몰려 있던 용성의 고수들을 쓸었다. 상대적으로 무공이 약했던 자들이 갈기갈기 찢겨 날아가며 다시 한 번 참혹한 광경을 만들어 내었다.

“네 이노옴!”

손유가 다시 달려들었다.

핏빛으로 변해 버린 눈동자는 극강의 아수라마기를 담고 있었다. 혁련천후는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꽈과광!

둘의 격돌은 그야말로 경천지동(驚天地動)이라는 말로도 형용이 모자랄 정도의 대격돌이었다. 죽은 자들의 주검이 강기에 휩쓸려 갈기갈기 찢겨 날아가는 광경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었다.

둘의 간격이 이 장 정도로 벌어졌을 때, 무수히 많은 암기가 혁련천후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하지만 단 한 발도 그의 옷깃조차 건들지 못하고 튕겨 날아갔다.

따다다다당!

“형님! 뒤쪽으로 물러서십시오!”

손무가 나서서 손유를 뒤쪽으로 물러나게 만들면서 둘의 격돌은 잠시 중단되었다.

손유는 재빨리 전장을 살펴보았다. 순간 그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대체 이게…….”

신마성의 고수들은 상상을 넘어서는 파괴력으로 수하들을 무참히 도륙하고 있었다. 지난날, 광동에서 보았던 때와는 차원이 다른 강력함이었다.

손유의 눈빛이 격하게 흔들렸다.

오왕에 의해 어지간한 구파의 장로들보다 강한 주축 고수들이 속절없이 죽어 갔다. 문제는 고수들이 죽으면서 죽음의 행진이 점점 더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성주! 후퇴했다가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좋겠소이다!”

용성의 장로 하나가 담대소천의 공격을 피해 뒤로 물러서며 소리쳤다.

그러나 그 말이 귀에 들어올 손유가 아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이 지금 눈앞에서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어림없는 소리! 목숨을 던져서라도 저놈들을 모조리 죽여야 한다!”

“성주!”

“항명을 하는 자는 내 손으로 목을 칠 것이다!”

“성주! 우리 모두는 수많은 날을 중원 정복, 그 하나만을 생각하며 살아왔지 않소! 소성주의 죽음은 비통하나 모두의 염원을 생각한다면 여기서 물러나야만 하오! 신마성에서 지원 병력이 들이닥치면 그땐 모든 것이 끝장날 수도 있다는 것을 어찌 모르시오!”

다른 장로 하나가 거들고 나섰다.

“신마성과 여기는 매우 가깝습니다. 더 많은 병력이 들이치기 전에 속히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장로들이 퇴각을 요구하고 나오자 손유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결코 혁련천후를 두고는 돌아갈 마음이 없었다. 대업에 대한 열망 따윈 잊었다. 오직 혁련천후를 죽여 아들의 복수를 해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그때였다.

“너희들은 오늘 이곳에서 절대 살아서 돌아가지 못한다.”

혁련천후가 차갑게 소리쳤다. 그는 이들을 살려서 돌려보낼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육신을 두른 천살강기가 더더욱 광포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 광경에 용성의 장로들이 기가 질린 표정으로 손유를 돌아보았다.

손유가 받아쳤다.

“나 역시 네놈을 살려 두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오냐! 오늘 이 자리에서 끝장을 보자꾸나! 이노옴!”

“성주! 후일을 도모해야 하오!”

소태가 다시 간곡하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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