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
<귀환무사 172화>
영호수란의 다급한 목소리에 청명과 청진이 동시에 구슬을 향해 손을 뻗었다.
“흡공(吸攻)!”
적의 공격을 빨아들여 반탄력을 이용, 되로 받아치는 진천의 환술을 펼치자 열 개의 철구가 날아오던 허공에서 멈춰 서더니 이내 복면인들을 향해 날아갔다.
복면인들이 혼비백산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콰콰콰콰쾅!!!
“크아악!”
미처 피하지 못한 자들이 갈기갈기 찢겨 날아갔다.
“좋았어!”
둘이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이내 무겁게 굳어졌다. 서서히 내공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었다. 사실 지금껏 버텨 준 것도 용하다고 할 수 있었다.
북궁천소가 뒤돌아보지도 않고서 굉혈도를 허리 뒤쪽으로 휘둘렀다.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 있었던 까닭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추격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는 있었다.
그때 청진이 신음을 터트렸다.
“윽!”
“청진!”
기어코 적의 검에 허리를 베이고 만 것이었다. 옆구리에서 피가 흘렀다. 그러나 속도는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청명이 그런 청진을 향해 외쳤다.
“가운데로 들어와! 어서!”
“괜찮다!”
청진이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뒤쪽을 향해 던졌다. 작은 철구슬처럼 생긴 그것은 사공진무가 개발 중인 특수한 암기다. 며칠 전에 조르고 졸라 몇 개를 얻은 것인데 위급한 상황에서 그것을 떠올리고는 사용했다.
펑펑펑!
폭약이 아닌 쇠가죽 터지는 소리가 연속적으로 울렸다. 뒤쪽 공간이 순식간에 시커먼 연기로 가득했다. 연기를 바람을 타고 복면인들을 향해 밀려 나갔다.
“호흡을 멈춰라! 독연이다!”
적들 중 누군가가 다급하게 외쳤다.
사실 청진도 구슬이 어떤 위력을 지녔는지 모른다. 다만 덕분에 거리가 벌어지자 크게 만족했다.
“됐어! 제법 떨어졌어!”
복면인들과의 격차가 제법 벌어졌다. 청진이 구슬 몇 개를 청명에게 던져 주며 외쳤다.
“놈들의 전방에 던져! 독연이니 조심해!”
“자식이 진즉에 쓸 일이지! 알았어!”
“조심하십시오!”
청진은 맨 뒤에서 쫓아오는 북궁천소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북궁천소가 우측으로 방향을 슬쩍 틀었다. 그러자 청명이 구슬을 던졌다. 그러나 달려오는 속도를 잘못 계산하는 바람에 그만 복면인들의 머리 뒤쪽에 떨어졌다.
펑! 펑!
“더 없냐?”
“없어! 그게 전부라고. 바보 같은 자식아!”
“앗!”
뾰족한 비명이 영호수란의 입에서 터졌다. 놀란 둘이 황급히 돌아보니 영호수란이 괜찮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괜찮아! 스쳤어!”
뒤쪽을 막으며 쫓아오던 북궁천소가 고함을 지르고는 쏘아진 화살처럼 좌측 숲으로 뛰어들었다.
콰지직!
“크아악!”
숲 속에서 비명이 연이어 터졌다. 잠시 후 북궁천소가 다시 모두의 뒤쪽으로 돌아왔다.
“하악!”
영호수란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쉬지 않고 달리면서 적과 싸우는 바람에 체력의 소모가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었다. 청진과 청명은 그녀보다 더 상태가 심했다.
앞만 보고 달리던 왕전의 얼굴에 한 줄기 희색이 떠올랐다. 길이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좌우에 암벽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저 정도 폭이라면 최소한 뒤쪽만 신경 쓰면 될 듯 보였다.
북궁천소도 뒤늦게 그 점을 파악하고는 경공을 중단하고 그 자리에 내려섰다. 죽립인들과 복면인들이 그 앞에 내려섰다.
하지만 일부는 암벽을 타고 북궁천소를 넘어갔다. 천하의 북궁천소도 그것까지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찌이익!
북궁천소는 거추장스러운 웃옷을 찢어 버렸다.
“어디 넘을 수 있으면 한번 넘어 봐라! 퉤!”
* * *
서른에 달하는 복면인들을 모조리 쓰러뜨리자 또 다른 자들이 혁련천후와 일행들을 막아서며 나타났다.
백발을 늘어뜨린 청수한 풍모의 노인, 두 눈이 불꽃으로 일렁거리는 그는 바로 아들의 복수를 위해 묵련과의 약조마저도 깨트린 용성의 주인 손유였다.
혁련천후를 응시하는 그의 눈빛은 이미 살기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의 입장에서 혁련천후는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원수였다.
“네 이놈, 신마성주…….”
“나를 아는 놈인가?”
“일전에 광동에서 봤었지. 그때 네놈을 죽여 버렸어야 했는데…….”
혁련천후는 비로소 그가 용성의 주인, 손유라는 것을 깨달았다.
“네놈의 그 건방진 낯짝도 오늘로서 마지막으로 햇빛을 보는 날이 될 것이다. 그리고 네놈의 계집도 마찬가지겠지. 어쩌면 이미 목이 잘렸거나 수하들의 욕구를 풀어 주는 노리개가 되었겠지. 후후후.”
혁련천후의 주변 공간이 광포한 기운으로 일렁이기 시작했다.
감히 독고혜를 두고 저런 말을 하다니.
그때 조윤의 전음이 들려왔다.
[주공! 성으로 끌어들여 싸우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용성의 주전들이 모조리 몰려왔습니다.]
[그녀에게 가야 한다.]
[왕전과 천소를 믿으십시오. 목숨을 걸고서라도 성으로 모셔 올 것입니다.]
[누가 돌아가서 확인을 하고 와라. 만약 그녀가 돌아왔다면 병력을 끌고 오너라.]
쾅!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관산악이 신마성으로 몸을 날렸다. 상황을 짐작한 손유의 입가에 조롱에 가까운 비웃음이 걸린다.
“패거리를 모조리 끌고 온다고 해서 결과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마교의 패잔병들이 온다고 해도 마찬가지겠지. 지금의 우린 네놈들의 손에 무참히 무너진 사련 따위와는 질적으로 다르니까.”
혁련천후는 빠르게 상황을 읽어 갔다.
이들과 싸우는 것보다 당장에 독고혜를 구하러 가야 한다. 하지만 길이 차단되었으니 어쩔 수 없이 저들을 돌파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물었다.
“묵련의 주구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의도적으로 손유의 비위를 긁었다.
“네 이놈! 지금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네놈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겠지. 해서 주구노릇을 하며 떨어지는 떡고물이나 받아먹으려고 발광을 하는 것이 아니냐.”
손유의 뒤에서 누군가 외쳤다.
“성주! 격장지계입니다! 어서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손유의 눈동자가 서서히 붉어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동공마저도 핏빛으로 물들어 버렸다.
“좋아! 어차피 죽을 놈이니 모든 것을 말해 주지.”
“성주! 그게 무슨…… 크악!”
“비켜라!”
퍽!
손유를 막아서던 자가 손유에 의해 목이 날아갔다. 손유의 붉어진 두 눈은 오직 혁련천후만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오늘 이곳에서 나와 용성을 넘어선다면 그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알려 주마. 그는 혈마와 광승의 진경을 이은 자다. 시간이 지나면 세상에 그를 이겨 낼 자, 아무도 없게 될 것이다.”
절대 밝혀져선 안 될 기밀이 손유의 입을 통해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사실 그가 죽인 자는 천왕이 용성에 파견을 해 둔 자였다. 손유가 그를 죽였다는 것은 이곳에서 모든 걸 끝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혁련천후는 천하 기밀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저들을 뚫고 독고혜를 구하러 가야 한다. 혹시 왕전과 북궁천소가 이미 신마성으로 그녀를 무사히 데려갔다면 그때 다시 돌아와 처부수면 된다.
손유의 전신에서 붉은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더불어 살을 에일 듯한 한기가 사방을 몰아쳤다.
“천하는 포기했다. 대신 네놈만큼은 갈기갈기 찢어 네놈의 손에 죽어 간 아들의 영정에 바치고야 말 것이다!”
죽은 자식에 대한 분노로 몸을 떠는 손유, 그러나 혁련천후의 분노는 그의 그것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가 느릿하게 용성의 고수들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누구나 소중한 사람은 있는 법이지. 네겐 네 자식이 그것이라면 내겐…….”
치르륵!
검의 전신을 두른 천살강기가 광포한 기세를 뿜어내며 혀를 날름거린다.
“그녀가 전부다!”
쾅!
* * *
쐐애액!
섬뜩한 기운이 왕전의 등줄기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독고혜 때문에 움직임에 제약이 따랐던 왕전은 방향을 틀어 날아든 기운을 후려쳤다.
그 바람에 속도가 확 줄어 버렸다. 때를 놓칠세라, 수많은 검기 다발이 사방을 점유하며 날아든다.
까가가강!
팟!
왕전의 어깨에서 피가 솟구쳤다.
검기 다발로부터 독고혜를 보호하기 위해 호신강기를 펼치고 대도를 전력으로 휘둘렀지만 속도면에서 현저하게 느려졌던 까닭에 그만 어깨를 내주고 만 것이었다.
공격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쐐애액!
‘빌어먹을!’
더욱 강력한 검강이 날아들자 왕전은 혼신의 힘으로 거대한 고목 밑으로 몸을 날렸다. 간발의 차이로 그가 지나간 곳에서 흙먼지가 일어났다.
콰지직!
더 이상의 도주는 힘들다고 판단을 내린 왕전은 고목을 등지고 섰다. 그런 그의 앞으로 복면이 아닌 시커먼 죽립을 내려쓴 자들이 나타났다.
“과연 중원의 오왕답군. 지금껏 버텨 내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군. 후후후.”
거목 밑에다 조심스럽게 독고혜를 내려놓은 왕전이 대도를 고쳐 잡고는 돌아섰다. 붉게 충혈이 된 두 눈이 혈광을 번뜩였다.
“네놈이 우두머리냐.”
“이곳에서만큼은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
따로 주인이 있다는 말이었다.
“딱 원숭이처럼 생겼군. 퉤!”
두 손이 자유로워진 왕전은 내심 시간을 끌기로 작정했다.
천운이 닿아 이 상황이 신마성에 전달되기만을 빌었다. 물론 독고혜만 아니라면 죽든 살든 결판을 내는 것이 그의 성격에 맞는 것이지만 그녀 때문에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용성주의 사주를 받고 주모님을 노린 것이냐?”
“후후! 뭔가 착각하고 있군. 그는 내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자격이 없지. 오늘의 이 같은 일도 서로 필요에 의해서 잠시 함께하는 것일 뿐. 놈은 신마성의 성주를 원하고 본막은 저 계집을 원하고 있거든. 후후후.”
왕전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자신을 막아선 자들은 스무 명이 조금 못 되었다. 그중 죽립을 쓴 자들이 발산하는 기운이 가장 날카로웠다. 일단 정도가 약한 자들부터 최대한 빠른 시간에 머릿수를 줄이기로 마음을 먹고는 기회를 노렸다.
“후후! 머리를 굴려 봐야 네가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왕전.”
“과연 그럴까.”
“그런 허세도 소용이 없다니까. 하니 순순히 칼을 버리고 항복해라. 그럼 목숨은 살려 줄 용의가 있다.”
“원숭이 새끼가 지껄이는 말을 당최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퉤!”
왕전은 대도에 내공을 끌어 담았다.
‘반드시 지켜 드려야 한다.’
* * *
북궁천소의 굉혈도가 날아드는 적의 몸을 반 토막으로 만들어 버렸다.
쾅!
바로 옆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끔찍하게도 복면인들은 스스로의 몸을 폭발시키는 방식으로 그를 곤경에 몰아넣고 있었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충돌을 모면할 수 있었지만 이미 전신은 크고 작은 부상들로 가득했다.
북궁천소는 한쪽 구석에 쓰러져 있는 청명과 청진을 빠르게 살펴보았다. 의식을 잃어 가는 그들은 이미 죽은 사람이나 진배가 없었다.
“후욱!”
북궁천소는 길게 호흡을 토해 내고는 두 손으로 굉혈도를 쥐었다.
그러고는 달려드는 자들을 향해 일도양단의 수법으로 후려쳤다. 둘이 동시에 머리가 쪼개지며 고꾸라졌다.
“크악!”
“으아악!”
지켜보던 죽립인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과연 도왕답구나. 하지만 오늘이 네놈의 마지막임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는 여기 있는 모두를 희생시켜서라도 북궁천소만큼은 죽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대업을 위해서라면 북궁천소는 무조건 죽여야 한다.
그만 죽일 수 있다면 그토록 무섭다는 오왕을 흔들어 놓을 수 있다고 여겼다.
죽립인의 눈이 사악한 빛으로 감돌며 자신도 검을 들어 북궁천소를 향해 다가들었다.
콱! 콱!
북궁천소는 두 발을 땅에 힘껏 박고는 굉혈도를 겨누었다.
“용성이든, 부상막이든, 오늘 나를 죽이지 못하면 나중에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하게 될 것이다. 하니 네놈의 말처럼 이 자리에서 나를 죽여야 할 것이다.”
콰아아아!
북궁천소의 주변에서 흙먼지가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