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

<귀환무사 171화>

꽝!

가장 좌측을 맡았던 살수가 왕전의 대도를 정면으로 받아내고는 한순간 무게중심이 흐트러졌다.

“조심해라!”

외침보다 왕전의 대도가 더 빨랐다. 속도를 감안해 날이 아닌 도신으로 머리를 강타하자 수박처럼 터지며 날아갔다. 최초의 사망자가 나오자 멸천조들의 눈빛이 살광을 폭사시켰다.

그때 왕전과 북궁천소가 한 명을 노리고 동시에 공격을 퍼부었다.

제아무리 멸천조라도 오왕의 둘이 펼치는 합공을 막아 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또다시 한 명이 허리가 잘려 날아갔다.

둘이 쓰러지자 그토록 견고해 보였던 움직임에 균열이 보이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에 셋이 더 목이 날아가자 비로소 멸천조들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자살 공격을 감행하라!”

“……뭐?”

멸천조들이 일제히 왕전과 북궁천소를 향해 몸을 날렸다. 수비는 도외시한 오직 죽이겠다는 일념이 담긴, 그야말로 목숨을 내던지는 자살 공격이었다.

“지독한 잡종 새끼들!”

왕전과 북궁천소는 맞설 엄두를 뒤로 물러섰다. 그때 북궁천소가 가까이 날아든 죽립인의 허리를 향해 굉혈도를 휘둘렀다.

왕전이 다급히 외쳤다.

“베지 마라! 천소!”

적의 몸에 거의 닿았던 굉혈도가 간발의 차이로 뒤돌아갔다. 둘은 바닥을 차고 올라 독고혜의 곁으로 내려섰다.

[우리가 도를 뻗으면 그때 주모님을 모시고 무조건 북쪽으로 달려라!]

왕전은 영호수란과 화산의 제자들에게 재빨리 전음을 보내고는 두 손으로 대도를 수직으로 치켜들었다. 반대로 북궁천소는 굉혈도를 횡으로 들었다.

죽립인들이 다시 그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바로 그때 왕전과 북궁천소가 혼신의 힘을 다해 일도 양단의 수법으로 땅을 후려쳤다.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엄청난 양의 흙먼지가 치솟아 올랐다. 그 와중에 죽립인 하나가 팔이 뎅강 잘려 날아갔다.

수장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흙먼지 너머로 빠르게 사라지는 왕전과 북궁천소를 본 것이다.

“위장 공격이다! 속히 놈들을 쫓아라!”

‘뭐지?’

거처에서 구룡삼세와 천살강기를 하나로 합치는 작업을 고심하던 혁련천후는 난데없이 몸속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고개를 갸웃했다.

몸속에서 천상강기가 저절로 꿈틀대고 있었다. 순간 그의 뇌리에 조부 혁련강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울렸다.

[너와 나는 영적으로 연결된다. 서로에게 이상이 생기면 천살강기가 그것을 전해 준다.]

뒤이어 독고혜가 떠올랐다.

지금의 이 현상이 그녀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임을 짐작하고는 그대로 창문을 뚫고 밖으로 몸을 날렸다.

와장창창!

밖에서 무사들의 수련을 돕던 관산악과 담대소천이 허공을 가르는 혁련천후를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무슨 일이지?”

“아무래도 뭔가 일이 벌어진 것 같다.”

그때였다. 혁련천후의 뒤를 쫓아 흑야가 몸을 날리는 것이 보였다.

관산악이 외쳤다.

“무슨 일이냐! 흑야!”

하지만 흑야는 이미 저만치 앞을 달려가고 있었다.

담대소천과 관산악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동시에 뒤돌아섰다.

“진천! 진무! 너희 둘은 성을 지켜라.”

“예?”

“잠시 다녀올 테니 꼼짝 말고 성에 남으란 말이다!”

뜬금없는 말에 진천과 사공진무는 두 눈을 휘둥그레 치떴다.

쾅!

담대소천과 관산악이 바닥을 차고 올랐다. 둘은 순식간에 강을 너머 백어산의 능선 너머로 사라졌다.

“갑자기 왜 저러시지?”

“글쎄다.”

그때 좌측에서도 누군가 몸을 날렸다. 송가장의 아이들에게 창술을 전수하던 조윤이었다.

혁련천후는 생애 최고의 속도로 경공을 펼쳤다.

휘익!

주변 사물이 엄청난 속도로 뒤로 스쳐 지나갔다. 흔들리는 두 눈은 오직 남쪽을 향하고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가슴을 후려친다.

‘다시는 위험한 지경에 이르지 않게 하겠다고 수천 번을 다짐했건만…….’

스멀거리며 솟아나는 불안감은 더욱더 짙어졌다.

어떤 자들인지는 모르지만 왕전과 북궁천소의 호위를 뚫고 그녀를 위험한 지경에 빠트렸다. 게다가 독고혜 역시 예전의 그녀가 아니다. 이미 십지신검을 넘어서는 경지에 올라선 그녀다. 그런데도 위험에 처했다니.

‘누구든…… 용서하지 않는다.’

쾅!

진로를 막아선 나무가 박살이 나며 뒤를 따르던 넷의 진로를 막았다.

허공에서 몸을 틀어 떨어지는 파편을 피한 흑야 등은 전력을 다해 혁련천후의 뒤를 쫓았지만 거리는 점점 벌어질 뿐이었다.

“주모님께 변고가 생긴 것이 분명하다.”

“한데 어떻게 아셨지?”

“낸들 아냐. 어쨌든 뒤처지지 않게 힘들 내 봐!”

조윤이 외쳤다. 그는 이미 저런 반응을 지난날 겪어 본 적이 있었다.

독고혜를 데리러 청수곡으로 갈 때 분명 저 모습 그대로였다. 그때였다. 혁련천후가 뛰어든 숲에서 강력한 기운이 전해졌다.

넷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 정도 거리에서 이토록 확연히 전해질 정도라면 엄청난 고수라는 것을 뜻한다.

숲으로 뛰어든 그들은 혁련천후와 마주한 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섬뜩하리만치 스산한 기운을 전신에 두른 자들. 죽립을 내려쓰고 손엔 장검을 든 그들은 혁련천후가 마치 이곳으로 올 것을 알고나 있었다는 듯, 길목을 차단한 채 늘어서 있었다.

“그대가 신마성의 성주인가?”

“그렇다면.”

“후후! 급한 모양이군. 하긴 한시라도 빨리 계집을 구하러 가야겠지.”

역시 이들은 혁련천후의 사정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혁련천후의 눈동자에 살기가 돌았다. 독고혜의 위기를 알고 있다면 보나 마나 적이다.

챙!

검이 뽑히며 태양에 반사된다.

흑야를 비롯한 모두도 검을 뽑아 들고는 혁련천후의 좌우로 다가섰다.

“네놈을 죽이면 신마성도 끝장이겠지. 그렇다면 오늘이 신마성의 최후가 되겠군.”

죽립 사이로 번득이는 눈빛이 무척이나 살벌하다. 모두에게서 지독한 사기가 물씬 풍겨난다.

상대가 신마성의 존재들임을 알면서도 저렇듯 고요한 분위기를 보여 준다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혁련천후의 눈동자가 작은 섬광으로 폭발을 일으켰다.

그는 다짜고짜 죽립인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조윤을 비롯한 다른 이들도 그 뒤를 따랐다.

“쳐라!”

명령이 떨어지자 서른에 달하는 죽립인들이 주둥이를 벌린 학의 모양으로 대형을 바꾸며 날아드는 혁련천후 등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서로를 향한 기운이 거대한 충돌을 일으켰다.

쾅!

“우아악!”

다섯 명의 죽립인이 손목이 부러지며 날아갔다. 혁련천후는 기운을 정면으로 뚫어내고는 죽립인들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뒤이어 무적의 천살강기가 펼쳐졌다.

퍽!

비명도 없다. 그저 잘린 머리와 솟구친 피가 허공을 채울 뿐이었다. 혁련천후의 전신에서 뻗쳐 나온 천살강기는 악마의 혓바닥처럼 주변의 모든 것을 쓸고 지나갔다.

“크아악!”

퍼퍼퍽!

이번에는 두 명이 상체가 찢겨 날아갔다.

“으악!”

담대소천의 청룡언월도가 막아선 자의 육신을 수직으로 쪼개 버리며 그 뒤의 죽립인에게 날아갔다. 흑야의 모습은 전장에서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가장 뒤쪽에서 움직이던 자들이 영문도 모른 채 목이 날아갔다.

조윤의 창은 어김없이 상대의 심장을 꿰뚫었다.

“감히! 본 우리가 누군지 알면서도 덤볐단 말이지! 개자식들!”

관산악의 포효가 숲을 떨어울렸다.

지난날 보다 더욱 광포해진 파괴력은 가히 거칠 것이 없었다.

“크아악!”

아비규환의 참상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말함이리라.

수장으로 보이던 자의 두 눈은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있었다. 조금 전의 자신감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뭔가 잘못되었다…….”

확실히 뭔가 잘못되었다.

지금껏 수집을 해 둔 정보보다 강해도 너무 강했다. 하긴 어찌 알까. 혁련천후는 물론이고 다른 오왕들이 불과 얼마 전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는 것을.

제10장 자비란 없다

왕전은 독고혜를 등에 업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곧장 신마성이 있는 방향으로만 몸을 날렸다. 북궁천소가 그런 왕전의 뒤쪽 이 장 거리에서 뒤를 차단하며 함께 달렸다.

태어나서 지금껏 적을 맞아 물러서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죽을지언정 후퇴를 모르는 그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자신들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독고혜 때문에 수치심 따윈 가슴에 묻고 달리고 또 달렸다.

좌측 숲에서 살기가 전해졌다. 독고혜를 안고 경공을 펼치는 왕전의 속도를 맞추려다가 보니 짧은 시간에 따라잡힌 것이다.

북궁천소의 굉혈도가 허공을 갈랐다.

콰지직!

“크악!”

자욱하게 치솟는 수풀 속에서 비명과 함께 피가 튀었다.

북궁천소는 뒤쪽의 나무를 향해 굉혈도를 휘둘렀다. 굉음과 함께 나무가 잘려 쓰러졌다.

추격하는 자들의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고자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쐐액!

깡!

벌써 암기를 날릴 거리까지 좁혀졌다.

불가사리모양의 암기가 굉혈도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북궁천소는 부서진 암기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며 호흡을 멈췄다.

‘독!’

독연이 분명하리라.

그는 앞을 달려가는 일행들을 살폈다. 맞바람을 안고 달리기에 독이 자신을 넘어 그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듯 보이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것도 거리가 더 좁혀지면 더는 안전하다 장담할 수 없었다. 해서 그는 재빨리 왕전에게 전음을 날렸다.

[주모님의 혈도를 봉쇄해라. 독이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독에 무방비로 노출이 된다. 차라리 혈도를 봉쇄하는 것이 더 안전했다. 물론 그렇게 되면 부작용도 따른다.

‘진무를 믿을 수밖에…….’

부작용은 오로지 사공진무만을 믿었다.

현재로선 그것이 최선이기 때문이었다.

깡! 깡!

암기는 모조리 북궁천소의 굉혈도에 의해 막혀 버렸다. 그가 지나간 자리 바로 뒤쪽은 희뿌연 독연으로 가득했다. 기척에 놀라 날아오르던 새들이 한 줌 핏물로 녹아드는데 걸린 시간은 촌각이면 충분했다.

그만큼 맹독이었다.

그러한 독연이 바람을 타고 죽립인들을 덮쳤지만 그들은 곧장 독연을 뚫고 맹렬히 뒤를 쫓아왔다.

“조심해라!”

그때 앞에서 왕전의 고함이 터졌다.

숲의 좌우가 흔들리더니 복면을 한 자들이 태양에 반짝이는 검을 휘두르며 바람처럼 날아들었다.

“으합!”

청명과 청진이 검을 뽑아 엄청난 속도로 달려드는 자들의 바로 앞에다 검막을 형성했다. 아니, 검막이 아니라 검으로 환술을 펼쳐 적들의 시야를 가려 버린 것이다.

입술을 꼭 깨문 영호수란이 십전무제의 독문 절기를 펼쳤다.

쐐액!

“컥!”

빠르기로 천하에 으뜸가는 비류도의 검강이 한 명의 목을 쳐 냈다. 그녀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검막을 비껴서 들어서던 자의 다리를 베었다.

하지만 상대가 검을 내려 그녀의 검을 후려쳤다.

깡!

검과 검이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어깨를 휘청거린 영호수란에 비해 상대는 이 장 가까이 뒤로 밀려났다. 중심을 잃어버린 자의 목이 댕강 날아간다. 청명의 검이 잘라 내었다.

“두려워할 것도 없는 놈들이야! 겁먹지 마!”

영호수란은 연신 매서운 공격을 퍼부었다. 이미 그녀는 예전의 그녀와는 질적으로 다른 고수로 변모해 있었다.

그녀의 몸 안에도 천살강기가 심어져 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대부분 자신의 내공과 합일을 이룬 상태라 내공만큼은 구파의 장문을 상회하는 초절정에 근접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십전무제의 무공을 익혔으니 그녀도 가히 고수라 할 만했다.

몇 번의 충돌에서 자신감을 얻은 영호수란은 자신이 선두로 뛰쳐나가 적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휘이익!

복면인 하나가 모두를 향해 시커먼 구슬을 집어 던졌다. 영호수란의 두 눈이 한껏 커졌다.

“포탄! 조심하세요! 포탄이에요!”